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574화 (574/1,497)

〈 574화 〉2부 1장 04

"금발서양남."

청화의 선택은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금발서양남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선택하는 것에 나는 다소 어이가 없었다.

"원작인데? 무궁화 보이인데? 사실 겉만 금발서양남이고 속은 김칫국물 줄줄 흐르는 토종 한국인인데?"

매니져가 폭풍 스포ㅋㅋㅋㅋㅋ

표현 되게 독특하게 하시네. 원작ㅋㅋㅋ

??? : 커스터드 크림치즈(국산)

내 표현에 온갖 드립들이 난무하기 시작한다. 내가 어느정도 다 까발린 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원작 주인공을 플레이하고자 하는 청화의 의도가 궁금했다.

"왜 히어로는 안 된다는 거야? 히어로 동료들 동료로 영입하기 쉬울텐데."

"그러면 빌런 쪽 히로인들 영입이 어렵잖아요. 특히 간부들."

"그렇긴 하지. 걔들은 일단 빌런이기는 하니까."

히어로와 빌런 사이에서 다투는 와중에 싹트는 정은 없다. 애초에 나나 청화나 히어로 길을 걸을만한 사람들이 아니기에, 나는 충분히 청화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헌터는 어때? 괴수 사냥하면서 동료들 영입하면 되잖아."

"싫어요. 그 귀여운 애들을 왜 일부러 때려잡으려고 해요?"

"그렇긴 하지. 걔들은 일단...아, 이건 진짜 스포니까 참는다."

??????

괴수가 뭐?

촉수꺼비가 귀엽기는 하지(흐뭇)

본편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설정이기는 하지만, 눈썰미 좋은 몇몇-특히 이계 테라로의 문을 열었던 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괴수는 테라의 하급 정령들.

괴인은 타락한 인간들.

심지어 괴수 중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마룡들은 정령들의 복제품.

'유나 얘기는 하지 말죠.'

'물론.'

그노시스, 이계신의 화신체로서의 유나에 대해 알려버리면 사람들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건 피닉스 루트에서만 접할 수 있는 진최종보스이기 때문.

아무튼 청화는 괴수들을 게임에서라도 죽이고 싶지 않아했다.

"그럼 왜 용병은 싫다는 거야?"

"돈에 연연하기 싫어요. 용병이면 계약 무조건 완수해야하잖아요. 막상 임무 받아봤더니 뒤에 칠칠이가 있거나하면 간부들 있거나 하면 싫단 말이에요."

충분히 그럴싸한 대답이었다. 누군가의 아래에서 일하기 몹시 싫어하는만큼, 대가를 받는 의뢰라고 해도 임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럼 결국에는 금발서양남, 본편 스토리 그대로 가는 거네?"

"그래서 싫어요?"

"아니, 난 네가 한다면 좋다."

내가 창염이 되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창염이 내가 된다. 서로 한 번씩 각자의 몸을 체험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그럼 히비스커스 씨 성능을 보자고."

§□□□□□□□§

<금발 서양남>

당신은 한국 히어로 협회의 요청을 받아 미국에서 한국으로 파견된 히어로 아카데미 인재발굴 요원입니다. 주변의 다양한 역경으로부터 당신의 관찰안으로 좋은 인재를 양성하여, 당신만의 팀을 만들어보세요!

# 전투력 : E.

당신의 전투력은 한국 남성들의 평균을 훨씬 웃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D급 이능력자 초등학생에게도 패배하니 유념하여 주세요!

# 마력 : F.

당신은 마력을 각성하지 못한 비능력자 수준입니다!

# 명예 : E.

미국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스카우터이나 곳곳에서 당신에 대한 견제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국 히어로 협회에서는 당신이 유망주를 키워주기를 바라며, 행여나 미국으로 데려가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고 있습니다.

# 자금 : D.

당신은 전 재산을 털어 한국으로 넘어왔습니다. 한국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비행기도 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특성>

[???] : 동료와 인연이 깊어지면...?

([마력각성] : 의식을 치른 비능력자를 이능력자로 각성시킨다. 1장 클리어 이후부터 적용.)

([마력강화] : 의식을 치른 능력자의 최대 마력 레벨을 상승시킨다. 1장 클리어 이후부터 적용.)

<클리어 잠금해제>

[성녀의 기억] : 전속성, 강화에 상승 보정 + 1Lv.

[청운의 기억] : 풍&수 이중속성 보유자의 강화에 상승 보정 + 3Lv.

[야황의 기억] : 암속성, 강화에 상승 보정 + 2Lv.

[혜성의 기억] : 각종 자금 확보에 보정 + 5%.

......

§□□□□□□□§

"아, 잠시만요. 잠시만요."

나는 급히 청화에게 제스쳐를 취했다. 청화는 화면을 내리다가 급히 위로 당겨올렸다.

"여러분, 이거 제 계정인데 아내가 처음 플레이하는 거거든요? 어느정도 알고는 있기야 하지만, 그래도 뉴비인데 인계 데이터 깔고 들어가면 치트 아닙니까?"

ㅇㅈ

사실 잠금해제 내역만봐도 스포ㅋㅋㅋ

?? 방금 항목 하나 더 있던 것 같은데?

'예리한 놈.'

주차 플레이가 당연시 되는 미연시 RPG인 만큼, 이 게임도 똑같이 클리어를 하면 그에 따라 여러 가지 해금되는 기능이 있다. 특히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히로인들 개인 루트를 클리어했느냐 안 했느냐.

<이명>의 기억.

히로인과의 공략 결과가 다음 회차의 육성에 성장 보정이 걸리는 셈이었다. 당연히 16명의 기억만 있어야 하지만, 분명히 내 클리어 데이터인 이상 '그것'이 있을 터.

"잠시만요."

나는 카메라를 조정하는 척 화면 송출을 정지시켰다. 그리고 청화의 양해를 구해 클리어 잠금해제의 목록을 확인했다.

[바람의 기억] : 의식을 치른 대상에 풍속성 마력(D~B) 부여 또는 강화 보정 + 2Lv.

[물의 기억] : 의식을 치른 대상에 수속성 마력(D~B) 부여 또는 강화 보정 + 2Lv.

[불의 기억] : 의식을 치른 대상에 화속성 마력(D~S) 부여 또는 강화 보정 + 5Lv.

'좆될 뻔 했다.'

누가봐도 명백히 이상한 것이 하나 있지 않은가. 이게 방송에 그대로 나갔으면 바로 방송을 끊었어야 했을 사고였다.

"흐흥, 이거 몰랐어요?"

"나도 처음 보는 거니까."

저건 피닉스 루트의 공략 증거나 마찬가지인 항목이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고, 나는 쓱 항목을 위로 올렸다. 영상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내가 뭔지 궁금해해서 잠깐 구경시켜줬어요."

"후훗, 이렇게 예쁜 아내두고 16명이나 게임에서 붕가붕가 하고 다녔다고 대놓고 말하네요. 푸흐흐."

현장검거ㅋㅋㅋㅋ

그래도 부럽다

그런데 남편도 대단하네. 아내가 다른 남자랑 하는 거 옆에서 구경하는 거? 합법 NTR 방송?ㅋㅋㅋ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나와 청화는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그러다가 청화가 금발 서양남을 선택하고 나니 그제서야 사람들의 이상한 반응을 깨달았다.

"금발 서양녀?"

금발 서양남을 선택하니 우리의 눈앞에는 두 명의 남녀가 나타났다.

한 명은 백색 코트를 걸친 금발청안의 훤칠한 외국인 청년.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나조차도 순간 설렐 정도로 아름다운 금발 청안의 여인. 아마도 본편 남주인공의 TS로 추정되는 여인은 청화를 닮아있었다.

청화는 아니다. 하지만 주인공을 닮지는 않았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후훗, 당신이랑 저랑 딸 낳으면 꼭 저런 모습일 것 같지 않아요?"

"......에이, 설마."

"왜, 얼굴 사진만 합성해서 자식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주는 프로그램 있잖아요. 그건 줄. 푸흐흐."

"그럼 아마도 너를 99% 닮았을 것 같은데."

채팅창에 우웩소리가 넘쳐흐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시청자는 40~50명 언저리에서 오다니기 시작했다.

"저기요, 질문있어요. 이거 한 번 선택하면 평생 못 바꾸나요?"

[유나팬티보라색] : 아뇨! DLC 특전 아이템 있어요! 자세한 건 스포!

제법 익숙한 아이디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의 짧은 훈수에 따르면, 아마도 히카리에 의해 남자->여자가 된 히메지 히토미처럼 변하게 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는데. 그럼 어떻게 할-"

"당근빳다 남자죠."

청화는 이미 금발서양남, 시안을 선택하고 말았다. 여성이 남자 아바타로 게임을 한다는 것에 다들 의아해했다.

"후후,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에요?"

청화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음흉하게 웃었다.

"히로인들 동성으로는 친해지기 쉬워도 침대로 끌고가기 어렵지만, 남자 주인공이면...흐흐흐."

"......."

청화의 강력한 의지를 누가 말리랴. 그나마 있다면 바로 옆의 나밖에 없겠지만, 나도 딱히 청화를 말릴 생각이 없었다. 청화가 여자 몸으로 남자에게 박히고 다니겠다는 것도 아니고, 남자의 몸으로 박고 다니겠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아무튼 클리어 인계 데이터는 없이 갑니다. 클리어 파일로 새 게임하는 거라 적은 당연히 강해지기는 할텐데, 그래도 제가 옆에서 서포트하니까 게임오버까지는 안 보낼 겁니다."

"걱정 마세요. 보란듯이 전부 다 제 하렘으로 만들어버겠다는 것이에요. 아, 당신 방제 바꿔줘요."

"벌써?"

"네, 이걸로."

청화는 실실 웃으며 내 허벅지 위에 글자를 적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청화의 말대로 방제를 바꿨다.

<1트에 17P 히로인 하렘 만드는 방송>

"히로인 전부 안 죽이고 공략하고, 간부들 정령으로 각성시키고, 큐브 전부 회수. 어때요? 콜?"

도전적인 청화의 눈빛에 시청자들은 당연히 콜을 불렀다. 보는 사람들 입장이야 플레이어 본인이 제약을 걸고 미션을 하겠다는데 뭐가 아쉬울까.

[라스트지휘관] : 미션 실패 벌칙은요?

"아, 그것도 있네요. 음...이건 어때요?"

5시, 카메라에 비친 내 모습에 하얀 손길이 뻗어졌다. 청화가 내 투구를 건드리려 하는 손짓에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저희 남편 벗길게요!"

"......너 혼날래?"

나는 청화의 손목을 잡고 살짝 비틀어버렸다.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슬쩍 손을 내려 그녀의 안쪽 허벅지를 간질였다.

"아하하, 자, 잠깐만. 사람들 보고 있잖아요...!"

"누구 멋대로 나를 벗기겠다는 거야."

"제 걸 벗기겠다는 데 왜 그러시는 거죠?!"

"네 거라고?"

"그럼 당연하죠. 당신은 내 거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푸흐흐."

논리의 폭거에 시청자도 나도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청화의 웃음을 보며 짜증이 금방 내려갔다.

"당연히 클리어 하는 거지?"

"물론이죠. 이참에 진최종보스, 아니 찐최종보스까지 때려잡아볼까요?"

이계의 여신 이유나.

과연 이계신의 신격이 깃든 그녀가 다시 진짜 최종보스로 나올지는 의문이지만, 확실히 나도 궁금하기는 했다. 괴인 피닉스가 등장하는 세계에서 과연 최종보스는 누가 될 것인가.

진최종보스면 진이지 찐은 뭐임?

찐따의 찐ㅋㅋㅋㅋ

솔직히 찐따같기는 해

살아님이 광검계신다!

"시작한 김에 찐최종보스까지. 그러면 시작합니다. 게임 스타트!"

플레이어, 청화.

프로듀서, 나.

본격적인 DLC가 시작되었다.

* * *

<2025년 1월 1일, 미국 서부 LA 국제공항.>

"진짜 갈 거냐?"

머리가 회색으로 탈색된 청년은 슬픈 눈으로 친우를 보내야했다. 청년의 맞은편에는 백색의 코트를 입은 금발의 청년이 멍한 눈동자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튜토리얼 시작됐네요. 흠흠, 가야죠."

"...갑자기 왜 존댓말이야? 재수없게."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처럼 살기로 했으니까. 음...이런 말투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금발의 청년은 목을 좌우로 꺾다가 싱긋 웃었다.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사장님."

"내가 왜 사장이야. 평소대로 오라클이라고 불러."

"그거야 당신이 스튜디오 사장이고, 제가 한국 지사에 발령된 유일한 사원이라 그런 거 아닙니까?"

청년은 품에서 분홍색 명함을 들고 흔들어댔다. 그의 명함에는 <오라클 스튜디오 사원, 시안.w.히비스커스>라는 소속, 직함, 그리고 이름이 적혀있었다.

"돈이나 잘 보내주세요. 일단 두 달 동안은 '비밀리에' 가는 거니까."

"걱정마라. 정보국에서 전부 붙어서 보안은 철저해."

<...한국 김해 국제 공항으로 떠나는 AA-109번을 이용하시는 승객 여러분께서는 타는 곳 8번으로....>

안내 방송에 탈색된 머리칼의 청년, <오라클>은 한숨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잘 다녀와라."

"남자랑 악수 안합니다."

청년은 캐리어를 잡고 바로 등을 돌려 떠났다. 오라클은 빈 허공에 손을 흔들다가 허탈함에 헛웃음을 지었다.

"야, 너 도대체 왜 한국 가려는 거야?"

"왜냐고요?"

청년, 시안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 손가락을 중지와 검지 사이로 푹푹 쑤셨다.

"어여쁜 한국 여자 분들 만나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음흉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시안을 보며, 오라클은 소름이 돋았다.

"...설마 저새끼 벌써부터 카사노바 연기하는 건가? 으으, 미친 새끼."

오라클은 더이상 자신의 이능력, <미래예지>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저러다 잘못 여자한테 걸리면 큰일 날텐데. 으휴, 잘 하겠지? 잘 할 거야. 저 놈이 누구인데."

오라클은 그저 미국을 떠나가는 시안의 뒤를 향해 기도할 뿐이었다.

잠시 뒤.

"흐흐흐, 누구부터 만나러 갈까...? 성녀? 설화령? 아니다. 꼴리는 대로 가야지. 흐흐흐."

퍼스트 클래스의 금발 청년의 눈동자는 푸른 불꽃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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