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361화 (361/1,497)

〈 361화 〉1부 15장 19

"타이틀 히로인이 진최종보스로 나오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시, 나는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며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피닉스 루트라는 것도 숨기고, 내가 하는 게임이 푸른 하늘의 데스디나스라는 것도 숨기고, 원작 관련 커뮤니티와 전혀 관계 없는 고전 게임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처음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지만, 곧 누군가가 리플을 달았다.

-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것만 아니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럴 복선이 있다거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거나. 처음부터 그런 설정이었다면 뭔가 이유가 있겠죠.

누군가는 상당히 신사적으로 답변했고, 괜히 스포일러를 하기 싫었던 나는 ID와 IP까지 바꾸어 답글을 달았다.

- 하지만 그게 이유나라면? ㅋ

이미 이름만으로도 그 존재감이 명확한 만인의 여신. 데스니나스는 전세계적 유명 게임이 되었고, 그건 고전 게임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답변을 단 사람은 칼같은 반응을 날렸다.

- 너 미쳤냐?

그리고 불과 10초도 지나지않고 연달아 달린 답글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 지랄 ㄴㄴ해 미친 여신님이 최종보스 같은 소리하고 있네 확 대가리를 반으로 쪼개버릴까보다

곧 관심을 보인 다른 이들도 답변을 달기 시작했다.

- 미연시적으로 최종보스라면 모를까, 진최종보스는 창염의 피닉스 님이시니까 그것도 안 되죠ㅋㅋㅋ

- 유나진리교에서 나왔습니다. 유나는 여신입니다. 여기에 이단이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회계하라!

"이 쓸모 없는 놈들."

순식간에 댓글에 불판이 깔렸고, 나는 질문글을 바로 지워버렸다. 그리고 다시 잠깐 벗어놓은 VR기기를 머리에 썼다.

■■■■■■■ !!

그곳에는 이계신이 깃들어 폭주하기 시작한 여신 이유나가 있었다. 무지갯빛 기운과 노란 기운이 넘실거리는 이유나는 여신이 되어 나와 동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라스트 보스.

이유나.

그리고 내 옆에는 수많은 동료들과 함께, 푸른 머리칼의 여인이 내 손을 잡으며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 이 싸움이 끝나면 말이에요, 저도 결혼이라는 걸 해보고 싶은 것이에요.

■■■■■■■■!!

이계신이 깃든 이유나가 울부짖었다.

그게 피닉스 루트에서의 진최종보스전의 서막이었다.

* * *

<2020년 8월 16일 오전 11시 30분. 신서울 US베네.>

"그러니까 제가 이계의 정령이라는 존재들로부터 복제된 인조인간이다?"

유나는 내 장황한 설명에도 금방 이해를 했다.

"그렇죠. 피그말리온 알아요?"

"외계인이 피그말리온이라는 거죠? 저는 갈라테이아고."

"그런 것도 알아요?"

"세계사 공부하면서 배운 거예요. 혹시 비문학 지문에 나올까봐."

역시 미래에 불수능에서 만점을 한 전국 수석답게, 어느정도 중요 정보를 거른 내 설명에도 유나는 금방 그 빈 정보를 유추하여 자신의 정체를 파악해냈다.

성주가 이계신을 담기 위해 만든 그릇.

신을 찬양하고자 성주는 혼신의 힘을 다했고, 그 결실이 '이유나'라는 인공 정령이었다.

이유나는 노트에 그려진 자신의 캐릭터를 볼펜으로 두드렸다. 근처에는 성주와 이계신, 그리고 일곱 정령이 캐릭터처럼 그려져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계신이라는 분이 저한테 빙의할 수 있는 거네요. ...제가 지금 정리한게 맞는지 확인해주세요."

유나는 내가 설명을 한 시점부터 차곡차곡 노트에 강의를 정리하듯 자신의 정체에 대하여 기록했다.

"먼저 시계열 상으로, 다른 세계 <테라>가 이계신의 부하인 성주에게 정복을 당하고 당신을 비롯한 정령들이 세뇌를 받은 거죠?"

"네."

"성주는 정령들을 복제하는 실험을 했고, 그 마력의 근원을 복제하고 하나로 융합하는 실험에 성공을 했다. 그리고 그 실험의 성공체가 저다?"

"네."

"실험에 따라 실패한 것들은 전부 '마룡'이라는 괴물이 되었고, 성주는 성공한 저를 데리고 지구에 와서 이계신을 바로 부르려 했다. 일곱 정령을 세뇌한 성주는 자신감에 부풀어있었기에 자신의 몸과 저만 데리고 지구에 왔다. 그런데 지구의 히어로 분들이 성주를 저지했고, 성주는 저를 회수하지 못하고 지구 밖으로 도망쳤다?"

"예."

유나는 거의 완벽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내가 설명하지 않은, 그리고 유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을 언급했다.

"저 05년생인데요?"

유나는 99년부터 05년 사이의 빈 시간을 지적했다.

"성주는 1기 원탁들에게 당한 것에 복수하고자 차원문을 열었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거기서 세뇌한 정령들, 다크 레기온의 간부들이 나왔고. 그게 99년 <피의 일주일> 사태이니까...."

"당신은 99년도 이전에 지구에 온 셈이죠. 원본 정령들보다 더 빨리."

"그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저는 분명히 05년생이라고요."

유나는 자신의 나이를 05년생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유나가 착각하고 있는 것을 정정했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인간'으로서 형상을 갖추게 된게 2005년 5월 5일이었어요. 당신 부모가 캡슐을 열었고, 그 당시 당신은 아기의 형태로 바뀌어있었죠. 성주가 언제 돌아올 지 모르니, 캡슐이 당신의 육체를 최저 연비가 들도록 신생아로 바꿔버린 거예요. 당신 부모가 진짜 부모는 아니잖아요?"

"예?"

유나는 내 마지막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실수했다. 이 시점의 유나는 아직 양친이 양부모라는 걸 몰랐다.

수능 만점을 포기하고 히어로로 진학하기를 바라며, 그 과정에서 부모와의 다툼에서 유나는 자신이 두 부모의 친부모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미안해요."

"아…. 아뇨, 괜찮아요. 부모님께서는 적어도 제가 입양아라는 걸 모를 정도로 사랑으로 키워주셨으니까…. 음…."

유나는 딸기가 듬뿍 올라간 빙수를 퍼먹었다. 나도 괜히 미안해서 한입 퍼먹었다.

"오해를 하나 풀고가는데, 입양이 아니에요. 당신 부모 양쪽 다 임신이 안 되는 몸이니까. 한 분은 무정자증, 한 분은 배란불순."

"으으…."

유나는 괴로워하며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어차피 당한 스포일러, 조금 더 이어진다고 달라질 게 없었다.

누가 스포일러를 금지한 것도 아니고. 나는 적절한 비유가 무엇 있을까 잠깐 고민했다.

"혹시 손오공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아요? 지구에 올 때-"

"돌에서 태어난 원숭이 말하는 거예요?"

"......."

여기서 설마 고전 서유기를 꺼낼 줄이야. 유나는 고전문학에도 상당히 눈이 밝은 아이였다. 나는 기억을 쥐어짜 적절한 대상이 누가 있을까 잠시 고민했다.

"신라의 시조는?"

"박혁거세요. 역사 시간에 배웠어요. 말이 알을 낳고 사라졌고, 그 알을 깨보니 아기가 있었다고."

"성주가 당신을 캡슐에 보관하다가 잃어버렸고, 2005년에 당신 부모가 당신 캡슐을 발견하고 아이로 들인 거예요."

"세상에."

말이 성주요

알이 캡슐이며

박혁거세가 이유나이니

그 알을 주운 이가 유나의 부모더라.

"두 분이 당신에게 준 것은 사랑과 이름이에요."

유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다행히 유나는 비유를 통해 바로 이해한 듯 했다. 유나의 태생은 비범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 저는 5년 동안 캡슐이라는 거에 있었던 거네요?"

"네. 당신 부모는 오랫동안 노산이었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입양까지 생각하고 있었죠. 꼭 자기들 배아파서 낳은 아이가 아니라도 좋다고. 그러다가 바다에서 만난 거예요. 성주가 떨어뜨리고 간 캡슐. 본래는 이계신을 아기의 몸에 빙의시키려고 했는데, 그만 6년 가까이 파도를 맞다가 당신 부모가 그 안에 든 어린 아이를 발견하고 덜컥 출생 신고를 한 거죠."

"......."

유나는 한참동안 손으로 얼굴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워낙 충격적인 얘기를 들어서 입양이라는 것도 새삼스럽지 않네요. 고마워요, 왜 제가 부모님이랑 안 닮았다고 친척들이 수군거렸는지 이제야 알겠네요."

"...정령의 외형 중에서 예쁜 것만 모두 모아놓았으니까요."

괜히 여신인게 아니다.

정령들의 복제된 마력이 완벽한 조화에 의해 제각기 '100'이라는 수치로 어우러져 있는 만큼, 성장에 따른 외형도 정령들의 외형을 닮아있었다.

거기에 각 정령들의 장점만 모이고 단점이 사라지니, 완벽 초인이 생겨난 것이다.

"자라면서 어디 한 군데 모자란 부분이 없었을 거예요. 공부면 공부, 예체능이면 예체능, 그야말로 팔방미인인 셈이죠. 이능력은 당연한 거고."

"그치만 저 이능력자로 각성한 적은 없는데요?"

유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일곱 정령의 힘이 모였다면서요. 저 마력 하나도 못쓰는데요?"

"그거야 아직 당신이 히어로로 각성을 하지 못했으니까."

단독으로 일곱 정령의 마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정도까지 각성했다면, 유나는 진작에 세계 최강의 이능력자가 되었을 것이다.

"재능은 유일신인데 쉽게 각성할 수 없어요."

나는 일곱가지 색깔의 불꽃을 만들어냈다. 하나의 고리에서 빙빙 돌아가는 일곱 불꽃은 안정된 상태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력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죠. 그 바람에 어느것 하나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어요. 사용하려면 일곱 속성을 동시에 사용해야하니까. 그러다가 모종의 이유로 밸런스가 무너지면 극히 일부분밖에 사용할 수 없게 되고."

누군가 선구자라도 있으면 그 방법을 알려주기라도 하는데, 이 세계에서 일곱 가지 마력 속성을 모두 각성한 인간은 없다.

"그런데 저 이제 각성 했잖아요?"

"네. 제가 각성시켜드렸죠."

"어떻게 된 거예요?"

"제 마력을 집어넣어서, 밸런스를 깨뜨려었어요. 일부러."

나는 유나에게 나의 마력을 좁쌀만큼 부여했다. 그 덕분에 유나의 코어라고 할만한 것은 지금 화속성만 딱 1만틈 늘어난 상태다.

"이런 거죠."

나는 이유나의 스펙을 수기로 정리했다. 으레 내가 다른 동료들의 마력을 등급과 수치로 나타내었듯이, 유나의 몸에 깃든 마력의 상태를 수치로 나타내었다.

수속성 100

풍속성 100

지속성 100

광속성 100

암속성 100

환속성 100

그리고 화속성, 100->101.

"이러면 이제 화속성 마력이 사용 가능해진 거예요. 완전히 100, 아니 101만큼은 아니더라도."

조화가 깨져서 화속성의 마력이 범람하니, 이제 유나는 화속성 SSS로 각성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이리도 쉽게.

현재는 화속성 E등급이지만.

"......."

유나는 미심쩍어했지만 의심하지는 않았다. 이미 본인 부터가 자신의 몸이 바뀌었다는 걸 명백히 알고 있을 터.

"음…."

유나는 빙수를 입에 한입 크게 퍼먹으며 눈을 찌푸렸다. 분명 너무 많이 먹어서 입이 시려야하건만, 차가움으로 인한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 했다.

"어때요?"

"...진짜 각성한 거네요. 하아."

유나는 입안의 빙수를 꿀떡 삼키며 테이블에 엎어졌다. 내가 유나를 한순간에 이능력자로 만들기는 했지만, 유나는 그게 썩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너무 그러지 마요. 이제 당신 SSS, 아니 SSSSSSS-"

"아뇨, 그게 아니라…."

유나는 테이블에 턱을 올린 채 고개를 들어올렸다. 은은한 미소는 나를 향한 용서와 자신의 상황에 대한 체념을 담고 있었다.

"수능으로 신서울대학교 들어가려고 했는데...."

"아, 히어로 전형?"

유나는 머리가 똑똑했고, 원래는 S대에 진학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S대가 수도 이전으로 신서울대학교로 옮기게 되면서, 유나의 꿈은 신서울대학에 진학하는 걸로 바뀌었다.

원래는.

"당신, 혹시 조기졸업에 월반까지 다 땡기려 했어요?"

유나의 교복은 나로서는 익숙한 교복, 신서울 여자고등학교의 교복이었다. 김누리가 입었어야 할 교복.

"네. 수능 좀 더 빨리 치고 싶었어요."

원래는 중학교 3학년이어야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유나는 머리 하나로 중학교를 조기졸업하여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왜요."

"빨리 공부하고 끝내서 다른 것도 하고 싶었죠."

"이능력자로 각성했는데 굳이 수능을 보고싶어요?"

"네. 그야 수능은 다들 인정하는 거잖아요."

유나는 내가 노트에 적어놓은 자신의 마력수치에 볼펜을 들어 줄을 죽죽 그었다.

언어 100, 수리 100, 외국어 100. 탐구 100. 제2외국어 100.

"저는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마력 속성이라는 걸로 100점 101점을 받는게 아니라, 제가 노력해서 공부로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요."

"아니, 당신 전 세계에서 유일한 존재라니까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 여신이라니까?"

"여신은 수능치면 안 되요? 공부해서 대학가면 안 되나요?"

10대의 유나는 이리 표현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꼴통이었다.

공부밖에 모르는 꼴통.

"당신, 혹시 지금 제일 관심있는게...?"

"공부죠. 이런 말을 하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 이래요."

유나는 책 한 권을 품에 안고 포근히 웃었다.

"저는 지금 공부와 사랑에 빠졌답니다."

"미친."

...공부에 미친 여신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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