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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04화 (204/1,497)

〈 204화 〉1부 10장 7

<2020년 6월 26일 오후 2시, 여의도 피닉스 펜트하우스.>

가을을 청화로 변신시켜 CF를 찍게 보낸 나는 애써 이승형과의 관계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기 위해 서울로 돌아왔다.

당연히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그리고 홀로 신서울에 남은 가을을 지키기 위해, 나는 인류 최고의 보디가드를 파견하고자 했다.

"그래서 저보고 서울 도착하자마자 팬텀을 지키라는 말입니까?"

내게 S급 코어 하나와 작은 상자를 건네는 샤오린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불만을 표했다. 나는 그 불만을 해소할 방법에 대해 짐작이 갔지만, 샤오린은 지금 당장 신서울로 날아가야했다.

[너는 청화의 호위가 아니냐.]

"당신이 청화잖아요."

[지금은 빌런 피닉스지. 청화는 신서울에 있으니까 다녀와라. 갔다오면 마음껏 붙어주지. 그러니....]

카앙!

왼팔을 밖으로 쳐내며 무기를 흘렸다. 칼날은 내 갑주와 부딪혀 옆으로 밀려났고, 나는 오른 주먹을 곧게 내질러 샤오린의 멱살을 쥐었다.

"윽!"

영체가 되어 도망치려던 샤오린은 내게 바로 멱살이 잡혀버렸다. 샤오린의 기습공격은 실패로 돌아갔고, 나는 단 1합만에 샤오린을 제압했다.

[또 습관처럼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군. 다음에 기습할 때는 아예 대놓고 해보는 게 어떤가?]

"칫."

샤오린은 전의가 꺾였고, 나는 샤오린의 멱살을 풀었다.

"아쉽습니다. 기습은 통할 줄 알았는데."

청색의 전포 앞섶이 흐트러지며 샤오린의 가슴이 훤히 드러났지만, 샤오린은 그걸 여밀 생각도 없이 소파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잠깐 쉬고 다녀오지요. 10분 정도는 괜찮죠?"

[그래.]

"변신 푸셔도 되지 않습니까?"

[가을이 청화로 변신하고 있으니 혹시 모르지 않나.]

신서울과 서울 양 쪽에서 청화가 모두 나타난다면 가을의 이능력이 들킬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괴인 상태로 김지화가 올린 보고서를 찬찬히 살피며 오후 일과를 재개했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나는 이 시간에 내 집무실에 올만한 이가 누가 있나 싶었다.

[들어와라.]

"보스, 나요."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영혼이 없는 얼굴의 아키택트, 제임스 리 였다. 샤오린은 영체 상태가 되어 소파에 누워있었지만, 내게는 옷을 여미지 않고 기대감에 찬 노출광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응? 누구 있었나?"

[사람은 없다. 거기 앉지.]

"내 마실 건 내 들고 왔으니 됐고."

아키택트는 캔맥주를 짤랑이며 맞은 편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아키택트와 마주 앉았고, 노출광의 행동은 점점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지금 한창 일하고 있을 때인데.]

"그것 때문에 조금 곤란한 일이 생겨서."

[곤란한 일? 네가 직접 올만한 일이 뭐 있다고.]

"이거."

아키택트는 워치에서 스크린을 하나 띄웠다. 그곳에는 내가 신서울에서 본 시위대들이 서울의 버스 노선을 확충하라는 내용과는 전혀 다른, 청화단에게는 상당히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신서울 사람들이 서울에 다시 만들어진 건물들 내어놓으라고 난리야. 특히 아파트들. 동작에 있던 사람들이 지금 다 들어가있잖아?"

[진짜 소유권을 가진 자는 한 명도 없지.]

지하 토굴에서 살며 겪은 고난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서울의 주민들은 전부 다 아키택트가 만든 아파트에 살림을 차려버렸다.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은 아키택트가 세운 아파트가 서울이 파괴되기 이전과 똑같은 형태의 건물이라는 것.

"이럴 줄 알았으면 복원하지 말 걸 그랬어. 이게 말이 돼? 원래 자기들 가지고 있던 건물들 다 박살이 났잖아. 그럼 당연히 소유권이고 뭐가 날아가는 거 아냐?"

[건물은 날아갔어도 토지는 남아있지.]

"애초에 서울이 괴수랑 빌런들 땅이었던 게 불과 석달 전인데. 쯧. 아, 보스 탓하는 건 아니야. 보스 덕분에 6만 명 햇빛 보게 해준 건 정말 고마워. 그런데 말이야."

아키택트는 캔맥주를 테이블에 거칠게 내려놓으며 울분을 토했다.

"그럼 그대로 살게 해줘야지, 이게 뭐냐고! 어?"

[진정해라.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다.]

"그럼 보스가 생각하는 해결 방법은 뭔데? 아, 잠깐만. 일단 내 의견은 이거야."

아키택트가 한반도의 지도를 펼쳤다. 그는 서울에 검지를 올렸다가 북쪽으로 쭉 선을 그었다.

"우리 여기다가 도시 박아버리자. 응? 피닉스 시티! 이름 좋구만.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끌고 주인없는 땅에다가 도시 짓자고."

[그건 무리다.]

아키택트가 아무리 한복을 입고다녀도 그는 서울 주민들이 심리적 부담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 어디로 올라간다고. 전쟁으로 피난가는 것도 아닌데.]

서울의 주민들이 악착같이 지하에서 버티며 서울에서 떠나지 않던 생활상을 옆에서 두 눈으로 지켜봤으면서도, 아키택트는 자신이 복구한 건물들을 원 주인들에게 빼앗기는 것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걱정마라. 신서울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이들은 지극히 제한되어있다. 버스도 하루에 고작 다섯 대 밖에 움직이지 않잖나.]

"올라오는 놈들 중에 벌써부터 자기 집 찾겠다고 나섰다가 하늘성한테 제압당한 건 아시고?"

[그건 금시초문인데.]

전혀 들은 바가 없다. 아키택트는 역정을 내려다 술을 들이키며 진정했다.

"하긴,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니 알 턱이 있나. 마침 보스 자리 비웠었지. 거 미안하네. 내가 지금 좀 냉정하지 못해서."

[아니다. 이해한다.]

"젠장. 이게 다 흑염룡 그 놈이 안 무서워서 그런 거 아니요. S급 괴수가 얼라들 놀이기구나 해주고 있으니, 신서울 사람들이 뭐 무서워나 하겠나? 참 어이가 없지. 시청사의 뱀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을 때는 서울은 커녕 인천도 못 올라오던 사람들이."

아키택트가 구로와 강남을 가리켰다.

"거 코어 두 개로 여기다가 괴수들 주둔 시키는 건 어떠려나? 구로에다가 물지기 부활시켜서 주둔시키고, 강남에는 지파룡 부활시키는 거요. 그러면 사람들 무서워서 안 올라오지 않을까?"

[그래도 올라올 자들은 올라올 거다. 흠, 너무 빨리 도로의 괴수들을 처리해버렸나.]

"보스가 너무 일을 빡시게 해서 그런 거 아니오? 평양에서 괴수들 생성된다며? 그걸 DMZ 넘어오기도 전에 다 쓸어버리니 서울이 위험할 리가 있나."

서울은 안정을 되찾았다. 괴수적으로 유일한 위협인 뉴클리언은 이제 새로운 정령을 각성시키면 충분히 안전하게 제압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다.

"딜레마구만. 끄응. 발전은 시켜야하는데 너무 안전하니까 파리가 꼬여. 젠장."

[더이상은 무리군. 오늘 하루는 쉬어라.]

"......?"

두 번째 캔맥주를 따려던 아키택트의 표정이 굳었다. 왜지.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한 건가?

"보스가 지금 나보고 쉬라고 한 거 맞나?"

[쉴 때는 쉬어야지. 나도 중국에서 올 때 쉬지 않았나.]

10분이지만.

"아직 2시 조금 지났는데?"

[퇴근해. 퇴근이라고 해봐야 방으로 들어가는 정도겠지만. 오늘은 쉬고 팬텀 돌아오면 회의하도록 하지. 내일 밤에 바로 논의하겠다. 그 때 까지 쉬어라.]

나는 아키택트에게 축객령을 내렸고, 아키택트는 그 어느 때보다 신난 얼굴로 내 방을 뛰어나갔다.

"Fuck Yea-------!!!"

[문도 안 닫고 가는 군.]

쉬라는 말이 그리도 기쁠까. 나는 마력을 튕겨 문을 닫았다.

[그래서 샤오린 양.]

"하아, 하아. 네...?"

[영체가 되어 스트립쇼를 하니까 그리 좋냐?]

샤오린은 전라의 상태로 테이블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손을 가슴위에 얹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진심으로 환룡님의 사도가 된 걸 기쁘게 생각합니다."

[왜?]

"그야 이렇게 투명해질 수 있으니까요...! 흐으슷!"

샤오린은 테이블 위에서 몸서리를 쳤다. 나는 손에 마력을 둘러 샤오린의 목덜미를 잡은 뒤, 전력으로 유리창 밖으로 던졌다.

"꺄아아아악!"

호텔밖으로 던져진 샤오린은 기뻐하며 떨어졌다. 제발 가을을 호위할 때는 옷을 입고 옆에서 지키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었다.

삐리리리.

아래층에서 호출이 울렸다. 나는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괴인형을 해제하여 육성을 냈다.

"뭐야."

[방금 서방님이 이상한 걸 봤다고 해서. 왠 미친 여자 하나가 전라로 웃으면서 네 방에서 뛰어내렸다는데?]

"샤오린이다."

[어머나. 이제는 그런 플레이에 눈을 뜬 거야?]

"창문보면서 뒷치기 하시는 분들이 하실 말씀은 아닌-"

뚝.

끊어졌다.

[아키텍트에게는 좀 미안하게 됐군.]

나는 바로 괴인형으로 바꾸어 뒤로 백덤블링을 했다.

콰가강!

바닥에서 금빛의 검과 날카로운 물줄기가 치솟았다. 바닥은 구멍이 송송 뚫렸고, 금빛의 검이 꿰뚫은 구멍에서 두 금발 남녀가 튀어나왔다.

"몰래카메라 설치했냐, 쓰레기?!"

"부부의 사생활을 염탐하다니! 아무리 너라도 용서 할 수 없어!"

<광검> 허윤환과 <운디네> 아나스타샤가 얼굴이 잔뜩 붉어진 채로 내게 무기를 겨눴다.

흰 가운을 두른 광검은 은근슬쩍 하체를 비틀고 있었고, 그의 부인-블라디미르 루살카 아나스타샤는 커튼을 떼어내어 몸을 가리고 있었다.

찌걱.

루살카의 허벅지에서 하얗고 끈적한 액체가 흘렀다.

[아. 사정 중이었구나. 미안.]

"서방님!"

"우오오오!"

광검이 궁극기를 켰다. 나는 금빛의 세계에서 발정난 두 부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꽤나 진땀을 빼야했다.

아.

망가진 호텔 바닥은 아키택트가 1분만에 고쳐주고 갔다.

* * *

피닉스가 두 부부를 상대로 선전을 벌이고 있는 그 시각.

가을은 청화로 변신해 협회에서 마련한 대기실로 들어갔다. 청화 한 명을 위해 급하게 마련된 대기실은 미처 정리하지 못한 방 주인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죄송합니다, 청화 님. 여기가 원래 빈 방인데…."

"괜찮아요. 이전에 사용하셨던 분이 상당히 깔끔하게 쓰셨던 모양이네요?"

"아…. 그게."

백희아는 난감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방 주인이 떠난 지 꽤 지났다고는 해도, 남자가 사용하던 방을 임시 대기실로 사용하는 건 자신도 영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협회는, 한국 지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청화를 한국에 남기려 안간힘을 썼다. 강제적인 수단은 전혀 통하지 않으니, 청화의 마음을 돌리려고 하는 얄팍한 수작이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탁상행정으로 나온 생각들로, 청화가 알게 되면 상당히 불편해질 계획이었다.

"이 방의 전 주인…화권인가요?"

"......어떻게?"

백희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을은 벽에 장식처럼 걸린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화권 이승형과 여배우 천가을이 카메라를 향해 다정하게 손을 흔드는 사진이 하나 걸려있었다.

"아. 저런 게 걸려있었군요.... 불편하시면 빼겠습니다."

"아뇨. 그냥 놔두셔도 돼요."

가을의 시선은 자신이 괴인이 되기 전 모습에 꽂혀있었다. 백희아는 그 눈빛이 여배우 천가을을 품평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혹시.'

백희아는 히어로들이 장난으로 이승형을 놀리는 이야기를 옆에서 들었다. 천가을을 좋아하다가 천가을이 서울에서 사망한 뒤, 상주를 하고 마음을 곧게 접었다고.

그리고 그 뒤에 히어로들은 그의 다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청화와 엮을 기회만 노리고 있었고, 실제로 이승형도 장난에 대해 그리 격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진짜 뭔가가 있는 건가?'

공익광고라고 하지만 협회와 정부의 프로파간다 성격이 짙은 광고를 찍겠다고 하던 순간부터 이상했다. 그러나 백희아는 청화가 보이는 모습을 보고 의심의 싹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음, 내가 더 크네."

"!!"

가을은 자신의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며 거울 속 가을과 비교했다. 백희아는 압도적인 격차에 자존심이 살짝 꺾였지만, 분명 사진 속 천가을과 눈앞의 청화는 큰 차이가 없었다.

"아, 죄송해요. 혼잣말이었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 집행관 님."

가을이 고개를 들어 거울 속 천가을을 가리켰다.

"저 사람 혹시 아시나요?"

"네.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였습니다. 서울에서 행방불명되긴 했는데, 아무도 그 사람이 어디갔는지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런가요...."

가을은 쓰게 웃었다. 백희아는 볼을 긁적이며 첨언했다.

"그래도 부모님 두 분은 아직까지 살아계신다고 믿고 계시더라고요. 지난번에 시위대 분들에 같이 나오셔서 휠체어 타고 밤 늦게까지 광장에서 계시던데...."

"네? 시위요?"

가을의 표정이 굳었다. 백희아는 아차싶었지만 굳이 숨길 문제는 아니라 마저 말을 이었다.

"예. 사람들이 서울로 많이 올라가고 싶어하는데 버스 노선은 지금 제한 운행이 되고 있거든요. 수요를 다 충족하려면 지금 노선의 세 배는 늘려야 해요."

"......."

가을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잠시 뒤.

대기실에서 촬영을 위해 나선 청화의 표정은 좀처럼 밝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백희아는 자신의 말실수에 정신이 아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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