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428화 (428/1,497)

〈 428화 〉1부 18장 10

<10월 14일 오전 9시 30분, 백나로 호 휴게실.>

한국 내에 잠입한 모든 괴인들의 처리가 끝났다. 히어로들이 한국을 뜬다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괴인들은 활동을 시작했고, 나와 청화단은 그들을 암살했다.

대부분이 짝퉁이었지만, 실제로 아지다하카의 괴인도 있었다.

그들이 자폭을 하듯 아지다하카 하기 전에 내가 덕배트를 휘둘렀고, 그리하여 한국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하여 한반도 내부에는 철저하게 괴인 잔당의 뿌리를 뽑았다.

아직까지 숨어있는 괴인들이 미친척하고 나설 리는 없겠지만, 설령 나선다고 하더라도 석하랑에 의해 괴인 아이스크림이 되어 동작 지하 석빙고에 저장될 것이다.

"그럼 이번에도 집 지키기 잘 부탁해요."

[어째 매번 내는 본진 수비만 하는 것 같은데.]

"당신만큼 믿을만한 존재가 없잖아요? 강원도 게이트도 완벽하게 틀어막았고. 석하랑이 한반도 전체 틀어막지 못한다고 뭐라고 하는 놈들 전부다 괴인인게 드러났잖아요. 다 당신 질투해서 그런거니까 이해해요."

[그렇다면야 상관없지만....]

하랑은 마치 나를 물에 내놓은 자식처럼 걱정했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번 작전은 히드라 때 처럼 내가 전면으로 나서는 게 아니지 않은가.

"걱정할 거라면 화권이나 걱정해줘요. 그래도 나름 같이 서울수복작전에서 쌍두마차였는데."

[언제적 얘기를 하고 있는데. 화권이야 알아서 잘 하겠지. 그 아저씨 암만 일탈해봐야 뭐 클럽가서 여자나 만나고 다니겠나?]

"글쎄요. 그래도 선의철이랑 같은 피가 흐르는데 유전자가 열심히 일하지 않을까요?"

유전자 내부에 있는 음란하고 문란하고 퇴폐적인 성질을 마구 터뜨릴 때가 지금이 아니고서야 언제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 아재는 지금 뭐하고 있는데? 가루라도 지금 카르나랑 같이 미국갔더구만.]

"방안에서 온갖 조폭 영화부터 시작해서, 방탕한 청년 드라마를 탐독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캐릭터를 잡아서 연구할 모양인 듯 한데요."

[그 아저씨 히어로 아니었으면 분명 연기했을 것 같은데. 솔직히 연기력 만큼은 가을 언니보다 천상 배우 아이가.]

"...가을의 명예를 위해서 저는 아무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마스크만 뛰어난 배우와 마스크도 출중한 배우. 유감스럽게도 천가을과 이승형이 누가 어떤 성향인지는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다.

"혹시나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네트워크에다가 알려요. 지금 저 하도 시끄러워서 안 보고 있으니까."

[니가 제일 집중해서 봐야하는 거 아이가?]

"1분에 50개씩 쌓이는데 그걸 어떻게 일일이 보고 있어요."

공식적으로는 A팀부터 N팀까지가 청화단에서 파견하는 원정대였지만, 그 뒤로는 당연히 아지다하카 공략전의 핵심 멤버들이 편성되어 있었다.

N팀, 나, 이승형, 백희아.

O팀, 카르나, 은유하.

P팀, 히드라, 이유나.

Q팀, 환룡, 샤오린, 봉효.

R팀, 루살카, 광검.

그리하여 N팀부터 R팀까지 총 다섯개의 팀을 뜻하는 N to R, 줄여서 NtR팀은 정령들로 구성된 초호화 멤버들이었다. 그리고 집을 지키는 S팀, 석하랑까지 모든 포석은 끝났다.

문제는 이승형과 광검을 제외하고 압도적인 성비 때문에 네트워크는 지금 소란을 넘어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현재 함장석에 앉은 백희아도 백나로 호를 자율주행 모드로 바꾸어놓고 타자기까지 들고와서 타이핑을 하느라 난리였다.

[그거야 니 업보 아이가. 지금 여기에 못 끼는 사람은 니 한 명 뿐인거 모르나?]

"아니, 그러니까 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다들 까발리고 그러는 데요...."

당장 내일 지구가 멸망할 수 있으니, 나와 관계된 이들은 서로 모든 에피소드를 까발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분명 샤오린이 나와의 전투를 읊는 것으로 시작했건만, 어느새 하나 둘 나와의 에피소드를 폭로하기 시작하며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었다.

"솔직히 양심 안 찔려요?"

[뭐가.]

"내가 당신한테 광검에 관해 얘기했을 때, 당신 안그랬잖아요. 뭐? 고개를 떨군 채 눈물만 뚝뚝 흘려? 파스타 돌돌 말아 크림에 찍어먹었으면서."

[닥치라.]

"그래서 지금 닥치고 있잖아요. 톡방에서는."

현재 톡방의 화제는 내가 환룡을 상대로 어떻게 각성을 시켰는가에 대하여 봉효가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피닉스 님께서는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세계가 설령 무너지고 모든게 끝이 나더라도, 이 세상이 끝나기 전까지 나는 너와 함께 있어주겠다. 혼돈의 칼날에 건틀릿이 찢겨나가면서도, 그 손길을 제 주군에게 내밀어주셨습니다. 생살이 찢겨나가는 고통을 참아가면서도-]

[진짜가?]

"개뻥이죠. 정신세계에는 가을이 구하러 갔는데 무슨. 심지어 어디로 가면 되는지 정답 바로 알려주서 별 문제도 없었어요. 바로 문 열었다고 말했으니까."

다들 전부 사기를 치고 있다. 심지어 제일 많이 사기를 치는 자는 봉효 백청영이었다. 그는 환룡과 나의 만남을 두고 무슨 패왕별희를 찍는 것처럼 이빨을 털었다. 진짜 듣는 나조차도 혹할 정도로 사기가 심했다.

"무슨 피닉스 영웅담을 만들어도 정도가 있지."

[행동이 개쓰레기 빌런짓이었다는 걸 빼면 거의 영웅담 아이가?]

"...아닌데요? 그냥 간부가 간부답게 행동했을 뿐인데요? 쓰러뜨린 놈들이 더한 쓰레기들이어서 그렇지."

[상대적으로 영웅처럼 보인다 이거제? 알았다. 니 부끄러워하는 것 같으니까 뭐라 더 안할게.]

하랑은 손으로 입에 지퍼를 채웠다. 봉효가 사기를 친 것도 있기는 하지만, 하랑도 나와의 일전을 두고 사기를 쳤다. 증인이 있는 전투는 몰라도, 하랑은 나와의 대련을 두고 자신이 거의 이길뻔한 싸움을 내가 사기를 쳐서 이겼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사기 아닌데."

[사기지. 그게 사기 아니면 뭔데? 갑자기 그렇게 강해지는 게 어딨냐 이 말이야.]

"그거야...."

나는 뒷말을 흘렸다.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뒷말을 흘리니 하랑도 침을 꿀꺽 삼키며 내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사람을 범하려 드는 무뢰배를 상대로 초인적인 힘이 나온 거죠."

[아, 글쎄 안 그런다니까?]

"농담이에요. 그냥 일종의 자가버프기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버프가 아니라 치트아이가. 니 진짜 비겁하게 싸우지 마라.]

"비겁은 무슨, 자기가 홀려가지고 그래놓고."

하랑은 내 말에 얼굴을 붉히며 열을 냈다.

[내, 내 확 다 까발려뿐다?! 니 나한테 했던 짓 울 엄빠한테 까발리면 니 몸 성할 것 같나?! 어? 아지다하카 조지기 전에 피닉스 먼저 조진다 이거야! 울 가족 전체 상대로 함 뜨까?!]

"그럼 앞으로 당신이랑 대련 안 하면 그만이죠. 어, 그러면 저는 당신 가족 아닌 건가요? 푸흐흐."

[아아아악!!]

하랑은 히스테리를 부리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장난이 너무 심했나 생각이 들었지만, 곧 다시 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해요. 반응이 너무 재미있어서."

[니, 아지다하카 각성시키고 나면 내랑 한 판 더 붙자.]

"얼마든지요. 근데 그 때는 선객이 있어서 무리예요."

[누구?]

"여기 백나로 호에 임시 바리스타로 승선한 고양이 한 마리."

[......????]

하랑은 혼란에 빠졌다. 나는 내 앞에 턱하고 놓인 쇼트 케이크 옆 포크를 집어들었다.

"있어요. 말로는 저보다 강하다고 날뛰는 천방지축이."

[...진짜로?]

"네.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는지...."

나는 딸기부터 포크로 쿡 찍었다.

"배달을 하랬더니 아예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출장을 나왔네요."

N팀.

피닉스, 화권, 집행관.

그리고 녹색 고양이 메이드 겸 암살자 한 마리.

"카페 백나로 호 지점의 점장, 그 이름하야 김펜릴이다냥!"

"...오란다고 진짜 오네. 어휴."

...나는 혹시나 모를 경우의 수를 대비하여, 한국에 있는 최고의 불안 요소를 내 옆에 두기로 마음먹었다.

* * *

10시 정각.

영종도에서 총합 13대의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각기 '가'부터 '하'까지 한글로된 음절을 꼬리날개에 단 전용기들은 제각기 정해진 국가를 향해 떠올랐고, '하'를 맡은 백나로 호 또한 하늘길로 올랐다.

그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빨랐다. 히카리에 의해 정비에 정비를 거듭하여 전투기에 맞먹는 속도를 가지게 된 것도 있지만, 배에 승선한 모 풍속성의 간부 양반 때문에 비행기는 비행에 따른 공기 저항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래서 몇 명이나 죽였어요?"

"183명! 생각보다 전 세계에 민트 초코를 싫어하는 괴인들이 많아서 슬펐다냥."

김펜릴은 아무렇지 않게 나의 허벅지에 배를 올리고 누워 갸르릉 거렸다. 나는 성질 나쁜 고양이의 털을 손으로 그루밍을 하며 김펜릴에게 의뢰비용을 지불했다. 김펜릴은 꼬리 두 개 달린 고양이로 변신하여 내 그루밍을 받았다.

"...그 분이 정녕 <절풍의 펜릴>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죠."

"그렇다냥."

히드라가 케레스로서 보인 위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아지다하카를 집적 상대해 봤기에, 이승형이나 백희아는 김펜릴이 펜릴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누가봐도 요괴 고양이였고, 인간형을 갖추었을 때는 누가봐도 코스프레 컨셉녀였다.

그런 김펜릴이 아지다하카와 히드라보다 강하다는 걸 둘은 믿지 못했다. 나도 김펜릴에 대하여 잘 몰랐다면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계 최고의 암살자. 원래라면 대인전에서는 카르나와 거어어어의 쌍벽이라고 봐도 무방한, 간부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녀석이기는 한데요."

"미안하지만 이 몸이 최강이다냥. 그러니까 한 판 제대로 붙고 싶으면 아지다하카까지 이기고 오라냥."

"이렇게 1스테이지 보스 주제에 자기가 최강이라고 자꾸 깝쳐대서, 어디까지 개기는지 한 번 지켜보는 중이에요."

"나중에 이 몸과 싸울 때 어디 두고보자냥."

나는 김펜릴의 꼬리 위를 손으로 팡팡 두드렸다. 엉덩이 바로 위를 혼내듯 두드려도, 김펜릴은 좋다고 가만히 앉아 하품을 해댔다.

"...지금 확 마력으로 잡아서 가두면 안 됩니까?"

"네. 여러번 시도는 해봤는데, 워낙에 신출귀몰해서 말이죠."

솔직히 말하자면 김펜릴과 만날 때마다 매일같이 마력으로 신경전을 벌이고는 했다. 하지만 내가 결계를 치려고 마력을 펼친다 싶으면 바로 도망을 치려고 했고, 나는 결계가 쳐지기 전에 김펜릴이 바람처럼 도망가는 미래를 절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결계를 치는 걸 실패하면 얘, 분명 영원히 잠적하거나 서울을 날려버릴 거예요. 아지다하카나 히드라보다 찾기 더 힘들지도 몰라요."

나는 꼬리를 한 번 손으로 쓸고 털을 다시 고르게 쓸었다. 마음 같아서는 하악질이라도 하며 당장이라도 펀치를 날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냥냥펀치와 함께 내 볼을 할퀴고 지구에서 바로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들도 잊지마요. 펜릴이 김펜릴일 때 잘 하세요."

"...그런데 피닉스 님, 저희 이제 아지다하카 잡을 작전 회의 해야하는데 이렇게 같이 있어도 됩니까?"

둘의 근본적인 의문은 그것이었다. 과연 잠재적 적이라고 볼 수 있는 김펜릴을 눈앞에 두고도 다른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아지다하카를 잡는 계획을 노출해되 되는 것인가. 그래서 나는 단언했다.

"김펜릴, 아지다하카한테 알려줄 거예요?"

"이 몸이 왜 그래야하냥?"

"봤죠?"

"...세상에."

이승형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아예 생각하기를 포기한 듯 했고, 이번에는 백희아가 나서서 김펜릴에게 질문했다.

"그렇다면 아지다하카가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귀찮으니까 안 할 거다냥. 아지다하카가 다크 레기온의 총수를 자처하기는 했어도, 기본적으로 간부들은 각자 독립된 방법으로 세계를 멸망시키면 되는 거라냥. 참고로...."

김펜릴은 꼬리를 흔들어 바람의 칼날을 만들어냈다. 이승형이 백희아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김펜릴은 누군가를 공격할 의도는 없었다. 김펜릴은 마력으로 허공을 긁어서 글자를 적었다.

"성주님 화성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다냥."

"즉, 성주가 화성에 도착하면 멸망이 대략 일주일 남았다는 거죠."

김펜릴 만큼 제멋대로인 자가 누가 있을까.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정말로 믿어도 됩니까?"

"믿을 수 있는 지인을 초대한다고 했는데 설마 이런 존재를.... 하아."

"푸흐흐, 너무 걱정마요. 위험도로 따지면 얘보다 감옥간 선의철이 더 위험하니까."

그만큼 안전하다는 말이었다. 나는 김펜릴에 대한 그루밍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남과 동시에 마도기어가 전방에 홀로그램 칠판을 펼쳤다.

"그러면 화권, 타락할 준비는 끝났어요?"

"......예, 일단 들어주시겠습니까?"

이승형은 자신이 계획한 '망나니 이승형'의 이미지를 우리들에게 쭉 읊기 시작했다. 백희아의 표정이 더할 나위없이 일그러지고, 김펜릴 조차 어이가 없어서 포크에 찌른 민트초코 케이크를 바닥에 흘렸다.

"흠."

나는 이승형의 계획을 들은 뒤.

"채택."

단번에 결재를 내렸다.

"잠깐만요, 피닉스 님! 이건 아니죠!!! 화권의 이미지에 심각한 손상이 올 거라고요! 지금 겨우 동정 여론을 받고 있는데에!!"

"......사람을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릴 생각이냥."

백희아와 펜릴이 질겁을 하는 가운데, 나는 눈을 반짝이는 이승형에게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그래야 제 제자죠."

터키의 클럽 죽순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김치맛 한 번 제대로 맛보게 될 것이다.

"잠깐만요. 내가 옷도 만들어줄게요. 그래...."

나는 마력을 뭉치며 절로 웃음이 나오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역시 타락하면 검은 슈트죠."

터키를 넘어, 전 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느끼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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