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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425화 (425/1,497)

〈 425화 〉1부 18장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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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명의 주연 배우를 위로하기 위해 백영도를 찾았다. 유성의 전용기를 타고 날아온 가루라는 극비리에 백영도로 이송되었고, 이승형도 마찬가지로 백영도로 옮겨졌다. 우선 이승형이 며칠이라는 단서를 남겼기에, 이승형은 대중들의 앞에서 닷새 정도는 모습을 숨겨야했다.

"NTR 당한 남자가 된 기분은 어때요?"

"뭐라고 해야하나.... 상당히 기분이 영."

이승형 조차도 상당히 떨떠름해했다. 가루라는 미안해서 울상을 지은 채 이승형에게 꼼짝않고 매달려 있었다. 비록 연기라고는 해도, '가루라가 금발 태닝 양아치에게 NTR 당하는 AV'를 더빙한 건 여러모로 힘들어했다.

물론 영상과 음성은 합성이 이루어진 물건이었기에, 둘은 정작 통화를 하면서 가루라가 신음을 흘리게 한 당사자는 당연히 이승형이었다.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진 둘의 행위는 소리만 녹음함에도 연기가 아닌 진짜였다. 덕분에 모든 사람들이 낚였다.

"이승형 불쌍해서 어떡해, 백염대협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현합니다, 주소라도 알면 보드카라도 보내주는 건데. 다들 당신에 대한 동정 여론으로 들끓고 있어요. 재미있는 거 알려드릴까요? 그렇게 말하는 놈들 대부분이 당신 영상 세 번은 돌려 본 거. 겉으로는 위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어우야, 꼬시다, 내가 할 걸. 이러고 있죠."

"......사람이니까요."

이승형은 쓰게 웃었다. 자신을 위로하는 댓글들 중에는 위선자들이 남긴 조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승형은 가루라를 끌어안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저보다 가루라가 더 걱정입니다. 졸지에 가루라는.... 그...."

"네토라레 당한 걸레가 되어버렸으니까?"

"스승님. 아무리 그래도 가루라에게 그런 표현은 좋지 않습니다. 원인을 따지고 보면, 그...."

"제가 주도했죠."

이승형과 가루라에게 쏟아질 온갖 모멸과 굴욕이 쏟아질 것을 감내하고 저지른 짓이었다. 추후 아지다하카를 잡고 난 이후에는 바로 바이오로이드 <가루다>의 바이럴 마케팅이라는게 널리 알려지게 되겠지만, 아지다하카를 잡기 전까지는 둘이 고생을 해야했다.

"주인님. 근데 저희 진짜로 이거 했으니까 그거 허락해주시는 건가요?"

"물론. 본인들 생각이 안 달라지면."

이미 서로 깊은 관계가 되어버렸는데 막을 생각은 없다. 애초에 가루라는 내 허락보다는 카르나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가루라에게 깃든 화속성은 전쟁 중에 어쩔 수 없이 부여받은 속성이지만, 원래 가루라의 속성은 빛이었다.

"인간과 사도의 화합을 상징하는 좋은 계기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 설령 나중이 되더라도 지금의 마음을 잊지마요. 아참. 굳이 말하자면."

나는 그들에게 양 엄지를 척하고 들어올렸다.

"결혼식에는 갈수도 있고, 못 갈수도 있으니까 미리 축하할게요."

"주인님, 자꾸 그렇게 영영 떠날 것처럼 말씀하시면 불안해지잖아요."

"그렇습니다, 스승님. 저 드라마 찍을 때 보면 꼭 그런 대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부분 죽었습니다."

전직 톱배우가 말하니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두어야 했다.

"가루라. 당신은 이미 카르나의 사도가 되었죠. 제 사도와 동시에 사도가 되었으니, 설령 제가 죽더라도 당신은 살아남을 거예요."

"주인님, 저 놀리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글쎄."

나도 놀리려고 하는 말이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둘이 우울한 화제를 싫어하는 것 같아, 원래의 화제로 돌아갔다. 가루라 NTR 스캔들로.

"다들 금발 태닝 양아치가 카르나인 건 몰라요. 그리고 카르나가 그걸 장착한 것도 모르고."

"...라스푸틴."

이승형은 몸서리를 쳤다. 이승형도 라스푸틴의 크기를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더빙 작업을 위해 영상을 보면서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카르나가 라스푸틴을 장착하고 망나니처럼 날뛰던 그 모습을.

"그, 그런데 스승님."

이승형은 얼굴을 붉히며 쭈뼛거렸다.

"이번에는 가상으로, 어디까지나 적을 속이기 위한 기만책으로 제가 그 엔...?"

"NTR."

"...NTR을 당한 사람이 되었잖습니까. 그런데 아지다하카가 오면 그 반대의 상황이 되어야 할텐데, 그러면...."

이승형은 가루라의 눈치를 보았다. 영상이야 짝퉁이지만, 아지다하카에게 홀리는 것을 전제로 한 작전의 요지는 이제 남녀의 입장이 역전되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건 실제 상황이었다.

"주인님, 진짜로 괜찮은 거죠?"

"네. 계획대로라면."

이승형이 아지다하카에게 홀려 아지다하카 당할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승형은 나의 막무가내 같은 작전을 받아들였다. 가루라는 행여나 아지다하카가 진짜로 이승형을 빼앗을까봐, 이승형이 아지다하카에게 홀릴까봐 불안감에 빠져 있었다.

"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주인님이 계획대로라고 말씀하시니까 더 불안해졌어요."

"그야 제 계획이 완벽히 돌아간 적이 없.... 아니다, 한 번 있구나."

딱 한 번. 물론 그 한 번의 승리는 남에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없었다. 고로 그냥 나는 계획을 세우는 족족 실패하는 무능한 간부가 되기로 했다.

"제 계획이 불안하면 보험을 마련하도록 하죠. 행여나 아지다하카가 이승형을 홀리게 하더라도, 당신이 직접 이승형을 지킬 수 있도록. 어때요?"

"...그런게 가능해요?"

"물론. 저는 창염의 피닉스, 이승형은 화속성, 당신도 화속성. 셋 다 화속성인데 안 될게 뭐가 있겠어요. 마침 준비는 다 끝나있고."

나는 백영도에 피닉스를 위해 마련된 강녕전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X로이드들에 의해 고이 정리된 이부자리가 놓여있었다.

"자, 그럼 당신들은 지금부터 아기, 아니 알리바이를 만듭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이승형은 한숨을 쉬면서도 가루라의 손을 꼭 잡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가루라는 나와 이승형을 번갈아보면서, 쭈뼛거리며 이승형의 뒤를 졸졸졸 따라갔다.

"정령과 인간의 사랑이라."

나로서는 응원할 수 밖에 없는 조합이 아닌가. 나는 가루라를 향해 주먹을 들어올렸다.

"큥큥!"

부디 창염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

이틀이 지났다.

나는 백영도에 이승형과 가루라를 가둔 뒤, 나는 백영도를 빠져나와 본격적인 낚시 작전을 계획했다.

나의 호출을 받아 합류한 이들은 카르나, 히드라. 나는 그 둘을 데리고 카페 Padre Juan에 들렀고, 당연히 김펜릴이 우리를 응대했다.

"윽."

히드라를 본 김펜릴은 인상을 찌푸렸다. 서비스업 종사자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질색을 했지만, 김펜릴은 지은 죄 때문이라도 히드라를 직시하지 못했다.

"흐음…."

히드라는 고까운 얼굴로 김펜릴을 노려봤지만, 히드라도 카르나도 김펜릴의 현 상태를 내게서 전해들었다. 정령의 인격이 아닌 간부의 인격이 남아있는 이들답게, 김펜릴의 살고자 하는 의도를 조금은 이해하는 듯 했다.

"...그래서 이 조합으로 부른 이유는 뭐야? 나 지금 엄청 어색한데."

히드라는 히드라 대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선글라스를 쓰는 등의 변장을 했지만, 카르나는 아예 알로하 셔츠에 반바지 샌들 차림으로 나타났다. 남성체로.

"얘 지금 이러고 다녀도 되는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나?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카르나의 말대로 카르나는 잘못을 한 게 없다. 잘못이 있다면 막장 시나리오를 쓴 장본인과 그걸 허가한 자의 잘못일 터. 카르나는 그저 대본에 충실한 배우였을 뿐이다. 잘못이 있다면 너무 연기를 잘 했다는 것 뿐.

"후후, 피닉스여. 네 사랑에게서 너를 빼앗는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지. 아아, 이걸 두고 사람들이 "

"어떻게 꼬시고다닌 애들마다 이 모양 이 꼴 이래니?"

"그렇게 됐어요. 적당히 알아서 사람들 눈 피해서 왔을테고, 설령 그렇게 걸렸다고 하더라도 남들 눈 신경쓸 것도 없어요. 아랫도리 벗겨서 확인할 것도 아닌데요."

현재, 한국에는 금발 태닝 양아치-줄여서 금태양 열풍이 불었다. 가루라의 취향이 자신과 똑같은 금발 구릿빛 피부라는 유언비어가 세간에 퍼져나갔고, 그에 따라 자신도 홀로그램 속 카르나처럼 따라하는 이들도 늘어만 갔다.

금태양은 여자를 상대로 먹힌다!

심지어 사도마저도 홀리게 만든 마성이 있다. 거기에 카르나가 금태양 남성체로 지금까지 해왔던 문란한 성생활이 알음알음 퍼져나가게 되면서, 멸망전의 대세 스타일은 금태양이 되었다.

"대한민국 천지에 몸 그을린 놈들이 돌아다니는데, 설마 서울 한복판에 영상에 나오는 본인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요? 김펜릴, 혹시 영상 봤어요?"

"흐냥?!"

우리 테이블에 음료와 케이크를 내려놓던 김펜릴은 얼굴을 붉히며 화들짝 놀랐다. 카르나는 설정에 걸맞게, 어금니의 금니를 반짝이며 잘난체 했다.

"거기 고양이, 오빠가 그루밍 해줄까?"

"어딜 먹히지도 않을 싸구려 작업 멘트 날리고 자빠졌냥. 한 번만 더 지껄이면 모가지에 민트초코 케이크를 쑤셔박을 거다냥. 주문 더 할 거면 부르지 말고 이걸로 하라냥."

김펜릴은 제 손목의 마도기어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부리나케 사라졌다. 카르나는 벙찐 얼굴로 음료를 들어올렸다.

"이 멘트 날리면 누구든 다 넘어오던데."

"얼굴이 먹고 들어가는 거죠."

"과연. 그렇군. 역시 멘트보다는 얼굴인가."

"......그건 그렇지."

얼굴은 중요했다. 아지다하카를 공략하는 주요 열쇠도 얼굴-막말로 얼빠기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승형의 NTR 작전-소위 '니가쩔'작전에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럼 여기서 질문. 제가 환룡이나 설야를 제외하고 당신 두 명을 굳이 여기로 부른 이유는 뭘까요?"

"카페에 있는 음식들을 소개해주기 위해서?"

"데이트?"

"......."

정말 카르나와 히드라다운 답이었다.

"힌트. 굳이 이곳으로 장소를 정한 이유는 여러 개가 있지만, 김펜릴이 알바하는 곳이라 여기로 왔어요."

피닉스, 카르나, 히드라, 김펜릴.

네 명에게는 설야와 환룡과는 다른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걸 가장 먼저 깨달은 이는 계산대에서 관망하던 김펜릴이었다.

"죄다 배신한 간부들 뿐이다냥."

"그래요. 간부. 정확히는 아직 '괴인의 잔재'를 가진 존재들."

카르나는 은유하와 싱크로를 했지만 의식의 주체가 카르나다. 고로 간부로서의 영향은 받지 않아도, 간부로서 성주에게 받은 힘과 기술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이제 아지다하카를 공략할 비장의 작전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김펜릴, 주문할게요."

"주문은 마도기어로 하라냥."

"아뇨. '암살'을 좀 주문하고 싶은데."

"......오홍홍?"

펜릴은 눈을 휘둥그레뜨며 혀를 내둘렀다. 내가 암살을 의뢰한다는 말에 다른 두 간부도 깜짝 놀랐다.

"뭐야, 너 또 누구 죽이려고 하니? 아니면 아지다하카의 괴인을 펜릴에게 암살시켜러고 하는 거야?"

"...무슨 생각인가, 피닉스. 단순히 죽이는 거라면 저 막되먹은 고양이가 아니라 내게 시키면 될 것을."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김펜릴이 아지다하카의 괴인을 암살하는 건 맞아요. 단."

나는 포크로 딸기를 찌르고 들어올렸다.

"그 괴인이 아지다하카의 괴인일지 아닌지는 모르죠. 목이 달아날테니까. 푸흐흐."

자신이 한게 아닌데 자신이 한 것 처럼 오해받는다면 얼마나 빡칠까. 아지다하카가 이가는 걸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너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냥?"

의뢰를 수행할 암살자는 굳은 얼굴로 내게 물었고, 나는 딸기를 먹고 민트초코 마카롱을 찔러 김펜릴에게 건넸다.

"나쁜 생각."

아지다하카가 빡쳐서 나오지 않고는 못 견딜, 그런 악랄한 생각.

***

"파후우…. 크흡."

살이 뒤룩뒤룩 찐 남자는 공원 벤치에 앉아 줄담배를 물고 있었다. 지나가는 이들이 전부 그에게 불쾌감을 내비쳤지만, 아무도 그에게 불만을 표시하지 못했다.

"카악, 퉷."

남자는 피섞인 가래침을 바닥에 뱉었다. 그의 옆에는 그를 훈계하기 위해 나섰던 히어로가 피떡이 된 채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쓰벌. 새끼가 공원에서 담배 좀 태울 수 있지. 거 얼마나 살겠다고 꼽주고 지랄이야."

남자는 쓰러진 히어로의 배를 툭툭 발로 건드렸다. 기절한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그의 행태는 가히 꼴불견이었으나, 그게 B급 히어로라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통제 불가능한 이능력자.

세계가 멸망하니 이제 제멋대로 살겠다고 하는 광인이었다.

"씨발, 지구 터지기 전에 아지다하카 맛이나 봤으면…응?"

남자는 바닥에 굴러온 상자를 집어들었다. 누가 선물 포장이라도 한 것 마냥 상자에는 옥색의 리본이 묶여있었다. 남자는 아무 망설임 없이 리본의 매듭을 풀어버렸다.

"아싸 개꿀."

무엇이 들어있든 주웠으니 남자의 것. 남자는 히히덕거리며 상자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올 하일 아지다하카!!]

갑작스런 아지다하카 찬양 소리가 울렸다. 남자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뭐야?!"

"꺄아아아악!!"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공원에 홀로 남게된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신경질을 부렸다.

"씨바, 이게 뭔-"

상자안에는 민트초코 케이크가 한 조각 놓여있었다. 남자는 쌍욕을 하며 민트초코 케이크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이런 개-"

"나쁜 괴인이다냥."

서걱.

그것이, 남자가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였다.

잠시 뒤.

공원에는 못생긴 괴인의 시체가 벤치에 놓여있었다.

목격자의 제보에 따르면, 그는 죽기 직전 아지다하카를 찬양하다가 목이 달아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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