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7화 〉2부 1장 27
“누리랑 섹스해주세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온은 내게 성행위를, 섹스를 부탁했다. 그것도 자신이 아닌 동생 누리와 하는 섹스를.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언니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이것 뿐이거든요.”
가온은 침대위에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존심이 강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A급 이능력자가 무릎을 꿇고 부탁하는 모습은 가히 좋지 않았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절박하게 만드는 걸까.
“오랫동안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집에 돈을 보냈어요. 이 건물에 들어간 돈의 90%가 제가 벌어들인 돈이죠.”
“그건 알고 있지. 괜히 건물 이름이 가온누리겠어.”
D급 헌터 부부가 벌어봐야 얼마나 벌겠는가. 신서울에 4층짜리 원룸 건물을 사려면 적어도 100억 이상은 벌어야 했다. 그 대부분의 자금이 김가온이 러시아에서 벌어온 돈이었을 것이다.
“...저는 가족에게 돈만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죠. 집에 돌아와보니 상태가 말이 아닌 거예요. 부모님은 여전히 돈을 버느라 미쳐계시고, 누리는 혼자 집에서 외롭게 시간을 보내고. ...이러려고 해외에 나갔던 건 아니었어요.”
“그래. 그래서 러시아로, 마트료시카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 거구나.”
“네. 휴가를 나온 이유도...뭔가 기분이 찝찝해서. 동생한테 꼭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무리하게 나온 거예요.”
“그건 그렇지.”
주인공이 김누리를 케어하지 않을 경우, 김누리는 높은 확률로 행방불명된다. 신서울을 빠져나간 가출 여고생이 어떻게 되는지는 불보듯 뻔했다. 자매라서 그런지 몰라도 김가온의 감은 상당했다.
“그래서 막상 돌아왔는데 누리랑 무슨 얘기를 해야할 지는 모르겠고...몸은 피곤해서 잠깐 누워있었는데 누리한테 혼나고…그러다 싸우고. …...어쩌면 그게 계기일 지 모르겠네요.”
“무슨 계기?”
“배고파서 라면 좀 끓여달라고 했거든요. 그러다가 내가 네 식모냐고 막 싸우고….”
“대충 알겠네.”
“...바보같은 언니죠?”
가온은 쓰게 웃으며 자조했다. 술기운은 이미 집으로 들어오면서 마력으로 체외로 방출해, 그녀는 지금 피부만 붉어져있지 완전한 맨정신이었다.
“그러니까 동생이 원하는 걸 꼭 해주고 싶어요. ...염치없는 걸 알지만, 꼭 부탁드려요.”
“물어볼게. 내가 네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는 뭐지?”
“......뭐든지.”
“큭.”
무릎 위에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라스푸틴 조차도 내게 무릎꿇고 간청해도 모자랄 정도야. 너와 나의 입장차이라는게 그 정도라고. 네가 내게 줄 수 있는 게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뭐, 뭐든지 시키는대로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부탁드려요.”
가온은 절까지 하며 내게 간절히 부탁했다.
“누리랑 섹스해서...이능력자로 만들어주세요.”
“나 참.”
어이가 없어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하지만 가려도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건 숨길 수 없었다
‘계획대로.’
동생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언니.
하지만 동생을 위해 무엇을 해줘야 할지 모르는 언니.
그러다가 마침 운명처럼 만난 .
조금 과격하고 무례하기는 해도, 만약 성공하기라도 한다면 김누리는 이능력자가 될 수 있다.
고등학교 내내 놀림받았던 상처받은 삶도 졸업과 동시에 이능력자 데뷔라는 새로운 인생의 2막이 펼쳐질 수 있다.
가온은 자신을 걸고 동생을 위해 모든 걸 바치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서울에 잠복해있는 S급 괴수를 죽이기 위해 왔다고 치자. 너를 희생하면 S급 괴수를 죽일 수 있어. 그럼 너는 희생할 건가?”
“.......”
가온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가족이 소중한 만큼, 자신을 희생하여 세계를 지킬 수 있어도 남겨진 가족이 슬퍼할 것에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동생을 정말 아끼고 사랑한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무턱대고 동생과 섹스를 해달라니. 그건 나에게도 무례한 부탁이고 동생에게도 무례한 거야.”
“그, 그치만! 60억 지구인 중에 누가 지휘관과 하는 걸 거부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있을 수 있지. 일면식 없던 남자와 섹스하라고 하면 너는 할 수 있어?”
“큭….”
“그리고 나는 아무나 이능력자로 만들지 않아. 그 사람의 잠재능력과 성향, 그리고 내 목숨을 믿고 맡길 수 있느냐 하는 걸 두고 판단하지. 누리 양은 분명 착한 것 같기는 하지만….”
잠재력도 차고 넘치고 당장이라도 박고 싸고 싶다. 나는 뒷말을 일부러 삼키고 표정을 애매하게 지었다. 가온은 내 표정을 읽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냐. 됐다. 아무튼 에스콰이어 길드는 그만둬. 러시아까지 갈 필요 없어. 내가 연락해둘테니. 너는 당분간 내 지시대로 움직이는-”
“제 몸을 드릴게요.”
세게 나왔다. 나는 엄한 표정을 지으며 가온을 노려봤다.
“무슨 의미지?”
“저를 마음대로 쓰셔도 좋아요. 그, 그러니까….”
벌컥-!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가온의 방안에 들어올 사람이 있다면-
“헐.”
무쇠 프라이팬이 나를 덮치려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면 정확히 뒷통수를 후려쳤을 위치였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명백한 기습은 자칫 내 얼굴을 강타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게는 바로 옆에 호위가 있다.
촤아아아악!
허공에 생겨난 푸른 물결이 프라이팬의 충격을 받아냈다. 물의 방패를 만든 가온은 바로 마력을 이끌어 습격자를 구속했다.
“아아악!!”
습격자는 비명을 지르며 사지가 구속되었다. 나는 프라이팬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손잡이를 잡고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들었지?”
“전부 다!!”
“......아무래도 그냥 대화를 한 게 의심을 산 것 같군.”
물의 구속구에 갇힌 가온의 동생, 누리는 눈에 독기를 풀풀 풍기며 나와 가온을 노려봤다. 그 눈빛은 엽기적인 성범죄자를 바라보는 눈빛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누리야, 이건-”
“닥쳐, 미친 년아!”
“!!”
대뜸 들은 쌍욕에 가온의 표정이 굳었다. 나도 그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조금 상식적인 발언이 아니기는 했죠.”
“너도 닥쳐, 사기꾼!”
“...사기꾼?”
“지휘관인 척 사기쳐서 순진한 우리 언니 꼬시려 든 거 아니야!”
“아하.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네.”
한 방 먹었다. 생각해보니 누리는 듣기는 들었어도 가온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전혀 모를 것이다.
“가온 양이 실은 러시아 원탁 의 길드 소속입니다. 아마도 위장 신분을 알려줬겠죠. 어떻게 알려줬지?”
“...C급입니다.”
“사실은 A급입니다. 그리고 저는 동생분이 들은대로 지휘관이죠. 동생분, 영화같은 일이지만 진실이에요.”
“흥, 내가 믿을 것 같아?! 지휘관이 왜 이런 지옥불반도에 원탁도 안 데리고 혼자 있는데!!”
“정론이네요.”
반박조차 하기 힘든 맞는 말이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지휘관이란, 12원탁이 모두 밀착 경호를 해도 모자랄 만큼 VVVIP다. 누리의 말대로 내가 사기꾼이라는게 더 설득력이 있었다.
“누리 양, 이게 그러니까-”
“증명해봐!”
“예?”
“어디 한 번 나로 증명해보라고!!”
누리는 으르렁거리며 내게 소리쳤다.
“네가 지휘관이라면 분명 무능력자인 나도 각성하겠지? 어디 한 번 증명해보라니까!! 덮쳐보라고!!”
“누, 누리야…?”
“.......”
나는 조용히 누리를 내려다봤다. 바닥에 구속된 그녀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독기 제대로 품었네.’
스스로의 몸으로 지휘관이라는 걸 증명해보라는 건 그녀가 성적으로 발랑까졌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내가 사기꾼일 경우 모든 걸 내려놓을 각오를 마쳤기 때문이다.
자결.
-스스로 이승 하직하기 전에 섹스 한 번은 그래도 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마침 오빠였던 거임.
“...가온. 누리의 구속을 풀어라.”
“네.”
가온은 순순히 내 지시에 따라 구속을 해제했다. 나는 누리에게 손을 뻗었다.
“일어나시죠, 누리 양.”
“흥, 분명 나를 일으켜세우면서 침대에 던지려는 속셈이지?! 누가 모를 줄 알고?”
“그것도 가능하긴 한데, 꼭 섹스가 아니더라도 이능력자 각성 시키는 방법은 많거든요?”
“.
"나니?”
누가 급식 아니랄까봐, 당황하니 본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누리에게 손목을 가리켰다.
“뱀파이어 한 번 허쉴?”
“.......”
누리, 가온. 둘 다 얼굴이 시뻘게졌다.
***
자매간에 잠시 이야기가 필요하다며 나는 샤워실로 쫓겨났다. 어차피 집주인이자 두 자매의 부모는 오늘 들어오지 않는다.
“열심히 사시네.”
두 부부는 존경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다녔다. 그 과정에서 가정에대한 케어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것이 자녀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의 집 가정사에 대해서는 알 바 아니고.’
내가 신경써야 할 것은 두 자매가 내릴 결론.
‘과연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나는 둘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화장실에서 코트를 빨며 시간을 보냈다.
***
“언니 제정신임? 처음보는 남자한테 동생 정조 넘기려고 함? 미쳤음?”
“누, 누리야. 저 분은 지휘관이야. 진짜라고.”
“지휘관이고 나발이고 척 보아하니 한국 여자 따먹으러 온 양키성인데 무슨. 분명 어디 몰래카메라 들고 찍으려는 거임. 그게 아니라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됨.”
“그게 지금 진짜 일어난 일이라니까…. 60억 명 중에 딱 한 사람 있는, 지휘관이셔.”
가온은 누리를 이해시키려고 하고, 누리는 주어진 상황을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저 남자가 지나가다가 언니랑 이야기하는데, 알고보니 지휘관이었다? 그래서 데려와서 나를 이능력자로 각성시키려고 했다?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거임?”
“그, 그건 그러니까.”
“백 번 양보해서 언니가 라고 치자. 그래, A급 김치가 외국에서 활동하면 쌍욕 오지게 먹긴 하겠네. 그러니까 가족한테도 C급이라고 구라쳤다고 치자. 근데 언니가 원탁 길드 소속 히어로인 건 어떻게 안 거임?”
“그, 그렇네?”
“야 김가온 빡통아아아아!!!”
누리는 가온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남의 코트에 술 토할 정도로 마시더니 생각이 있어 없어?! 무슨 생각 하고 살길래 자꾸 그러는 거냐고!”
“나, 나는 너를 생각해서….”
“핑계 좋네. 나를 생각해서. ...나를 생각해서 생판 처음 보는 남자랑 섹스하라고 한 거. 흥, 좋아. 할게.”
누리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신 만약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언니는 평생을 후회하게 될 거야.”
“누, 누리야?”
“김가온, 아까 그 인간 불러와.”
누리는 침대위에 걸터앉았다.
“양키니까 섹스는 존나 잘하겠네. 뭐함? 빨리 데려오지 않고.”
“으, 응!”
잔뜩 주눅이 든 가온은 밖으로 나가려다가 몸을 돌렸다.
“그, 그런데 누리야. 피로도 각성이 가능하다고 하던데…?”
“언제는 섹스하라며?”
“아니, 그래도 처음하면 역시 아프고….”
“와, 대박. 언니 해 본 적 있음? 그건 존경스럽네.”
“......그, 지휘관 님 데려올게?!”
가온은 빛처럼 방에서 빠져나갔다. 누리는 침대 위에 웅크려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나를 위해서라. 흐, 이제와서.”
누리는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짧게 흐느꼈다.
“이제와서 그런 소리하면 어쩌라고…!”
다잡았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리는 왼쪽 손목을 잠시 걷었다가 손등까지 잡아당겼다. 적어도 이것 만큼은 가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흐, 간단하지. 사기 당해서 진짜 지휘관 아니면 원래 계획대로 하고….”
누리는 음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만약에 사기가 아니라면….”
피식. 누리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가정 자체를 지워버렸다. 차라리 로또 1등을에 당첨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였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가온은 쭈뼛거리며 금발의 청년을 안쪽으로 잡아끌었다. 금발서양남은 하얀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방안으로 들어와 누리의 침대 옆에 앉았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피 뽑을까?”
그는 셔츠 단추를 풀며 팔을 걷어올렸다. 탄탄한 근육은 칼로 베어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도 성교육 시간이랑 히어로학 시간에 배울 거 다 배웠음.”
누리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섹스...질내사정해야 제일 효과적인 거 아님? ...아녜요?”
“말투가...흠, 뭐, 좋습니다. 편한대로 하세요. 그런데 대신 그걸로 하면 조건이 있어요.”
“......?”
그는 가온의 팔을 잡아끌었다. 갑자기 침대의 센터를 차지하게 된 가온은 눈을 껌뻑거리기 시작했다.
“어…?”
“누리 양 처음이죠? 그러니까 옆에서 직접 보고 선택하세요. 피를 먹을 지, 아니면 진짜로 할 지.”
“.......”
누리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아주 자연스러운 손길로 가온을 침대에 눕혔다.
“운디네, 명령이다. 동생에게 섹스가 어떤 건지 직접 보여줘라.”
“저, 저기?! 여기서요?!”
“그럼 동생에게는 나랑 섹스시킬려고 했으면서 너는 가만히 있으려고 했냐?”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누리 양, 좀 도와줄래요?”
그는 가온의 팔을 배게 위로 뻗게하며 누리를 향해 싱긋 웃었다.
“얘 손목 좀 잡고있어줄래요?”
“.......”
누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무언가에 홀린듯이 가온의 손목을 잡아 구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