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537화 (537/1,497)

〈 537화 〉IF Route, Normal Ending # 013-C

IF Route는 본편과는 관계없는, 본편에서 파생된 가상의 시나리오입니다.

보시는 분에 따라서 불쾌감이 들 수 있으니, 본편을 보실 분은 다음 장으로 바로 넘어가셔도 내용 이해에 문제가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캐릭터 붕괴도 있을 수 있으니, 유념하여 주십시오.

* * *

정령은 금방 사랑에 빠진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정령은 "아, 이거다"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영혼만 남은 루살카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루살카의 사랑은 지고지순하여, 괴인으로서 죽었던 순간으로부터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아나스타샤에 빙의했던 이후로도 가족에 대한 사랑은 배웠으나, 평생의 반려로 삼을 "이성"에 대한 사랑은 오직 한 사람만을 향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시험대에 놓이고 말았다. 아버지가 강제로 맺은 혼약에 루살카는 설령 파혼을 하더라도 이혼녀라는 꼬리표가 붙어버렸다. 순수한 몸으로 허윤환과 사랑을 나누겠다는 고집은 꺾여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술에 온 정신을 맡기고 방안에 틀어박혔다. 모든 것을 방폐하고, 두문불출하며 왕자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루살카의 결계는 그 누구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단단했으나, 그 속에 있는 루살카의 정신은 상당히 무너져있었다.

그런 루살카의 혼란을 깨고 나타난 이는 피닉스였다.

[짜잔.]

동화 속의 왕자님처럼 나타난 피닉스는 루살카를 납치하기 위해 결계를 박살내며 창문으로 들어왔고, 루살카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빌런답게 공주님 납치하러 왔다.]

당당하게 스스로를 악당이라 칭하며 루살카에게 손을 뻗는 피닉스의 모습에, 루살카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후의 이야기는 그대로.

루살카는 광검의 힘을 빌어 폭주한 괴인 DD를 쓰러뜨렸고, 라스푸틴의 실체를 밝힘으로써 무사히 약혼을 흐지부지 만들 수 있었다.

루살카는 광검 벨로보그를 배신할 수는 없었지만, 피닉스에게는 감사를 표하기로 했다.

그래서 루살카는 광검 몰래, 서울을 방문했다. 피닉스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 * *

<모월 모일, 서울 히카리 연구소 모처.>

푸시이이-

캡슐의 뚜껑이 열리며 흰 연기가 빠져나왔다. 캡슐 안에 가득 차있던 푸른 액체가 흘러나왔고, 안에서 백발의 작은 소녀가 몸을 일으켰다.

"음, 좋네. 진짜같아. 고맙단다, 꼬마 교수님."

"아무렴! 흐아암, 저는 이만 자러 갈게요…."

연구가 성공한 것을 확인한 히카리는 하품을 하며 실험실을 떠났다. 나는 불꽃을 피워 소녀의 몸에 덕지덕지 묻은 이물질을 태운 뒤, 하얀 가운을 건넸다.

"여기 서비스가 좋네."

"사람을 무슨 호텔리어 취급하고 말이에요."

"네가 시설 주인이잖니?"

루살카는 가운을 챙겨 입으며 베시시 웃었다. 그 모습은 내가 석하랑의 오마케를 통해 보았던, 140cm도 채 되지 않는 아이처럼 체구가 작았다.

"어색한 건 없어요? 당신이 프로토타입이잖아요."

"얘. 교수님이 만족하고 자러가셨잖니. 그럼 된 거야. S급 코어 일곱 개가 종류별로 하나씩 들어갔는데 잘 움직여야하지 않겠니?"

"그건 그렇죠."

나는 각지에서 벌어온 S급 코어를 속성별로 하나씩 구해 밸런스를 갖췄고, 루살카는 큐브의 힘을 빌어 정신의 일부를 나누어 호문클루스에 실었다.

"진짜 나랑 똑같네."

의자에 앉아있던 아나스타샤는 루살카의 볼을 만지작거리며 감탄했다.

"귀여워."

"아무렴 누구 모습인데."

"그래서 더 귀엽다는 거야. 예뻐. 서방님 덕분에 이렇게 옛 모습도 되찾고 말이야. 후후."

<설야의 루살카>의 인간형을 정확히 구현해내는데 일등 공신은 광검 허윤환이었다. 허윤환은 루살카를 잊지 못해 X로이드를 개조하여 루살카와 똑같이 만들었고, 우리는 그 X로이드의 외형을 베이스로 똑같은 형태의 인조인간을 만들어냈다.

코어와 마력, 그리고 큐브. 세 가지 요소가 들어간 덕분에 루살카는 아나스타샤와 루살카로서 공존할 수 있게 되었다. 호문클루스 1기를 제작하는 데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지만, 루살카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 자원은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다.

"얘."

"왜요."

"너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뭐야?"

루살카는 눈웃음을 치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말로 하기 힘든 루살카의 박력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쳤지만, 등 뒤에는 또다른 루살카-아나스타샤가 나를 뒤에서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허윤환 아내잖아요. 석하랑 엄마고. 저도 나름 부하 복지를 챙기는 사람이라고요."

"정말?"

"정말로 그런 의도만 있는 거야?"

미묘하게 다른 목소리였지만 거의 비슷한 목소리다. 루살카는 앞뒤로 나를 유혹하듯 낮게 속삭였고, 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루살카를 살짝 밀어냈다.

"장난치지마요. 사람이 호의로 도와준 걸 가지고 장난은."

"흠, 이쪽도 장난 아닌데."

"뭐요?"

루살카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아나스타샤에게 두 손을 들었다. 아나스타샤는 루살카와 손뼉을 치며 서로를 응원했다.

"얘, 서방님 잘 모셔. 언젠가 같은 침대에서 함께 할 날을 위해서. 알지?"

"물론이란다. 그럼 부디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랄게."

아나스타샤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마력을 일으켜 사라졌다. 아나스타샤는 한 순간에 모스크바의 자택으로 순간이동했고, 연구실에는 나와 루살카만이 홀연히 남게 되었다.

"얘."

루살카는 은근한 눈빛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일단 방에 들어가서 좀 쉬었으면 좋겠어."

"알았어요. 잠시만요."

나는 마도기어로 연구실에 직통으로 연결된 청화단 전용 엘레베이터를 호출했고, 원통형으로 열린 천장에서 내려온 캡슐을 가리켰다.

"타요. 안 타고 뭐해요?"

"업어주지 않으련?"

"......참 가지가지 한다, 정말."

루살카는 내게 두 팔을 벌리고 있었고, 나는 루살카를 내 가슴 앞에 안아들었다.

"왜요. 업지 않아서 놀라셨나?"

"......이렇게 안을 줄은 몰랐는 걸."

루살카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항상 허윤환만을 바라보던 눈빛이 내게도 향한다는 걸 자각한 순간부터, 나는 루살카를 대하기가 몹시 난감해졌다.

"그래도 좋아하시잖아요?"

"그건 그렇지."

난감한 건 난감한 거고, 나는 루살카를 품에 안고 캡슐에 들어갔다. 내 마력에 반응한 캡슐은 금방 수직으로 솟구쳐, 호텔 내부의 공간을 움직이며 목적지에 다다랐다.

위잉, 철컥.

캡슐은 내 펜트하우스에 도착했고, 나는 캡슐 엘레베이터를 다시 히카리의 연구실로 반환했다. 나는 안아든 루살카를 침대에 집어던졌다.

"꺄악!"

루살카는 침대에 던져지며 비명을 질렀다. 체내의 마력만 전 속성이 S급인 괴물이 고작 침대에 내동댕이쳐졌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 어이가 없었지만, 당연히 루살카는 나를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비명을 지른 것이다.

화륵.

나는 인간형의 몸을 남성으로 바꾸었다. 나는 익숙한 금발벽안의 청년이 되었고, 루살카는 내 얼굴을 찬찬히 뜯으며 눈웃음을 쳤다.

"잘생겼네. 후후."

"......."

루살카는 허윤환에 버금가는 체구가 된 나를 올려다보며 은근한 손길로 가운을 슬쩍 열어젖혔다. 호문쿨루스 특유의 하얀 피부가 눈에 띄었지만, 애초에 루살카의 인간형은 하얀 설원과도 같았다.

"너 완전 쓰레기인 거 알지?"

"애초에 날 쓰레기로 만든 건 너다, 루살카."

"후후, 변명하지 말련. 너도 좋다고 받아들인 거잖니?"

루살카는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렸고, 나는 루살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살포시 어깨를 짓눌렀다. 루살카는 순순히 내게 밀려 넘어지면서도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았다.

"부하 아내를 탐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영 그런데."

"성능 테스트야, 성능 테스트. 서방님이랑 하기 전에, 서방님 사랑을 견딜 수 있는지 테스트하기 위한 거란다."

루살카는 손사레를 치며 눈을 흘겼다. 부부의 사랑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입장으로서, 호문클루스가 허윤환의 검을 견뎌낼 수 있는지 확실히 품질을 테스트하기는 해야했다.

다만.

"그럼 어서 안아주지 않으련…?"

루살카는 그 테스트를 내가 먼저 해주기를 바랐다. 말이 테스트지, 실상은 나와 행위를 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왜? 매번 해왔잖아. 카운셀링이라면서 서방님 몸으로 나를 그렇게 많이 자빠뜨렸으면서, 본체로는 하지 못하겠다는 거야?"

"그건 허윤환의 몸이었잖나."

"그럼 이렇게 생각하면 되지."

루살카는 내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렸다. 콩닥거리는 코어의 박동은 진짜 사람마냥 두근거렸고, 나는 루살카가 나와의 행위에 긴장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서방님은 아나스타샤랑 사랑을 나누고, 우리는 우리끼리 사랑을 나누면 되잖아?"

"그건 무슨."

"답답하게 굴지 말고, 좋게 생각하면 되잖니. 애 딸린 유부녀는 별로야? 그럼 안 되는데. 그리고...."

루살카는 내 볼을 붙잡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서방님은 내가 따로 복제된 거 모르시는데...후훗."

쪽.

루살카는 내게 입술을 맞추며 내 목에 팔을 걸었다. 나는 루살카의 몸을 아래로 내리며,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레 몸을 움직였다.

"이 정도로 작은 사람이랑은 해 본 적이 없는데."

"뭐니. 가슴이 작다는 거야, 아니면 몸집이 작다는 거야?"

"둘 다."

내 말에 루살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손가락을 아래로 내려 자신의 좁게 다물어진 음부를 살짝 벌렸다. 손가락 하나 들어가도 꽉 차겠다 싶을 정도로 질구는 좁아보였다.

"작아 보여?"

그러나.

"여기서 하랑이가 나온 거 잊었니? 후후…."

루살카는 엄연히 출산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미 모든 각오를 마친 루살카를 위해, 내 갑주 안에서 성기를 꺼내 루살카의 아래에 맞췄다.

"이 몸으로 너랑 하기는 처음이군."

"그렇네…. 보기만 해도 서방님 것보다 커보이는 걸."

루살카는 조막만한 손길로 내 남근을 쓸었다. 앙증맞은 손이 성기를 좌우로 이리저리 자극하는 솜씨는 내가 허윤환의 몸으로 카운셀링을 하면서 가르쳐준 테크닉이었다.

"전희가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너 아닌가?"

"어머. 걱정하는 거니? 그럴 필요 없단다. 평소처럼 하면 돼. 한 두번 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건-"

루살카가 검지를 들어 내 입술을 눌렀다. 더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제스쳐였고, 나는 검지를 살짝 핥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꺄하하. 그래. 솔직해져. 더 기쁘게 해줄까?"

루살카가 손가락으로 내 성기를 자신의 음부에 맞춰 살짝 눌렀다. 호문클루스의 특성 덕분인지, 이미 애액으로 점철된 루살카의 안은 내 성기의 크기에 맞춰 조금씩 넓혀지고 있었다.

찌걱.

"......허."

나는 성기의 진입을 가로막는 막의 존재에 가슴이 철렁내려앉았다. 루살카는 내 입술을 막았던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갖다대며 한쪽 눈을 윙크했다.

"서방님에게는 비밀이야."

"......."

뒷 말은 필요없었다. 나는 밤의 어둠이 사라지고 태양이 떠오를 때 까지, 마음껏 호문클루스의 성능을 테스트했다.

* * *

수년 뒤.

우리는 성주를 쓰러뜨렸다.

가족과 화해한 석하랑은 스스로 신화에 이르렀고, 불행히도 나는 신화에 이르지 못했다.

"뭘 그리 겁먹는데? 내가 다 때려잡아줄게."

석하랑은 자신감을 내비쳤고, 나는 석하랑을 중심으로 하는 스쿼드를 만들어 성주가 타고온 방주를 습격했다.

내가 각성하지 못한 것 때문에 결국 이계신을 불러내 완전히 멸망의 씨앗을 뿌리째 뽑아내지는 못했으나, 우리는 완벽히 성주를 제거하였다. 모든 싸움은 끝났고, 세계는 평화를 되찾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또다른 전투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부담되면 말하렴. 내가 끝까지 커버쳐줄테니."

"......셋이서 감당 못할 것 같은데요."

내 왼손에는 아나스타샤가, 내 오른손에는 호문클루스 루살카가 양쪽에서 나를 꾹 잡아줬다.

"잘 될거란다. 이해해주겠지."

"이해라…. 내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라고?"

"그래. 내 살다살다 이런 꼴은 난생 처음 본다. 니 돌았나?"

입구에서 성큼성큼 걸어온 허윤환이 아나스타샤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 뒤를 따라온 석하랑은 루살카의 맞은 편에 앉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봐라, 이 구제불능의 쓰레기야."

"오빠는 무슨 얼어죽을 오빠. 이 개새끼가 남의 엄마를, 으아아악!!"

허윤환과 석하랑은 내게 분노를 터뜨렸고, 두 명의 루살카는 손을 뻗어 둘을 진정시켰다.

"너무 뭐라하지마. 내가 먼저 유혹한 거니까."

"루살카. 내가 그렇게 못났었나?"

"......노코멘트."

허윤환, 격침.

"그래. 하랑이 너도 종종 얘기했잖니. 오빠가 아빠가 되는 거라며."

"엄마! 이건 내 아들내미 아빠가 아니라 새아빠잖아!!"

"정 그러면 너도 같이 쓸래?"

"......그래도 되나?"

석하랑, 배신.

졸지에 딸과 아내를 동시에 빼앗긴 글러먹은 아버지, 허윤환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으르렁거렸다.

"마지막 유언 정도는 들어주지."

"......."

나는 걱정어린 루살카들(2대 포함)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뒤, 허윤환을 향해 선언했다.

"원래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콰---앙.

싸우고, 이겼다.

결국 루살카가 둘이서 함께 위로해주고 나서야 광검은 삐진게 풀렸고, 나는 그동안 석하랑을 달래줘야했다.

나는 진정으로 루살카 일가의 반려정령이 되었다.

"공공재인데?"

"아니 거 말을…."

틀린 말은...아닌가?

***

이계신이 눈을 떴다.

감았다.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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