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8화 〉2부 3장 23
시청사의 뱀(S+).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SS급 <대권잠룡>이라는 이름으로 진화하는 이 괴수는 여의도의 촉수꺼비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괴수가 된 케이스다.
히로인의 가족이나 지인, 관계자가 괴인이나 괴수가 되는 케이스는 아주 많다. 석하랑 루트에 광검 허윤환이 보스라 나오는 것처럼, 정치인 히로인인 백희아도 그런 존재가 하나 있다.
"바로 시청사의 뱀, 그러니까 백희아 아버지죠."
친부는 아니지만 호적상으로는 백희아의 아버지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주인공 백청화의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S+급 괴수에 불과합니다."
한 번 괴수가 된 존재는 다시 인간으로 되돌릴 수 없다. 간부들을 이용하면 코어를 수거해 괴인으로 만들면 되지만, 괴인으로 다시 살려봐야 최종전에서는 성주의 영향으로 배신하는 적이 되어버린다.
최종전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괴인 동료.
플레이 도중에 얻을 기회가 마땅찮은, 각 국가에 두 개 정도 확보 가능한 S급 코어.
시청사의 뱀을 동료로 맞이한다고 해도 백희아 공략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니, 그냥 코어로 써먹는 게 플레이어로서는 훨씬 이득이다.
"그리고 S급 코어만으로 만족할 수 없죠. 부하 괴수들 넘쳐나잖아요?"
시청사의 뱀이 낳은 22,222마리의 괴수, <자지무기>.
"좆바리, 사면바리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는 하는데, 공식 명칭은 <자지무기>입니다. 전부 수컷이죠."
귀두 머리에 아래에 지네다리처럼 덜렁거리는 촉수는 누가봐도 인간을-특히 여성을 능욕하기 위해 만들어진 괴수로, 배드 엔딩에서 단골로 등장하여 히로인과 동료들을 능욕하는 악질이다. 이는 서울수복작전 뿐만 아니라, 시청사의 뱀을 공략하기 전까지 계속 이어진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최소 C급부터 크게는 A급까지, 사실상 서울 탈환 전까지 주인공 팀의 코어 수급을 도와주는 귀한 존재라고 할 수 있죠. 시청사의 뱀이 이북에서 넘어오는 괴수들을 잡아먹어서, 그 코어로 알을 낳아 자지무기로 만드는 셈이니."
중간 유통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38선을 넘어오는 괴수들 대부분이 시청사의 뱀에게 먹혀 자지무기의 양분이 되었다. 그러니 D급 괴수들도 알아서 C급으로 합성되는 셈이었다.
"최대 22,222마리. 왜 2밖에 없냐면, 2등할 사람이라서 그렇습니다."
대권잠룡이 왜 잠룡이겠는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잠룡으로 끝나는 존재다. 루트에 따라서는 종신 대통령 자리에도 오르는 한 남자-또는 한 여자-가 1순위로 살아있기에, 시청사의 뱀은 영원히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
"이건 선꼬삼이랑 같은 맥락입니다."
괴수로서 죽어야만 하는 존재. 그렇기에 죽여서 코어를 팔아 우리 팀에서 사용할 푹신한 침대 매트리스로 바꿔먹는 편이 훨씬 낫다.
"히로인들에게 점수 딸 절호의 찬스죠."
누군가에게는 화려하게 활약할 기회를.
누군가에게는 2만 개가 넘는 막대한 코어를.
누군가에게는 서울수복작전의 실패를.
"모든 것은 큥큥을 위해서."
* * *
<그 시각, 강남 상공.>
"징글징글하네. 생긴 거 좆같이 생겼다 카더니 진짜 좆같네."
석하랑은 이를 갈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남산 타워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시청사의 뱀은 겉으로 보기에는 금방이라도 브레스를 쏠 기세였지만, 시청사의 뱀은 간만 볼 뿐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짜식, 내가 지보다 한 수 위라는 거 알고 있나보네."
SS급. 백청화의 힘, <지휘관>의 힘으로 강해진 석하랑은 완벽한 존재가 되었다. 전 세계에 10명도 채 되지 않는 SS급에 올랐다는 것에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언젠가 있을 '약속의 날'을 위해 힘을 숨겨야 하는 것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게 바로 힘숨찐인가?"
이미 마력은 SS급으로 올라 인류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S+인척 해야하는 것도 고달프다. 지금도 마력을 딱 S+급, 자신이 12년도 넘게 머물러있던 단계만큼 주변에 퍼뜨리고 있느라 진이 빠졌다.
"아, 궁극기 마렵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을 억누르느라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끓어넘치는 사방으로 퍼뜨리고 싶었다. 눈앞에 자신을 향해 음란한 시선을 보내는 저 역겨운 괴수를 남산타워 통째로 얼려버려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안 되지, 안 돼. 참아야지."
히어로는 지휘관의 지시를 따라야한다. 그리고 그는 지휘관으로서, 설화공주가 자신의 지시대로 완벽하게 이행하면 큰 포상을 내리기로 했다. 무슨 포상인지는 대충 감이 왔지만, 석하랑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을 침과 함께 넘긴 채 마력을 끌어올렸다.
"시간 됐네."
시청사의 뱀과 대치하라.
그리고 모든 좆바리들이 한강을 넘어오는 순간, 마치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처럼 모든 마력(S+)을 끌어내라.
"...흠흠."
석하랑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완벽한 연기를 위해서, 그녀는 절박하고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마도기어를 두드렸다.
"본부, 응답바랍니다."
[설화공주! 뭔가 방법은 없소?! 지금 이러다 괴수들이 신서울까지 내려오겠소!]
신서울 지하 셸터에 있던 이들 중 하나가 급박한 얼굴로 소리쳤다. 당장 좆바리들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히어로들도 있었으나, 신서울로 남하한다는 것을 더 신경쓰는 관료의 말에 석하랑은 속이 뒤틀렸다.
"방법 있습니다. 대신, 저도 이거 쓰고 나면 리타이어입니다. 더이상 나아가지는 못 해요."
[작전이...실패한단 말인가?]
"이런 대규모의 괴수들이 서울에 있다는 건 몰랐으니까요. 작전상 후퇴입니다."
[......어쩔 수 없지. 해주시게.]
선의철의 침울한 목소리가 들리자 석하랑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신이 독단으로 먼저 기술을 사용했으면, 분명 그는 이기는 줄 알고 히어로들을 퇴각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협회에 연락해서 후퇴 지시를.]
[예. 그, 근데 지금 좀 늦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일단 지시를 내렸네.]
"......흠."
석하랑은 몰래 마도기어의 <미니맵>을 살폈다. 백청화가 준 서울의 3D 지도에는 이미 히어로들이 열심히 퇴각하고 있었지만, 협회가 정부측에 제공하는 마력 레이더에는 아직까지도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싸우기는 싸우고 있다. 호국청년단의 히어로들이. 백청화는 전부다 빌런에 준하는 놈들이니 이 기회에 치워버리자고 정했지만, 석하랑은 그래도 차마 괴수들에게 뜯어먹혀 죽는 건 바라지 않았다.
- 으, 아아악!! 드, 등에 뭔가 닿았어! 들어온다, 으아악!!
...적어도 좆바리들에게 뒤가 범해진 채 잡아먹히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인 건 알지만, 석하랑 안에 남은 일말의 양심이 그들을 외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 내 다 구해도 되나?
석하랑은 판단을 떠넘겼다. 예전같았으면 그냥 저질러버렸을테지만, 이미 석하랑의 판단 기준에는 양심과 정의감이라는 척도에 더불어 하나가 더 생겨버렸다. 언제든지 마력을 방출할 준비를 하며, 석하랑은 백청화의 연락을 기다렸다.
삐빅.
연락이 도착했다. 석하랑은 절로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 하랑이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해도 돼. 이왕 할거라면 철저하게.
"...흐흥."
[설화공주님?]
"시작합니다."
표정을 굳힌 석하랑은 하늘 높이 손을 들어올렸다.
"우선, 서울을 봉쇄하겠습니다."
석하랑이 손을 하늘높이 들어올리며 얼음 날개가 넓게 펼쳐진 순간.
구구구구-----
한강의 강물 전체가 하늘로 솟구치며, 수십 미터에 달하는 얼음 방벽을 만들어냈다. 두께만 거의 수 미터에 이르는 얼음방벽 너머, 시청사의 뱀은 몹시 당황한 듯 괴성을 질렀다.
캬아아아!!
시청사의 뱀이 방벽을 향해 브레스를 쏘았으나, 방벽은 굳건했다.
[우오오오!!]
[역시 설화공주! 믿고 있었습니다!]
[이런 힘이라면...!]
"본부, 그리고 협회에 연락."
석하랑의 얼음날개가 갑자기 파사삭 사그라들었다.
"......설화공주, 리타이어."
석하랑은 아래로 떨어졌다.
* * *
<새벽 4시, 판교 서울수복작전 참가 히어로 임시 캠프.>
"이야, <나이트메어>님. 인기가 엄청난데요? 땅에 떨어지는 설화공주를 말그대로 공주님 안기로 구하는 거 멋졌습니다."
[덕분에 불필요한 문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지휘관 님.]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설지영은 죽어가는 얼굴로 내게 애원했다.
[부모님이 제게 안부 문자 넣으면서 뭐라고 하신 지 아십니까? 저보고 설화공주랑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냐고 하십니다.]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런 쪽 아닙니다.]
"그래요? 하긴, 일반인 남친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랑 엮이는 건 좀 그렇긴 하죠?"
설지영은 표정이 굳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일반인 회사원과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걸 내가 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계신 겁니까?]
"모르는 것 빼고 전부 다. 그러니까 저한테 빨리 전황 정리해서 보내주시길. 히어로들 중에 누가 실종됐고, 누가 못 돌아왔고, 누가 얼마나 다쳤고, 그리고 체포한 빌런들 누구누구 있는지."
나는 구로의 상황만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기에, 서울 전반의 상황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협회장인 설지영이 데이터를 간간히 보내줬다고 해도, 좆바리들이 득실거린 순간부터는 곳곳에서 상황이 급변하느라 데이터를 받기 몹시 곤란했다.
[알겠습니다. 모두 정리해서 15분 내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 이에 대한 건 비밀로....]
"좋은 사람이에요. 당신 나이트메어인 거 모른 척 해준다고 고생하고 있거든요. 지금도 밤잠 설치면서 안절부절하고 있을테니까, 아침에 슬쩍 문자 보내봐요."
나는 설지영과의 연락을 끊었다. 스포일러에 충격을 받은 사람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알게 모르게 쾌감을 느꼈다.
"장난이 짖궂으시네요, 고객님."
"그 남자 못 잡으면 40넘을 때까지 결혼 못할테니까."
"...그건 불쌍하니까 흘려듣고 넘어갈게요. 그래서 고객님, 이게 당신이 바란 '교착 상태'인가요?"
"그런 셈이지."
서울은 한강을 경계로 둘로 나뉘었다. 석하랑이 전력(S+)으로 사용한 힘으로 만들어진 얼음방벽은 한강을 따라 정확히 서울을 반으로 갈라버렸고, 시청사의 뱀이 부리는 좆바리들은 고립되어버렸다.
"서울을 벗어나지 못 해. 아무리 괴수들이라도 그 정도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 둥지인 종로로 돌아가려면 수십 미터에 이르는 얼음방벽을 타넘어야하는데 과연 그게 쉬울까?"
이미 몇몇 좆바리들은 얼음방벽을 클라이밍하듯 기어올랐다. 하지만 절반도 채 넘어가지 못한 채 벽면에 달라붙은 부분이 얼어붙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설화공주가 쓸 수 있는 모든 마력을 때려넣어서 만든 절대방벽이야. SS급의 기술이 아니면 결코 무너지지 않을 힘이지."
"안 그래도 지금 난리에요. 설화공주 혹시 SS급 된 거 아니냐고."
"기술 하나 쓰고 마력탈진으로 기절했잖아? SS급이면 저런 거 쓰고 쌩쌩하게 날아다녀야지."
아직은 때가 아니다. 우리는 석하랑이 SS급인 걸 숨기기 위해 석하랑에게 연기를 주문했다. 마치 한강의 방벽을 만드는데 모든 힘을 쏟아낸 석하랑은 기력이 다해 쓰러졌다는 것처럼.
"그러면 이제 선택지는 두 가지야. 하나는 한강 남쪽에서 자리를 잡는 것. 이게 우리에게 있어서는 최고지."
"강서부터 강동까지 사냥터가 만들어진 셈이군요."
"그래. 코어 2만 개를 아주 느긋하게 수확할 수 있는 밭이 만들어진 셈이야. 외국에서 숟가락 얹으려고 하면 누가 앞장서서 지랄하겠지?"
"그거 하나는 선의철 특기죠. ...후후, 코어 2만 개를 모두 유성에서 유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유하는 지나가는 소리로 애널을 대주겠다고 말할 정도로 꿈에 부풀어있었다.
"그럼 이제 고객님은 뭘 하실 거죠? 지밍아웃?"
"아니. 그런 걸 왜 해? 나 지금 엄청 바쁜 몸이야."
"왜 바쁘세요? 아, 혹시 구한 사람들 중에 팀원으로 영입할 사람이 있어요?"
"그런 셈이지. 근데 그거 말고도 지금 되게 바빠. 한강 남쪽에 고립된 좆바리들은 히어로님들이 알아서 처리하게 내버려두고, 여기서 밍기적 거릴 게 아니라 당장 신서울로 돌아가야 하거든."
"네? 왜요? 여기 지금 할 일 엄청 많은데요?"
"그야...."
나는 엄지를 검지와 중지 사이로 푹푹 찔렀다. 저 멀리, 배틀 슈트를 반납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세 명의 여인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이제 내가 할 일 다 끝났으니까, 4P해야지?"
"......."
"미안! 내 좆이 좀 바빠서."
4P는 중대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