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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321화 (321/1,497)

〈 321화 〉1부 14장 11

인사.

대화.

그런 건 필요없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공격과 방어 뿐.

카루라의 콕피트에서 뛰쳐나온 나는 덕배트를 높이 치켜들어 카르나의 정수리를 향해 휘둘렀다. 순금을 녹여낸 듯한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 뭐하자는 거지?

카르나가 내게 물었다. 나는 그에 덕배트를 내리찍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파사삭!!

덕배트는 산산조각났다. 투구도 쓰지 않은 머리를 때렸음에도 불구하고 돌로 된 무기가 박살난 것이다.

'역시.'

"머리는 참 단단하네요?"

카르나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피부를 감싸는 얇은 보호막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B급 무기로 SS급의 보호막을 파괴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내 잘못이었다. 나는 착지와 동시에 덕배의 코어를 안주머니에 넣었고, 착지의 반동으로 남은 한 손을 펼쳐 카르나의 턱을 향해 처올렸다.

"...!!"

씩. 굳어있던 카르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카르나의 황금빛 흉갑에는 살기가 번들거리는 흑청의 건틀릿이 치솟아올랐다.

카앙!

카르나는 손바닥을 펼쳐 내 장타를 막았다. 부분괴인화를 통해 변한 내 손은 미안하지만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덕배를 집어넣은 손을 꺼내 카르나의 복부를 향해 찔렀다.

"어딜!"

카르나는 내 장저를 지지대 삼아 뒤로 크게 뛰어올랐다. 자신이 걸어온 거리를 한 걸음에 달아난 카르나는 한 손에 쥔 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창으로 싸울 속셈인 건가. 나는 주먹을 맞부딪혔고, 카르나는 창대를 붕붕 돌리며 내게로 걸어왔다. 아군일 때야 멋있었지만, 적이니 영 아니꼽...지는 않고 멋있기야 했다.

"아주 여유가 넘치네요. 안 뛰어요?"

"거리를 좁히는 것이 의미가 없을 뿐!"

그 말대로. 카르나는 창을 잡고 나를 향해 내질렀다. 창이 아무리 길어도 닿지 않는 거리였지만, 나는 땅을 박차고 옆으로 몸을 돌렸다.

부---웅!!

금빛의 창날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창을 통해 방출된 마력이었고, 그건 내 머리칼을 스치듯 허공을 가로질렀다.

"훗."

내가 카르나의 초격을 여유롭게 피하자, 카르나는 웃으며 창대를 잡아당겼다. 빠르게 여러번 찌르려는 움직임이었고, 나는 몸을 옆으로 뉘이며 달렸다.

파바바박!

금빛의 창날이 레이저처럼 쏘아졌다. 하나하나가 엄청난 살상력을 가진 창날이었고, 스치기만 하더라도 내 보호막은 잘려나갈 것이다.

카르나의 공격은 내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카르나의 방어력.

타다닥!

나는 담벼락의 잔해를 밟고 사선으로 달렸다. 삽시간에 카르나의 뒤를 점한 나는 주먹을 말아쥐며 카르나의 등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카--앙!

맑은 소리와 함께 카르나의 갑옷이 떨렸다. 땅이 크게 울릴 정도로 강하게 흔들렸으나, 흔들릴 뿐이었다. 카르나의 황금갑옷은 조금도 찌그러지거나 움푹 패이지 않았다.

'역시.'

방어력이 상당하다. 간부들 중 유일하게 인간형으로 SS급 스펙을 내는 자답게, 내 권격은 간신히 보호막을 뚫고 갑옷을 때렸다.

'방어력 하나는 진짜 대단하군.'

하지만 때렸을 뿐 아무런 흠집도 없다. 카르나는 자체 스펙으로도 방어력이 높지만, 이 망할 황금갑옷 때문에 데미지를 넣을래야 넣을 수가 없다.

"역시 너는 강하군. 지금까지 싸워온 그 누구보다도!"

카르나는 등을 맞았음에도 기뻐했다. 아니,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진심'으로 싸울 맛이 나겠어!!"

"젠장!"

진심같은 건 성주를 상대로 내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주먹을 회수해 카르나의 등을 걷어찼다. 반동을 이용해 하늘 높이 뛰어올랐고, 카르나는 그에 아랑곳하지않고 창을 휘둘렀다.

부--웅!!

금빛의 참격이 나를 덮쳤다. 나는 날개를 펼쳐 하늘로 높이 치솟았고, 앞으로 덤블링을 하듯 참격을 뛰어넘었다.

"공중이라고 다를 것 같으냐!!"

카르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내게 창을 찔렀다. 또다시 금빛의 창날이 나를 향해 날아왔고, 나는 더욱더 높이 날아오르는 것으로 공격을 피했다.

푹!

참격이 결계에 박혔다. 그 누구도 뚫지 못했던 결계에는 이미 카르나가 날린 참격에 의해 패인 흔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카르나의 공격은 결계를 뚫거나 부수지는 못했다.

"결계는 깨지 못해요."

대 카르나전을 상정하여 만든 특별한 결계이자 결투장이다.

비록 나를 향한 버프도 없고 카르나를 향한 디버프도 없이, 오직 타지마할 내부와 외부를 차단하기만 하는 무식한 두께의 결계.

"들어올 때든 나갈 때든 내 허락이 있어야 해요."

"이해할 수 없군."

카르나는 마력을 한껏 모아 결계를 향해 참격을 날렸다. 제법 큰 참격이었고, 결계는 거의 반쯤 패였다.

"...음. 안되겠군. 단단하구나. 내 갑옷보다도 더."

"그쵸?"

카르나는 결계를 부수는 걸 포기했다. 내 마력으로 이루어진 결계는 표면이 패이거나 잘리기는 해도 꿰뚫리지는 않았다. 다크 레기온의 간부 카르나는 결코 이 결계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애초에 당신을 위해 만든 감옥이라고요."

한 점 돌파를 하려고 해도, 카르나가 부수는 속도보다 결계가 회복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 마지막에 카르나가 날린 참격을 제외하고, 카르나가 남긴 참격의 흔적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럼 방법은 하나밖에 없군."

"그렇죠."

결계를 친 장본인, 나를 쓰러뜨리는 것.

나는 날개를 접고 바닥에 착지했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이길 수 있을까요?"

"흥. 그거야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지."

카르나는 나를 향해 걸어왔고, 나는 손을 한 번 털고 자세를 낮췄다. 카르나는 원작에서봤던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심지어 개인 루트에서 주인공과 사랑을 나누던 순간보다도 더.

"항상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 놈의 임무 때문에 눈치가 보였어. 간부들끼리는 협력해야 하니까!"

"......잠깐 질문. 우리 얼마만에 보는 거죠?"

"그게 중요하나?!"

"네. 엄청. 대답해주면 풀파워로 싸워줄게요."

흠칫. 카르나의 발걸음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카르나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곧 제자리에서 자세를 갖추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이 지긋지긋한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는 처음이다."

"그렇겠죠. 인간들 상대로 패싸움 하고싶어서 안자고 잠적했을 테니까. 내가 찾아보려고 해도 이미 싸돌아다니고 있었겠죠."

"......."

카르나는 눈을 살포시 감았다.

나는 그게 카르나가 부끄러워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 카르나의 호전성 덕분에 창염이 20년 전에 무언가 수작을 부리지 못했음을 확신했다.

괴수로서 잠에 들려고 했던 자들. 펜릴과 히드라, 아지다하카는 창염을 만났고, 나머지 셋과는 만나지 못한 것이다.

어딘가 석연찮은 부분은 있지만, 그건 나중에 창염에게 물어야할 문제다. 창염에게 진실을 캐묻기 위해서라도 카르나를 개천광으로 각성시켜야 했다.

"고마워요. 그럼 이제 풀파워로 싸워드릴게요."

"후후, 후후후…! 오너라!"

"나말고, 얘들이."

"뭐...라고?"

나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카루라로 뛰쳐들어가, 아직도 드잡이질을 하고 있는 화권과 가루라의 목덜미를 쥐었다.

"스, 스승님?!"

"주인님 저새끼가 제 몸을, 꺄아악!"

나는 둘을 움켜쥐고 카루라의 콕피트에서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내가 잡은 가루라의 인간형 육체 속으로 코어가 옮겨졌고, 카루라는 형체를 잃고 허물어졌다.

쿠웅!

왼쪽에는 화권, 오른쪽에는 가루라.

"이게 뭐하는 짓이지…?"

카르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살기를 내뿜었다. 나와의 싸움을 기대하던 눈빛은 맥이 탁 풀린 것처럼 허탈해보였고, 그 허망함을 분노와 투기로 바꾸어 흉흉한 살기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설명하죠. 얘는 그냥 덤."

나는 가루라의 등을 때리며 앞으로 밀었다. 가루라는 나와 카르나 사이에 끼여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음? 나는 저런 괴인을 만든 적이 없는데."

"아…."

카르나는 가루라 속에 남은 개천광의 마력을 읽고 의문을 표했다. 가루라는 카르나-개천광이 자신을 여전히 알아보지 못하고 있음을 직면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희망을 가져요. 그래도 이제 대화는 통하잖아요?"

"...그렇네요, 흐끅!"

가루라는 울면서 웃었다. 광기에 미쳐 날뛰기만 하던 당시와 간부로서 세뇌당한 지성을 가진 지금은 말이라도 통했고, 더욱이 세뇌를 풀 수 있는 조건까지 갖춰져있다.

"지금 뭐하냐고 물었다, 피닉스."

"거 재촉하지 좀 마요."

카르나는 입술을 깨물며 분노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다음 준비에 착수했다.

"그럼 지금부터 당신의 역할이 커요, 제자."

나는 화권의 어까에 손을 올렸다. 내가 직접 마력을 불어넣었고, 그의 심장 속에 자리잡은 불꽃이 내 마력에 반응했다.

화륵.

화권의 모든 마력이 회복되었다. 겸사겸사 가루라의 마력도 회복시켰다. S급 히어로와 S급 괴수는 전투로 인해 잃었던 모든 마력을 복구했다.

"그러면 카르나. 제가 풀파워를 내는데까지 쪼오오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당신이랑 나랑 전력을 내도 아무 문제 없는 결계를 만드느라. 우리가 치고박고 싸워도 밖에는 아무 영향없는 곳을 말예요."

"...흠흠. 그런가?"

카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치켜올라간 눈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그리고 또 하나 더. 당신이 너무 빨리 왔어요. 제가 마력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거든요?"

"네? 주인님 지금-"

"제자, 저거 입 막아요. 그리고 가루라는 입 다물어요."

화권은 솥뚜껑만한 손으로 가루라의 입을 막았고, 가루라는 아둥바둥거리며 화권에게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흠흠. 그래서 지금 싸우면 딱 이 정도 힘을 낼 수 있는데 그건 당신도 원하지 않죠?"

"물론이지."

"그럼 회복하는 시간 좀 줄래요?"

"얼마든지."

카르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화권과 가루라를 가리키며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그런데 그냥 기다리는데 심심하겠죠? 그러면 얘들이랑 좀 놀고 있을래요? 제 아래에 있는 애들 중에 얘들이 제일 세거든요."

"...흠흠."

"그, 그렇긴 하죠? 히히."

좋단다. 두 S급은 내 칭찬에 전의를 불태웠다. 비록 가루라는 창조주 격인 카르나를 상대로 싸우기를 꺼려했지만, 이미 내 사탕발림에 넘어간지 오래다.

"그러니까 1:1로 승리를 따내면 정령으로 각성한다는 말이죠?"

"흥, 당신 따위가 개천광 님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예, 예. 그래서 스승님. 누가 먼저 싸웁니까?"

"당연히 저죠! 저 하등한 인간 놈이 개천광 님과 감히 합을 이룬다니, 용서할 수 없어요!"

화권은 두 손을 들며 차례을 양보했고, 가루라는 씩씩거리며 전의를 불태웠다. 나는 둘에게 전투를 맡긴 뒤, 자리에서 훌쩍 뛰어 뼈대만 남은 영묘 건물의 꼭대기에 올랐다.

"......휴우."

십년 감수했다. 설마 거기서 카르나가 나타날 줄이야. 나는 카르나가 이렇게 일찍 나타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30분 놀고 기다리는 동안 느긋하게 있을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카르나는 내가 던진 미끼를 물었고, 화권과 가루라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나는 적어도 둘이 싸우는 동안 당장 급한 일을 처리해야했다.

'카르나 잡는데 넉넉잡아 한 시간.'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무조건 카르나를 잡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귀국 오늘할까 내일할까…."

나는 마력을 회복하는 척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결계를 만드느라 마력이 너무 많이 소모됐다? 회복이 필요하다?

카르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당장 내가 화권과 가루라의 마력도 회복시켜주지 않았는가. 카르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오늘은 7월 24일. 이제 돌아가면 해야할 일이….'

정령 하나를 각성시켰다는 가정하에, 몇 가지 해야할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선 은유하와 카르나를 만나게 하여 은유하의 부탁을 들어준 뒤, 아카데미의 개관 상태를 파악하여 조금 일찍 문을 열고, 거기서 화권을 비롯한 히어로들의 성장을 도모-

부웅-! 붕!

내 왼쪽과 오른쪽으로 인영 두 개가 스쳤다.

"...스케쥴 조정할 틈도 안 주네."

가루라와 화권은 기절한 상태로 결계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졌다.

철푸덕.

S급 들이라 죽지는 않겠지만, 화권이 깔린 위에 가루라가 엎드려 누운 것 처럼 포개어진 걸 봐선 화권은 저게 어쩔 수 없는 운명력인 듯 싶다.

"괴수 한정 페로몬이라도 있는 건지, 원."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타지마할 가든의 정중앙에 선 카르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자! 이겼다! 어서 내려와 싸우거라!"

"...시간 좀 더 주면 안 될까요?!"

"하하! 얼마나 걸릴 지 알고 기다리겠어! 어서 내려와라! 그리고 되는 대로 한 판 붙자!"

카르나는 내게 손을 까딱거렸다.

"딱 네가 내는 '힘만큼' 맞춰줄테니!!"

"쳇."

저 전투 변태가. 나는 하는 수 없이 내가 '확실하고 빠르게 이길 수 있는' 상태까지 힘을 조절했다.

SS+, 99.

나는 괴인이 되었고, 갑주 뒤로 날개를 펼쳤다.

나를 올려다보는 카르나 또한 겉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력을 일으키던 최대 출력은 확연히 늘어났다.

[만렙 대결 무르기 없다. 중간에 아프다고 징징거리면 죽는다.]

"바라던 바!"

이쪽도 바라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타지마할의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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