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318화 (318/1,497)

〈 318화 〉1부 14장 8

남은 시간, 26분 18초.

쿠우웅!

카루라가 벽에 부딪혔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다 벽을 들이받은 카루라는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부릉. 끼이이익!!

하지만 금방 후진을 하더니, 적당히 회전을 하여 다시 직선코스로 달렸다. 마하트마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카루라에게서 멀어지려 했지만, 카루라는 이상하리만큼 자신의 뒤를 쫓았다.

"피해! 이 멍청이들아!"

마하트마는 어영부영하는 히어로들을 향해 손짓을 하며 피하라고 지시했다. 히어로들은 이미 카루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그 순간, 카루라는 왼쪽으로 크게 드리프트를 하며 차체가 꺾였다. 마하트마를 따라 가운데로 도망치던 이들은 갑자기 정중앙을 달리는 카루라에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온다!"

마하트마는 옆으로 몸을 날려 바닥을 굴렀다. 카루라가 지나가고 바닥에 남은 잔불 때문에 피부가 따가웠지만 그걸 신경 쓸 처지는 아니었다.

"하아, 하아."

카루라는 정중앙을 가로질러 구석에 옹기종기 모인 히어로들을 향해 질주했다. 마하트마는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카루라의 뒷꽁무니를 보며 스마트 워치를 확인했다.

24:50.

"5분지났어?! 미친!"

체감은 50분은 지난 것 같은데 아직 5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단순히 돌진만 하는 패턴 덕분에 마하트마는 무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카루라에게 '잡아먹힌' 이들은 상당했다.

"젠장, 젠장!"

생명반응은 있다. 잡아먹힌 이들은 아직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카루라는 자신이 깔고간 히어로를 진공청소기마냥 제 몸속으로 흡수했다. 고통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마하트마는 아짓 잡히지 않았으니까.

끼이이익---!

바퀴가 땅에서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하트마는 황급히 고개를 치켜들었고, 부리를 벌린 채 자신을 향해 주포를 내밀고 있는 귀여운 뱁새가 땅을 달리고 있었다.

"젠장! 왜 나만!!"

설마 자신이 히어로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이라고 눈치챈 걸까. 카루라는 은근슬쩍, 아니 노골적으로 마하트마를 노렸다.

타지마할의 정원이 필드라고 가정하고 그 안의 구역이 정사각형 네 개로 구성된다면, 카루라는 마하트마쪽으로 사람이 많이 모인다 싶으면 냅다 방향을 돌려서 마하트마를 덮쳤다. 제발 혼자 있고 싶었지만, 히어로들은 불안한 상황에서도 마하트마를 찾았다.

"마하트마 님! 지시를!"

"일단 흩어져! 무조건 피해!"

말이야 쉽지. 이능력이 낮은 히어로들은 인상이 일그러졌지만, 마하트마로서도 뭐라 말 할 방법이 없었다.

"젠장! '테이밍'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거라면 죽어도 요청 안 했지!!"

그냥 덩치 큰 병아리 한 마리였던 괴수가 전차가 되어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집행관은 그 변형이 괴수를 현대 사회의 일원으로 길들이는 과정-'테이밍'으로 발생하는 기현상 중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진짜일까? 유감스럽게도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저 집행관의 말이 그러니 믿는 수밖에.

"으아아악!!"

마하트마는 구석으로 달렸다. 구석으로 몰렸다. 이미 너무 많은 히어로들로 인해 좌우로 도망칠 수 없었고, 결국 담벼락의 위로 기어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제발, 제발!!"

이대로 잡아먹히면 그분을 볼 면목이 없다. 괴수에게 당하면 새로은 세계를 이끌어나갈 '기사단'으로서의 자격이-

쿠---웅.

마하트마의 전신이 불길에 휩싸였다. 엄청난 진동이 울려퍼졌고, 불꽃 속에 파묻힌 마하트마는 금세 제 상황을 깨달았다.

'운전을 무슨….'

세상에 담벼락에다가 전속력으로 박는 차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마하트마는 따스하게 감싸는 불꽃 속에서 어디론가로 빨려들어갔다.

'아프진...않아?'

아프기는 커녕 몸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어 목욕을 하는 것 같은 기분에 마하트마는 전신의 긴장이 풀렸다.

'아, 아니야! 내가 이럴 때가-'

화륵.

불꽃이 장막을 지나가는 순간, 마하트마는 자신의 속에 있던 마력이 전부 타들어갔음을 직감했다.

"이, 이건?! 으읍?!"

마하트마는 허우적거리며 불꽃의 흐름 속에서 마력을 일으켜 빠져나가려 했으나, 마력이 소멸함에따라 일반인만도 못한 수준으로 전락해 제대로 저항을 할 수 없었다.

그저 흐름에 따라 몸이 어디론가 끌려가는 대러 흘러갈 뿐. 눈 깜짝 할 새에 마하트마는 어디론가에 눕혀졌다.

위이잉.

불꽃의 막이 마하트마의 몸을 감쌌다. 마하트마는 미라처럼 휩싸여 옴짝달싹을 못했다.

구구구구.

붉은 색만 가득하던 공간에 햇빛이 들어 안을 비췄다. 마하트마는 자신이 어디에 '장착'되었는지 깨달았다.

"대...포?"

마하트마는 직감했다. 괴수는 지금 자신을 마탄으로 쏘려고 한다. 분명했다.

"으, 으아악?!"

애벌레처럼 몸을 움직여 포문의 밖으로 향했다. 이대로 사출 당할 수는 없다.

그 순간.

미, 미안해요…!

꾹.

누군가의 사과와 함께, 버튼이 눌려졌다. 마하트마는 자신의 아래가 붉게 물드는 것을 보고 의식이 희미해졌다.

"아, 안 ㄷ-"

콰----앙!!

포문이 불을 뿜었다. 마하트마는 사출되었다. 결계의 밖을 향해.

"아…."

마하트마는 허공을 향해 날아가며 의식을 잃었다.

남은 시간 24분.

최초로 <마하트마>가 리타이어 되는 것을 시작으로, 30명의 히어로가 결계 밖으로 사출되었다. 그들은 타지마할의 담벼락 너머로 던져졌으며, 몸안에 남은 아주 미약한 마력 덕분에 흙먼지는 묻어도 다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직 결계 안에는 70여명의 히어로가 남아있었다. 히어로들을 쏘아낸 카루라의 엔진이 다시 불을 뿜기 시작했다.

투두두두!!

카루라는 히어로들을 결계 밖으로 사출하며, 다음 포탄을 싣기 위해 먹잇감을 찾아나섰다.

* * *

부아아앙!!

나는 엑셀을 강하게 밟았다. 가루라의 엔진은 거친 소리를 내며 마력을 태웠고, 나는 그 힘을 이용해 카루라를 질주시키며 핸들을 꺾었다.

"급커브!"

끼이이이익!!

담벼락에 딱 붙어서 달리던 카루라는 내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자마자 타이어가 미끄러졌다. 내게서 정면으로 도망치던 이들은 무사했으나, 막다른 벽을 피해 오른쪽으로 도망치던 히어로들은 카루라에게 깔렸다.

우우웅--!!

히어로들이 카루라에 깔려 육편이 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카루라와 접촉하는 순간 히어로들은 카루라의 몸속으로 빨려들어왔고, 나는 브레이크를 밟아 자리에 정차했다.

위이잉--

히어로들 하나 하나가 일렬로 정렬되며 정수리의 포신에 실렸다. 상처는 하나도 없었지만, 나는 그들의 마력을 모두 불태워 포구를 결계 밖으로 겨눴다.

달칵달칵달칵달칵.

앞에서 사출 버튼을 잡은 가루라가 아직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버튼을 연타하고 있다.

최초의 포격 이후, 인간을 포탄삼아 쏴서 전장에 내보내는 것에 가루라는 익숙해졌다. 너무 익숙해졌다. 나는 아직 장전도 하지 않았는데 버튼을 연타하는 가루라를 진정시켰다.

"가루라, 이거 준비하려면 10초 정도는…."

"주인님! 빨리 준비해주세요!"

가루라는 얼굴까지 붉히며 나를 재촉했다. 제 정수리에서 돋아난 포신에 인간을 포탄으로 삼아 쏘는데 슬슬 재미가 들린 것이다. 역시 테라 출신이라 그런가.

"......5초만 기다려봐요."

나는 가루라가 바라는 대로 히어로들을 포신에 실은 뒤, 마력을 태웠다. 바깥에 던져져도 엉덩방아 찧을 정도의 마력만 남겨둔 뒤, 가루라에게 신호를 보냈다.

"발-"

투두두두두두------!!

다연장 로켓 미사일이 날아가듯, 카루라의 등에 열린 깃털 사이로 히어로들이 사출되었다. 결계밖으로 던져진 히어로들은 죽지는 않았느나 '사망 판정'을 받은 이들이었고, 결계 내부에는 이제 50명도 채 남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요?"

"하아, 하아. 이거, 중독될 것만 같아요…."

가루라는 볼에 홍조를 띄며 게슴츠레 웃었다. 두손으로 꼭 잡은 사출버튼은 아예 엄지를 떼지도 않고 있다.

"남은 시간은...15분."

아직 시간이 절반이나 남아있다. 50명 정도면 제법 많은 수였지만, 이제 어중이떠중이는 다 떨어져나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슬 워밍업은 끝났겠다, 제대로 해볼까요?"

눈으로만 봐도 50여명 대부분이 B급 이상이 이능력자들이었다. 로봇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직접 들이받은-흠흠, 흡수한 히어로만 사출했으니, 지금까지 카루라에게서 거리를 벌려 능숙하게 피한 것이다.

"이제 핸들링은 의미가 없고."

"네?! 그럼 더 못 쏴요?!"

"아뇨.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카르나 오기 전에 청소 끝내놔야하지 않겠어요?"

나는 조종간을 움직여 카루라에 내장된 포문을 전부 열었다. 옆구리와 정수리, 그리고 주포까지.

"위험지대 경고 표시 안되는 포격 패턴, 당연히 연습해야겠죠?"

달칵달칵달칵달칵.

가루라가 버튼을 연타했다. 주포를 제외한 모든 포문이 일제히 불을 뿜었고, 반대쪽 구석에 밀집되어있던 히어로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구구구구궁!!

마력폭발이 일어나 히어로들을 덮쳤다. 하늘에서는 플레어에 의한 불비가 흩뿌려졌고, 마력으로 만들어진 미사일은 사방으로 날아가 결계 여기저기에 부딪혀 폭발했다.

이미 리타이어당한 이들로부터 약간씩 뽑아낸 마력은 인체에는 무해하지만 이능력자로서는 치명적이었다.

'창염이 섞여있으니 마력이 타버릴테지.'

S급이라도 직격을 당하면 리타이어. 폭발 반경에 휩쓸리면 세 방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원아웃으로 당한 이들은 결계 밖에 튕겨져 나가 땅과 입술을 맞추고 있었다.

"원정대는 제법 잘 버티네요. 아직 한 명도 리타이어 안 됐고."

"저기 검은 애들 말씀하기는 거죠? 히히히, 마포 발사!"

"아니."

콰과광.

가루라가 직접 조준하여 쏜 마포들이 원정대의 예상 회피 지점에 정확히 떨어졌다. 그 어느때보다 강한 마력 폭발이 발생했고, 결국 원정대 중 가장 먼저 폭사한 건 템페스트 레이디였다.

"아싸. 잘했어요."

나는 기어를 직진으로 바꾸고 엑셀을 밟았다. 카루라가 급발진을 하며 직선으로 내달렸고, 그 경로에는 템페스트 레이디가 있었다. 템페스트 레이디는 다리를 삔 듯 했고, 히어로들은 양선우를 구원하려고 몸을 돌렸다.

당연히 가만히 놔둘 내가 아니다.

"가루라! 견제사격!!"

"네!"

풍백과 화권이 템페스트 레이디를 구하기 위해 몸을 돌렸지만, 가루라는 둘의 구원 경로에 개틀링의 화망을 펼쳐 견제했다.

부아아아앙!!

나는 페달을 밟았다. 브레이크가 아닌 엑셀러레이터를. 카루라의 엔진으로 내 마력까지 직접 밀어넣으며 가속도를 올렸고, 바닥에 엎어진 템페스트 레이디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가 들어올렸다.

[...아프, 어--?!]

"푸흐흐."

템페스트 레이디의 눈동자에는 주포를 단 붉은 뱁새 머리가 비췄고, 왠지 모르게 그 뱁새의 깃털장갑 너머로 신나게 달리고 쏘는 나와 가루라가 보이는 것 같았다.

쿠득.

절대로 히어로를 치어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템페스트 레이디가 깃털에 닿는 순간, 템페스트 레이디는 아무 충격없이 카루라의 몸속으로 빨려들어왔다.

"고생했어요~"

[꺄아아아아으.... 흐으아.]

나는 마력이 태워져 탈진한 템페스트 레이디를 주포에 실었다. 다른 인도 히어로들이야 아무렇게나 쏴도 상관없었지만, 원정대의 히어로들은 달랐다.

"나가서 왜 잡혔는지 반성하세요. 가루라!"

꾸-욱!

카루라의 주포가 불을 뿜었다. 주포가 그 어느때보다도 밝은 불빛을 뿜어냈고, 템페스트 레이디는 그 누구보다도 긴 거리를 빙그르르 돌며 결계 밖으로 튕겨나갔다. 아마 가장 멀리 날아가지 않았을까.

"이제 13분 정도 남았는데…."

템페스트 레이디가 빠졌다고 해도 인도 히어로들을 잘 지휘하면 어떻게든 될텐데. 내가 아쉬움에 가루라에게 넘겨주지 않은 내 전용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던 순간.

"...푸흐흐. 그래도 마지노선은 넘기지 않네요."

집행관을 위시한 50인의 히어로들은 더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대열을 갖추고 카루라를 향해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삐빅.

집행관의 문자가 도착했다.

[쓰러뜨리면 안 된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죠?]

"주인님? 인간 놈들이…."

"푸흐흐."

역시 서브 지휘관. 주인공 외에 유일하게 지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존재답게, 내가 가장 바라고 있던 것을 훤히 꿰뚫었다.

"가루라. 지금부터 저속주행입니다. 공격은 모두 당신에게 맡길게요."

"네, 네! 한 놈도 빠짐없이 전부 죽여서 날려버릴게요!"

"...진짜로 죽이지 말고."

나는 완전히 신난 가루라에게 주의를 준 뒤, 집행관에게 문자를 보냈다.

[ㅇㅇ.]

더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나는 엑셀에서 발을 떼고 좌석에 몸을 편안히 뉘였다.

이제부터는 카루라와 히어로들의 대결이었다.

'아무렴 가루라 본체랑 싸웠다가는 시작도 하기 전에 질테니까.'

히어로들은 과연 알기나 할까. 강철깃털과 콕피트로 온갖 성능을 제한당한 이 소녀가 마음만 먹으면 SS급으로도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을.

딸칵딸칵딸칵딸칵

"꺄하하하하!!"

나는 가루라에게 화포를 내어준 대신, 인도 전체를 도륙낼 수 있는 손톱과 날개를 잠시 빼앗았다.

"아, 주인님! 방금 제일 잘생긴 남자 인간 하나 맞췄어요! 저 잘했죠?!"

딸칵딸칵딸칵

하지만 본인이 즐거우면 괜찮지 않을까…?

주포가 불을 뿜는 것과 동시에,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