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4화 〉2부 4장 21
실습 길드 최대의 관심사.
과연 A급 히어로, <화마인> 정슈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리고 그 관심은 ‘마법소녀 매지컬 큥큥스’라는 정체불명의 길드에 들어간 것으로 폭발했다.
“아니 씨발 도대체 이 정체불명의 길드는 뭐야?”
누가 장난으로 넣었는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들이 이루어낸 실적은 화려했다.
B급 괴수의 격퇴. C급 괴인의 격퇴. A급 히어로와의 대련에서 승리.
만약 그 조건을 이룬 시점이 언제 달성되었는지 안다면 세상 사람들은 경악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거기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논리적인 사고로 어떤 결론을 도출해낼 수밖에 없었다.
얘네 오라클 스튜디오 아님? 거기 완전 하렘파티잖<이 게시글은 삭제되었습니다>
...몇몇 눈치빠른 이들의 집으로 유성의 빨간 택시가 오다니는 가운데, 사람들은 논리적인 사고로 어떤 결론을 도출해냈다.
차명길드다!
원래는 이름있는 길드가 자신들의 길드 배정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일 것이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누가 마법소녀같은 비정상적이고 동화같고 유아틱한 이름을 길드 명으로 짓는단 말인가.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매지컬 큥큥스가 어느 길드의 산하길드인지, 그리고 그들이 가는 장소는 어디인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이유나는 그렇다치고, 화마인을 어떻게든 설득해서 영입해야한다!
실습 길드에 배정받았다고 영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실습 길드에서 길드의 안 좋은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경우는 허다하게 있다.
하지만 만약 매지컬 큥큥스가 진정으로 이름만 이상하고 실제로는 자본과 인프라, 그리고 인적 자원이 풍부한 곳이라면 얘기는 달라지게 된다. 화마인이 마법소녀가 된다면, 다른 길드들의 입장에서는 당첨이 최소 2등은 확정인 복권을 빼앗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서 마법소녀들이 가는 곳은 어디인데?”
“등신아! 화마인이 어디로 가는지 살펴야지!”
“애초에 마법소녀라고 하는 놈들이 어디있는 거야?”
“젠장! 서울수복작전에서 마법소녀 복장을 입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죄다 선가놈 공통 슈트라고!”
아무도 마법소녀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가운데, 결국 사람들은 실습 길드가 아닌 실습생의 움직임을 관찰하기로 결정했다.
<화마인> 정슈리.
마지막으로 그녀가 발견된 목격정보는 인천으로 향하는 유성 자율주행택시에 올랐다는 것.
“정슈리 맞아? 걸음걸이가 아닌 것 같은데.”
“저런 거대한 가슴을 가진 여자가 흔할 것 같아?!”
“오, 그거 제법 설득력 있는 말이었어.”
수많은 길드들이 하나 둘 인천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정작 정슈리 본인은 협회의 비밀 지원에 따라 다른 택시를 타고 어딘가로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
<잠시 뒤, 목포항 근처 호텔.>
게임 속 대한민국, 그러니까 헬조선은 온갖 악의어린 밈이 집약되어있는 마경이다.
특히 선의철이 신서울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다른 지역들을 의도적으로 차별함에 따라, 게임 속 세계관의 사람들은 툭하면 지역에 관한 비하 발언을 심심찮게 할 정도였다.
그에 따른 악의와 갈등은 괴수와 괴인으로 발현되었다. 가령 텍사스에 전기톱 살인마 괴인이 출몰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국가나 도시에는 인간에 대한 악의로 괴수와 괴인이 발생하기 일쑤였다.
"강원도에서 나타난 감자 괴수부터 제주도 천해하르방까지 그 지역 특유의 괴수들이나 괴인들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 우리가 가는 신안에도 A급 괴수가 살아."
"......."
유나, 라온, 누리, 가온, 유하, 그리고 겨울.
당장 우리 팀원들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히로인들도 내가 말한 목적지에 대놓고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모처럼 다들 마린룩으로 입었지만, 목적지에 불편함을 내비쳤다.
"사장님, 꼭 거기 가야해요?"
"왜?”
“거기는 조금….”
“신안이 뭐 어때서?”
내가 직접 도시 이름을 언급하자 팀원들은 내 시선을 피했다. 오죽하면 X로이드인 유하마저도 그다지 언급을 하고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나도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우리 무조건 안전한 거 알지? 우리에게는 SS급 보디가드가 있다고.”
“그거 전혀 믿을 수 없는데요.”
“본 적이 있어야 믿을 수 있죠.”
“사장님 실은 하랑 언니 내려오는 거 아님?”
아직까지 김펜릴은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내 무릎에 앉아 갸르릉거리는 김펜릴의 등허리를 조금씩 꼬집으며 팀원들을 다독였다.
"알았어, 알았어. 실습 기간은 일주일이니까, 일주일동안 열심히 하자고."
해당 지역에 직접 기거하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았지만, 나는 팀원들의 사기 진작과 정신적 안정을 위해 실습 지역 근처에 유성 호텔이 있는 목포까지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유성포비아인 라온조차 그나마 유성 호텔에 들어왔다는 것에 안심할 정도로 그곳에 대한 인식은 나빴다.
'솔직히 그럴 법도 하지.'
인간의 악의와 괴수-괴인의 발현 빈도는 비례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한 지역 안에서 사건사고가 빈발하게 일어나면, 그에 따라 빌런이나 괴인도 많아지기 일쑤.
"정슈리 양이 오면 본격적으로 움직이겠지만, 다들 조심해. 이 근방에 온 길드는 우리 뿐만이 아니야."
어떤 곳을 배정받더라도 그 지역 근처에 길드 두 개는 무조건 오게 되어있다. 한 명의 아카데미 학부생을 위해 열 명 가까이 되는 길드의 인원이 움직이는 건 예사고, 아예 길드 자체적으로 고용한 현장 스태프까지 동원되는 일이 허다하다.
정슈리를 뒷통수치기 위해 주인공 일행의 근처에 따라오는 길드들.
A급 유망주에 대한 학부생들의 질투심이 길드원들에게 옮겨져, 정슈리를 간살로 담궈버릴 예정인 사람들.
"누차 말하지만, 슈리가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건 어디까지나 그런 가능성의 이야기야. 그 길드원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야. 누구나 다른 사람을 질투하거나 미워할 수 있잖아?"
당장 우리 팀의 누리만 하더라도 질투가 전력 상승의 원동력이다. 단지 마음 속 깊은 곳에 잠재된 질투로 인해 마력이 테라의 장기에 오염되느냐 마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우리 근처에 있는 실습 길드, 다들 아는 사람들이지?"
"...예. 제 옛날 길드의 지인이 만든 길드입니다."
"심지어 유성 그룹의 산하 길드도 있어요. 산하의 산하지만."
"우리 엄빠 길드도 있음."
아무리 정슈리를 간살할 예정인 곳이라고 한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원래부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세계의 악의에 따라 충동질이 일어난 것 뿐.
'그 녀석의 짓이지.'
시기는 3월. 챕터 보스는 김펜릴이라고 할 지언정, 슬슬 어둠의 그림자가 한국으로 뻗쳐올 때가 되었다.
"그럼 슈리 양 맞이할 준비나 하자. 지금부터 긴급회의야."
내 말에 팀원들의 표정이 변했다. 사안은 몹시 긴급한 안건이었고, 대화에 있어 촌각을 다투는 일이었다.
"슈리 말이야. 마법소녀 코스튬을 입힐까, 아니면 마린룩을 입힐까?"
의견은 반반으로 갈렸다.
* * *
"음, 겨울이는 인천으로 가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아가씨께서는 인천으로 가십니다."
"그런데 왜 겨울이는 나한테 얘기를 안 한 거지?"
"하루 이틀 도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문신사는 연락없이 신서울을 떠난 선의철의 옆에서 그를 다독이느라 짙은 한숨이 나왔다. 아버지는 딸의 일을 부하들의 보고로 알고, 딸은 아버지의 일정을 신문 기사로 아는 이 부녀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갈라져버렸다.
'아가씨가 일방적으로 거리를 두는 거지만.'
선겨울은 선의철과 가까이 하기를 꺼려했다. 문신사 또한 그 이유를 알고 있기에 선겨울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인천의 어디로 갔는가?"
"논현입니다."
"뭐? 논현?! 거긴 서울 아닌가?!"
"인천 논현입니다. 아카데미 측에서 최대한 '영종도'와 서울에서 먼 쪽으로 길드를 배치했습니다."
거짓말이다. 문신사는 조금만 알아봐도 들킬 새빨간 거짓말을 목소리 하나 흔들리지 않고 읊었다.
"그런가. 그거 다행이군. 그럼 됐다."
하지만 선의철은 금방 거짓말에 넘어가고 말았다. 문신사에 대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신뢰가 있었고, 모든 상황은 자신이 컨트롤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설마 문신사가 선의철과 선겨울 사이엣 선겨울이라는 줄을 잡아, 부하들을 협박하여 거짓을 꾸몄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과거의 선의철이라면 충분히 이상을 눈치챌 수 있었겠지만, 그는 서울에서 벌어진 일에 온 정신이 팔려 판단이 다소 흐려져있었다.
"젠장. 서울에서는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건가?"
"예. 각하께서 찾으시는 물건은 없습니다. 그나마 추정되는 장소가 있기는 하지만, 진입은 쉽지 않죠."
"알고있다. 쳇, 의사당이 함흥도 아니고 부하들을 보낼 때마다 소식이 끊기니 원."
"차라리 광검을 하루 보내시는 건 어떠신지요?"
선의철은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문신사를 쏘아봤다.
"헛소리. 광검은 무조건 신서울에 있어야 한다."
신서울의 안전을 위해, 선의철의 안전을 위해. S급 최강자를 수도에 묶어두고 아껴두기만 하는 걸 두고 사람들은 아끼다 뭐된다고 비난을 하기도 했지만, 막상 그런 얘기를 겉으로 내지는 못했다.
과거 광검이 부산 등지로 다녀갈 때마다 실제로 신서울 근처에서 괴수들이 준동했으니까. 특히 신서울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있는 괴수들은 기가 막히게 광검의 부재를 눈치채고 난동을 부렸다.
"이번에 서울에서 온 놈들에 대한 작업은 끝났나?"
"예. 문신은 모두 새겨놓았습니다. 나머지는 사상 교육만 하면 끝입니다."
"그래. 사회의 쓰레기들이 국가를 위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터. 쓰레기통에서 건져온 놈들이니 쓰레기통의 지리는 누구보다도 잘 알겠지. 정신교육이 끝나는 즉시 바로 서울로 투입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문신사를 부른 선의철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자네, 나한테 혹시 숨기고 있는 거 없는가?"
"...후. 제가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닐세. 가보시게."
문신사는 잽싸게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림자를 통해 빠져나온 그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국청년단 단원 둘에게 넌지시 말했다.
"너희들의 목숨을 누가 잡고 있는지 명심해라."
"......예."
둘은 조용히 집무실로 들어갔다. 문신사는 둘의 문신을 통해 선의철의 질문을 엿들었다.
- 정녕 부산에서 아무 일도 없었나?
- 예. 그냥 데이트 수준으로 즐긴-
- 그걸 멍청히 보고만 있었어?! 이 병신들아! 누구 딸이 금발양아치랑 어울리는데, 그걸 멍청히 보고만 있었어?!
퍽, 퍽퍽.
무능력자가 이능력자를 후려치는 건 그다지 아프지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재떨이로 머리를 후려치는 건 분명 아프기는 하다. 문신사는 속으로 큭큭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아무렴 데이트만 했을까봐."
선의철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 * *
<늦은 밤, 목포 유성호텔 스위트 룸.>
"안녕하세요, 화마인 님!"
"......반갑습니다."
정슈리는 도착하자마자 내 방에 호출되었다. 슈리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자세로 나를 몹시 어려워했다.
"그, 죄, 죄송합니다."
"네? 뭘요?"
"그, 제가 심한 오해를...."
"아, 그거라면 신경 안 써요. 유나로 인해 벌이진 일이니까. 일단 앉으시고."
아카데미 학부생이 사관학교의 사관이나 직업군인도 아니건만, 그녀는 각잡힌 자세로 내 앞에 앉았다.
"우리 길드에 실습 학생으로 들어온 걸 환영해요. 이제 이 근방을 돌아다니면서 괴수들을 토벌할 건데, 혹시 궁금한 거 있어요?"
"저, 저는 뭘 하면 되는 겁니까?"
"섹스."
"......뭐?"
슈리의 표정이 대번 일그러졌다. 나는 일부러 거만한 자세로 다리를 벌렸다.
"빨아."
"......이 씨발?"
"어쭈. 지금 누가 갑인지 모르는 것 같은데."
나는 마도기어를 통해 길드 실습의 규칙을 그녀의 앞에 전송했다.
"슈리 양은 외국에서 살다와서 잘 모를 수 있는데, 생기부라는 건 엄청 중요한 거거든?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실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이 말씀이야."
"이...개같은...."
아카데미 학부생, 그러니까 대학생을 상대로 성적으로 협박한다. 지극히 쓰레기의 행동이지만 슈리를 상대로는 그렇게 해도 된다. 이렇게 해야한다.
"흐흐. 그냥 해 본 소리다. 우리 팀에서 활동하려면 이 정도 명령은 들어야 한다는 거 명심해. 너는 이제 우리 팀원이고, 나와 유나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입장이다. 알겠어?"
"...고작 상하관계를 분명히 하려고 이런 짓을 저지른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슈리 양, 명심해. 네가 명령에 불복종하면 말이야."
딱.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화장실에서 한 여인이 알몸으로 슬며시 빠져나왔다.
"유나가 네 앞에서 내 좆을 빨 거야. 이유나, 네 친구가 나를 상대로 씨발이라고 욕했어. 어떻게 해야겠어?"
유나는 바로 내 앞에 엎드렸다. 뒤에 자신의 유일한 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유나. 친구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죄송, 츄릅, 해요."
"이, 이...!"
"거기서 한 마디만 더 해봐. 유나 목젖까지 찔러버릴 거니까."
나의 갑질에 정슈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