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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370화 (370/1,497)

〈 370화 〉1부 16장 4

가족은 펑펑 울었다.

울다가 실신을 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들은 눈물을 흘렸고, 밥을 먹고나서도 한참 동안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가을아."

"응, 엄마."

"구라치지 말렴."

"......역시 믿기 그렇지?"

가을이 짠 시나리오는 단번에 무너졌다. 급조한 시나리오는 구멍이 송송 뚫려있었고, 애초에 부모를 속일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협회의 특수요원? 솔직히 그건 믿을 뻔 했어. 그런데 대본이 협회의 비밀 지령이라는 건 믿기 어렵더라. 네가 연기에 바친 인생이 얼마인데."

"역시 안 속네…."

"얘. 너 여태까지 죽은 척 속이고 있었던 것만 하더라도 세 번은 더 죽었어. 딸이니까 가만히 내버려두는 거지."

가을은 침묵했다. 여러모로 자신이 잘못한 건 맞았다. 거의 대부분은 피닉스의 잘못이었지만, 서울 수복 작전 당시 피닉스의 결계 밖으로 뛰쳐나간 건 가을의 잘못이 명백했다.

"그래서 너 지금 머리는 어떻게 된 거니? 염색은 아닌 것 같은데."

"눈도 렌즈...는 아닌게지?"

"응. 천연이야. S등급 각성하면서 변했어."

두 부부는 입을 쩍 벌렸다. 딸의 신변에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진짜로 이능력자가 되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듣고 화내면 안 돼?"

가을은 크게 호흡을 고르며 짧게 설명했다.

서울의 위험한 상황 속에서 청화가 구해준 것.

안전한 날을 노리고 있었는데 서울수복작전이 발생한 것.

그리고 선의철의 부하인 소나무 부대원에 살해당했다가 되살아난 것.

"죽었다 살아났다고?"

"응. 그거…. 그거 있잖아. 창염개진."

가을은 피닉스가 듣지 않는 것을 틈타 날조를 시작했다.

"괴수도 인간으로 만드는데 죽은 사람을 못 살리겠어? 대신 딱 하나 있는 물건이 있었는데, 그게 나 살리는 데 사용했어."

"...그럼 협회의 특수 요원이라는 것 빼고는 얼추 맞는 말이네."

"역시 선가놈은 쓰레기군. 쯧쯧."

"......"

가을은 선의철을 옹호하지 않았다. 애초에 죽는 이유가 선의철이기도 했기에, 가을 또한 선의철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가을아, 너 지금 이능력자로 어디서 뭘 하니?"

"......그, 그게."

정작 가을은 자신의 등급을 밝혔으나, 어떤 이능력자인지는 밝히기를 꺼려했다. 여러모로 자신의 악명 아닌 악명은 커뮤니티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했다.

개양아치 .

존대는 일절 없이 아무한테나 반말을 찍찍 내뱉는 팬텀은 양아치나 다름없었다. 이능력에 대해서도 제대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인도 전투에서 팬텀은 철저히 카메라에 '동시에 잡히지 않도록'움직였으므로. 그에 따라 팬텀의 이능이 변신이라는 건 극히 일부만 아는 내용이었다.

"됐다. 별로 말 안하고 싶으면 어쩔 수 없지."

"뭔지는 몰라도 히어로 삶도 욕 먹는 모양이구나. 너 안티팬들한테 욕 먹을 때 항상 그러잖니."

"...엄마랑 아빠는 나를 너무 잘 아네."

"아무렴 우리가 너를 몇 년을 봤는데."

"서울에서 자라서 한 시도 쉬지 않고 키웠어, 이것아."

두 부부는 가을에게 온갖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예전이라면 듣기 싫다고 난리를 피웠을테지만, 근 몇 달만에 새로이 듣는 부모의 잔소리는 반가웠-

"그래서 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만나는 사람은 있고?"

갑자기 반갑지 않은 화제가 튀어나왔다. 가을은 기분이 팍 상해버렸다.

"...갑자기 그 얘기는 왜 해?"

"맘에 둔 사람이 있네."

"내가 보기에는 짝사랑이구만."

"이 이야기 그만하면 안 돼?"

가을은 노골적으로 화제를 회피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곧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는 여러모로 가을을 신경쓰게 만들었고, 부부는 가을의 미래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너 S급 이능력자라며? 능력있어 돈있어 몸도 되고 나이는…요즘은 30이면 적당해!"

"그래. 가을아. 누군지 말…."

가을의 아버지는 숨을 헛들이켰다. 그에 가을은 대번에 불안해졌다. 부친은 여러모로 감이 엄청나게 뛰어난 사람이었다. 제발 자신의 예감이 틀리기를 가을은 속으로 학수고대했다.

"혹시 청화 님이냐?"

"......."

가을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부모를 상대로 거짓말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부부는 유심히 가을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진짜야?"

"진짜인 것 같은데."

부부는 잠시 침묵했다. 아무리 S급 이능력자라고 할지라도, 사회적 통념을 무너뜨리는 것을 섣부르게 지지하기에는 아직 두 부부는 보수적이었다.

그러나.

"...그래, 원하는 대로 해라."

"아빠?"

"죽었다 살아났는데 아무렴 그럴 수 있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걸로 내 딸을 살려주신 은인 아니냐. 나같아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을아, 부끄러워하지 마라."

"생각보다 담담해서 놀라운데."

"......."

부부는 침묵했다. 가을은 그 침묵이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혹시 이제는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할 차례야?"

"...아니, 그런 거 없어. 그냥 너무 충격적이라서 그렇단다."

두 부부는 진지한 얼굴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혼수는 어떻게 하지? 우리가 급이 맞나?"

"결혼식을 올리려면…. 우리 나라에서 가능할까?"

"이 사람아. 아무렴 청화 님이 결혼하신다는데 법이라도 바꿔야지. 가을아, 걱정마라. 이 애비가 다른 건 몰라도 머리에 뻘건 띠 두르고 지럴하는 건 세상에서 제일 잘 하니까."

"그럴 필요 없어."

오히려 사양이었다. 피닉스와 가을의 관계에서 가을은 의도치않게 을이 되었다. 가을은 딱 잘라서 부모의 과격한 행동을 억제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

"음…가을아. 네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만, 청화 님 노리는 사람은 정말 많을 거다. 전세계가 노린다고 해도 무방하잖니."

"그래. 그러니까 정말 열심히 해야할 거다. 보통 노력으로는 안 돼. 나 봐봐, 이이랑 결혼하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너 아니?"

"거 갑자기 그 얘기를 왜, 크흠."

가을의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가을아. 서울에서 잘 지내라. 그만 갑시다. 차시간 늦겠구먼."

"그래. 우리 자주 오지는 못하니까 네가 이제 신서울에 오려무나. 너 김치찌개는 앞으로 다시는 하지 말고."

"......알았어. 근데 진짜 갈 거야? 자고가."

가을은 방 안을 가리켰다. 하지만 두 부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느이 아빠 원래 자던 침대 아니면 못잔다. 우리는 서울에서 자는 것보다 신서울에서 자는게 더 편해."

"살아있는 거 보면 됐다. 너도 바쁠 거 아니냐. 그러니 너는 네 할 일 해라."

"아냐. 나 지금 8월 말까지 휴가야. 지금 엄청 편해. 그때까지는 널린게 시간이라니까? 얼마든지 말해. 내가 청화한테 부탁해서 뭐든지 들어줄테니까. 나 이래봬도 여기서 끗발 좀 날리는 사람이야."

"그럼 청화 양한테 부탁 하나만 하자꾸나."

가을은 뭐든지 말만 하라는 얼굴로 마도기어를 들어올렸다. 두 부부는 문밖을 가리키며 외투를 걸쳤다.

"돌아갈 때 한 번 만 더 흑염룡타고 가보면 안 되겠니? 세상에 그렇게 편안한 자가용은 난생 처음이더라. 아빠 이렇게 되고 나서 한 번도 이렇게 편안하게 간 적이-"

"......."

가을은 피닉스에게 연락을 넣었고, 피닉스는 흔쾌히 수용했다. 심지어 흑염룡으로 한반도 전체를 일주하기까지 했다.

역시 비행허가는 나지 않았지만, 두 부부는 무사히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내려 신서울로 돌아갔다.

"그런데 버스 없어서 어떻게 오니? 안되겠네. 여보, 우리 신서울 돌아가면 다시 광장으로 나갑시다."

"엄마. 나 서울에서 집까지 내 발로 뛰어도 한 시간이면 도착해."

"너 그러면 그냥 신서울에서 서울로 출퇴근해도 되는 거 아니니?"

"......그, 서울에서 5분 대기조로 있어야 해."

가을은 적당한 말로 위기를 모면했다. 피닉스는 인사로 두 부부에게 마도기어를 선물했고, 가을은 눈앞에서 전화까지 걸어 정상적으로 통화가 됨을 확인시키기까지 했다.

***

"호텔로 모셔서 저녁이라도 드셨으면 좋았을텐데."

"...그러니까. 하아. 진짜 내가 나름 요리 연습한다고 했는데."

가을은 괜히 자신의 요리 때문에 부모가 내려간게 아닌지 걱정했다. 나도 가을 부모의 행동에 조금 존경심이 들었다.

"딸 살아있는 걸 아시게 되었는데 하룻밤은 자고 가시지."

"그러니까. 신서울에서 계속 사시겠다고 하시더라. 서울은 아직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하시면서."

가을은 자신의 다리를 톡톡 건드렸다. 확실히 서울은 이능력자로서 살아가기에 적합하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예전의 기능을 되찾은 건 아니다. 풍백처럼 이능력자로 각성해서 장애를 극복하는게 아니면, 서울에서 그냥 살기는 어려웠다.

"아니면 딸한테 폐를 끼치기 싫어서 그런 걸수도 있죠."

"딸인데 뭐 어때? 나는 괜찮아."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나는 마도기어를 조작해 은유하를 호출했다. 은유하는 또 카르나와 놀고 있는지 얼굴이 살짝 달아올라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고객님?]

"천가을 부모님 댁에 X로이드 한 대 놔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X로이드? 그거야 남는 거 많기는 하지만…. 아하, 오늘 혹시 신서울 다녀가셨던 게 뭔가 했더니. 혹시 천가을...언니 부모님께 드디어 소개하셨어요?]

"그래. 나 지금 바로 옆에 있다, 이 개망나니야."

팬텀이 양아치 소리를 듣는 것 이상으로 망나니 소리를 듣는게 유하다. 유하는 가을이 없는 자리다 싶으면 천가을이라고 부르기를 서슴치 않는다.

[어머, 언니. X로이드 몇 세대로 보내드릴까요?]

"그거야 당연히 최신형 가루다 모델이지."

[언니, 그건 바이오로이드인데요?]

"로봇이 다 똑같지 뭘 귀찮게 따지고 있어? 한 대 보내. 딸이 모처럼 돈 열심히 벌고 있는데 이걸로라도 효도해야지."

[...알겠어요. 남는 모델 있으면 보내드릴게요. 가루다는 안 되겠지만 가사 도우미 전용으로 한 대.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유하는 쓰게 웃고 있었다. 나는 왜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유하 뒤의 유리창에 비친 광경에 정신이 아뜩해졌다.

"니들 지금 뭐하세요?"

[아. 걸렸다. 데헷.]

유하는 통하지도 않을 귀여운 척을 하며 몸을 반대로 움직였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여자를 상대로 허리를 흔들고 있는 카르나가 보였다.

"바이오로이드가 아닌데?"

[카르나 님이 신서울에 남성형으로 돌아다니면서 헌팅한 여성분이에요. 아이돌 출신 배우라던데, 뭐라더라. NTL그룹의 나백합이라던가….]

이름과 달리, 아이돌 출신 배우는 카르나(남자)에게 푹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유하는 허공을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여기 결계로 막혀있으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여러모로 참 대단하네요…."

"...아, 쟤 내 주연 채갔던 애인데."

"........"

가을의 표정이 여러모로 대단해졌다. 자신의 사망에 따라 강제 하차하게 된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카르나에게 박히고 있는 걸 보게 된 것에 가을이 어떤 기분일 지 난 상상이 가지 않았다.

"쟤 맨날 한국남자 좋다고 하더니."

[흐아앙, 금발서양남 자지 갱장해여엇!!]

"...다음에 전화줄게요."

[자, 잠깐만요! 고객님! 저-]

뚝. 나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카르나 만나고 나서 애가 숨겨왔던 욕망을 폭주시키기 시작하네요."

"무슨 소리야?"

"쟤가 성욕이 좀 강한 애라서."

7명 분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 그만큼 욕망도 크다. 아무렴 식욕 수면욕 성욕을 다 합쳐도 금전욕만큼은 못하지만, 카르나를 통해 S급 마력을 가지게 되면서 억눌러왔던 성욕을 마구잡이로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원래 저런 애야?"

"아뇨. 책임감이 막중해서 일탈을 위한 탈출구가 필요했던 거죠. 본체가 아니라 인형들로."

"...그럼 말이야."

가을이 은근슬쩍 내 등 뒤로 다가와 뒤에서 끌어안았다.

"나도 일탈해도 돼?"

"......."

목덜미 뒤로 포근한 언덕이 느껴진다. S급에 이르며 더욱 볼륨이 커진 가을의 몸매는 그야말로 터질 것 같았고, 이전과 달리 뜨거운 감촉이 내 목 뒤에서 전해졌다.

"...어떤 일탈을 바라시는데요?"

"알잖아. 나 뭐든지 가능한 거. 이대로도 가능하고, 변신해서도 가능하고, 아니면 네가 변신해도 좋고."

"아무거나라고 하는 게 제일 싫던데."

"원히는 취향에 맞춰주는 거지. 그래서…싫어?"

가을의 손이 점점 노골적으로 내려왔다. 명백한 신호였다.

나는….

"가을."

"왜?"

"이거 빼고 다 들어드린다고 했잖아요."

나는 가을의 손을 쳐냈다. 가을은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너 진짜 너무한다. 개망나니랑 카르나는 다른 여자들한테 막 박고 다니는데!"

"당신도 궁성이랑 가루라한테 박고 다니잖아요. 이승형으로 변신해서 가루라랑 쓰리썸한 거 내가 모를 줄 알아요?"

"그럼 한 번 해주던가!"

"와, 적반하장이네. 싫어요. 다른 데 풀어요."

"...좋아! 그럼 다른 부탁!"

가을은 뒤에서 내 허리를 잡고 침대로 뛰었다. 나는 가을의 품에 고스란히 안겼다.

"보호막 풀어. 이러고 잘래."

"사람을 무슨 베개 취급하고 말이죠."

"왜? 건전하잖아. 아니면 나도 다른 애들처럼 남자로 변신해서 여기저기에 싸고 다닐까? 응? 남자로 싸는 거 좀 기분 좋더라."

"...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나는 가을의 가슴골 사이에 머리를 이고 몸에 힘을 풀었다. 가을은 내 몸 곳곳을 만지작거리며 놀라워했다.

"어, 진짜 풀었네? 그러면-"

"어림없죠. 어딜 만져요?"

가을은 내 가슴을 움켜쥐었지만, 나는 결계를 수영복처럼 주요 부위에 쳤다. 가을은 아무리 만지려고 해도 내 중요 부위는 만질 수 없었다.

"푸흐흐."

"......너, 진짜 두고봐. 오늘 밤 내내 이러고 있을 거니까!"

나는 가을의 품에 안겨 밤을 지새웠다.

결국 가을은 나를 어떻게 해보지 못했고, 가을은 지쳐서 잠들었다.

"......오늘 정말로 고마웠어."

"별말씀을."

나 또한 가을의 몸 위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오늘은 몽정 안 하겠지!"

오라클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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