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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83화 (283/1,497)

〈 283화 〉1부 12장 29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라스푸틴은 비록 성기로 빚어낸 괴인이었으나, 그의 아래에 있는 듀얼 코어 덕분에 두 여성형 괴인을 상대로 아주 멋지게 승리를 따내었다.

캘리펠라는 흑사갈의 흉부 위에 얼굴을 묻었고, 둘은 사이좋게 기절해 잠들어있었다. 캘리펠라가 들어간 지 고작 한 시간은 커녕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고, 라스푸틴은 캘리펠라를 손쉽게 제압했다.

"여기 있습니다. 흑사갈이 낳은 코어입니다."

라스푸틴은 흑사갈로부터 얻은 코어를 내게 내밀었다. 코어는 하나밖에 없었지만, 단 한 방에 S급 코어를 만들어냈다. 엄청난 위업을 세운 그였으나, 내 앞에서는 죄라도 지은 양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캘리펠라를 상대로는 낳게 하지 못했습니다."

"괜찮아요. 코어 생산이 혹시나 가능한지 알아보려고 했던 거니까. 그렇게 낙담하지 않아도 돼요."

아무래도 마력을 받으면 코어를 생산하는 건 흑사갈 전용의 특징인가보다. 둘다 큐브를 수호하던 괴물들이어서 혹시나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캘리펠라는 코어를 낳지 못했다.

"일단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쓰러졌으니까…."

"주인님. 그게."

라스푸틴은 쑥쓰러워하면서도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그의 말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30분만에 패배시켰다고요?"

"예. 말씀하신대로 끝까지 찔러넣었기는 했습니다만, 따로 정신이 무너지거나 패배를 선언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거칠게 반항하더라고 라스푸틴은 증언했다. 하지만 나는 문 너머의 캘리펠라가 다리를 벌린 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경련하는 게 두 눈에 똑똑히 보였다.

"저 상태인데요?"

"그래서 졌다고 말할 때 까지 힘 좀 썼습니다."

라스푸틴은 자랑스럽게 엄지를 치켜올렸다. 압도적인 피지컬과 천부적인 테크닉의 결합은 행위를 제대로 해보디 않은 캘리펠라에게 너무나도 버거운 상대였을 것이다.

"그럼 막말로 테크닉으로 보내버렸다는 말?"

"예."

나는 절로 입이 쩍 벌어졌다. 라스푸틴은 헛기침을 하며 내게 작게 속삭였다.

"흠흠. 사실 저도 제 기술이 어느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아마 본체는 이 정도의 기술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추측인데…."

라스푸틴의 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행여나 누군가가 눈치를 챌까 그에게 작게 속삭였다.

"나예요?"

끄덕. 라스푸틴은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고, 나는 내 품에 들어있는 큐브를 움켜쥘 수 밖에 없었다.

내 마력이 들어가면서, 큐브는 아마도 라스푸틴에게 내 기술을 전수하였을 것이다. 그게 어느정도인지 감은 오지 않았지만, 적어도 캘리펠라를 30분만에 기절시킬 정도라는 건 알겠다.

"나 참."

남의 테크닉을 고스란히 빼앗겼다는 것도 웃기지만, 그 기술이 하필이면 내가 가장 자신있는 분야로 넘어갔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라스푸틴은 엄지를 척 들어올리며 씩 웃었다.

"주인님.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비록 저는 이제 매료의 이능은 없으나, 이 피지컬이 있지 않습니까."

"그거 저 못쓰잖아요."

"저는 괴인입니다."

"오호."

천재가 여기있다. 라스푸틴은 내게 등을 내밀었고, 나는 그의 등을 탁 때려 무기로 바꾸었다. 흑갈색의 듀얼 코어를 중심으로 라스푸틴의 몸이 줄어들었고, 라스푸틴은 장착형 무기가 되었다.

"봉효, 한 번 껴볼래요?"

"윽. 제가 말입니까?"

백청영은 한사코 거부했다. 그러자 환룡이 흥미를 보였다.

"내가 해볼래."

"......지금 모택평 몸이잖아요."

환룡은 모택평의 몸이 썩어들어가기 전에 몸으로 돌아갔다. 거리낌없이 웃옷을 벗는 환룡의 몸은 탄탄한 근육질로 잘 갖추어져 있었다.

"윽."

"......."

모택평의 육체를 바라보는 샤오린과 백청영의 표정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배불뚝이였던 수 개월 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많이 변한 육체였으나, 환룡이 깃들어도 아랫도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잠깐 빌려줘봐."

"......."

나는 환룡에게 라스푸틴을 집어던졌고, 환룡은 잽싸게 낚아채 라스푸틴을 자신의 아래에 끼웠다.

꾸드득! 꾸득!

라스푸틴은 마치 히어로 슈트라도 되는 것 마냥, 환룡의 아랫도리에 장착되었다. 환룡은 표정을 이리저리 바꾸며 신음을 흘리더니, 곧 라스푸틴의 것을 제 것 마냥 다루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과연. 이게 세계 최강의 마력인가…."

"거 표현 좀…."

듀얼 코어는 또 환룡의 아래를 감싸는 식으로 변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역시 큐브를 써서 그런걸까? 이계신이 내 정신을 깎아내려는 모략이 분명했다.

"왜? 혹시 박히고 싶어?"

"미쳤어요?"

"후후. 언제든지 바라면 말해라. 나는 그러면 연습 좀 할테니."

라스푸틴을 장착한 환룡은 기지개를 펴며 뒷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담배만 배우면 남자에게 있어 과하면 인생을 파멸로 몰고 가는 세 가지 요소로 트리플 크라운을 찍게 된 환룡을 두고 나는 어찌 대해야 할까 감이 오지 않았다.

'저게 다 나중에 나한테 써먹겠다고 저러는 거니까 내가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환룡이 굳이 남자로서의 테크닉을 연구하는 이유도 내가 여성형의 육체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안 바뀌면 자기가 박을 거라나 뭐라나. 나는 굳이 환룡에게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본인이 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줄 뿐이고, 내가 안 당해주면 그만이었다.

"봉효, 옆에서 잘 도와줘요."

"알겠습니다. 후후."

백청영도 뭔가 꿍꿍이가 있는 얼굴로 웃을 뿐이었다. 샤오린은 입술을 핥으며 나와 환룡을 번갈아보며 웃을 뿐이었다.

"여기 있다가는 나도 이상해지겠네요. 그럼 저는 갑니다."

"벌써요? 더 있다 가시지 않고."

"바빠요."

이미 시간은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간과 시차까지 생각한다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출발까지 한나절도 남지 않았다.

"환룡에게 전해둬요. 너무 주색에 빠지면 타락하기 십상이라고. 특히 당신들이 옆에서 잘 지켜보란 말이에요. 알겠어요?"

"예. 그런데 피닉스 님."

백청영은 눈웃음을 치며 슬쩍 샤오린을 가리켰다.

"피닉스 님께서 라스푸틴을 장착하시어, 다른 분들께 은총을 내릴 계획은 없으신지요?"

"......."

순간.

아주 야아아악간이나마 흔들릴 뻔 했다. 누가 간교하기 짝이 없는 모사꾼이 아니랄까봐, 백청영은 뱀처럼 사람의 마음을 후벼팠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돌렸다.

"에이, 세상에 그런 걸 받을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혹시나 하시게 된다면 저로 시험을 하시지요."

샤오린이 손을 들었다. 누가 노출광 아니랄까봐 스스로에게 박아달라는 말을 유감없이 해대는 게 내가 더 부끄러웠다.

"테스트는 환룡에게 해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피닉스 님."

샤오린은 어딘가 미안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내 말에 반박했다.

"저는 저보다 강한 이가 아니면 제 몸을 허락할 생각이 없습니다."

"......."

왜 다들 나를 유혹하려고 드는 걸까. 나는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유리창을 깨고 날아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원흉인 것 같은데…."

큐브.

하나만 있는데도 주변 분위기를 야릇하게 만드니, 참 여러모로 불편한 물건이다. 그래도 큐브를 통해 안전을 확보했으니 이제 문제는 없다.

매료 능력을 지닌 라스푸틴은 더이상 이 세상에 없고, 캘리펠라는 라스푸틴의 마력에 떨어져 더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

중국과 러시아.

두 나라에 박혀있던 각각의 문제는 아주 수월하게 해결되었고, 이제 내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다.

개천광 카르나.

명예로운 싸움을 중요시하는 여전사이며, 자신을 태양의 자식이라고 주장하는 간부이다.

나는, 창염은 그런 자식을 낳은 적이 없다. 창염 또한 내 기억을 읽었기에 태양을 참칭하는 카르나를 반드시 무릎 꿇리라고 한 것이다.

'하늘 아래에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는 법.'

나는 인도로 가는 배에 승선하기 위해 서울로 돌아왔다. 불과 하루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제법 긴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실제로 캘리펠라의 코어를 파밍하고 덕배를 육성하는데 한 달 정도 시간을 보냈으니, 나는 약 40여일 만에 내 방에 들어온 셈이다.

"왔어?"

내 침대 위에서는 마침 시트를 정리하던 가을이 휴식을 취하던 중인지 앉아있었다. 나는 털레털레 걸어가 침대 위에 몸을 눕혔고, 가을은 나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고생했어."

"고생은 무슨."

나는 가을이 머리칼을 정리해주는 손길에 몸을 맡겼다.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듯한 느낌에, 눈꺼풀이 엄청 무거워졌다.

"......두 시간 뒤에 깨워줘."

"두 시간 가지고 되겠니?"

"충분해."

나는 알람을 맞췄고, 가을은 한숨을 내쉬며 나를 침대에서 끌어당겼다. 나는 침대 해드에 기댄 가을의 품에 누운 꼴이 되었다.

"이 자세는 조금 부끄러운데."

"예전에 자주 하고 그랬잖아. 그래서 싫어?"

"...싫은 건 아니지만."

흑사갈만큼은 아니어도, 가을의 포근한 가슴이 주는 푹신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마성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글러먹게 만드는 마력에 나는 절로 눈이 사르르 감겼다.

가을을 내 허리를 살포시 감싸안았고, 나는 가을의 품에서 잠들었다.

솔직히.

백희아의 함선 내 지휘관 전용 침대만큼이나 포근했다.

나는 가을의 품에서 인도로 향하기전 마지막 휴식을 잠깐이나마 즐겼다.

* * *

부산.

"글나. 엄마랑 아빠는 그렇게 됐구나…."

[그런 셈이지. 괜찮니? 좀 그러면 나도 같이 나갈까?]

"아이다. 언젠가는 만나야 했을 사람들이다."

석하랑은 볼을 긁적이며 쓰게 웃었다.

"솔직히 내랑 안 보고 새 살림 살아도, 내는 괘안타. 만나게 되면 그 때 가서 생각해보지 뭐. 언니야는? 내 내일 인천 올라가면 신서울 잠깐 들릴까?"

[응. 그렇게 해주면 나야 고맙지. 그나저나 백희아 걔는 왜 너보고 오라가라니? 칫, 마음에 안 들어.]

"언니야 설마 집행관 견제하는 기가? 흐흐, 걔가 알면 또 신경쓰겠네~."

[얘. 무서운 소리 말렴. 생각만해도 끔찍하니."

스크린 너머 은유하는 팔짱을 낀 채 몸을 으스스 떨었다.

[나 대신 안부 좀 전해줘. 꼭 광속성 정령 잡아오라고. 나도 S급 엄청 되고 싶단다.]

"알았다. 내 내일 가서 꼭 전달할게. 카고 내일 인천 가는 거 집행관이 일방적으로 시킨 거 아니다. 금마가 일부러 부른 거다."

[왜? 고객님이? 일부러 너를 불러서 사진이나 찍게 하려고 한다고? 왜??]

"나도 모른다."

석하랑은 겸연쩍은 듯 손만 들어올렸다.

"내보고 히어로들이랑 악수나 좀 하라던데."

[???]

* * *

????.

쾅!

아지다하카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이를 갈았다. 각지에서 전해오는 보고를 종합해보면, 분명 아지다하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괴인 라스푸틴은 사망했다.

"뭐야...! 뭐야!"

아지다하카는 초조했다. 자신이 만든 괴인은 분명 강했고, 폭주까지 하여 차원문이 열렸다. 그런데 그런 괴물이 고작 검격 한 번에 사망하고 말았다. 아지다하카는 암마룡 라스푸틴이 쓰러지던 영상을 비밀리에 입수해 수 차례 돌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년 도대체 뭐냐고!"

<운디네>. 스스로의 이명을 <루살카>라고 부르는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지다하카가 온갖 지혜를 짜내어봐도 '루살카'라는 이름을 굳이 사용한 이유는 하나 뿐이었다.

"이 년이 루살카를 쓰러뜨린 건가...? 그래서 루살카가 사라진 거야?"

극동, 한국에서 루살카의 기운을 한 순간이나마 느꼈다. 하지만 극동은 혼돈환룡의 영역이었고, 아지다하카는 굳이 남의 활약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설야의 루살카가 지배해야했을 땅에서 루살카라는 이름의 왠 이상한 인간이 튀어나왔다. 만약 루살카가 인간인 척 인간 세상에 숨어들었다면, 적어도 자신의 마력 흔적을 느끼고 연락을 취하거나 했지 암마룡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금빛의 검.

광속성의 빛이 반짝이는 그 힘은 절대로 루살카의 마력이 아니었다. 암속성인 아지다하카조차도 경계해야할 정도로 마력이 강했다.

"씨이, 얘들은 또 왜 연락을 안 받는 거야...!"

창염의 피닉스를 봉인한 이후, 펜릴은 연락이 두절되었고 히드라는 언제나처럼 연락을 무시하고 있다. 결국 다크 레기온의 일원으로서 움직일 수 있는 자는 아지다하카 뿐이었다.

"좋아...! 그럼 내가 다 해치워주겠어!"

어차피 조직도 다크 레기온이다. 그렇다면 어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마암룡 아지다하카가 간부진의 우두머리가 되어도 이상할 건 없다. 창염의 피닉스는 더이상 간부라고 할 수 없으니까.

"카르나, 혼돈, 두 녀석을 아군으로 들여서 말 안 듣는 년들도 내 하렘에.... 흐히히."

아지다하카는 침대 위에서 실실 웃으며 눈을 감았다. 넓디 넓은 침대 주변에는 온갖 미남들이 아지다하카와 똑닮은 여인과 서로 몸을 탐하고 살을 섞고 있었다.

"주군. 그럼 라스푸틴에 대한 복수는...?"

아지다하카의 분신을 뒤에서 들이박던 미남이 질문했다. 아지다하카는 손을 흔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어. 그 년은 나아아중에 손보기로 하지 뭐. 그럼 라스푸틴 빈 자리로 누굴 채울까...."

아지다하카는 스마트 워치에서 히어로 위키를 들어가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내용을 발견했다.

"다크 레기온...?"

세계에는 다크 레기온이 공표되어 있었고, 그 끄나풀인 라스푸틴의 실체를 밝힌 존재는 화권 이승형이었다.

"어머."

아지다하카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잘생겼네. 이 정도 얼굴이면 내 발가락을 핥을 자격이 있지. 내 하렘의 노예로 만들면 딱이겠다."

아지다하카는 입맛을 다시며 이승형의 얼굴을 찬찬히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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