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8화 〉[백합외전] 창염과 피닉스 012
째액, 째액.
아침이 되었다. 나는 부산의 바다 풍경이 전부 보이는 펜트하우스의 천장에서 동해안의 햇살을 맞이했다.
"우응...."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 위에서 알몸으로 웅크리고 있는 백발의 여인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다.
"......."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창염과의 작전에 따라 다크 레기온을 상대하기 위해 일단 '피닉스 다음으로 강한 정령'을 공략하자고 했고, 가장 공략하기 쉬운 상대는 석하랑이었다.
상성?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밖에서 창염이 석하랑의 시선을 끌고, 속에서 내가 루살카의 잔재를 제거하면 끝이니까.
비록 광검이 죽고나면 폭주체가 어디로 튈 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석하랑에게는 닿지 않을 것이다.
석하랑은 현재 자각은 하지 못했지만, 정령의 힘을 손에 넣었다. 본인이 기회만 있다면 SS급 마력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며, 단번에 한국 최강의 이능력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새근, 새근.
하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모르고 곤히 자는 순한 나비와도 같았다. 날개를 접고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인형같은 모습에 나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옆으로 쓸었다.
"......."
[오우야 오우야.]
내 머리 위의 창염이 날개를 펄럭이며 환호했다.
[키스자국 대박. 누가 했을까요? 저는 안했는데.]
"......."
내가 루살카를 쓰러뜨리고 난 뒤, 다시 밖으로 나와보니 창염이 비비고 있다가 내게로 몸을 되돌려주더라.
- 어, 어서 해주세요.... 부끄러우니까....
절정 직전에 멈추게 할 수는 없었고, 결국 나는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물론 비비는 건 한 번으로 끝냈고, 그 뒤는 혀와 손을 이용해 실신할 때까지 건드렸다.
남자와 여자가 하든, 여자와 여자가 하든, 주도권을 가지고 여자를 애무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똑같다.
'처녀라서 몰랐을 걸.'
만약 석하랑이 어느 쪽이든 경험이 있었다면, 분명히 어색함을 느꼈을 것이다.
키스를 하거나, 쇄골에 키스자국을 남기거나, 가슴을 집중적으로 물고 빨거나, 심지어 아래를 혀로 빨거나 손가락으로 쑤시는 그 모든 행위가 '남자가 여자를 상대로 하는 애무'라는 것을.
[남자가 하는 레즈 섹스...이건 귀하네요.]
'좀.'
[1cm 보장해드리죠. 대신 지금 키우면 볼품없으니까, 나중에 최소 13cm는 되었을 때 세워드릴게요. 어디서 작다는 소리 듣고 싶지는 않잖아요?]
'당연하지.'
작으면 애무 테크닉으로 극복하면 되지만, 크면 그냥 피지컬로 찍어누르면 된다.
'선꼬삼이 될 수는 없지.'
의도치 않게 이 나라 최고 빌런과 같은 목적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같은 배를 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나의 샷건을 찾으리라.
"으응...어...?"
석하랑은 서서히 눈을 떴다. 자고 일어났음에도 눈곱이나 부스럼하나 없는 모습에 나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그녀의 앞머리를 쓸었다.
"......."
낙장불입.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더니. 밤새 따뜻하게 해드리길 잘 했네요. 푸흐흐."
"데워...나는...앗...?!"
석하랑의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이불 속 자신의 알몸을 발견했다.
"......."
석하랑은 고개를 돌리며 베개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순식간에 귓등까지 붉어졌고, 나는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칼을 옆으로 당기며 귓가에 속삭였다.
"자기...밤에 너무 섹시했어."
"!!"
손발이 오그라든다. 하지만 내 손발이 쪼그라드는 것 이상으로 석하랑의 몸도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후후, 일어나요. 아침을 시작해야죠."
나는 석하랑의 볼에 입술을 가볍게 맞춘 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부러 그녀에게 등을 보이며 테라스 앞 의자에 다시 앉았다.
"언제 일어났...죠?"
"새벽에요. 잠이 잘 없어요. 이능력을 각성하고 난 뒤로 부작용 같은 거라서."
"아...."
거짓말이다. 언제 누가 습격할 지 몰라서, 언제 누가 나를 덮칠지 몰라서 안 잔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부터 나를 덮칠 생각 만만이기에, 나는 최대한 잠을 안 자려고 노력하고 있다.
[몸 좀 쓰게 해주면 어디 덧나나. 잠 좀 자요!]
'싫다. 나를 정신세계로 끌고들어와서 여자 대 여자로 덮치려고 할 거면서.'
...다름 아닌 창염이 나를 덮친다. 나를 피닉스인 채로 두고, 자신도 피닉스와 똑같은 모습으로 애무하고 보비려고 한다.
그래서 피닉스는 자지 않는다.
"...혹시 이것도 그런 이유로...?"
"아뇨. 그건 하랑 씨가 너무 예뻐서 그런 거예요."
"읏...."
아무리 정령이라도, 기본적으로 여자인 만큼 칭찬에 기분이 나쁠 리가 있겠는가. 그것도 같이 밤을 보낸 남...아니 여자인데.
"멀리서 자료 보자마자 바로 꽂혔는데, 역시 아니나 다를까. 푸흐흐, 좋네요. 하랑 씨, 혹시 저 하랑 씨 집에서 지내도 될까요?"
"네?!"
기겁을 한다. 어찌나 펄쩍 뛰는 지, 유리창에 비친 석하랑은 속옷을 입다가 침대에 넘어질 뻔 했다.
"저, 저희집에요?!"
"네. 아무래도 한국에 새로 집을 구하는 것보다, 하랑 씨 집에서 지내는 게 더 편할 것 같아서. 괜찮아요. 하우스 메이드가 필요하면 사람 부르면 되고, 아니면 제가 집안일 하면 되니까."
"그, 그게...."
석하랑은 노골적으로 꺼려했다.
집에 들이기 싫어서? 아니다.
"지, 지금 집이 엉망인데...."
"여자들 집 엉망인 거야 제가 잘 알죠. 저도 여...자인데."
울컥.
"걱정마요. 저 원래 그런 거 청소하는 거 좋아해요. 아니면 하랑 씨는...제가 하랑 씨 집에서 머무르는게 싫어요?"
"그, 그런 건 아니에요! 단지, 어, 음, 그러니까...."
석하랑은 어느새 어제 들어왔을 때 입었던 한복을 반듯하게 갖춰입었다. 저 치마 아래로 창염이 기어들어가 그곳을 빨았다고 생각하니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후후. 그러면 아침 먹고 갈까요? 호텔 브런치 챙기고, 하랑 씨 집으로 가죠."
"혹시 아침으로 국밥을 먹는다거나-"
"저 국밥 별로 안 좋아해요. 싫어하는 건 아닌데, 굳이?"
"네? 하지만-"
"부산에 유명한 음식 찾아보니까 돼지국밥이라고 하길래, 부산에 올 명분이 필요했거든요."
부산 명물이 전이라고 했으면 나는 강원도에서부터 파전에 막걸리를 요구하며 부산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코리안-비프-스프. 맛은 있는데, 하랑 씨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어제 저랑 같이 있으면서 엄청 힘겹게 드셨잖아요."
"아...."
"제가 얼마나 미안하던지. 하랑 씨가 음식 뭐 좋아한다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어서 배려를 못했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해운대 구경이나 하러 왔다고 할 걸 그랬나."
나는 석하랑에게 눈을 찡긋였다. 석하랑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자신을 가리켰고,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살포시 손을 맞잡았다.
"당분간 한국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으니까, 잘 부탁해요. 하랑."
"저기...."
석하랑은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원나잇으로 1년이면, 몇 밤 더 하면...어떻게 되죠?"
"......."
불끈.
나는 없던 자지도 서는 기분이 들었다. 석하랑은 멎쩍게 볼을 긁적이며 내게서 시선을 피했고, 나는 호텔 냉장고에 '미리' 준비해둔 간식 중 하나를 꺼냈다.
"하랑. 이미 그런 건 의미가 없어요."
나는 딸기와 블루베리가 믹스된 사탕을 꺼내, 입속에 넣었다.
"내가 당신 곁에서 지내기로 했으니까요."
츕.
나는 석하랑의 얼굴을 붙잡고, 사탕이 녹아내릴까지 시간을 보냈다.
* * *
피닉스, 부산에 상륙!
나는 헌터 <피닉스>의 한국 방문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비록 과정은 상당히 이상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부산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석하랑도 무사히 구해냈고.'
[폭주 석하랑이 부산에서 3백만킬을 하는 일도 없게 되겠죠.]
'이제 남은 정령은 다섯.'
혼돈환룡, 개천광 카르나, 지륜의 히드라, 마암룡 아지다하카, 그리고 절풍의 펜릴.
'거리로 따지면 혼돈환룡부터인데.'
[지금쯤 자고 있거나 발굴되었거나 둘 중 하나이니, 무리하게 중국으로 넘어가지는 말죠.]
'그래.'
한국에서 기반을 마련하고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한국 내에서도 아직 챙겨야 할 것들이 조금 있다.
하나. 서울의 큐브.
둘. 신서울의 큐브.
두 가지 큐브를 챙겨 빠르게 제거해야만 한다.
원작?
그런 건 내 생존에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원작을 안다고 괜히 원작을 지키려고 했다가 피를 보느니, 차라리 내가 원작의 모가지를 비틀어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게 훨씬 좋다.
그래서 석하랑부터 공략하지 않았던가!
[석하랑 이후로 남은 정령들은 어떻게 할 거예요?]
'똑같이 공략해야지.'
간부는 내가 공략하고, 정령은 창염이 공략한다. 전투는 내가 맡고, 정령으로서의 공략은 창염이 보벼서 승리한다.
창염이 미연시 파트를 맡는다면, 나는 RPG 파트를 맡는 셈.
"그럼 부산에 온 김에, 화려하게 날뛰어 볼까요."
마침 적절한 괴수가 하나 근처에 잠들어있다.
펄럭.
나는 석하랑이 집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몰래 태양에 숨어 남쪽으로 날았다.
[오키나와 인근 해안에서 이상마력 반응 발생!!]
[이, 이건...S급입니다!]
뿌우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