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807화 (807/1,497)

〈 807화 〉3부 1장 09 공중전

가루라.

인게임적으로 말하면 화속성 3대 괴수 중 한 명이며, 신라적으로 말하면 테라 최후의 결전에서 신라의 곁을 지킨 세 명의 최강 정령 중 한 명이며, 20년의 지구적으로 말하자면 인도에서 업어온 금발갸루 창염이었다.

본래 광속성 정령으로 금태양신의 아래에 있었으나, 금태양신이 카르나로 타락해버린 뒤 살아남기 위해 불꽃의 신에게 몸을 의탁하며 화속성과 광속성을 함께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만약 금태양신이 혼돈에 오염되지 않았다면, 가루라는 어떤 속성일까?

'빛 단일 속성이지.'

갸오오오!

가루라는 괴성을 지르며 나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나는 날개를 펼치며 가루라로부터 거리를 벌렸고, 동시에 왕도로 추정되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 전속력으로 날았다.

"말하지 마라. 혀깨문다."

하리는 이를 악물고 내게 달라붙었다. 나는 그녀를 한손으로 꽉 끌어안으며 코트 안으로 손을….

"좀 닿는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뭉클.

손등 부분에 가슴이 닿는다. 하지만 그걸 사과할 겨를은 없다. 한손으로는 하리를 다시 단단히 잡고, 다른 손으로는 코트 안에서 간신히 꺼낸 총을 가루라에게 겨눠야 하니까.

탕, 탕탕!

나는 마탄을 쐈다. 푸른 마력을 머금은 마탄은 나를 향해 날아오는 거구의 가루라를 향해 단숨에 쇄도했다.

펄럭!

가루라는 금빛 날개를 접으며 아래로 뚝 떨어졌다. 그 바람에 마탄은 애꿎은 허공을 갈랐고, 아래로 내려가던 가루라는 다시 날개를 펼치며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강하네."

아바타 상태인 지금의 나보다 마력량은 훨씬 웃돈다. 내가 마력량으로 치면 90, S급 초입인데 비해 가루라는 거의 S+급에 육박해있다.

내가 왜 S급이냐하면, 이 세계에 구현할 수 있는 아바타의 마력량이 S급까지가 한계였기 때문이다. 그 이상으로 넘어가려면 아주 특별한 물건을 세 개 챙겨야하지만….

'챙기기도 전에 살해당하게 생겼군.'

살해당해도 다시 아바타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괜히 살해당하면 아바타가 부활하는 동안 혼돈의 힘이 곳곳으로 뻗칠 수 있다.

그러므로 가루라부터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캬아아악!

가루라가 다시 나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참격이 내 날개를 스치며 날아갔고, 파공성 만으로 내 날개는 찢어질 것처럼 흔들렸다.

'공중은 자기 영역이라는 건가.'

이쪽도 공중전에는 제법 자신이 있지만, 저쪽은 공중전의 스페셜리스트다. 더군다나 이렇게 핸디캡도 하나 달고 싸우는 만큼, 지금 가루라를 상대로 1:1로 붙겠다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팔부신중.

하리가 말했던 금태양신의 신관이 거느리고 있는 여덟 강자들 중 한 명이 가루라라는 얘기인 즉슨, 최악의 경우 가루라 만큼의 존재가 일곱 명이나 더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

실제로 광속성 S급 괴수들이 이 세계의 팔부신중이라고 한다면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 혼자서 놈들을 상대로 모조리 싸울 수는 없다.

가루라 한 명을 상대로라면 시간을 들여 천천히 공략할 수 있지만, 그 사이 새로운 정령이 나타난다면 그건 말짱꽝이다.

"저렇게 화를 내면서까지 쫓아오다니. 도대체 왜지?"

"그, 그야 당신이 신을 모욕했으니까!"

하리는 내 가슴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이단! 성범죄자! 저질!"

"셋 다 나는 아니다. 진짜 저질은...아니, 말을 말지.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머리아파지니까."

나는 날개를 접었다. 내 몸은 순식간에 관성에 의해 사선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캬아악!!

어느덧 성질이 뻗친 가루라는 전력으로 내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하리는 땅에 떨어지기 시작하는 나를 보고 자신이라도 떨어질까 말까 고민하는 눈치였고, 나는 하리를 두 손으로 꽉 붙잡으며 마력을 집중했다.

휘이익!

바닥에 닿기 직전 날개를 펼치며, 바닥을 한 번 쓸듯이 앞으로 난다. 날개 뒤로 불꽃의 마력을 뿜어내니 마치 뒤에 추진체가 달린 것처럼 몸이 절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쿵!

나를 쫓으려던 가루라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바닥에 몸을 처박았다. 이미 떨어지기 전부터 자세를 제어했지만, 급정거를 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갸아아아앙!!]

정체불명의 울음과 함께 가루라는 다시 나를 쫓기 시작했다. 눈에 오기가 느껴진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스피드로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져본 적이 없겠지. 아, 들리나? 듣고 있겠지? 나 혼자 말하는 거면 조금 민망한데."

[캬아아악!!]

"듣고있다면 다행이군. 혼자서 씨부리는 또라이가 될뻔 했잖나."

다행히 가루라는 도발에 착실하게 넘어왔다. 자기보다 작은 존재가, 금태양신을 모욕한 이단이나 마찬가지인 내가 자신의 공격을 피해 자신보다 빠르게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있으니 화가 나는 건 당연하리라.

"그럼, 쫓아와 보시든가."

나는 이번에는 수직에 가깝게 날아올랐다. 날개를 펄럭이며, 날개 뒤로 마력을 뿌리며 추진력을 이용해 높이 높이 날아올랐다.

당연히 가루라도 내 뒤를 금방 쫓아왔다. 내가 하늘 높이 치솟는데 문제가 되지 않듯, 가루라도 충분히 날아오를 능력이 차고 넘쳤다.

"하리. 내 가슴에 얼굴을 묻어라."

하리는 순순히 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 나는 적당히 날아오른 순간, 바로 몸을 180도 돌렸다.

"태양이 보이나?"

나는 태양을 등지고 섰다. 당연히 아래에서 올라오는 가루라의 시야에는 나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태양의 힘을 보여주지."

나는 하리를 한손으로 꽉 붙잡고, 다른 손은 45도 각도로 높이 치켜들었다.

"창염, 만세!"

번쩍!

나는 창염의 빛을 터뜨렸다. 나 스스로가 태양이 되어 태양빛을 직사광선으로 가루라에게 날렸고, 내게서 눈을 떼지 않던 가루라는 새로운 태양빛에 손으로 얼굴을 붙잡고 괴로워했다.

[갸아아악! 아아악!]

"절반 정도 파워지만 태양권은 태양권이지."

대머리가 아니어도 막대한 빛으로 시야를 빼앗을 수 있는 힘이 바로 창염의 힘, 신라의 힘이다.

사락.

나는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날개를 접고 허공을 박차고 뛰어, 가루라의 날갯죽지가 있는 등판을 향해 몸을 날렸다.

"미안하지만 너로는 나를 쫓을 수 없다."

나는 주먹에 마력을 최대한 끌어모은 뒤.

"창염펀치!"

전력으로 가루라의 등판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아아아아악!!]

새의 비명인지 사람의 비명인지 모를 괴성을 내지르며, 가루라는 날갯짓의 힘을 잃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나는 가루라가 떨어지는 곳이 제법 깊은 호수임을 확인한 뒤, 하리를 붙잡고 우리가 날아온 방향과 반대로 급히 날개를 움직였다.

'조금 녹슬었네.'

아바타여서 그렇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창염의 피닉스 시절, 수많은 S급과 SS급을 상대로 승리를 따냈던 그 때만큼의 힘이 나오지 않는다.

20년의 지구에서 탈출한 이후, 너무나 오랫동안 섹스만 하며 살아서 몸이 굳은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히 몸이 아니라 영혼이 기억하고 있더라. 마력을 가진 존재의 싸움을. 피닉스의 싸움을. 창염의 힘을 가진 지휘관의 싸움을.

'빨리 찾아야겠다.'

S급 90인 내가 SSS급, 100의 단계에 오르기 위한 세 가지 물건. 그것을 찾으면 나는 싱크로를 한 것보다 더 강한 힘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이 필요했다.

"하리. 일단 이탈하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다."

"뭐, 뭐?"

"아무래도 신관을 직접 만나봐야겠어."

가루라가 살아있다고는 하나 신이 오염되고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금태양신을 만나야만 했다.

"신관을 만나면 어떻게 할 건데?"

"그냥 상태를 보기만 할 거다. 신관마저 혼돈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아니면 신관은 정상인지."

신과 직속으로 소통하는 존재인 신관이 이상하다면 당연히 문제가 이곳의 혼돈부터 제거하고 떠나야 한다.

즉, 팔부신장이 지키고 있는 저 왕도로 다시 숨어들어가야한다는 말. 나는 하리와 함께 제법 먼 땅에 착지하여 하리를 내려놓았다.

"하리, 이제 안녕이다."

"자, 잠깐만! 이대로 헤어지자고?!"

"탈옥은 도왔다. 나머지는 너 스스로 해결해야지."

"매정해!"

"매정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제 나는 저기로 잠입을 해야하거든."

나는 몸을 돌려 왕도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뒤에서 내 옷깃을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흐흥, 왕도로 잠입하시겠다?"

"왜? 너 혹시 스파이냐? 나를 옆에서 감시하기 위해 붙은 첩자냐?"

"...왜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너를 돕고 싶을 뿐이야!"

"나를 돕는다고? 왜?"

"네가 왕도로 들어갈 수 있는 비밀통로를 알려줄테니까, 내가 다른 왕국에 가서 살 수 있는 돈을 좀 챙겨줬으면 하는데."

하리는 비릿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었다. 돈을 표현하는 제스쳐는 여기나 저기나 다를 바가 없는 듯 했다.

"돈으로 줄만한 건 없다."

"그럼 나를 다른 왕국으로 데려다줘! 여기 있어봐야 또 아름답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될 게 뻔한 걸."

"다른 왕국으로 가도 어차피 똑같은 일이 생길텐데?"

"괜찮아. 전향하면 돼."

전향.

정령이 다른 속성으로 자신을 바꾼다는 말이자, 이전 속성을 등지겠다는 말과 똑같다.

"적어도 이곳에 갇혀서 사는 것보다는 좋을 거 아냐?"

"갇히는 건가?"

"응. 그게...이 나라에서 태어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하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자신의 몸을 가리켰다.

"나는 섹스가 싫어."

"뭐?"

"아니, 정확하게는 이 나라에서 말하는 섹스가 싫어! 적어도 처음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다고! 근데 자꾸 자기랑 한 번 섹스하고 판단해보라면서 사람들이 자꾸 껄떡거리잖아!"

"......."

나는 하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 위에 미니피닉스 한 마리를 올렸다.

"녀석이 위급상황에서 너를 구해줄 거다."

"응…?"

"안내해."

섹스국에서 발견한 한 줄기 양심.

신라의 사도로서, 조금은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네, 오랜만이네요."

"당신도 느껴서 알겠지만, 이계로 보낸 정령이 파괴되었어요."

"마지막에 정령을 통해 본 광경, 아직 다른사람들한테 퍼뜨리지 마세요."

"확인을 위해서 카르나가 열심히 정령을 낳고 있으니까."

"...X로이드랑 안 했어요. 낳는다는 표현은 농담. 그냥 하위 정령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예요."

"네."

"어쩌면 '그'이거나, 아니면 그의 속에 있던 사람이거나."

"어느 쪽이든 실마리는 잡았네요. 후후."

"인공정령들 좀 더 보내서 확인해보도록 하죠. 과연 저쪽 세상의 푸른불꽃이 우리가 아는 그 사람이 맞는지."

"그리고...."

"자꾸 인공정령을 오염시키는 자들이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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