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9화 〉2부 2장 14
“도플갱어라는 것이 있으면 진짜 100% 똑같을까?”
협회의 취조에서 벗어나 사무실을 돌아온 내가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팀원들은 하나같이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나는 한없이 진지했다.
“왜, 세상에는 자기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세 명인가 존재한다고 하잖아.”
“얼굴이 비슷할 수는 있는 거임.”
“그럼 몸도 똑같을까? 예를 들어서 가온이랑 누리랑 비교하면….”
내 스스로 말을 해놓고 답이 나와버렸다. 둘은 다르다.
“가온이는 물이 많고 누리는 속이 깊지.”
“사장님, 섹스 얘기는 아닐 거라고 믿어요. 그쵸? 저는 수속성이고 누리는 S급이라는 은유죠?”
“아닌 척 섹드립 오졌다. 흐흥, 내가 좀 속이 깊기는 하지. 하해와 같은 넓은 마음씨의 소유자....”
“섹드립이 아니라 몸 얘기 맞는데?”
퍼억. 나는 두 자매에게 동시에 얻어맞았다. 폭력성은 슈리의 전용이나 마찬가지지만, 나는 둘의 솜방망이같은 주먹질을 그냥 몸으로 견뎌냈다.
‘애초에 이능력자 둘이서 무능력자 패면 그게 살인 미수지.’
둘은 고양이가 냥냥펀치를 하는 것 마냥 나를 건드리고 흔들었다. 본인들 스스로도 제 힘을 발휘하면 내가 죽을 걸 알기에, 마음의 표현만 할 뿐이었다.
“가온아, 누리야. 사장님 상대로는 그렇게 괴롭히면 안 돼.”
유나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둘을 말렸다.
“자지를 핥다가 이 세워서 귀두를 긁어야 정신을 차리지.”
“......유나야. 음료는 고마워.”
“천만에요.”
유나는 제 몫의 커피를 들어올리며 싱긋 웃었다. 나는 조용히 딸기라떼를 마시며 다시 화제를 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거야. 쌍둥이라도 다른 게 분명히 있는데,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있을까 하는 문제.”
“X로이드면 그렇지 않겠습니까?”
라온이 핫초코를 들어올리며 답했다.
“연예인이나 유명인, 혹은 히어로. 특정인과 똑같이 모방한 불법개조 X로이드의 경우 외형만큼은 똑같은 형태라고 들었습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99%는 똑같아도 1%가 다르잖아. 가장 은밀한 곳.”
“거기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거기.”
나와 유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나 하는 싸움이 되겠지만, 이기는 건 나다. 먼저 선공을 건 건 유나였다.
“성기.”
“아닌데. 심장인데.”
“지금 저 일부러 놀리려고 그런 거죠?”
“아닌데. 사람마다 고유 마력 패턴이라는 게 괜히 있겠니. 심장안에 있는 코어를 얘기한 건데. 유나는 참 음란한 아이로구나.”
유나는 커피를 마시다가 고개를 풀썩 떨궜다.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은 무언가 할 말은 정말로 많았지만 속으로 분을 삭히는 것처럼 보였다.
“X로이드 같은 경우에는 성기 부분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기는 하지. 하지만 나한테 있어서는 심장이 가장 정확해. 아무리 똑같은 존재라고 하더라도 가슴만 만져보면 누군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거든.”
“그래서 겨울 씨를 만졌다?”
“헛소리 오졌죠. 그냥 만지고 싶은 가슴이었다고 하면 되는 걸. 조퇴하고 집에 간 이유가 다 그거네. 우리 사무원 새로 뽑아야되는 각?”
“고소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고소 문제가 아닙니다. 선의철이 이 일을 알면 바로 사장님을 구속시키려고 할 겁니다. 이 사무실은 압수수색 당할 것이고요.”
아직 퇴근 시간까지 두 시간 정도 남기는 했지만, 유성 매장에서의 소동 이후 선겨울은 바로 퇴근했다. 나 또한 그녀를 따로 붙잡지는 않았다. 그녀의 가슴을 만진 순간, 나의 관심에서 크게 멀어졌으므로.
“......너희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하지 말아줄래? 그럴 일은 없으니까 걱정마. 겨울 씨 내일 나올 거야.”
“사장님 왠지 겨울 씨에 대한 느낌이 조금 사무적으로 바뀐 것 같은데요…?”
“아는 사람이 아니었거든.”
나는 선겨울의 가슴을 만지는 것으로 그녀의 정체를 파악했다. 정확히는 시스템을 통해 그녀의 정보를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짜로 아는 사람인 줄 알고 되게 반가워했는데, 아니었어.”
“사장님이 한국인 중에 아는 사람이 있었어요?”
“정정할게. 눈여겨본 잠재력 뛰어난 사람? 스카우트 대상인 줄 알고 속으로 되게 좋아했거든.”
나는 선겨울의 가슴을 움켜쥐었던 순간, 시스템을 통해 파악한 그녀의 코어가 가진 마력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선겨울, D급 이능력자, 환속성 최대 레벨 30.
아는 가슴이 아니었다. 아는 코어가 아니었다. 아는 마력 재능이 아니었다.
‘천가을은 환속성 A+인데 선겨울은 30 D였어.’
이능력자로서는 딱히 축복받은 재능은 아니었다. 물론 내가 축복을 내려줄 수는 있지만, 천가을을 두고 선겨울을 굳이 나의 것으로 만들 이유는 없었다.
선겨울은 천가을과 다른 존재일 뿐이다. 아마도 DLC 추가 캐릭터인데 천가을과 엄청 비슷한 존재일 뿐인 듯 했다.
“겨울 씨 오면 잘 해줘. 괴인들에게 습격당한 사무실인 만큼, 앞으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야.”
“사장님, 겨울 언니가 스카우트 대상이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마력공급도 안 하시겠네요?”
“그렇지. 굳이 할 필요 없지.”
짝짝짝. 네 여자들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특히 누리와 가온의 반응이 가장 격했다.
“아싸, 찌찌괴인은 적이 아니래!”
“아, 다행인 거임. 그 흉기를 상대로 어떻게 이겨야 하나 되게 고민 많이했었음.”
“......타인의 가슴을 두고 뭐라고 하는 거야, 너희.”
물론 선겨울이 천가을과 가슴이 대동소이하기는 하지만, 가슴괴인이 천가을만 있는 건 아니다. 땅에 사는 뱀이랑 싸움에 미친 비-치라는 진짜 가슴괴인 둘이 언젠가 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남의 가슴가지고 뭐라 하는 거 아니야. 누리야, 내가 언제 네 가슴 가지고 뭐라고 한 적 있니?"
“누구는 타인의 보지를 두고 뭐라고 하는데 우리는 뭐라 하면 안 됨?”
“미안하다.”
나는 다시 딸기라떼를 한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바로 화제를 돌렸다.
“괴인에 대한 정보는 아직 세간에 퍼지지 않았지?”
“네. 그냥 유성 매장에서 그냥 단순 소란 정도로 알려졌어요. 빌런이 난동을 부린 걸로 알려졌구요.”
"다행이다. 그럼 나도 이제 유성쪽에 2천억 갚으러 가야 할 것 같거든. 이번 소동으로 일어난 금전적 손해를 채워줘야해서."
나는 취조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밝혔다.
유성은 나에게 2천억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라는 것, 협회에서는 일정 수준을 지원해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거절한 것, 그리고 괴수대책부에서는 책임을 회피하고 모른 척 한 것.
"역시 유성은 쓰레기입니다."
"라온 언니, 그럴 때는 나라탓하는 게 맞지 않음?"
"헬조선이잖아. 괴'수'대책부지 괴'인'대책부가 아니니까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면서 책임회피하려했다잖아. 이러니까 히어로들이 다 외국으로 짐싸들고 이민가지."
"조금 씁쓸하네요. 제가 공항에서 말씀드렸던 것들이 모두 사실대로 되어버려서."
"괜찮아. 이런 곳인 줄 알고 온 거니까. 그리고 아직 완전히 망한 것도 아니야. 2천억이라는 건 일종의 암시거든. 원래는 손해가 조 단위일 걸?"
"......."
나는 태연자약하게 음료를 마셨지만, 팀원들은 표정이 험악하게 뒤틀렸다.
"......석하랑 찬스!"
"석하랑도 조 단위로 돈은 없을 걸? 막 코어 긁어모으러 다니는 타입은 아니잖아. 분명 지금쯤 방구석에 처박혀서 자기 히어로 위키 수정되는 거나 보면서 실실 쪼개고 있을 거야."
"사장님 예전부터 느낀 건데, 설화공주 님 여가시간에 대해 상당히 박하게 말씀하시네요."
"설화공주 정도면 고급 펜트하우스에서 우아한 생활을 즐기고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침묵했다. S급 히어로에 대한 환상이 깨지지 않도록, 나는 구태여 진실을 한 번 더 말하지 않았다. 이미 나는 한 번 말을 했으니까.
"아무튼 석하랑 찬스는 안 돼. 오라클 찬스도 아니고. 이건 유성의 회장이 나를 부른 셈이거든. 이야기를 하자는 일종의 신호지."
"신호 한 번 스펙타클하게 주네. 역시 갑부는 다르다는 거임?"
"2천억보다도 더 값진 무언가를 내놓으라는 거지. 어차피 회장도 나의 정체를 어느정도 알고 있으니까. 섹스 한 번 하고 오면 될 걸?"
"아."
네 팀원들은 모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나를 동시에 붙잡으며 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남창은 안 돼요!!!"
"......."
차마 유성가 개망나니가 회장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걸 말하면 은유하가 진짜로 적이 될테니.
"......그, 유성가의 사람 한 명을 이능력자로 만들어달라거나 하지 않을까?"
세 명으로부터 유성가 개망나니에 대한 온갖 악평을 들었지만,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당사자가 호출하기만을 기다렸다.
"일단 밥이나 먹자. 그리고 며칠 동안은 우리 감시하려들테니까 다들 행동 조심해. 내일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거야."
나는 해산을 제안했다. 선겨울이 사무실에 들어오는 것에 따라 나의 거처는 가온누리 301호가 되었지만, 나는 급히 개인적으로 따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내일 보자. 오늘은 해산."
"사장님, 어디 나가시려고요?"
"응. 오늘 밤은 밖에서 자야할 것 같거든."
6시 이후, 늦은 밤.
"오늘도 헌팅하러 갈 거야."
아직 나는 7명의 스쿼드 대원을 모두 모으지 못했다.
* * *
<그 시각, 정부청사 관저 집무실.>
"정말 그 금발양아치와 우리 딸 사이에 아무런 일이 없었는가?"
"물론입니다. 제가 몇 번이고 확인한 사안입니다. 그는 오히려 따님을 구하려고 등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문신사는 선겨울의 요청대로 최대한 백청화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로 했다. 여자관계가 다소 문란한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성추행을 당한 본인이 괜찮다고 말을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정말 괜찮은 거지? 막 우리 겨울이 몸 만지고 그런 건 아니겠지?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가는 바로 구속이야."
"......따님께서 그런 것 때문에 자꾸 거리를 두려는 게 아닐까요."
사실은 다른 사람인 걸 정체를 숨기기 위함이지만, 문신사는 선의철의 폭주를 진정시켰다. 선의철이라는 존재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부정'을 보이는 모습이 그저 우스울 따름이었다.
"성인이 되어서 그래. 사춘기를 한 번 더 겪는 셈이지. 쯧. 애비 마음도 모르고."
"......."
과연 선의철은 알고 있을까.
'당신의 실체를 딸이 모두 알고 있다고 해도 그녀의 앞에서 그렇게 인자한 아버지인 척 할 수 있으려나?'
그리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친딸이 사실은 서울의 폐허에서 구한 주운 이능력자 한 명을 자신으로 변신시켜서 신서울에서 활동하게 한다는 것을.
그리고 정작 자신은 딸이 종종 바뀐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것을. 문신사는 목표는 다르지만 같은 난관을 공유하고 있는 동지의 대담함에 절로 씁쓸해졌다.
"각하, 그래서 선겨울 양의 출근을 막을 생각이십니까?"
"심정적으로는 막고 싶네. 하지만 그랬다가는 진짜로 국외로 나갈 녀석이야. 그럼 내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절대 그래선 안 되지. 대신 그...스튜디오인가? 거기에 감시를 좀 더 붙여야겠어. 호국청년단 대원들 몇을 동원하게. 아직 거기 들어가는 것 까지는 실패했지?"
"예. 여성 대원들을 동원했지만 전부 실패했습니다."
"쯧, 알만하군. 하여튼 젊은 것이 발랑 까져가지고. 알겠네. 알려줘서 고맙네."
선의철은 손을 흔들어 문신사를 물렸다. 문신사는 그림자를 열어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아, 잠깐만. 하나만 더 물어보도록 하지. 유성에서 정말로 우리 쪽에 손해배상을 요청하지 않았는가?"
"예."
"흠, 당연히 그래야지. 조만간 기업인의 밤을 열어야겠어. 이번에도 은재민 그 놈이 오겠지?"
"아무래도 회장은 못 올 테니까요."
"흐흐, 그래. 알겠네."
문신사는 그림자속으로 사라졌다. 선의철은 조용히 클래식 음악속에 파묻혀 눈을 감았다.
* * *
"라스푸틴 개새끼."
유성 일가의 저택 가장 안 쪽, 사용인들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방안에서 서류를 흩뿌려놓은 금발의 여인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선의철 개새끼."
그 누구도 듣는 이가 없기에 마음껏 욕을 할 수 있다. 여인은 서류에 가득한 마이너스, 붉은 숫자들에 부글부글 끓는 화를 삭힐 수 없었다.
"지휘관 개씹변태새끼."
사태를 일으킨 가해자, 사태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방관자, 그리고 피해자이자 사태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원인 제공자에 대한 쌍욕을 퍼부으며 여인은 커피를 한 입에 털어넣었다.
"아, 진짜 왜 내 매장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있냐고...."
유성의 진짜 회장, 은유하는 울먹거리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피해는 금방 복구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사용될 재화의 양은 어마무시했다. 대략적인 금전적 계산만 하더라도 손해배상으로 청구한 2천억보다 훨씬 더 높을 정도였다.
"씨, 이거 투자금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뽕을 뽑아낸다."
은유하는 낭창하게 웃고있는 지휘관의 얼굴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지휘관...지휘관...지휘관...."
은유하는 손으로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혹시 기계에도 마력공급이 가능한가?"
은유하는 벽 한 켠에 놓인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인형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