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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323화 (323/1,497)

〈 323화 〉1부 14장 14

정령의 각성은 기본적으로 사랑이지만, RPG적으로도 각성을 위한 조건이 존재한다.

루살카인 석하랑은 동료라는 이름의 가족들이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정령으로 각성했다. 그 과정에서 석하랑이 죽지 않도록 체력을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뜨리는 조건이 붙었다.

환룡은 삶에 대한 의지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갈 의욕을 고취하는 것으로 환룡으로 각성했다. 그 과정에서 환룡을 정신 세계에서 찾아 설득하는 동안, 밖에서는 SS급 괴수 혼돈을 상대로 레이드를 펼쳐야했다.

그렇다면 개천광 카르나는 어떤 방법으로 각성하는가?

건곤일척의 1:1 승부.

패배라고는 모르고 살아온 카르나에게 패배를 안겨주는 것.

카르나는 자기보다 강한 이에게 사랑을 느끼며, 그 강함은 다양한 형태로 카르나에게 전해졌다. 은유하와 싱크로를 하던 경우, 혈혈단신으로 전세계의 수많은 재계의 인사들과 머니 게임을 벌이는 것에 감화되기도 했다. 물론 주인공을 사랑했지만.

하지만 가장 쉽고 빠른 길이 있다면 굳이 다른 길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때려잡는다.

그게 내가 선택한 방법이었고, 카르나 또한 가장 반기는 길이었다.

퍼억, 퍽!

턱을 주먹으로 처올린다. 카르나의 고개가 뒤로 꺾였다. 나는 카르나의 목을 잡고 땅을 박차 하늘로 날아올랐다.

"흥!"

카르나는 목을 잡은 내 건틀릿을 손으로 잡고 으깨려했다. 나는 하늘에서 카르나의 몸속에 불꽃을 집어넣었고, 카르나는 아둥바둥하며 내게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크으으...!"

카르나의 얼굴에는 땀으로 흥건했다. 비록 피부가 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마력의 보호막을 뜨겁게 달궈버리는 내 불꽃에 카르나는 힘을 쓰지 못했다.

"흐아아!"

카르나의 귀걸이과 황금갑옷이 빛나기 시작했다. 카르나는 내게 잡혀 위험하다 싶으면 곧장 자폭기를 날렸고, 나는 그 때마다 브라흐마스트라의 폭발 범위에서 벗어나야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도망칠 수 없는 노릇이지.]

"너, 설마?!"

나는 카르나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카르나의 마력은 점착 고조되었고, 타지마할 상공에서 금빛의 마력 폭발이 일어났다.

■■■■■!!

폭발 속에서, 나는 카르나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카르나는 폭발을 맨몸으로 견뎌내는 나를 보며 희열을 느끼면서도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왜? 이대로 쓰러질까봐 겁나나?]

"...그럴리가!"

카르나는 내가 쓰러질까봐, 이 싸움이 끝날까봐 두려워한 것이다. 아마 카르나로서 살아오면서 자신이 낼 수 있는 한계치-SS+급의 힘을 낸 적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카르나의 전력은 오직 나만 받아낼 수 있고, 내 전력도 오직 이 세계에서 카르나만이 받아낼 수 있다.

상성관계 없음. 오직 힘과 힘이 부딪히는 대결이었고, 나는 카르나의 폭발을 몸으로 받아낸 뒤 카르나의 멱살을 쥐고 뻗었다.

"흐흐."

카르나는 내게 붙들린 채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내가 자신을 또다시 자이로드롭 처럼 바닥에 내팽겨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르나는 희열과 환희에 빠져있었다.

"왜 진작 나타나지 않았나...!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다!"

[만약 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쩌려고 했지?]

"그 때는 기밀이고 뭐고 날뛰는 거지!"

카르나는 무릎을 들어 나를 걷어차려했다. 나는 남은 팔로 카르나의 다리를 허공에서 낚아챘고, 카르나의 몸을 잡아당겨 정면에서 끌어안았다.

[왜? 세계 최강의 인간이라도 죽이려했나?]

"이, 이거 놔라!"

우드득!

나는 카르나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카르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하는 지 깨닫고 팔다리를 격하게 움직이며 반항했지만, 나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력을 방사했다.

화르륵.

"으으윽!"

카르나의 황금갑옷 사이로 내 불꽃이 침투했다. 방어력 하나는 튼튼할지언정, 당연히 갑옷인 이상 불꽃은 갑옷 안으로 새어들어가기 마련이다.

"하아, 하아!"

카르나는 뜨거워진 숨결을 내뱉으며 고개를 크게 뒤로 젖혔다. 입술을 악 무는 행동에 나 또한 고개를 뒤로 젖혔다.

퍼---억!!

나와 카르나는 서로 머리를 맞부딪혔다. 카르나는 내게서 벗어나기 위한 박치기였고, 나는 그걸 정면에서 받았다.

주륵.

카르나의 이마에서 붉은 피 한 줄기가 흘렀다. 카르나가 처음으로 피를 흘린 순간이었다.

"이, 이...!"

카르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분노하고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내 투구는 아무 타격도 없었다.

"놔라, 이거 놔!"

[힘으로 벗어나 보시던가.]

키긱, 키기긱!

카르나는 허리를 비틀며 내 구속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위로는 가슴, 아래로는 골반이 걸려 빠져나갈 수 없었다.

"브라흐마스트라----!!"

카르나는 마력을 한 번에 모아 자폭했다. 나는 카르나가 일으킨 소형 핵폭발을 몸으로 받아냈다.

푸쉬이---

내 갑주 일부가 찌그러졌지만 나는 카르나를 놓지 않았다. 카르나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숨을 헐떡였다.

"흐, 흐아...."

카르나의 숨결은 마치 오르가슴에 달한 여인처럼 끈적했다. 카르나는 내 품에서 고개를 들어올리며 게슴츠레 웃었다.

"이것 마저도 견디다니.... 역시 너는 강하구나."

[피차 '전력'을 내기로 했다. 내가 네 갑옷을 뚫기 어려운 것처럼.]

나는 카르나의 등허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고, 카르나 또한 내 어깨를 손으로 우그러뜨리려했다.

"그래. 나도 너를 쓰러뜨리기 힘들지. 하지만."

카르나는 내게 안긴 채로 허리를 비틀어,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카르나의 주먹에는 화살촉같은 마력이 날카롭게 실려있었다.

[또 브라흐마스트라인가?]

퍼억. 나는 카르나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카르나의 전력이 실린 주먹이 내 얼굴을 때렸고, 나는 카르나가 일으킨 핵폭발을 정면으로 얻어맞았다.

쿠구구구!

폭발로 인해 대기가 요동쳤다. 폭발의 충격으로 대기조차 밀려나간 아주 짧은 진공상태. 카르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표정으로 내게 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맨몸으로 어떻게 이렇게 단단하지?

나는 다시 한 번 더 브라흐마스트라를 견뎌냈다. 최초의 전투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가 스스로 끊어냈던 발목을 제외하고는 어떤 피해도 없었다. 카르나가 날리는 핵폭발을 몸으로 견뎌내는 과정에서도, 죽을 정도로 아프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한손을 카르나의 등허리를 감싸고, 다른 한손은 허그를 풀어 카르나의 목을 움켜쥐었다.

[세들어 사는 입장에서 남의 집 함부로 쓸수는 없잖냐.]

"뭐...?"

[누가 나보고 좀 다치지 말고 싸우라고 해서 말이야.]

아마 내가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입꼬리가 씩 올라갔을 것이다. 나는 카르나를 잡고 하늘로 치솟아오른 다음, 카르나를 들어올려 결계의 천장에 처박았다.

"크윽...!"

카르나의 정수리가 결계와 부딪혔다. 내 투구에 의해 찢어졌던 이마가 한 번 더 찢겨나가며 선혈이 흘렀다.

[결계를 뚫지 못하는 시점에서 눈치챘어야지.]

"브라흐마-"

[소용없다.]

나는 카르나의 허리를 잡고있던 손으로 카르나의 턱을 붙잡았다. 졸지에 턱과 목이 졸린 카르나는 다리를 뒤로 크게 뻗고 내 배를 걷어찼으나, 여전히 아무런 데미지는 없었다.

반짝.

내 몸에서 푸른 무언가가 반짝였고, 카르나는 그제서야 내 압도적인 방어력의 정체를 깨달았다.

"너...설마!"

[그래.]

나는 턱을 잡고 있던 손을 풀어, 내 갑주를 감싸고 있는 보호막을 가리켰다.

[공격력을 낮춘 대신 방어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이 미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딴 갑옷, 부술 수 있지.]

으드득!

나는 카르나의 어깨갑옷을 손톱으로 우그러뜨렸다. 갑주 겉을 감싸는 마력이 사그라들었고, 나는 카르나의 어깨갑옷을 힘으로 뜯어내려했다.

"으아아아!!"

카르나의 귀걸이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방어막을 만들 틈이 없었고, 나는 카르나의 배를 걷어차고 날개를 펼쳐 자리에서 이탈했다.

구구구---!!

다시금 터진 브라흐마스트라. 하지만 폭발의 여파가 닿기도 전에 이미 나는 내 몸의 보호막을 다시 만들어냈다. 금빛의 마력은 전부 튕겨져나갔고, 나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카르나를 향해 낙하했다.

[놓치지 않아.]

나는 추락하는 카르나의 뒷통수를 붙잡았다. 카르나는 팔을 뒤로 뻗으며 내 옆구리를 강타했지만, 카르나 본인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데미지는 없다.

상성도 아니었고, 카르나의 공격으로는 내 방어를 뚫을 수 없다. 나 또한 카르나에게 데미지를 넣을 수 있는 조건은 제한적이었지만, 아주 조금씩 데미지를 누적시켜나가고 있다.

[땅과 키스해본 적 있나?]

콰----앙!

나는 카르나의 뒷통수를 흙바닥에 꽂아버렸다. 카르나는 바닥에 처박혔고, 나는 날개를 펼쳐 거리를 벌렸다.

탁.

나는 날개를 접고 바닥에 착지했다. 카르나는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처박힌 고개를 치켜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흔들리거나 하는 일 없이, 아주 굳건하게 일어났다.

"후아---"

땀과 흙범벅이 된 카르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최고다----------아!!!"

세상이 떠나가라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다. 이마를 찧은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카르나는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있으면서도 환희하고 웃고있었다.

"이런 싸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그렇겠지.]

SS급, 그것도 만렙을 상대로 '카르나'로서 싸워본 적이 언제 있겠는가. 개천광 시절에는 수도 없이 싸웠으나, 세뇌된 간부로서 사실상 지구 최강을 상대하기는 이번이 처음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없었다면 너는 분명 가웨인을 찾아갔을 것이야.]

"......아마도?"

카르나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했다. 감질나는 싸움만 하던 카르나는 세계 최강이라고 알려진 가웨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결국 가웨인을 SS급으로 성장시키며 시원하게 무승부로 끝낸다.

[하지만 이미 가웨인보다 강한 자가 많지.]

"흐흐, 그래!"

카르나는 바닥에 내팽겨쳐져있던 창을 집어들었다.

"설화령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네가 올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설화령 뿐만이 아니다.]

나는 검지를 들어 카르나에게 까딱거렸다.

[설화령 급의 강자가 둘은 더 있지. 어쩌면 그보다 더 있을지도 모르고.]

"호오...!"

카르나는 상당한 흥미를 보였다. 피와 땀에 절은 앞머리를 손으로 넘긴 카르나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 너는 그럴 수 없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거든.]

"뭐라고!"

나는 카르나의 행복한 상상이 그려진 도화지를 태워버렸다.

[너는 평생 이 결계속에 갇혀서 살게 될 거다. 너는 내 대계의 방해물이니까.]

"방해물이라고? 피닉스,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오직 한 생각 밖에 안 하지.]

나는 검지로 하늘을 가리켰다.

[성주를 불태우고, 그 뒤에 있을 이계신 모가지를 뜯어버릴 생각.]

"......미친."

카르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다크 레기온의 간부로서, 다크 레기온의 수장과 그 수장이 모시는 신을 쓰러뜨리겠다는 내 말에 분노를 표했다.

하지만.

[함께 하겠나?]

"...흐흐, 으하하하!!"

카르나는 배를 잡고 호탕하게 웃었다. 어찌나 크게 웃어대는지 말을 꺼낸 내가 다 무안해질 지경이었고, 카르나는 눈에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렇군! 나를 쓰러뜨려서 성주 님을 상대로 반역을 하겠다는 건가?!"

[좋을 대로 생각해라.]

이미 다크 레기온 적으로 나는 반역자이며, 간부들에게 있어서는 창염의 피닉스에 멋대로 깃들어 남의 몸을 조종하는 신원 불상의 존재다. 비록 카르나가 20년 전에 창염과 만나지 못했더라도, 카르나는 여전히 다크 레기온의 간부였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하도록 하지. 성주와의 싸움에서 카르나, 네가 상당히 걸림돌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나는 성주 님을 위해서라도 전력을 다해야겠군!"

쿠웅.

카르나의 몸에서 금빛의 빛무리가 터져나왔다. 몸을 감싸고 있던 황금갑옷과 귀걸이, 그리고 손에 들고있던 창이 하나의 덩어리로 합쳐졌다.

"하--아!"

카르나는 빛무리를 자신의 몸에 둘렀다. 전신을 가리던 황금 갑옷은 사라지고, 카르나의 몸에는 단촐한 금색의 드레스 한 벌과 투박한 창 한 자루만 들려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카르나를 죽일 때가 왔다. 다크 레기온의 카르나를 정령 개천광으로 각성시키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으로.

[궁극기를 쓸 마음을 먹었나.]

"물론!"

카르나는 한 손에 창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창을 중심으로 금빛의 기류가 뭉치기 시작했고, 카르나의 창은 더없이 밝고 선명한 금빛을 뿌리며 날카로운 투창이 되었다.

"자! 나를 쓰러뜨려봐라! 그러지 않으면 내 창은 평생 너를 향할 것이다, 피닉스!!"

[내가 이기면 네 창은 성주 모가지를 뜯을 것이다.]

"물론!"

나 또한 하늘에서 마력을 최대한 끌어모아 한군데로 뭉쳤다. 결계가 버틸지 모르겠지만, 궁극기에는 당연히 궁극기로 맞받아쳐야했다. 나는 푸르게 빛나는 마력의 구체들을 내 가슴 앞에서 하나로 뭉쳤다.

지상에는 금빛 태양이, 하늘에는 푸른 태양이.

뒷감당은 생각않고 서로 한계까지 마력을 쥐어짜내 태양의 크기를 키웠고, 이제 서로를 향해 쏘는 일만 남았다.

나는 뭉쳐진 구체를 한손에 잡고, 툭 떨어뜨렸다.

[끝이다.]

푸른 태양이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카르나는 창을 어깨 너머로 넘겼다.

"'바사비 샤크티'-----!!"

카르나는 창을 투척했다. 일격에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지도에서 지워버렸던 궁극기가 나를 향해 수직으로 쏘아졌다. 나는 카르나를 내려다보고, 카르나는 나를 올려다보며 궁극기의 격돌을 지켜봤다.

□□□□□□■■■■!!!

두 개의 태양이 맞부딪혔다.

세상은 온통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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