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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677화 (677/1,497)

〈 677화 〉2부 4장 05

<오후 9시, 여수 유성호텔 앞 모래사장.>

“여수 밤바다 참 고요하고 좋네.”

파도소리가 고요하다. 나는 일행을 숙소에 밀어넣은 뒤, 잠시 대화를 위해 혼자 모래사장을 걸었다.

“그래서 다녀오니까 어떤 기분이냐, 김펜릴아.”

“복잡미묘.”

내 옆에 나와 함께 모래사장을 걷는 녹색-미소녀, 김펜릴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 앞을 먼저 거닐었다.

“너, 알고 있는 거냥?”

“이거라면.”

나는 엄지로 내 심장을 가리켰다. 김펜릴은 본인의 말대로 복잡미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알고 있는 너도 이상하고, 그걸 심어두고 그 짓을 하는 그 년도 이상하다냥.”

“그건 인정해.”

지휘관의 심장에 언제든지 터뜨릴 수 있는 폭탄을 심어두고, 그걸 통해 지휘관과 다른 히로인의 정사를 관음하며 자위하는 사람을 두고 이상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귀엽잖아? 내가 여자랑 섹스를 많이 하면 할수록, 그만큼 내 목숨이 늘어난다는 얘기니까.”

“그래. 그 년을 만족시켜주는 만큼 목숨이 늘어나겠지. 그런데….”

콰득. 김펜릴은 내 앞으로 뛰어올라, 갑자기 배를 다리로 휘감아 잡으며 내 멱살을 붙잡았다.

“이 몸이랑 섹스한 걸 그 년은 왜 느꼈냔 말이냥!!”

“푸흐흐, 당연히 알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간부랑 섹스를 한 건데.”

아마 김펜릴이랑 떡친 순간, 유두도 서지 않고 발정했을 게 분명하다.

‘간부 피닉스가 여성 간부진에 혹하지 않는다? 말도 안 되지.’

다른 이들의 눈치 때문에 그림의 떡으로만 생각하던 간부를 나를 통해 간접적으로 따먹었으니, 탭탠스를 추며 열심히 해피타임을 즐겼을 것이다.

“펜릴아. 네가 나랑 섹스를 했으니 P가 눈감아 준 거야. 네 배신. 안 그랬으면 씨알도 안 먹혔을 걸?”

“...설마?”

“그래. 네가 배신해서 내 곁에 있어야, 걔도 나를 통해 너랑 섹스하는 감각을 느낄 거 아니야.”

“......그냥 미친 년 수준이 아니었다냥.”

그렇다.

간부 피닉스는 내가 펜릴과 계속 섹스를 이어나가려고 마음먹은 순간, 펜릴의 배신을 용인했다. 그건 이후에 이어질 아지다하카, 히드라, 카르나, 혼돈환룡, 그리고 루살카까지 모두 마찬가지.

“나는 그러니까 일종의 원격자지 같은 거야.”

“너는 그걸로 만족하냥?”

“만족 안 하면? 당장 심장이 터져서 게임오버 될텐데, 만족해야지? 어차피 내가 하는 섹스는 모두가 보고 있어서 딱히 불만은 없어.”

지휘관의 섹스를 관음하는 사람의 수만 최소 27명이 넘는다. 나중에는 지휘관의 섹스 영상이 유출되는 이벤트도 있는 만큼, 이 세계는 성행위를 부끄러워하면 지는 세계다.

“내가 어디 꿀리는 것도 아니고.”

“자신감 한 번 넘치는 건 정말 존경스럽다냥.”

“그치? 내 자존감도 불끈불끈 거리고 있어서 말이야.”

김펜릴은 킬킬 웃으며 내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겨 마력을 발산했다.

사아아.

녹색의 바람이 모래사장을 고요하게 만들었다. 펜릴은 주변에 결계를 치고 나를 지긋이 노려봤다.

“음…. 솔직히 말하라냥. 지금 하면 그 년한테 넘어가냥?”

“응. 같은 99렙이잖아. 100레벨 아니면 결계는 소용이 없어.”

피닉스의 감시에서 벗어나고자한다면 최소한 100, SSS급은 달아야 외부의 관음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둘 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신급은 되어야 인간들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래도 최소한 레벨이 높아질수록 그만큼 볼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든다는 거에 만족해야하지 않을까?”

“여기서 하면 보는 사람은 누구누구 있는데?”

“여기.”

나는 다시 엄지로 내 심장을 가리켰다. 펜릴은 발로 모래를 걷어차며 대놓고 짜증을 부렸다.

“나 너랑 섹스 안 해!”

“그 말 언제까지 가나 보자고.”

“흥! 세상에 자지는 많아!”

“나만큼 잘하는 자지가 없지.”

얼굴을 울그락불그락 밝히던 펜릴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말 한 마디 지지 않고 맞받아 친 것에 열받았다기보다는, 자신이 앙앙거리는 걸 피닉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발정기까지 버티면 되겠군.”

김펜릴과의 보스전은 그녀의 발정기와 관계가 되어있다. 그 증거로 여수 밤바다의 바다내음 사이, 상쾌한 민트초코향이 내 코를 살포시 간질였다.

“아 참, 김펜릴아. 참고로 나 자는 동안에는 저쪽으로 안 넘어갈 지도 모른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미리 유나에게 마력공급을 해두지 않았다면 큥손실이 일어날 뻔 했다.

***

<다음 날, 오전 9시 여수 A플래닛 근처>.

“다들 잘 잤어?”

나는 새로운 복장으로 갈아입고 온 넷을 바라보며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흰색 바탕에 짙은 청색의 무늬가 들어간 색조의 복장은 당장이라도 베네치아에서 노를 저어야 할 것만 같은 코스튬이었다.

“가온이는 약간 걸스카우트 같아.”

“저한테는 이게 반바지인 걸요.”

<세이렌> 김가온은 셔츠에 핫팬츠를 입었지만, 워낙 키가 작아서 핫팬츠가 반바지처럼 보였다. 머리칼을 한 줄로 땋아놓으니 보이쉬한 느낌까지 날 정도였다.

“으, 으으, 으으….”

그에 비해 원체 다리가 긴 라온은 핫팬츠가 핫팬츠 수준이 아니라, 거의 짧은 속옷에 준할 정도로 면적이 좁았다. 원래부터 모델 체형인데다가 핫팬츠 아래로 드러난 탐스러운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옳게된 마린 룩이란 이런 거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유나야?”

“저 핫팬츠 입히고 싶으셨어요?”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유나는 푸른색 깃의 와이셔츠에 넥타이, 그리고 미니스커트에 흰스타킹이라는 조합의 선원복을 입고 있었다.

“억울합니다. 아무리 여보라도 그렇지, 유나만 특별하게 치마를 입히는 건 차별입니다.”

“사장님이 저한테 치마 입힌 거 아녜요, 언니. 제가 선택했어요?”

“......?”

“지난 번에 사장님 음흉하게 웃으면서 고를 때, 내기에서 이겨서 제가 선택할 수 있게 됐거든요. 후후.”

내가 다른 이들의 마린룩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펠라를 하던 유나에게 그만 들키고 말았다. 10분 안에 펠라로 싸게 만들겠다는 유나와의 내기에서 나는 패배하고 말았고, 결국 유나에게 치마와 핫팬츠의 선택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아랫입으로 빠는 것도 펠라라나 뭐라나.’

역시 유나는 여신. 핫팬츠는 핫팬츠대로 좋지만, 치마를 입고 있으니 선원복인 세일러복이 마치 비슷한 다른 복장을 연상케했다. 각도에 따라서는 미니스커트 아래가 보일 것 같았지만, 치마 아래의 팬티는 결코 보일 일이 없었다.

“짜잔. 가터벨트에요. 어때요?”

“원정 준비가 끝났습니다, 사장님.”

유나의 가터벨트 자랑에 말을 끊으며 등장한 하유은은 홀로 검은 정장 차림으로 우리의 마도기어에 데이터를 옮겼다. 내가 미리 주문한대로 이미 사냥터 주변은 철저히 봉쇄되어 있었다.

“뭐예요, 지금 저 자랑하고 있는데.”

“야한 속옷은 나중에 침대에서 자랑하시고, 지금은 전투에 집중해주십시오.”

하유은의 일침에 유나는 입술을 뻐끔거리며 불만을 드러냈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X로이드에 의해 봉쇄된 A플래닛은 남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꿀던전'이기 때문. 유하는 내게 작게 속삭였다.

"전투가 길어지면 X로이드에 의한 봉쇄도 들키게 될 지 모릅니다. 레이더의 괴수 반응을 방해전파로 속인다고 해도, 히어로들의 감은 속일 수 없어요."

"걱정마. 금방 끝낼테니까."

B급 괴수를 잡은 실적은 내야하지만, 우리가 B급 괴수를 사냥하는 동안 다른 놈들이 와서 소위 막타를 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여수 근처에 있는 길드만 해도 다섯 개가 넘어.'

특히 지금 실적을 내기 위해 안달이 난 길드가 수두룩하기에, 신서울에서 다소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없는 이 여수 땅에서는 더욱 각별히 조심해야한다.

"그럼 슬슬 사냥하러 가자. 세이렌, 앞장서."

"예. 그럼 모두 여기 안으로 들어와주세요."

세이렌은 마력을 펼쳐 물방울을 만들어냈다. 나와 유나, 라온과 유하는 물방울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투명공 안에 들어가 굴리는 것처럼, 물방울은 우리의 걸음에 맞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사장님, 그래서 저희 어디로 들어가는 거예요?"

"저기."

나는 A플래닛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리켰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시설이 많이 망가지고 황폐화 된 아쿠아리움은 모종의 이유로 버려진 지 몇 년이 지난 유령시설이었다.

"전국에 있는 시설들 대부분이 다 버려진 경우가 일쑤이지만, 이렇게 관리가 안 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관람객이 없으니까 그런 거 아닌가요?"

"그래. 돈이 안 되니까 사업을 접는 거지."

비록 계열사는 아니지만 사업을 접는데 일조한 장본인이 옆에 있다. 본인은 사업을 접은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아하고 있지만, 그로인해 벌어진 여러가지 문제는 분명히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사업을 접으면 이제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실직하게 되겠지? 라온아, 네가 보기에는 어때?"

"직업을 잃은 이들이 하나같이 다들 코어가공공장에 들어가거나 다른 일을 찾아야했습니다. 제가 그래서 유성을 몹시 좋아하지 않습니다."

택배 상하차, 막노동 현장, 인형탈 알바, 공항 경비 등 사회의 온갖 장소에서 중노동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온 라온은 가는 곳마다 줄줄이 도산하거나 회사가 망했다. 유하가 이런 저런 사업을 정리하면서 생긴 여파로, 라온의 고생에는 유하가 어느정도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적응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건 이미 많은 걸 가지고 있는 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사장님, X로이드 치고는 제법 감정이 풍부한 것 같습니다?"

"안에 사람이 들어서 그래. 푸흐흐."

라온은 식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극성 유성포비아의 비판은 직접 듣게된 X로이드는 착잡한 금빛 안광을 뿌리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와...좀 심하네요."

"다 폐사한 거지."

가온의 물방울이 없었다면 아마 악취로 누구 하나는 구토했을 것이다. 오랜 기간 버려진 A플래닛 안의 수족관 안에는 하나같이 폐사한 물고기들로 가득했다. 순환장치가 고장난 물은 고일대로 고여 악취가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야할 곳은 저기야."

나는 통로 안쪽의 터널을 가리켰다. 유리로 이루어진 터널은 상하좌우로 돌아다니는 물고기를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지금은 어떤 불빛도 켜지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운 상태였다.

바닥에 있는 형광색 비상통로 표시만이 색이 바랜 상태로 반짝일 뿐이었다. 나는 코트 안에서 총을 뽑아들었다.

"그럼 싸울 준비 해야지."

"예? 괴수 반응은 없는데요?"

"밀폐된 공간 안에 갇혀있어서 레이더에는 반응이 없는 거야. 지금 바로 옆에서 우리들 보고 있으면서 입맛 다시고 있을 걸?"

아쿠아리움에는 온갖 해양생물들이 있고, 당연히 해양생물들은 먹이가 필요하다. 인간에 의한 식량 공급이 끝난 이상, 수족관 안의 물고기들에게는 단 하나의 선택지밖에 남지 않는다.

서로 잡아먹기.

수 백, 수 천 마리 물고기 중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물고기가 있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괴수라고 봐도 무방한 놈이었다.

"가온아. 준비는 다 됐지?"

"예. 절대 뚫리지 않아요."

나는 마지막으로 물방울의 상태를 확인한 뒤, 수족관 안으로 들어가는 비상통로의 문을 열었다. 안에는 부패한 물고기들의 사체들이 물 위에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고, 하나같이 뜯어먹힌 흔적이 역력했다.

"웁...."

"익숙해져야해. 서울의 좆바리들처럼 생긴 놈들도 있지만, 이렇게 보기만해도 역겨운 놈들도 있거든."

오키나와 일대에 숨어있는 S급 괴수, 모비딕 안에 숨어있는 <아니사키스>처럼 사람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괴수는 한 둘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서 상대해야 할 B급 괴수 또한 마찬가지.

스스스스.

물이 벌써부터 첨벙거리기 시작한다. 우리의 진입을 눈치챈 괴수가 움직이는 여파로 물이 찰랑거리기 시작했다.

풍덩!

우리는 물방울과 함께 물속으로 진입했다. 부패한 물고기 사체들 사이에, 저 멀리서 무언가가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팀원들은 모두 무기를 꺼내 전투 준비에 나섰다.

"유나야. 라이트 비추기 전에 하나 알려줄게. 보통 이 세계의 괴수들은 말이야, 하나같이 외설적이기 짝이 없거든?"

"...이상한 소리 하시는 건 아니죠?"

"이상한 소리가 아니라 현실이야. 어떤 악의 때문에, 이런 수족관 안에서 살아남은 생물도 외설적인 놈이 살아남게 되었어."

백상아리, 바다사자, 돌고래 같은 강하고 똑똑한 놈들을 전부 다 먹어치우고 홀로 살아남은 유일한 개체. 수족관 안의 모든 존재-괴수로 변한 해양생물들을 먹어치우고 스스로 B급 괴수로 성장한 괴수.

<오션팬텀>.

"고작 촉수가 달렸다고 해파리가 수족관 짱을 먹다니, 정말 더럽고 추잡한 세계 같지 않아?"

몸길이가 수 미터가 넘는 해파리가 촉수 다발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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