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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31화 (231/1,497)

〈 231화 〉1부 11장 1

피닉스의 <6민트 빅벤 테러>로부터 2주의 시간이 흘렀다.

세계는 피닉스를 유인하고 나선 SS급 빌런, <펜릴>의 존재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특히 영국 왕실은 발칵 뒤집혔다.

-왕성에서 뛰쳐나온 고양이가 괴인으로 변신하는 걸 목격했다.

-그 검은 고양이가 왕실묘 <캐트시 경>이라는 게 사실이냐.

-영국도 한국처럼 SS급 빌런은 은폐하고 있는게 아니냐.

세간은 민트초코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의심과 혼란이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특히 중국에서부터 시작하여 의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던 원탁에 대하여 의심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원탁들이 한국에 모인 거 피닉스 견제하려고 모인 거 아니었음?

-청화랑 피닉스랑 무슨 관계냐? 둘이 동반자 관계라는 썰이 진짜같은데?

-그럼 원탁이랑 피닉스랑 붙어먹었단 말이네ㄷㄷ 빌런이랑ㄷㄷㄷ

온갖 가짜뉴스가 판을 치며 여론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원탁과 피닉스에 대한 비토는 더불어, 원탁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감마저도 일었다.

원탁의 우두머리, 가웨인 경은 카멜롯 성에서 대중의 앞에서서 선언했다.

-2020년 7월 30일. 원탁 회의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가웨인의 소집 아래, 모든 원탁이 한 곳에 모이는 장관이 예고되었다.

-장소는 서울, 여의도.

가웨인은 온갖 의혹들에 대해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63빌딩입니다.

***

<7월 17일 오전 8시 30분, 여의도 청화단 펜트하우스.>

청화단은 그 어느때보다 분주하게 움직였다. 단원부터 간부들까지 쉴 틈 없이 돌아다니며 트레일러에 실려온 짐들을 날랐다.

"거기! 잠깐만! 그쪽으로 가는 거 아니야!"

팬텀 천가을의 외침에 따라 헬멧을 쓴 괴인들이 가구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피닉스에 의해 듀라한이 된 괴인들, <푸른 깃털>들은 불편한 몸짓으로 가을의 앞에 섰다.

차착, 착.

괴인 하나가 수화로 제 의사를 밝혔다. 가을은 코웃음을 치며 무언가로 괴인의 헬멧을 내리쳤다.

"지금 누구 놀려? 기어는 괜히 지급된 줄 알아?"

괴인들의 손목에는 둔탁한 검은색의 팔찌가 손목에 걸려있었다. 촉수로 머리를 얻어맞은 괴인은 마도 기어를 눌렀다.

위잉.

헬멧의 바이저 아래, 홀로그램처럼 푸르게 빛나는 사람의 머리가 생겼다. 아직까지 다음 경지로 오르지 못해 머리를 되찾지 못한 푸른 괴인들은 마도 기어의 홀로그램으로 말이나마 할 수 있었다.

[유성의 침대는 전부 여의도 내의 호텔에 비치하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유성의 침대를 왜 호텔에 깔아? 사람들 허리 나가는 꼴 보고 싶어?"

"가을 님. 잠시."

급히 뛰어온 궁성 유이신이 가을과 팔짱을 끼며 슬그머니 인적이 드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슨 일인데?"

"어제 단장님 긴급 지시가 있었습니다. 예상보다 서울에 올라오는 이들의 수요가 많아서, 급한대로 유성의 제품들을 여의도에 비치한다고…."

"뭐? 나 전혀 못 들었는데?"

"기어 우선 지급자들을 대상으로 내려진 거라…."

이신은 자신의 손목과 가을의 손목을 번갈아 가리켰다. 이신의 손목에는 보급형 마도 기어가 걸려있었고, 가을의 손목에는 아직 스마트 워치가 걸려있었다.

"......미안."

진실을 알게된 가을은 자신이 촉수로 머리를 때린 괴인의 앞에 고개를 숙였다. 홀로그램 속 괴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오해를 했어. 일하는데 방해를 했네. 미안."

[......아닙니다. 충분히 오해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괴인은 가을의 사과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가을은 미안함에 어떻게 코어라도 하나 주려다, 익숙한 괴인의 얼굴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없어?"

[...글쎄요. 신서울에서 뵀을 수도 있고, 저도 한 때는 협회에 등록된 히어로였지 않습니까.]

"......그래요? 알겠어. 마저 가서 일 하세요."

가을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떠났다. 이신은 쫄래쫄래 달려와 가을이 뒤로 조심스레 따라붙었다.

"저기, 가을...님?"

"왜?"

"......정말 기억 안나십니까?"

"그럴리가. 저 사람이지? 나랑 국회의사당에서 쌈박질 했던 남자."

"......<철표> 박성태. 당시 소나무 부대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가을은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 불편할 수 있는 관계에서 가을은 자신의 기억이 애매모호한 듯한 태도를 보여 자리를 피했다.

"생각해보니 내 심장 꿰뚫었던 사람도 당신이네."

"예. 덕분에 저도 단장님께 목이 잘려서 괴인이 되었지만요."

이신은 제 목을 그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둘의 첫 만남은 살해자와 피해자라는 불편은 커녕 원수나 다름없는 관계였으나, 서울에서 서로 살을 맞대고 살면서 서로 불편함을 농담삼아 이야기할 수 있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괴인이라서 그런 걸까?"

"아무래도 상식적인 판단을 내리지는 않죠. 다들."

"악당 간부의 직속 조무래기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거네."

"그래도 가을 님은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뭣보다도 단장 님의 아홉 번째 부인-"

"너 죽을래?"

가을은 촉수로 이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신은 목구멍을 범하는 듯한 촉수의 움직임에, 능숙한 손길로 허벅지 안쪽의 단검을 꺼내 촉수를 잘랐다.

"우물우물. 꿀꺽. 하아, S급 이라서 그런지 점점 더 맛있어지십니다."

"으으, 진짜 싫다. 예전에는 막 싫다고 난리를 치더니."

"익숙해지면 좋지요. 아니면 가을 님, 저랑 촉수로 불륜하시는 건…."

"꺼져. 너 이런 식으로 자꾸 간부들 네 편으로 만들려는 거지? 나중에 사람들 모아서 반란이라도 일으키게?"

"......거, 반란까지는 못하죠. 저도 제 한계를 아는데."

입술에 묻은 촉수의 점액을 혀로 핥아낸 이신은 보급형 마도 기어를 두드려 스크린을 띄웠다.

"간식도 먹었으니 가을 님, 슬슬 이동하시죠. 회의장까지 산책 겸 걸으시겠습니까?"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갔으면 좋겠는...윽."

가을은 회의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유일한 카페 앞에서 팔짱을 낀 금발의 여인에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검은 선글라스로 얼굴을 절반이나 가린 금발의 여인도 가을을 보더니-

"퉷."

바닥에 껌을 뱉었다. 가을은 식겁하며 여인-은유하에게 달려갔다.

"너 이게 무슨 짓이야!"

"길가에 껌 버렸죠. 뭐 어때요? 어차피…. 아, 알았어요. 뭘 그렇게 아침부터 신경질이람. 9호 언니는 생리해요?"

"너 진짜 죽을래? 너도 괴인 되고 싶니?"

"7호는 괴인 되고 싶지 않답니다. 아, 전남편이 그럴 생각이 없으니까 소용없네요."

"전남편인지 전부인인지 모르잖아?"

"저는 전남편이라고 생각할게요. 아니면 9호 언니는 전부인이라고 생각하시고 싶은가요? 혹시 레즈신가?"

"......내가 말을 말아야지. 너 본체 데려와. 어디서 개망나니만 서울에 보내니? 사람 짜증나게."

가을과 유하는 티격태격하며 커피를 주문했다. 카페-Padre Juan의 사장 후안은 가을을 보자마자 아이스 캬라멜 마끼아토를 건넸다.

"진정하시게, 천 배우. 건물주 님도 너무 자극하지 마시고."

"칫. 알았어요."

"너 왜 사장님 말은 찰떡같이 바로 알아듣니?"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니까요."

가을은 심사가 뒤틀렸지만 순순히 커피를 받았다. 공짜 커피나 마찬가지였지만, 은유하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 바리스타의 실력은 허언이 아니었다.

"유하벅스보다 훨씬 낫네. 아, 사장님. 죄송합니다. 그런 거랑 비교해서."

"......."

후안은 대답을 회피했다. 얼굴로는 본심을 말하고 있었지만, 그 유하벅스의 사장이 눈앞에서 도끼눈을 뜨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흥, 언젠가 세계최고로 올려놓을 거니까 걱정마요."

"너 회의장에서도 그렇게 천방지축으로 날뛸 거니?"

"아뇨? 그 때는 본체로 직접 이 몸을 조종해야죠. 지금의 저는 1/7이니까."

"......이능력자들 대화는 뭔 이야기를 하는지 정말 못알아듣겠군. 아무튼 여의도에 이렇게 멋드러진 건물 무상으로 제공해준 건 고맙네만 말이야."

후안은 이신에게 아이스티를 건네며 회의장을 가리켰다.

"슬슬 가볼 시간 아닌가? 저기 다른 사람들도 달리고 있는데."

후안이 가리킨 방향에는 정장을 입은 대머리가 의사당대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지각비 A급 코어 하나!"

바위괴인, 조덕배는 자신의 손목에 찬 검은 팔찌를 과시하며 회의장 건물로 들어갔다. 세 여자는 손에 커피를 든 채, 느긋한 얼굴로 커피를 마시며 걸었다.

"까짓 거 하나 내고 말지 뭐."

"아직 시간도 남아있는데. 흥."

"......지각비의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이신은 초조한 얼굴로 마도 기어를 눌러 시간을 확인했다.

8시 55분.

청화단의 아침 회의가 시작되기 5분 전이었다.

***

세 간부가 느긋한 발걸음으로 정문을 넘어오던 그 시각.

청화단의 단장, 피닉스는 진짜같은 플라스틱 모델건을 손으로 돌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또 무슨 바람이 들어서 총을 들었냐? 회의장에서 조는 놈 머리에 총구멍이라도 만들게?"

"또 까부네요. 어떻게, 머리에 구멍 만들어 드려요?"

"하루이틀이냐? 이제는 좀 협박을 다르게 할 때도 안 됐어?"

덕배는 실실거리며 피닉스를 자극했다. 모델건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피닉스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덕배를 비웃었다.

"그럼 당신에게 가장 적절한 협박으로 바꿔야겠네요."

"뭔데?"

"히드라는 4순위."

"야 이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덕배가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역정을 냈다. 피닉스는 오랜만에 보는 덕배의 진심어린 분노에 우울했던 기분이 풀린 듯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왜요? 어디있는지 모르는 애를 찾는 것보다 위치 아는 애부터 찾는게 우선이지."

"그러면 2순위로 돌려야지 무슨 4순위까지 밀리냐고!"

"제가 그 날 히드라를 너무 괴롭혔거든요. 상처를 치료할 시간은 줘야하지 않을까요?"

"내가 말을 말아야지. 됐다. 어차피 지속성이고 뭐고 간부 안 잡으면 세계가 멸망할텐데. 내가 급하냐? 네가 급하지."

덕배의 일침에 피닉스는 침묵했다. 덕배가 지속성 지속성 노래를 부르긴 하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은 피닉스였다.

"그러길래 왜 그 날 나를 두고 갔냐. 어? 내가 이런말 하기는 그렇지만, 환룡을 각성시킨 빠따 아니냐."

"이제 자기 정체성을 빠따라고 인식하는 거네요?"

"빠따라도 좋으니까 나 좀 데려가라고. 어? 중국에 갔을 때 내가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됐냐. 안 그래?"

"......이런게 하필이면 오늘 호위로 따라붙다니. 진짜 짜증나."

피닉스는 질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문을 열고 방을 나서며 복도를 걷는 피닉스의 발걸음은 점점더 빨라졌고, 덕배는 황급히 그 뒤에 따라붙으며 쉴 틈 없이 조잘거렸다.

"그러길래 왜 혼자서 또 깝치냐고. 너 광검한테 인사하러 대전 갔다 온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은 하냐?"

"......아니, 몇 번을 말해요. 진짜 그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니까?"

피닉스가 문고리를 잡으려다 몸을 돌렸다. 피닉스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왈칵 터뜨릴 것 처럼 억울한 얼굴이었다.

"아니 무슨 첫 날에 바로 그렇게 튀어나올 줄 누가 예상이나 했어요? 펜릴이 진작에 잠에서 깨어나서 영국 왕실에 잠입하고 있을지 알았어요? 거기에 아지다하카에 히드라까지 깨서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할 줄 알았냐고요! 어?! 누구는 깨어나니까 2020년인데, 누구는 20년 동안 존버하면서 큐브나 모아대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젠장!"

"어이쿠, 누가 불속성 아니랄까봐 엄청 불타네. 재밌네. 더타봐. 실례 아니야."

덕배는 피닉스를 다독이기는 커녕 끓는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덕배가 놀리는 정도가 역치에 다다른 건지,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퍼붓던 피닉스가 외려 진정하고 말았다.

"후우, 후우. 그래요. 다 누구 잘못이지. 어휴, 내가 사람 좋아서 참는다, 참아."

"그거 아마 네 잘못일 걸?"

"시끄러워요. 내가 누구 얘기하는 줄 알고."

피닉스는 손을 흔들어 덕배의 이어지는 말을 끊어버렸다.

"에휴. 내 인생. 내가 어쩌다가 그 날 전부 다 까발려서."

"내 직감으로는 너 아직도 비밀 많은 것 같은데."

"진짜 딴지를 못 걸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나…. 조용히 해요. 내가 당신 때문에 그 날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아요?"

"야."

덕배는 어깨를 으쓱이며 희희덕거렸다.

"그러길래 왜 나한테 그렇게 모든 걸 설명하고 그랬냐, 엉?"

"......젠장."

피닉스는 덕배를 없애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덕배의 지위는 감히 피닉스가 손대기 힘든 곳까지 올라가버렸다.

"호가호위를 아주…!"

"뭐, 나 일러바친다? 누구한테 이를까. 9번? 13번? 7번? 그도 아니면 네가 그렇게 찾지 못해서 안달난 1번?"

"조덕배 씨."

피닉스는 덕배의 입을 닥치게 만드는 마법의 문장을 읊었다.

"사실 당신이 17번이에요."

"......우웨에엑!!"

덕배는 생각만으로도 역겨운 지, 화분을 붙잡고 구토했다.

"......진짜 모든 걸 다 걸고 거짓말인데, 너무 격하게 반응하면…."

"우웁, 푸허윽, 우엑."

피닉스는 손가락을 튕겨 덕배가 올리는 것을 소멸시킨 뒤, 덕배를 복잡한 얼굴로 내려다봤다.

"내가 왜 이걸 괴인으로 만들어가지고."

피닉스는 그 날, 민초 테러 이후 서울로 돌아온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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