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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643화 (643/1,497)

〈 643화 〉2부 3장 08

굿모닝-

딸칵.

설지영은 모닝콜의 전주를 듣자마자 잠에서 깨어나 알람을 꺼버렸다. 그리고 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6시 30분.

약속된 시간이 무려 30분이나 지난 시점. 설지영은 급히 마도기어에 왔어야 할 그녀의 연락을 살폈다.

"없...어?"

설화공주로부터 온 메세지가 하나도 없다. 늦어도 아침 6시까지는 연락을 주기로 한 석하랑의 메세지가 하나도 없다.

"도대체 위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설지영은 급히 옷을 추스려 방을 나섰다. 자신의 방은 펜트 하우스 바로 아래층 스위트룸.

자신이 협회장임에도 설화공주에게 자신이 쓰던 펜트 하우스를 내어준 건, 설화공주에 대한 배려도 있지만 설화공주가 상대할 지휘관에 대한 격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즉, 이 호텔의 펜트 하우스는 설지영의 방이기도 하다.

"설화공주 님...뭔가 큰일 난 건 아니겠지?"

오늘 날짜는 2월 28일.

당장 내일 3월 1일이면 신서울 곳곳에 흩어져있던 히어로들이 하나로 모여 서울로 진격하게 된다. 그 구심점 역할을 할 석하랑에게 문제가 생긴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게 분명하다.

"......."

삑, 삐비빅.

설지영은 조심스레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마도기어를 통해 등록된 생체 정보로 잠금장치는 빛처럼 해제되었다.

방 안에는 사람의 온기가 가득하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남자 구두와 조금 어긋나있는 여성용 구두는 아직 둘이 방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앗."

혈기 왕성한 20대 남녀.

지휘관과 S급 이능력자.

선남선녀.

"...주책은."

설지영은 머릿속에 떠오른 망상을 바로 접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런 일이 있겠-

뭉클.

신발을 벗고 앞으로 나선 설지영의 발바닥에 무언가 끈적한 물체가 밟혔다.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은 감촉에 설지영은 소름이 돋았다.

"......킁킁."

문을 열고나서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냄새를 맡았다. 코를 찌르는 냄새는 악취는 아니지만 사람을 음란하게 만드는 냄새였다.

"뭐야, 뭐야...?"

왜 자신의 집에 들어가는 것도 이리 무서운 걸까. 설지영은 아침햇살이 드나드는 집임에도 마치 흉가체험을 하는 것 마냥 조심스레 현관 안쪽으로 들어갔다.

"헙."

거실 한 가운데에 놓인 침대 위에는 두 명의 남녀가 새근 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백발의 여인은 금발 청년의 위에 안겨 세상 편안한 얼굴로 낮게 숨을 골라쉬고 있었다.

"세, 세상에...?"

설지영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설마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주변을 살폈다.

바닥에 어지럽게 펼쳐진 두 남녀의 옷. 현관부터 거실, 욕실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펼쳐진 끈적한 흔적들. 아직까지 가라앉이 않은 열락의 기운.

그리고 이불을 덮지 않은 덕분에, 적나라하게 보이는 두 남녀의 연결부위.

"맙소사."

"쉿."

"힉?!"

금발의 청년은 윙크를 하며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설지영은 잠시 놀랐지만 입에 지퍼를 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닥, 타닥.

[한 시간 전에 잠들었어요. 미안해요, 협회장.]

설지영의 마도기어에 백청화의 문자가 닿았다. 그는 눈으로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가리켰다.

[미안한데 조금 덮어주시겠어요?]

끄덕.

설지영은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둘의 위에 덮었다. 워낙 험하게 구겨져 펼쳐지지도 않아, 은밀한 부위만 간신히 가릴 정도였다.

"......꿀꺽."

의도치 않게 설화공주의 은밀한 곳을 보게 된 것도 그렇지만, 감시 중에 몇 번이고 카메라로 봤던 지휘관의 실물을 본 것에 설지영은 군침이 넘어갔다.

'오늘 잠은 다잤다.'

오후 활동을 위해 조금 있다가 쪽잠을 자둬야 하는데. 눈앞에는 자꾸만 단단하게 휘어진 단단한 남근이 떠올랐다.

[식사는 하셨어요?]

도리도리.

[다행이네요. 조금있다가 같이 식사할까요? 하랑이 깨워서 씻기고 내려가면 아마...8시는 되어야 할 겁니다.]

8시? 어째서? 설지영은 머릿속에 망상을 펼쳤다.

햇볕을 받으며 일어난 여인.

'잘잤어?'라고 물으며 머리칼을 쓰다듬는 따스한 손길.

갓 깨어난 고양이처럼 애교를 부리는 여인은 조금 더 이러고 있고 싶다며 보채지만, 남자는 단호한 목소리로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라며 여인을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아침까지 시간이 제법 남았으니 샤워실에서....

주륵.

"아...."

불과 30분 전까지 서울수복작전의 계획을 세우고 석하랑의 연락을 기다리느라 밤을 새웠던 탓일까. 설지영은 A급 히어로 답지 않게, 코에서 코피가 주륵 흘렀다.

"우응...피 냄새...?"

석하랑이 웅얼거리며 눈을 비볐다. 설지영은 하얀 셔츠의 소매가 피로 젖어들어가는 것도 신경쓰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잘 잤나?"

"응, 잘 잤어?"

"누구 자지 끼운 채 자니까 따뜻하네...흐흥."

석하랑은 얼굴을 백청화의 가슴에 비비다가 입술을 내밀었다. 백청화는 난감한 듯 웃으며 석하랑과 입술을 맞췄다.

츄릅, 쯉.

'어우야.'

마치 연인과도 같은, 아니 신혼 부부와도 같은 키스에 설지영은 호흡이 거칠어졌다. 마력으로 진정시키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침부터 딥 키스...!'

"츄릅, 하. 야...내 아다 깬 냄새가 아직까지 진동하는 것 같은데...?"

"이거 네 피냄새 아니다?"

"...? 아, 미안타. 아까 현관에서 하다가 등 겁나 할퀴...."

파밧. 석하랑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애교를 부리며 설육을 탐하며 풀어진 얼굴이 삽시간에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그,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서 들어와보니 그만."

"......."

석하랑은 얼굴을 다시 백청화의 가슴에 묻었다. 미동도 하지 않는 그녀의 전신이 붉게 달아올랐다. 백청화는 석하랑의 등을 토닥이며 옅게 웃었다.

"협회장 님, 죄송합니다. 저희한테 잠깐 시간 좀 주시겠어요?"

"예, 예! 물론이죠. 밖에 나가있겠습니다!"

설지영은 급히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허겁지겁 나오는 통에 신발을 신는 것 조차 잊고 현관 문을 닫아버렸다.

- 이 빙시야!! 들어오는 거 알았으면 말을 했어야지!!

- 하하하, 하랑이 화났다. 화난 하랑이도 귀엽네.

- 내 이제 시집 못 간다! 아이고오오!!

- 어이쿠, 나 말고 다른 새끼한테 시집가려고 했어?

- ...콱 뒤지삐라!

- 어, 잠깐만. 거기서 자지 조이면, 크윽?!

"......하아."

설지영은 한숨을 내쉬며, 현관문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 내 집인데...."

이제 어떻게 자야하는 거지. 설지영의 한숨과는 별개로, 방 안에서 투닥거리는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문이 열리고 두 명의 남녀가 말끔한 차림으로 나온 건 정확히 8시가 된 순간이었다.

* * *

<잠시 뒤. 아래층 스위트 룸.>

"아침 한식이네요? 양식으로 주문하지."

"한국인은 밥심-"

"밥심 아닌 사람이 한 명 있어서."

나는 설지영의 홈서비스에 브런치를 주문했다. 석하랑은 SS+급 히어로가 되었으면서 설지영의 눈치를 보며 시선을 깔았다.

"...설화공주 님,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에 대해 제가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한 겁니다."

"예상하지 못한 일?"

"지휘관 님께서 설마 설화공주께 그...마력공급을 해주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하."

이제 조금 이해가 간다. 석하랑이 왜 이 야밤에 나를 초대했는지도 대충 예상이 갔다.

"서울수복작전에 제 의견을 듣고 싶어서 부른 거네요?"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작전인 만큼 지휘관 님의 고견을-"

"없어!"

나는 당당히,

"그런 거 없습니다!"

그리고 단호히 선언했다.

"서울수복작전에 대한 제 의견은 없습니다. 지휘관이 공식적으로 서울수복작전 국가적 상황에 개입하게 되면, 다른 나라에서도 나 찾아다니느라 난리가 날 걸요?"

수도를 빼앗긴 나라는 한국만 있는 게 아니다. 지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지휘관이 공식적으로 한국을 지원한다고 나선다면, 한국과 세계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 나라를 믿고 공식적으로 나서기에는 여러 가지로 믿음이 안가고. 당장 저를 감시하던 호국청년단만 하더라도 그렇잖아요?"

"알고 계셨습니까?"

"저는 이 세계에서 모르는 게 없죠. 모르는 것 빼고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선의철이 실은 더럽게 무능력한 자란 것도 말이죠."

그리고 선의철은 그 사이에서 적절히 중재할 수 있을만큼 능력자가 아니다. 공포정치와 언론이 그를 상당한 능력자로 만들었을 뿐. 그의 실제 정치력은 음경의 길이와 비례한다.

'정(치)력 대신에 권모술수가 만렙이라서 그렇지.'

딸랑딸랑. 호텔 조식이 도착했다. 우리는 가벼운 방 안에서 가벼운 식사를 나누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제가 서울수복작전에 참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 팀원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또 하나는 얘 때문에."

"나?"

"어. 자기 힘이 넘쳐나는 걸 자랑하고 싶어서 근질거려하는데, 괜히 어디 사고치지 말고 서울에서 터뜨리라고 옆에서 도와주려고 했지."

"...내 그렇게까지 등신 아이다."

하랑은 툴툴거리며 내 옆구리를 찔렀다. 마력이 실리지 않은 걸로 보아 스스로도 어느정도 자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어디 마력을 펑펑 쓰고싶어하잖아?"

"그건...그래. 내 SS급 된 데뷔전으로 적당한 거 아이가?"

서울수복작전에 다시 나선 이유는 SS급으로서의 힘을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참에 내가 서울에 있는 S급 괴수들 때려잡으면 되는기고."

"어...설화공주님...엄청 자연스레 부산 사투리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세요. ...아 씨, 니 땜시 지금 내 이미지 박살났다 아이가!"

"푸흐흐."

취미생활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히어로 은퇴를 해야할 지도 모를텐데. 나는 내 몫의 딸기 케이크를 한 조각 퍼먹었다.

"흠흠. 각성한 히어로들 사인 중 제일 많은 게 자기 등급 올라갔을 때 괜히 깝치다가 죽는 것 아니겠어요? 지휘관 된 자로서 설화공주 님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죠."

"그건 철회해주시죠. 설화공주 님은 이 나라의 유이한 S급 히어로, 이제는 SS급이 되신 분입니다. 아무리 지휘관 님이라고 한들...."

"그런 미래를 보았기에 이렇게 한 거 아니겠습니까?"

"......진짜?"

석하랑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했다.

"오라클이 그카드나?"

"그래. 물론 일어날 수도 있는 가능성의 세계지만."

가령 촉수꺼비에게 잡혀 촉수 능욕을 당한다거나, 그로 인해 정신붕괴가 이루어져 광검이 폭주한다거나. 그런 배드 엔딩은 다소 비일비재하다.

'사망 플래그가 아주 넘쳐흐르지.'

대 펜릴전 이전 배드 엔딩의 7할이 서울수복작전에 몰려있다. 그 중에는 석하랑의 경우도 포함되어 있다.

"내 주변 애들이야 내가 챙기면 되지만, 너는 조금 미묘하잖아. 평범한 스튜디오 외국인이 설화공주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웃기고."

"그건 그렇네."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거야. 막말로 내일 서울에 자리를 잡고 괴수 토벌 작업을 펼치려고 하는 순간 차원문이 생길 수도 있는 거지."

"차원문이 열립니까?!"

"...이건 예시입니다, 예시."

격하게 반응하는 설지영을 진정시켰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랑이는 미리 좀 챙기려고 했죠. 설마 야밤에 이렇게 불러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저기, 저 진짜로 궁금한 것 하나 있습니다."

"뭔데요?"

"두 분은...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십니까?"

설지영의 물음에는 정말 많은 질문이 내포되어 있었다. 석하랑은 신이 나 입을 열려고 했고, 나는 바로 그녀의 허벅지를 잡았다.

"아하하, 천생연분같죠? 저도 처음입니다. 이런 분은. 반나절 만에 함락당한 기분이에요."

"......."

"나이도 똑같고, 속궁합도 좋고. 뭣보다도 예쁘고. 한국의 유일한 SS+급 이능력자와 사이좋게 지내는 게 뭐가 나쁘겠습니까? 아...조금 허물없게 대하는 거에 불편하셨나요? 이해해주시길."

나는 하랑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볼에 키스했다.

"원래 섹스하고나면 허물없이 지내는게 제 신조라서."

"그, 그렇군요."

설지영이 고개를 숙인 사이, 석하랑은 내게 눈총을 주며 나를 추궁했다. 왜 나의 과거를 숨기려고 하는 지에 대해서 묻는 듯 했다.

'나중에 모두 알려줄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안 그래도 누군가 눈치를 챌까봐 아슬아슬한데, 설지영까지 있으면 내 목숨이 위험하다.

'나, 내가 백청화인 거 들키면 광검한테 살해당한다?'

석하랑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 * *

"다회차 플레이를 통해 알게된 지식으로 히로인을 공략했을 때, 히로인 공략 자체는 쉽더라도 그만큼 문제가 생기도록 되어있습니다."

"백밍아웃으로 석하랑도, 백희아도, 그리고 몇몇 다른 히로인도 공략하기 쉬워지지만...그만큼 어려움이 늘어나는 거죠."

"석하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소꿉친구 치트로 공략은 했지만, 그 대신 그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누군가의 위협은 그만큼 더 많이 받게 되는 거죠."

"아버지로서 쓰레기같든 어떻든...딸내미 첫키스 빼앗아 간 놈팽이를 가만히 살려둘 사람일까요?"

"처녀까지 가져가고, 평생의 반려도 아니고 까딱 잘못하다가는 첩실 하게 생겼는데?"

"그렇습니다. 광검 죽기 전에 석하랑을 공략하는 순간, 그 날 부터 광검에게 살해당하는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지휘관이요? 안에 다크 레기온 간부의 힘이 깃들어있는데? 광검 죽기 전에는 광검이 설야의 루살카나 마찬가지입니다."

"뭐...그런데 솔직히."

"여친 아빠한테 다 들키도록 데이트하는 허접이 어디있겠습니까? 쉬운 방법 알려드릴게요. 흠흠."

"광검 레벨 97이니까, 큥큥없이 마력공급 어떻게든 해서 석하랑 레벨 98 찍으세요. 그러면 석하랑 결계치고 섹스하면 안 들킵니다."

약해져서 그나마 97이지, 전성기 시절이었으면 99레벨이라 석하랑 건드릴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걸로 석하랑 공략은 끝났습니다."

뭐 이렇게 쉽게 끝냐냐고 한다면, 대답은 하나.

"정령이니까."

사랑에 빠진 정령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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