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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43화 (243/1,497)

〈 243화 〉1부 11장 13

피닉스가 석하랑의 기분을 풀어주고 있던 그 시각.

서울 천가을의 자택에서는 또 한 차례 파자마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훌쩍, 흑."

파자마 파티라고 하기보다는 실연당한 아가씨를 위로하는 술 자리라고 하는 게 더 맞는 분위기였다.

수백 만원을 호가하는 레드 와인을 품안에 안은 금발의 망나니, 은유하는 술에 취해 자꾸만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야, 망나니. 그만 좀 해. 너 진짜 찌질해보여."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천가을은 유하의 허리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일으켜세웠다. 하지만 유하는 눈물을 글썽이며 대성통곡할 뿐이었다.

"저 이제 어떻게 해요...! 고객님이 이제 저 싫어하면!"

"고작 그런 정도로 너 싫어하게 됐으면 나는 진작에 버림받았어."

"흐흑, 하지만 너무 심하게 들이받아버렸잖아요...!"

유하는 자신만의 걱정과 근심에 빠져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가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유하의 머리맡 쪽으로 소파에 앉았다.

방 안에는 벌써 온갖 종류의 술이 한 가득 벌려져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다 광검 님이 주고 가신 술이라는 거지...."

"흑, 이제 다 쓸모 없어요. 기껏 광검 님 같은 S급, 아니 SS급 인재 얻었다고 기뻐했는데 고객님이 다시 빼앗아가버렸다고요. 흑."

"너는 청화단 빼앗아갔으니 별반 다른 거 없지 않니?"

"흑, 빼앗다니요. 저는 어디까지나 고객님이랑 상생하려고 했다고요. 그런데 고객님은, 흑, 얌체같이 자기만 쏙 빠져버리고...!"

유하는 소파에서 다리를 수영하듯 위아래로 움직이며 소파를 찼다.

"진짜 너무하지 않아요? 새 여자 나왔다고 바로 나한테 소홀하는 거."

"너 처음 나왔을 때 내가 느낀 기분을 이제 이해하겠니? 앞으로도 자주 있을 거야."

가을은 와인을 병나발로 들이마시며 자조했다. 유하는 몸을 일으켜 가을을 향해 도끼눈을 떴다.

"언니는 좋으시겠네요. 언니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서."

"아무렴 너같이 이미지 개판난 망나니랑은 다르지."

가을은 낄낄거리며 손을 들어올렸다.

"어디보자.... 이승형 아직까지 나한테 미련 100% 남아있지."

"자의식 과잉이에요. 이승형이 그렇게 미저리인 것 같아요?"

"뭐래. 걔 말은 그렇게 해도 내가 여지를 주면 또 흔들릴 걸? 단지 내가 이승형한테 관심 없고, 피닉스바라기서 그런 거야. 풋."

"씨이. S급 되더니 아주 여유가...!"

유하는 취기 가득한 얼굴로 씩씩거렸다. 인형임에도 불구하고 마구잡이로 날뛰는 모습은 분명 본심을 망나니 인형에 꾸역꾸역 밀어넣은 게 분명했다.

"아아, 나도 S급 되고 싶다!"

"얘는 인형을 무슨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만들어놨나. 너 지금 다른 인형은 어쨌어? 본체는?"

"다른 인형이요?"

유하는 손가락을 펼쳐 하나하나 헤아렸다.

"은재민은 지금 회사 서류 결재 중이고, 블랙마켓 회장은 지금 외부 업체랑 뒷거래 중이고, 은하수 회장은.... 딸꾹."

유하는 와인을 끌어안으며 헤벌레 웃었다.

"본체는 지금 일하는 중이에요. 고객님 사랑을 되돌리려면 이번 실수를 만회해야하니까."

"너도 정말 대단한 년이야, 진짜."

"칭찬 고마워요! 망나니한테 최고의 찬사인 걸요."

"그래. 뭐 할 생각인데?"

한껏 달아올라있던 가을의 목소리가 잠잠해졌다. 유하 또한 잠긴 목소리로 담담히 제 생각을 풀어나갔다.

"우선적으로 은유하대학교의 개교를 확실히 하는 거예요. 9월부터 바로 학기가 시작될 수 있게. 지금 강사진만 구하면 돼요."

"얘, 연극영화과 있니? 나 거기 교수 자리 하나 만들어주라."

"언니는 연기 더럽게 못해서 안 돼요, 딸꾹."

"......이게 뚫린 입이라고."

가을이 병을 내려놓고 유하의 위를 덮쳤다.

"너 어디 한 번 나한테 제대로 당해볼래? 응? 너 자꾸 나 나이 많다고 무시하는 거니?"

"아, 아니요! 언니 교수하기에는 연기력 딸리는 게 사실이잖아요!"

"야! 내 마지막 커리어 드라마가 시청률 40% 넘긴 국민 드라마였어!"

"그거 다 이승형 빨이거든요! 제가 스폰 들어가서 알아요! 언니 연기 못한다고 욕먹는 거 제가 다 알바 돌려서 실드치느라 깨진 돈만 억소리가 난다구요!"

"그건 참 고맙네!"

가을은 씩씩거리다가 물러섰다. 실제로 유성에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기는 했으니.

"애초에 이승형을 위한 프로파간다로 제작된 드라마였어요. A급 이능력자 배우! 그것도 마스크 반반한 미남! 어휴, 언니는 그런 남자랑 계속 썸이나 타지 왜 고객님이랑도 썸타려고 해서."

"어머나. 얘, 걔가 나한테 얼마나 질척거리는 지 아니? 너 내가 관악에서 있었던 일들 다시 리플레이 해줄까?"

"귀에 딱지가 듣도록 들어서 이제는 다 외우겠어요. 흥, 언니는 좋겠네요. 국가 최고 존잘남에다가, 중국 실질적 최고 권력자의 사랑까지 받으셔서."

"야. 말 바로해. 모택평이 나 좋아해? 뒤질래? 환룡이 나를 좋아하는 거야."

가을이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고개를 치켜올렸다.

"내가 환속성 재능이 좀 쩔거든. 내가 S급 괜히 단 줄 아니?"

"씨이. 누구는 지금 찾지도 못하는데.... 아, 언니."

유하가 진지한 얼굴로 소파 위에서 무릎까지 꿇으며 경건한 자세를 취했다.

"S급 오르면 가슴 커진다는 거 진짜에요?"

"누가 그런 말을 해?"

"고객님이요."

"응, 맞아. 좀 컸어."

가을은 허리를 바로 세우며 자신의 가슴을 과시했다. 유하와 단 둘이서 있는 상황에 술까지 들어가서 그런지, 가을의 행동은 거리낌이 없었다.

"언니가 연기력만큼 이것도 좀 대단하잖니. 잊었어? 언니 수영장 씬에서 분당 시청률 60% 돌파한 거."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질투어린 여자들 쌍욕도 수 십배는 늘었죠. 제가 그거 없앤다고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하아."

유하는 가을의 가슴 아래에 손을 뻗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언니, 저 진짜 죄송한데요. 한 번만 느껴보면 안 돼요?"

"만져보고 싶어? 이걸?"

"세상 모든 여자들이 질투하던 언니 G컵 한번만 느껴보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나 G컵 아닌데."

가을은 부끄러운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헛기침을 했다.

"S급 되면서 가슴도 살짝 커졌는데.... 허리도 좀 줄었어."

"이런 ㅆ."

"망나니라고 욕 아무렇게나 하지마."

"......미안해요. 너무 대단하셔서."

유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가을의 모성을 향해 얼굴을 박았다. 온갖 알코올로 가득한 숨결이 가을의 잠옷 사이로 스며들어 가슴을 따스히 데웠다.

"하아, 언니는 진짜 좋겠다.... 제가 다른 건 안 부러운데 진짜 언니 몸매 하나만큼은 부러워요."

"너도 질투하는 거 아니였어?"

"언니. 이 정도로 압도적이면 질투심이 날 단계가 아니에요. 흐응...H? I?"

"......너 그냥 모르는 게 낫겠다."

가을은 초점이 흐려진 유하의 눈빛에 살짝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유하는 가을이 가진 인체의 신비에 대해 탐닉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언니. 솔직히 얘기해줘요. 사이즈 몇이에요? 서울에 납품하는 물건 중에 언니 브라는 목록에 없잖아요."

"......어, 음."

가을은 식은땀을 흘렸다. 진실을 숨길까 싶었지만, 그랬다가 피를 본 케이스를 옆에서 너무 자주 봐서 그냥 사실대로 얘기하기로 했다.

꿀린느 것도 아니고.

"피닉스가 사이즈 재서 만들어주는데."

"아아아악!!"

유하가 가을의 가슴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뭐, 뭐예요?! 사이즈를 재서?! 어떻게?!"

"......마력으로 신체를 정밀측정한다나 뭐라나."

"그, 그러면 고객님이 제 3 사이즈도 안다는 거잖아요!"

유하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하지만 가을은 그런 유하의 부끄러움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뭘 새삼스레 놀라니. 걔 회귀전에는 너랑 자식 7명이나 낳았다고 하던데."

"그건 미래의 은유하고, 지금의 은유하는 다르잖아요!"

"그건 그렇지. 내가 <팬텀>이고 <마스커레이드>가 아닌 것처럼."

가을은 각성했던 당시에 만났던 환상 속의 그를 떠올렸다.

"......내가 훨씬 젊고 몸매는 더 좋네. 음, 2020년의 천가을의 승리야."

"그거다 정령빨이에요. 환룡 때문이라고요. 씨이, 아아아! 나도 광속성 정령 만나서 내 옆에 두고 싶다아아!"

유하는 여전히 가을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격하게 날뛰었다.

"그래, 그래. 술취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할 게. 맨정신으로 이짓 했으면 너는 진짜 죽었어."

가을은 유하의 등을 토닥이며 진정시켰다. 하지만 광검이 두고간-유하가 광검을 회유하기 위해 사놓았던 수 십병의 술을 전부 들이킨 유하는 좀처럼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흐아앙! 저도 이제 사랑이 하고 싶다고요! 돈만 버는 삶을 이제 질렸어!"

"......이걸 그 새끼가 들었어야 하는데. 그치?"

"흑, 흐으, 흐아아아앙!!"

유하의 슬픔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가을은 바닥에 내려놓은 술병을 들고 유하의 입에 물렸다.

"자, 마셔. 마셔. 같이 마시고 죽자. 오늘도 그 새끼 욕이나 한사발 할까?"

"흑, 흐윽! 언니, 저 진짜...! 내가 그 때 고객님이랑 틀어질까봐 얼마나 무서웠는지, 흐아아앙!!"

은유하. 아직은 감수성이 풍부한 22살의 아가씨였다.

* * *

그 시각, 신서울 유성 일가 저택.

"......."

한창 집무실에서 은(유)하 대학교의 신입생 모집 요강을 수정하던 은유하(본체)는 부끄러움에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왜 그러십니까?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옆에서 보좌하던 백상우는 회장의 표정이 심상찮음에 걱정은 하면서도 뒤로 슬쩍 물러섰다.

"......아무것도 아녜요. 은재민 화장실 보낸 거에 조금 쑥쓰러워져서."

"아. ......고생이 많으십니다. 정말."

백상우는 어린 나이에 유성이라는 거대한 그룹의 짐을 맡게된 유하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말씀하신대로 '이유나' 님께는 넌지시 모집요강을 전해드렸습니다."

"진짜로 시험 치려고 하면 은근슬쩍 자료 공유시켜요. 고객님 프리패스 권을 사용하려고 하면 바로 이야기해주시고."

"예.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백상우는 잽싸게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유하는 의자에 몸을 눕히며, 두 손을 살짝 들어올려 허공을 만지작거렸다.

"......I컵? 미친...."

눈앞에서는 신성하네 뭐네 말은 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허탈감과 질투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뿐이었다.

"안 그래도 고객님한테도 밀리는데 천가을까지, 허, 나 진짜, 어이가 없어서."

유하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자신과 천가을의 차이는 눈으로만 봐도 압도적이었으며, 비교할 필요조차 없었다.

"......하랑이 고것도 SS급 되면서 좀 컸다고 했지."

유하의 눈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흐흐흐....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광속성 정령 찾고만다, 진짜. 이름이 뭐? 개천광 카르나...?"

유하는 술에 취한 척 적을 만지작거리며 신체를 파악하는 망나니를 제외한 모든 인형을 총동원하여, 전세계의 네트워크로 접속했다.

"고객님 찾기 전에 내가 단서 찾으면...! 이번의 실책도 만회할 수 있다고...!"

안타깝게도.

유하는 전세계 어디를 뒤져봐도 카르나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아아악! 가슴이, 가슴이 찢어질 것 처럼 아파...!"

은유하.

세상 모든 것을 가졌으나, 단 두 가지를 가지지 못했다.

* * *

"하여튼 없는 애들이 더하다니까."

가을은 본체와의 연결이 끊어져 새근새근 잠든 유하의 인형을 쓰다듬었다.

"이렇게 있으니까 꼭 진짜 인형같네."

가을은 유하의 망나니 인형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상태를 확인했다. 시각은 본체가 잠든 시각이었고, 유하는 가을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깊은 잠에 빠졌다.

"아주 부러워서 미치겠지?"

본인이 듣지 못하는 사이, 가을은 유하의 머리칼을 정돈하며 한탄했다.

"나도 너 부러워 죽겠어, 얘."

과연 유하는 자신의 본심을 알까. 알코올의 취기에 젖은 사람은 유하 뿐만이 아니었다.

"너는 그래도 주도적으로 뭔가 할 수 있잖니.... 걔 옆에서 대등하게 서서."

일방적으로 명령을 받는 부하.

의견충돌은 있을 수 있지만 나름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파트너.

"나라면 후자가 되고 싶은데 말이야."

그저 옆에서 바라만 보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도 은유하처럼 '그'와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뭐 그렇다고 너처럼 깽판을 놓을 건 아니고."

가을은 유하가 얼굴을 파묻은 가슴을 슬쩍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SS급 되면 어디까지 커질까...?"

세 자릿수를 넘기진 않을까. 가을은 유하를 안아베게 삼아 잠을 청했다. 언젠가 피닉스와 같은 선상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될 자신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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