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9화 〉2부 2장 04
3월 1일.
2025년의 서울수복작전이 이루어지는 날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뀌는 날이기도 하다.
이 서울수복작전에 참가하기 위한 최소 스쿼드 인원이 바로 7명이며, 나는 본래 7명의 스쿼드를 전부 히로인으로 구성할 예정이었다.
스타팅 세 명인 이유나, 박라온, 김누리.
4, 거기에 유나의 친구이자 또 한 명의 히로인, 정슈리.
5, 은유하의 X로이드.
그리고 여섯 번째가 바로 석하랑이며, 3월 1일 있을 대전에 있어서 영입만 하면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최강의 패였다.
'2월 전에 영입을 하면 광검이 목을 베러오지.'
아직은 나의 존재에 대해 숨기고 있어야 할 때다. 내 목을 노리는 다크 레기온의 세력은 아직 곳곳에 암약하고 있으며, 그건 광검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석하랑을 영입할 수 없는 것도 아니야.'
누군가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라고.
"템퍼링도 들켜야 템퍼링이지, 들키지 않으면 그저 평범한 영입시도나 마찬가지죠."
하랑은 나를 노려다보며 내 속내를 읽으려했다. S급 특유의, 아니 이제는 SS급으로 성장한 그녀는 마력을 통해 내 진의를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없다. 그 방법은 나에게는, 주인공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저 이름만 달아두시는 겁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로 탈퇴하셔도 됩니다. 만약 저희 측에서 석하랑 님을 두고 노이즈 마케팅을 벌일 경우, 석하랑 님께서 정식으로 고소를 하셔도 좋습니다."
"한국에서 내가 고소를 한다는 의미를 알고 있을까...?"
하랑이 내뿜는 한기가 내 목에 칼날처럼 들이밀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S급이 직접 고소를 하는 거야. 한국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될 걸. 더군다나 당신만 피해를 볼 줄 알아? 당신 주변, 당신 뒷배경에 있는 사람도 피해를 볼 거야."
"그럴 일이 없을 거니까 안심하시길."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해?"
"석하랑 님께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시는 것?"
하랑의 눈썹이 살짝 움찔했다. 정곡이 찔린 셈이었고, 나는 다시 코트에서 알사탕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번에는 블루베리의 색으로 코팅된 사탕이었다.
"만약 석하랑 님께서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셨겠죠?"
"착각하지 마. 당신이 마음에 든 게 아니라,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물건에 관해서 신경을 쓰고 있는 거니까."
사락. 내 곁으로 얼음의 나비가 꽃에 내려앉듯 날개를 접었다. 마력을 이용한 협박이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국의 S급 이능력자인 설화공주가 풍유환이나 사더라. 남자로 치면 탈모 치료제, 발기부전 치료제 같은 걸 사는 거나 마찬가지지. 안 그래?"
"풍성하고 아직은 팔팔해서 필요하지는 않지만...흐흐, 알겠습니다. 예, 그렇다고 하죠."
나비가 늘어났다.
"판매자로서 어찌 3번이나 구매해주신 분의 약점을 잡고 늘어지겠습니까? 하지만 이번에 판매하지 못한 건 진짜로 양해부탁드립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무슨 의미지?"
"풍선도 바람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터지기 마련. 아무리 몸에 좋은 약이라고 한들 계속 복용하다보면 내성이 생기기 마련.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
하랑은 애써 돌려 말한 내 말을 금방 이해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애써 효과를 보셨는데 역효과를 일으킬 수는 없지요."
"...좋아. 그런 거라면 이해할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사락. 하랑의 얼음 나비들이 모두 눈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래도 좀 그런데. 나 고작 세 개밖에 안 먹었던 말이야. 네 개 이후로는 터진다 이거야?"
"아뇨. 다섯 개 부터요."
"......? 그럼 하나 더 팔 수 있잖아."
"푸흐흐."
나는 하랑이 먹어치운 블루베리 크림치즈 케이크를 가리켰다.
"당신이 설화공주로서 살아온 인생의 절반에 대한 대가를 치뤘습니다. 이미."
"......아."
"50억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미 150억 받은 게 있고, 또 세 번이나 구매해주신 분께 서비스로 드리는 거라고 생각하시길."
"나를...놀렸어?"
아주 잘 속아넘어가더라.
"나중에 한 번 확인해보시길. 이 이상은 이걸로는 불가능한 겁니다."
"그, 그럼 아까 그 사탕들은 뭔데?"
"그냥 사탕인데요."
"......."
<영입> <설화공주> 석하랑을 영입했습니다!
# 임시 영입
# 조건 만족시 완전히 스쿼드로 영입됩니다.
* * *
"사장님 주변이 조금 차가운 것 같아요."
"장난치다가 조금 그렇게 됐어. 걱정마. 히어로 협회 빠져나가면 금방 해결될 거니까."
나는 팀원들을 데리고 바로 협회를 빠져나오려고 했다. 석하랑이 정문으로 빠져나가며 시선을 끄는 사이, 우리는 설지영의 안내를 받아 뒷문을 이용해 협회를 빠져나갔다.
"거기, 잠깐."
빠져나가려했다.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에 우리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처음보는 얼굴들인데."
"아, 안녕하십니까."
협회장인 설지영이 허리를 꾸뻑 숙이며 인사했다. 다른 넷도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광검...!"
등산복을 입은 흑발의 중년. 석하랑을 닮은 듯 닮지 않은 그는 실내에도 불구하고 넥워머까지 쓴 채 껄렁한 자세로 누리와 가온을 눈으로 훑었다.
"과연, 네가 새로운 S급인가."
"헐. 대박. 어떻게 아셨음?"
"S급에 오래 있으면 상대의 경지 정도는 눈으로 가늠할 수 있지."
"광검님, 이 분은...."
설지영이 급하게 광검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는 누리를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서울수복작전이 시작되면 나만 피곤해지니. 학생에게는 미안하게 됐지만, 서울수복작전은 참가하지 않는 게 좋아. 거긴 다시 되찾아도 의미가 없거든."
광검은 빈정거리는 말투로 혀를 찼다.
"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짓이지."
"쓸모없다니, 아무리 그래도-"
"하하, 광검 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런 거겠죠."
나는 광검에게 반론을 펼치려는 팀원들을 진정시켰다. 광검의 눈이 그제서야 나를 향했다.
"음? 자네는...?"
"처음뵙겠습니다. 오라클 스튜디오의 한국 지사장 시안이라고 합니다."
명함은 건네지 않았다. 풀네임도 밝히지 않았다. 광검에 대한 기억은 안 좋은 기억밖에 없기에, 굳이 광검에게 조치를 취할 필요을 느끼지 못했다.
'이미 많이 늦은 듯 하고.'
나이들어보이는 걸 극도로 혐오하는 이가 일부러 등산복차림으로 피부를 꽁꽁 감싸고 있다. 분명 심장부 근처부터 피부가 거무틱틱하게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저명하신 광검 님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기다리시게. 자네, 혹시 나와 언제 본 적이 있는가?"
역시 S급, 아니 SS급의 감각은 무시할 수 없다.
"아뇨. 처음뵙습니다."
"그런가...."
광검은 여전히 미섬쩍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광검이 알고 있던 '그 꽃 소년'과 지금의 내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그럼 안녕히."
나는 급히 일행을 데리고 협회를 떠났다.
* * *
"광검 선배님, 혹시 진짜로 아는 사람입니까?"
"아니. 하지만 낯이 익군. ...그런데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광검, 허윤환은 들끓는 심장의 마력을 억누르며 호흡을 정돈했다. 금발의 청년을 볼 때마다 속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감각은 금방이라도 그를 삿된 길로 끌고 가는 것만 같았다.
- 얘, 저 놈을 죽이렴. 언젠가 우리 딸의 처녀를 가져갈 놈이란다.
"개소리."
"...예?"
"저 놈 말일세."
광검은 복도의 스크린에서 일장연설을 펼치고 있는 안경의 남자를 가리켰다. 대중을 상대로 힘찬 연설을 하고 있는 그는 서울의 중요성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저게 다 서울수복작전을 시작하려는 여론 조성이지."
"선배님께서도 서울 수복에는 공감하시지 않으십니까?"
"공감은 하지. 하지만 서울에는...아니, 아닐세."
아무리 협회장이라고 한들 '그것'의 존재를 말할 수 없다. 광검은 말을 삼키며 협회장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런데 지영 양. 아까 그 자가 설화공주와 긴밀하게 1:1로 대화를 나눴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예? 제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자네가 그런 말을 했으니까 묻는 거 아닌가?"
- 거짓말. 석하랑이 결계처서 엿듣지 못한 거 아니니. 헛소리 말렴.
설지영의 얼굴이 혼란스러워진 가운데, 광검은 헛기침을 하며 그녀를 쏘아붙였다.
"혹시...뭔가 저 놈이 설화공주에게 추파를 걸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궁금하시면 직접 물어보지 그러십니까. 마침 저기...."
"......."
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석하랑이 광검과 눈이 마주쳤다. 광검의 손이 아주 살짝 올라갔지만, 석하랑은 광검을 보자마자 바로 몸을 돌렸다.
"......두 분, 진짜 화해 안 하실 겁니까?"
"화해라니. 싸운 적 없네."
"그럼 설화공주께서 왜 광검 선배님을 일방적으로 피하는 거죠?"
"......그럴 이유가 있기 때문이야."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
- 빨리 가서 저 금발양아치 목을 따버리렴. 어서! 저 놈만 죽여버리면 너는 영원히 편안해 질 수 있단다.
광검은 내면에서 속삭이는 악마의 외침을 억누르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 * *
<잠시 뒤, 사무실.>
"사장님, 왜 광검 님에 대해서 불편해하셨어요?"
"석하랑 좀 꼬셔볼까 했는데, 석하랑 아빠를 만났잖아."
"......예?"
"광검이 석하랑 아버지야."
넷은 동시에 행동이 멈췄다. 나는 블루베리와 딸기가 함께 섞인 믹스 요거트를 한 입 떠먹으며 갈증을 해소했다.
"저, 저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복잡한 가정사의 비밀이 있다는 거지. 자세한 건 나중에 석하랑이 우리 스쿼드 팀원으로 들어오고, 본인에게 허락을 받으면 알려줄게."
광검과 석하랑의 관계에 대하여, 둘이 사실은 부녀지간이라는 건 신빈성이 1%도 없는 삼류 찌라시에 불과하다.
"광검 님은 결혼하지 않으셨는데요?!"
"결혼은 안했어. 단지 애를 낳았을 뿐."
"잠깐 위키 좀. ......오빠, 광검이랑 설화공주랑 나이가 거의 딱 20살 차이나는데? 그럼 광검이 20살에 석하랑을 낳았다는 거임?"
"정답. 누리 똑똑하네."
"그...석하랑 님은 12살까지 보육원에서 자라지 않았습니까?"
"광검이 아기 석하랑을 보육원에 버렸어."
"서, 성씨도 다르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자기 성씨나 이름 정도는 붙여서 버리...위탁하지 않을까요?"
"어머니 이름을 따서 지은 거지. 뭐, 그것도 제대로 이어진 게 아니지만."
설야의 루살카.
그녀의 특징을 따서 설하랑(雪河浪)이라는 이름을 붙였건만, 설자의 획이 지문에 지워지는 바람에 석하랑이 되었다.
"더 자세한 건 본인 허락을 받으면 알려줄게."
"...여기서 더 자세한 게 있습니까?"
"나 왠지 광검한테 엄청 실망한 거임."
"아이를...조금 그렇네요. 석하랑 님도...조금 불쌍하고."
"......."
다들 석하랑 못지 않게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지만 나는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그보다 누리, 가온. 너희 히어로 명은 뭘로 받았어? 임시 명명 말이야."
"나? <머메이드>."
"저는 <세이렌> 그대로 받았어요."
누리에게는 진짜 이명이 있지만, 그건 지금 당장 꺼낼만한 이명은 아니었다. 둘 다 C급 히어로로서 임시로 활동하기에는 적절한 이명이었다.
"C급 수속성 이능력자로 뭉쳐놨군. 누리야, 너 이중속성인 거 들키지는 않았고?"
"물론. 그 협회장이라는 언니있잖아, 생각보다 우리 되게 신경 많이 써주던데? 근데 오빠 조심하라고 하더라. 뭔 소리임?"
"어, 음...."
가온은 침묵했다.
"사장님, 혹시 협회장님도 노리거나 그러시지는 않을 거죠?"
"음?"
"미인 분이시니 충분히 가능성은 있습니다."
"어라, 갑자기 내가 나이트메어까지 꼬시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넷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들에게 손으로 X자를 그리며 내 취향을 명백히 밝혔다.
"할머니는 조금 그래."
"......?"
"이능이 회춘이야. 그 분. 나이 65세셔. 신분세탁 하시고 젊게 사시는 분이니까, 앞에서는 절대 노인 대접하거나 하면 안된다, 알았지?"
"......."
넷은 또다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나는 요거트를 마저 먹은 뒤 몸을 일으켰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스튜디오 일을 시작해볼까?"
띵동.
밖에서 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손님이 있나 싶어 나는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그곳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