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6화 〉1부 19장 22
S-89274
"생각해보면 말이에요, 당신이랑 참 같잖은 걸로 싸웠네요."
"뭘?"
그는 나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서로 나체로 끌어안고 있기에 그의 따스함이 더 잘 느껴졌고, 숨을 내뱉는 순간부터 날숨까지의 과정이 등을 통해 전해졌다.
"히어로냐, 빌런이냐."
"그건 벌써 예전에 정리한 문제 아니었나?"
그는 내 어깨 위에 턱을 묻으며 빈정거렸다. 듣기만 해도 신물이 난다는 것처럼 짜증을 냈지만, 실제로 엄청 싸웠다. 그 과정에서 그가 죽은 횟수만 적어도 200번은 넘을 것이다.
"네가 답답해 할 게 분명해서 빌런 길을 걷기로 했지. 너 욕하는 년놈들 있으면 다 태워버리기로."
"당신을 신경쓰느라 생각을 못했어요. 당신이 제 몸으로 움직이는 걸 잊었죠."
"나는 처음부터 그 생각을 해서 그렇게 하자고 한 건데. 히어로 파파라치 놈들을 생각해봐라. 얼마나 짜증나는 놈들 아니냐. 걔들 마음같아서는 다 모가지를 뽑아버리고 싶은데 참을 수 있나? 다 태워버려야지. 아니면 아예 그럴 생각도 못하게 만들거나."
그는 내 얼굴과 몸이 파파라치들의 손에 팔려 사방으로 퍼지는 것을 상당히 꺼려했다. 그가 창염의 피닉스인 것처럼, 그 또한 창염으로서의 나를 홀로 독점하고 싶어했다.
"그렇게 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요?"
"물론. 여차하면 항상 괴인형으로 다니고 싶을 정도로."
"...괴인형으로 다니면 정신적으로 더 힘들어질텐데요? 맨날 파괴충동이랑 살인충동 들어서. 폭주 석하랑 봐봐요. 20년간 광검이 희석한 걸 이어받았는데도 자기가 사랑하는 고향 땅 부산을 손가락질 한 번에 날려버렸는데."
"하나의 목적만 생각하고 의지를 다잡으면 되지."
그는 손을 교차하듯 올리며 내 가슴을 양쪽으로 붙잡았다. 왼손이 오른쪽을, 오른손이 왼쪽을 살포시 감싸쥐었다. 나는 내 가슴을 그가 잡기 딱 좋은 사이즈-D컵 수준으로 사이즈를 줄였다. 그도 그걸 말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좋아했다.
"내가 괴인형의 상태가 되는 걸 포기하면 다른 놈들이 네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
"독점욕이 과하시네요. 그렇게 안해도 제가 어디 가는게 아닌데."
"정신은 내 코어 속에서 영원히 갇혀있어도 육체가 나 때문에 드러나는 격 아니냐. 나는 남들이 너를 그냥 보는 꼴은 못본다. 원작에서도 항공모함 출전 씬에서 처음 등장하지 않았냐. 그 전에는 사제복에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고."
"이거요?"
나는 불꽃을 튕겨 그의 기억 속 간부 피닉스를 꺼냈다. 청백이 섞인 사제복에 후드를 쓰고, 검은 그림자 아래에 녹색의 베일로 얼굴을 가린 정체불명의 미녀.
"어둠속에서 암약하던 창염의 피닉스는 루살카까지 당하자, 항공모함의 엔터프라이즈에서 해병들의 거수경례를 벗으며 후드를 벗고 등장! F-35 조종석 유리 위에 올라타서 발진한 다음, 괴수형으로 변해서 서울까지 1분만에 날아가는 최강의 괴수!"
"그건 괴수형이자 본체 아니냐. 내가 말한 건 인간형이다, 이 예쁜 몸뚱아리."
"꼭지가지고 장난치지, 하으…."
일부러 딴소리를 하며 주의를 돌리려고 했는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일부러 내 가슴골 사이로 흘러내리게 한 머리칼을 집어들어 유두를 비질하는 것마냥 쓸었다. ...조금 간지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으니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나는 네 몸을 다른 놈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괴인형으로 고통받아도?"
"차라리 그게 낫지."
"음…."
그는 괜찮다고 하지만 내가 안 괜찮다. 지나가다가 거슬리기만 하면 다 태워버리고 싶어하는 상태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 그리고 나는 그의 피규어가 아니다.
"당신, 생각을 바꿔보는 건 어때요?"
"어떻게?"
"괴인형, 아니면 인간형. 둘 중 하나로 다니게 되면 당신은 무조건 괴인형을 선택하게 되겠죠. 인간형-백청화의 형태를 빚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하지."
그는 인간형으로 활동하는 것을 상당히 꺼려했다.
인간형으로 나-창염의 피닉스-라는 여성체, 그리고 백청화의 남성체를 그는 선택할 수 있었다. 정령이든 간부든 코어에 정신과 의식이 깃들어있고, 외부의 육체는 마력으로 빚어낸 실체니까. 마음만 먹으면 다른 형태로 얼마든지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했다.
"남성형은 당신도 나도 싫으니까 패스. 왜 그런지는 알죠?"
"내가 남성형으로 다니다가 히로인들이 꼬일까봐 무서워서 그런 거 아니냐. 구체적으로 유나. 얼굴이랑 몸매, 목소리에 바로 반해버리니까."
"그렇죠. 제가 그런게 걱정되는 것처럼, 당신도 진짜로 그럴까봐 걱정이 되겠죠."
그도 나도 남성체는 패스. 원작에서 하던 것처럼 사람을 상대하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에게 설레게 되리라.
"그러니까 당신은 제 몸으로 다녀주셔야겠습니다."
"싫다."
"왜요? 말투 때문에?"
"저 몸을 다른 놈들이 보는 거, 나는 싫다."
그는 원작 피닉스의 사제복을 가리키며 질색을 했다. 사제복이라기보다는 가슴과 골반을 도드라지게 하여 섹스 어필이 강하게 이루어진 디자인이 노골적이었다. 나는 그게 더 얼척이 없었다.
"전신을 가리고 있는데도 싫어요?"
"몸매가 다 드러나잖냐. 싫어."
"...흠."
그가 내게 이렇게 얽매이는 것은 여러모로 기쁘기야 하지만, 집착에 가까운 모습은 보기 좋지 않았다.
"저기요. 당신은 누구 것이죠?"
"네 것이지."
"그럼 나는 누구거?"
"나."
"좋아요. 우리는 지금 우리 상태처럼 떼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되었죠."
나는 내 가슴을 애무하던 그의 손을 잡아 내 하복부에 올렸다.
"그런데 말이에요, 그냥 꽁꽁 숨겨둘 거예요? 뇌내 애인 신라양으로? 그럴 건 아니잖아요. 당신도 내가 당신의 것이라는 걸 과시하고 싶을테고, 나도 당신이 내 피닉스라는 걸 널리 알리고 싶다고요."
"그 심정은 십분 이해가 가는군. 하지만 그게 내가 네 몸으로 움직일…. 과연."
그는 내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밀어넣으며 움켜쥐었다. 아랫배를 누르는 열손가락에 나는 하복부가 화끈 달아올랐다.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겠군. 내가 너의 것임을."
"동시에 온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겠죠. 스크린 너머의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갈망하게 되겠지만, 사실 저는 이미 당신의 것이라는 거죠. 푸흐흐."
모든 히로인들이 통과의례처럼 거치게 되는 이벤트, 커밍아웃. 주인공은 세상 사람들의 앞에서 당당히 히로인과 자신이 연인임을 선언하는 걸로 루트 진입로를 단단히 다지게 된다.
"피닉스는 창염의 것. 창염의 피닉스. 온세상 사람들에게 떠들어요. 이렇게 새끈하고 예쁜 아가씨와 한 침대에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건 오직 당신 뿐이라고."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볼에 기습 키스를 당한 그는 귀신같이 고개를 돌리며 내 입술 위를 덮었다. 나와 그는 설육을 섞었고, 나는 그 사이 손깍지를 풀어 손바닥이 마주보도록 뒤집어 다시 손깍지를 꼈다. 자연히 우리의 손은 내 허벅지 위에 놓였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고, 혀가 이 사이로 넘어와 내 혀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혀를 입천장 위로 숨겼고, 그는 혀끝을 깊게 찔러 내 혓바닥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쓸어올리기 시작했다.
"흐음."
톡톡.
나는 그의 혀 노크에 어쩔 수 없이 혀끝을 맞췄다. 그리고 서서히 혀를 내밀어 그의 혀와 꽈배기처럼 뒤섞기 시작했다. 키스가 이어질수록 깍지낀 손의 힘이 그도 나도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키스를 이어가길 약 10여분. 그의 수신호에 나는 먼저 입술을 떼어냈다. 그의 혀끝과 내 입술 사이에 길게 이어진 은빛선이 반짝였고, 나는 혀끝을 낼름거리는 것으로 은빛선을 내 입안으로 숨겼다.
"하아. 어째 하면 할수록 키스 실력이 줄어드는 것 같은데요? 유나랑 할 때는 좀 더 혀를 적극적으로 쓰셨던 것 같은데."
"그러는 너야말로 많이 둔해진 것 같은데? 이래서야 내가 가르쳐 놓은 보람이 없지 않
아? ...냐?"
"뭐래요. 당신도 내가 가르쳐 준 거 완전히 따라하지는 못하고 있거든요? 자꾸 그런 식으로 상냥하게 말하지 말라고요. 싸가지 밥 말아먹은 것 같은 말투로."
"자꾸 헛소리하면 키스로 입을 막아버리겠다. 첫날밤처럼 말이지. 후후."
괜히 도발을 했나. 나는 장난스레 웃는 그의 모습에 살짝 짜증이 났다. 그는 자신의 키스 실력이 죽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내 뒷덜미를 입술로 빨며 진한 키스 자국을 남겼다.
"...무슨 소리에요? 첫날밤 기억 내가 회수한 지가 언젠데!"
"화 내는 걸 보니 키스 못하게 된 게 맞네. 아니, 정확히는 다른 걸 하면서 키스하는 것 까지는 집중하기 무리인가? 후후."
"......당연한 거 아녜요? 지금 키스가 중요해요?"
나는 불만의 표시로 배에 힘을 한 번 꽉 줬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씩 웃었다. 나도 그가 웃으니 괜히 입꼬리가 씰룩거렸지만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여기서 웃었다간 기껏 화를 내려던 게 다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왜 느긋하게 키스하고 싶은지 알아요?"
"당연하지. 안에서 열심히 조여대느라 그런 거 아니냐."
"그렇죠. 위아래로 키스하는데 한쪽은 신경 못 쓸 수도 있잖아요? 푸흐흐."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나도 이쪽에 집중하는 수밖에."
쿵!
그는 나를 강하게 찔어올렸다. 전신이 관통되는 듯한 짜릿한 감각과 함께, 그가 나를 갈구하는 애정어린 손길이 나를 아래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짜릿한 감각으로 차오르게 만들었다. 이제 거의 9만번에 이를 정도기는 했지만, 언제나 파워와 사랑이 넘치는 그의 배려와 행위는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하아, 하아.... 우리, 흐으, 아직 얘기 중이었는데...."
"하면서 얘기하는 거, 우리 기본 아니었던가?"
"그, 그렇기는 한데.... 에이, 모르겠다. 이번에도 내기하는 거예요?"
나는 그의 새끼손가락을 간질이며 내기를 걸었다. 그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나를 비웃었다.
"이번에는 또 몇 번이나 도전해보려고?"
"흥, 몇 번을 하든 결과적으로 성공만 하면 그만이라고요. 그래요...이번에 당신이 먼저 가면, 당신은 내 몸으로 활동하는 거예요. 알았죠?"
"오냐. 얼마든지 덤벼봐. 단."
그는 깍지를 풀고 내 골반을 양옆으로 잡고 씩 웃었다.
"너라고 봐주지 않는다?"
"흥, 봐주는 건 다, 아극?!"
순식간에 자궁구까지 찔러올리는 바람에, 나는 그만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사실 처음부터 끼우고 있었다.
결굴 나는 11번을 다시 되살아나고 나서야, 그의 진한 사정을 받아냈다.
뭐?
첫날밤?
"......킹 크리!"
오직 '했다'는 결과만 남을 뿐.
* * *
S-85
"날 속였어요. 섹스해도 싱크로 안 할 수 있잖아."
나는 그의 자지를 손으로 꽉 붙잡고 조였다. 엄밀히 따지면 속인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싱크로가 아니더라도 '이 세계'에서는 마음껏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깥에서 하는 거랑은 다르지. 이곳은 어디까지나 정신세계 속 아니냐."
"그거나 이거나 별반 다를 게 없지 않아요?"
"다르지."
그는 내 허리 뒤로 손을 넘기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석-은-백 A 트리오 만큼 사이즈를 줄여 평면에 가까웠지만, 그는 일부러 내 가슴 사이즈를 줄여달라 요청했다. 때로는 빈유 몸매도 보고 싶다더나 뭐라나.
"바깥에서 실제로 하면 임신할 지도 모르잖냐."
"...실제로 하고 싶은 걸 넘어서 이제는 애까지 낳으시려고요?"
"싫냐?"
"나쁘진 않죠. 세계가 평화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세계가 멸망을 앞두고 있다면 자식을 낳는 의미가 있을까. 근본적인 내 질문에 그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에 입술을 맞췄다.
"세계를 구하면 되지. 그래야...너랑 평생 살 거 아니야."
"...어디서 살려구요."
"어디든. 나는 너만 있으면 돼."
그의 눈빛은 흔들림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