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7화 〉2부 5장 20
지휘관이 다크 레기온의 간부, 절풍의 펜릴을 쓰러뜨렸다!
지휘관이 <바나르간드>를 동원하여, 영국에서 열리게 될 차원문을 막았다!
와아아.
런던은, 영국은 축제가 펼쳐졌다. 영국 전체를 몰락시킬 수도 있었던 재앙은 지휘관의 힘에 의해 단번에 사그라들었고, 런던에는 아무 피해도 없었다.
물론 옥색 괴인들에 의해 습격을 당한 이들도 있기는 했지만, 런던 전체가 살아남은 것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런던이, 영국이 살아남았다는 것.
살아남은 이들은 축제를 벌이고, 지휘관과 바나르간드를 찬양했다.
-바나르간드와 지휘관은 지금 섹스하고 있겠지?!
-그럼 우리도 섹스다!
의도치 않게 런던 전역의 출산율 상승에 기여하게 된 당사자들은 아무 소식이 없었다. 런던 히어로 협회에서는 특별한 말을 할수도 없었다.
-히어로 협회는 왜 아직도 침묵하고 있는 거임? 당장 지휘관에게 기사 서품을 내리든 뭐든 해야하는 거 아님?
-지휘관이랑 연락도 안 되는데 어떻게 하겠어요ㅋㅋㅋㅋ
-협회인데?
-그러니까ㅋㅋㅋㅋ
히어로 협회조차 지휘관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물론 그에게 축하하고 휘장을 주고 기왕이면 영국에서 지내게 하는 게 맞긴 하지만, 런던 일대에 있는 금발벽안의 백인을 모조리 잡아다가 추궁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지휘관...그럼 영국에서 나가는 거야?
-그건 안 되지!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 하는 법!
-지휘관에게 영국 영주권, 아니 국적을 부여하라! 그리고 그가 살 집을 제공하라!!
자고로 한 발 빼고 난 뒤에는 현자타임을 가지기 마련. 심지어 살아남았다는 것에 기뻐하며 열정적인 섹스를 한 남녀들은 술 한잔을 걸치다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다.
-이대로 그냥 있으면 지휘관 영국 떠나는 거 아님?
영국에 방문한 이유는 여왕을 알현하는 것도, 런던 일대를 관광하는 것도,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원탁 히어로와 만나기 위한 것도 아니다.
풍마 게이트를 닫기 위해서였다.
목적을 완수한 이상, 지휘관은 자신의 본국-또는 활동 거점-으로 귀환할 것이다.
-죽어도 못 보내!
섹스를 마친 남녀들은 급히 옷을 챙겨입고 거리로 나섰다. 협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지휘관의 행보에 대해 비밀로 하고 놓아줄 것을 말했지만, 어디 사람들이 그 말을 제대로 듣기나 하겠는가?
-지휘관 어디있어!!
결국 화살은 국회의 대표이자 히어로 협회의 협회장, 펜워드 경에게 넘어갔다. 한 명을 향한 매스컴과 영국 시민들 전체의 시선은 송곳과도 같았고, 펜워드 경은 공식석상에서 진땀을 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진정하십시오, 국민 여러분. 이성을 되찾아 주십시오. 지휘관께서 안전하게 하늘길에 오를 수 있….
와아아아아아
해외로 떠나는 모든 공항은 마비가 되었다.
* * *
"무능한 줄 알았더니 그걸 이용해서 이런 짓을 해? 유능하네."
나는 기자회견의 다시보기를 살피며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실수인 척, 하늘길이라는 경로를 언급하며 내가 비행기를 통해 귀국할 거라고 암시를 한 저 무능한 양반의 표정이 어떠한가?
'진짜 실수라서 더 열받네.'
극비사항을 공개적으로 까발렸으니 당연히 제재가 필요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사람에게는 천운이라는게 존재하는 모양이다.
"사장님. 펜워드 경의 지지율이 일일 74%를 돌파했습니다."
"역시 대단하군. 한순간에 지지율의 앞뒤 숫자를 뒤바꿔버리다니."
멘체스터 게이트를 막아낸 공로로 47%까지 올라간 그의 지지율은 하루만에 74%까지 치솟았다.
혹자는 지휘관이 분노하면 어쩌냐고 걱정하는 상식인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럼 펜워드의 무능에 대해 사퇴로 책임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방이 적이 되어버렸네."
모처럼 예매해놓은 표도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비행기는 일등석마다 히어로들이 배치되어 지휘관과 바나르간드를 찾고 있고, 심지어 스튜어디스 자격증을 반납하고 헌터로 뛰던 이들도 나라의 부름에 따라 제복을 입었다.
지휘관을 찾기 위해.
아마도 지휘관을 찾는다면 바로 기상 악화 운운하며 비행기를 돌리지 않을까. 아니면 지휘관이 원하는 음식이 제대로 준비되어있지 않아 급히 비행기를 돌린다거나.
이른바, 딸기 회항-
[니 이제 어쩔긴데?]
"너무 걱정하진마. 그리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마. 돌아가면 다 설명해줄게."
화면 너머, 석하랑을 비롯한 다른 모든 이들도 난리가 났다.
지휘관과 바나르간드의 활약에 나라가 뒤집어진건 영국 뿐만이 아니다.
- 해외에서 금발벽안 남자가 입국한 사례를 찾는다!
- 우리나라에서 금발백인이 영국에 입국했다고?! 실화냐?!
- 개새끼들아! 지휘관 우리나라로 돌아와야한다고!!
내가 영국을 방문한 날짜를 전후로 전세계에서 영국으로 날아든 비행기 중, 금발벽안 백인이 탄 케이스가 모조리 공개되고 있었다.
현실처럼 비행기가 많이 뜨는 세상도 아니고, 괴수 때문에 한정된 노선만 돌아다니는 만큼 아주 적은 수만 하늘길에 오르니 자연히 체크가 될 수밖에.
[니 이카다가 싹다 걸리는 거 아이가?!]
"하하, 걱정마. 백청화는 이미 한국으로 '귀국'했는 걸."
내 종이여권에는 출국 기록이 찍혀있지 않지만, 마도기어 속의 전자여권은 이미 백청화라는 사람은 런던 게이트가 일어나기 하루 전에 출국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라온의 여권에는 출국기록조차 없었다. 그녀는 펜리스 박이라는 위조여권으로 영국으로 날아왔고, 이제 그 이름은 영원히 영국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걱정마."
[진짜제? 내 믿어도 되나?]
"그럼. 내가 너 놔두고 다른 나라에서 왜 계속 놀고 있겠어?"
[...치아라! 돌아오면 김해에서 꼼짝말고 있그라! 내가 공항 나갈테니까!]
뚝. 석하랑은 연락을 끊었다. 나는 옆에서 나를 지긋이 노려보는 라온의, 아니 펜리스 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고양이귀가 없었다.
"다들 난리다. 그치?"
"사장님 때문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이 정도로 관심을 가져주는 건 조금 과한 걸."
내가 영국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오직 아르엘 뿐. 히로인 비율로 따지면 고작 한 명 있는 곳보다 스타팅부터 다른 히로인들 모두가 모인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당연했다.
"공항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말이야."
"도로를 시민들이 점거해서 드러누웠으니 말이죠."
지휘관의 출국을 방해하려는 시민들의 모습은 훌리건을 방불케했다. 구국의 영웅과 SS+급 히어로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고, 사실 이 세계의 국가들 대부분이 이런 모습을 보이곤 했다.
'백희아 영입 안하면 출국도 전쟁이야.'
백희아를 영입하여 모선-전용기를 운용하게 된 뒤로는 자유자재로 입출국을 할 수 있지만, 그 전까지는 출국장으로 가는 것도 일이다. 그리고 일정 시간 내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게임오버를 당한다.
인파 속에 숨어있던 암살자에게 푹찍당한다거나, 한국에 게이트가 열려 지휘관이 대처하지 못해 초토화된다거나, 갑자기 온 지구가 푸른 불꽃에 불바다가 된다거나.
'피하려면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끼이익.
나는 차를 멈춰세웠다. 일일 렌트한 마도차량은 이제 차고지까지 알아서 자율주행모드로 돌아갈 것이다.
"라온아, 변신 해제."
"네."
라온은 주변을 살폈다. 그녀에게는 다행히 우리가 차에서 내린 곳은 해안가 도로라서 아무도 없었고, 누구 하나 우리를 보는 사람 없었다.
"......변신 해제."
붉어진 얼굴로 마법의 주문을 읊자, 라온의 몸이 민트색 빛에 휩싸였다.
그녀의 목을 제외하고 발끝까지 타이즈를 입은 것 마냥 실루엣이 훤히 드러났고, 곧 마력의 빛은 밖으로 빠져나와 중형차 크기만한 늑대가 되었다.
"후후훗."
수북한 검은 털에 민트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늑대, 펜릴은 '괴수'로서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왼쪽 눈동자에 박힌 큐브의 빛에 나는 박수를 쳤다.
"펜릴, 손!"
"냥!"
펜릴은 내 손 위에 자신의 앞발을 올렸다.
"옳지."
나는 그녀에게 미리 준비한 민트초코 마카롱을 건넸다. 차게 얼려둔 마카롱은 펜릴의 입에 들어가 금방 녹아내렸다.
"...적응이 잘 되지 않습니다, 사장님."
본래의 정장차림으로 돌아온 라온은 괴수 펜릴(소형)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리의 눈앞에는 SSS급 괴수가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지만, 마도기어에는 아무 신호도 나오지 않았다.
'큐브의 힘.'
정령 절풍이 귀에 봉인되었기에, 펜릴은 이제 큐브의 힘-민초빔-을 바탕으로 괴수와 괴인과 인간형과 빙의체를 마음껏 오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름의 밸런스 조정은 자동으로 이루어지겠지만, 최소한 지금은 SSS급 괴수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뽐낼 수 있다.
"이 아이가 펜릴이라는 겁니까?"
"응. 나름 귀엽지 않아?"
"이 몸이 귀여운 건 당연한 것이다냥."
늑대지만 여전히 말투는 냥냥거리는 펜릴에 라온은 다소 떫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펜릴의 등에 올라탔고, 내 앞 자리를 두드렸다.
"라온아, 타. 펜릴 타고 가면 한국까지 금방이니까."
"...펜릴을 타고 간다고요?"
"응. 펜릴아. 고삐 만들어줄래?"
"냥."
펜릴은 자신의 목과 앞다리에 이어진 민트색의 고삐-처럼 생긴 핸들을 만들었다. 라온은 내 앞에 걸터앉으며 핸들을 붙잡았다. 마치 바이크를 타는 듯한 자세에 라온은 몹시 어색해했다.
"면허 없어도 되는 겁니까?"
"물론. 그럼 나도 손잡이 잡아야겠다."
물컹.
나는 라온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사장님?!"
"펜릴, 달려!"
"냥!"
파---앙!
펜릴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공간을 접으며', 동쪽으로 하늘을 달렸다.
주물주물주물.
나는 떨어지지 않게 손잡이를 꽉 움켜쥐어야만 했다.
하늘길?
펜릴이 달리는 곳이 곧 길이고, 그게 하늘이면 하늘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