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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826화 (826/1,497)

〈 826화 〉3부 2장 03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라.

가이아나 왕국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내 외형에 대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들어갔다가는 어그로가 너무 심하게 끌리는 거 아닐까?

난쟁이 왕국에 나타난 걸리버가 되어 습격을 당할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과하게 이목을 끌 수 있다.

하리는 괜찮다.

그녀는 테라의 사람이고, 비슈니아 왕국 출신이라고 하면 된다. 하지만 출신 성분이 애매한 나는 정체를 숨기려면 최대한 모습을 비슷하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과거 내가 히드라를 낚기 위해 변했던 모습과 나의 옛 모습을 참고하여 몸을 30cm 가까이 줄였다.

의상 디자인은 각 히로인들의 남장 버전 스킨 중 환룡의 것을 참고했다. 보이스카웃 제복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지만, 흰색과 푸른색과 노란색이 적절히 섞이니 이상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리하여, 쇼타닉스의 완성.

-오빠! 저를 테라로 보내주세요! 보란 듯이 따먹어줄게요!

-...이유나, 히드라랑 싱크로하더니 이상해졌어.

-저건 저도 못 참겠는데요. 아아, 아랫배가 큥큥거리기 시작해버렷…!

외부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현실에서는 몸을 바꾸지 못해도, 이렇게 테라에서는 정령의 몸이라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키를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저기, 피닉스 님."

"왜."

"안아봐도 될까요?"

"안 돼."

시선이 하리의 유두와 정확히 높이가 맞는 정도. 메이드복의 가슴 부분에서 살짝 도드라진 꼭지 부분과 눈높이가 정확하게 맞았다. 얼굴을 묻으면 가슴에 정확히 파묻힐 위치였다.

"그렇게 입고 계시니까 귀족 도련님 같으세요…. 하아."

"제복빨이지."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건 될까요?"

"그건 나쁘지 않군."

가이아나 왕국을 여행하는 비슈니아 왕국 출신의 도련님과 메이드. 좋은 설정이다.

"너는 이곳에서 나를 계속 피닉스 도련님이라고 불러라."

"혹시 도련님이라는 칭호를 듣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죠?"

"그럼 주인님이라고 하든가."

"...저는 주인님 쪽이 더 좋은데요."

공주라는 걸 생각해서 주인님 대신에 도련님으로 바꿔줬더니 본인이 싫단다. 물론 도련님이나 주인님이나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기에 일부러 붙인 호칭일 뿐, 나는 피닉스라는 이름이면 충분하다.

큐이잉.

크리슈나가 하리의 품에서 아등바등 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하리로부터 잠시 크리슈나를 받아 강아치처럼 안았다.

"크리슈나가 너 싫은 것 같다."

"주인님 어린 모습 보고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그래? 그럼 얘도 그쪽인가?"

"그건 아니겠죠. 그…혹시."

하리는 정말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그 아이도 큥큥뾰이 하실 건가요?"

"아니. 이미 킨나라랑 유니콘을 상대로 한 번씩 했잖아. 빛속성은 둘로 충분해. 이제는 다른 녀석을 큥큥 해야지."

"다른 녀석이라고 하면...마력 속성이 다른 거요?"

"그래. 가이아나에 왔으니가 가이아나의 정령 중 괜찮겠다 싶은 녀석을 큥큥하는 거다. 빛속성과 비행속성이 갖춰진 이상, 땅속성 정령을 큥큥하는 거야."

"그러다 나중에 일곱 마력을 모두 큥큥하시겠어요?"

"안 될 것도 없지."

혼돈을 완전히 막아내기 위해서는 불, 물, 땅 세 가지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람, 빛, 어둠, 환상의 네 가지 힘을 얻을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니다.

다다익선.

힘과 동료와 처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가자."

나는 하리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금 전까지 다른 이들을 마주치지 않았던 길과는 달리, 지금부터 가이아나 왕국을 방문하는 여행객이든 행상인이든 다른 이들과 마주치게 되어있다.

"주인님, 크리슈나를 계속 데리고 가실 건가요?"

"일단 내가 안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괜히 애완정령 데리고 못 들어가게 하면 곤란하잖아."

나는 크리슈나를 아주 특이하게 생긴 인형처럼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누가보면 아직 애착인형을 떼지 못한 유아로 볼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다른 이들은 나를 보고 특별히 뭔가 이상한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봤다.

하지만 나를 뒤따르는 하리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지나갈 뿐이었다.

'먹혔어.'

귀족가 도련님과 메이드 컨셉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가는 동안 좀 더 디테일한 설정을 생각하며 내려가면 될 것 같았다.

그래, 이름은 피닉스. 성은 히드라살카.

히드라살카 가문의 후계자인 피닉스다.

"하리야. 일단 나는…."

삐이이익!!

계단 아래쪽에서 호루라기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경비병들이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괜히 하리와 내가 현상수배에 들켰나 가슴이 철렁했다.

'그럴 일도 없을텐데?'

신관이 설마 우리의 몽타주를 뿌린 걸까? 하리와 나에게 현상금을 건 걸까?

"...아니군."

아니었다.

하리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이 도시 자체의 문제였다.

으아아아!!

안쪽에서 함성과 함께 몇몇 작은 인영들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들은 다른 가이아나 왕국의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키가 큰 이들이었고, 뒤를 쫓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이들이었다.

"쟤들 뭐하냐?"

"저건, 설마…."

"잡아라!!"

작은 병사들이 계단 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큰 사람들은 마치 탄광에서 탈출한 노예럼 옷이 허름했고, 얼굴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잡히면 큰일난다.

그런 눈빛으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설마 오자마자 국경에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저게 뭐지?"

"...노예들이 탈출한 것 같은데요."

하리의 말대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노예탈출 그 자체였다. 목에 걸린 쇠사슬도 그렇고, 어떤 이는 아직도 두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헉헉거리고 있었다.

그 뒤를 쫓는 병사들의 눈에는 놓치면 죽는다는 듯한 눈빛이 가득했다.

"...하리야, 조심해라."

"네?"

"이런 분위기라면 분명…."

쩌적, 쩍!

하늘이 열렸다.

협곡 사이 허공이 유리창 깨지듯이 열렸고, 안에서 뭔가 정체불명의 에너지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서, 설마?!"

"혼돈의 괴물!"

"!"

구구구.

차원문이 열리며 새로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

지마룡 어서오고.

오랜만에 보는 녀석이라 뭔가 반갑기도 하다.

"...잠깐, 지마룡?"

네가 왜 여기서 나와.

* * *

"회장님, 큰일났어요!"

"응, 테라가 큰일났네."

"북아프리카 쪽에 있던 S급 괴수가 실종되었어요! 뭔가 거대한 차원문이 열린 흔적이 나타났다고!"

"응, 그거 저쪽 세계로 넘어갔어."

"...네?"

은유하는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마룡들이 아무래도 과거를 다시 침공하려고 하나봐."

"그럴 가능성이 있죠. 저기는 추정상 테라의 과거니까요. 이미 쓰러진 성주와 일곱 간부를 다시 만들기 위해, 미래의 이곳에 존재하는 괴수들을 저쪽으로 보내는 거예요."

히카리는 크리슈나의 눈을 통해 보이는 광경에 넋을 잃었다.

쿵!

땅에 네 발을 붙이고 떨어진 지마룡.

그리고 흔들리는 절벽의 계단에서 괴로워하는 이들.

"이, 이거 어떻게 막죠?"

"...막을 수 없어. 지구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려면 힘이 몇 배는 봉인되는 걸."

은유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A급이 넘어가도, 차원문을 넘어가는 동안 마력의 손실이 커져서 B급으로 약해져버려. 저기 지마룡도 마찬가지야. 원래 거의 SS급이었던 녀석이 S급 초반대까지 약해졌잖아."

"하지만 뭔가 방법을 찾아야하지 않겠어요?"

히카리는 굳은 얼굴로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마도기어를 가리켰다. 은유하는 히카리의 마도기어를 붙잡았다.

"아직 안 돼. 그들이 저쪽 세상의 존재를 알아채서는 안 돼."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저쪽이 위험해져요. 그분의 과거도."

"...내 욕심 때문이 아니야. 백희아나 다른 여자애들한테 그의 과거를 숨기고 나만 고객님의 모습을 독점하려는 게 아니라고."

은유하는 일렁거리는 차원문을 보며 이를 갈았다.

"아직 지구에는 저 차원문을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어. 테라의 존재, 테라와의 만남과 이야기가 아직 정립되지 않은 지금 저게 열린다면 정말 감당할 수 있어? 저 세계에 지구의 괴수들이 넘어간다면 과연 저 세계는 멸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공감해요. 차원문의 존재가 세간에 공개되면 인간들은 테라포밍을 시도하겠죠. 그러면 테라가 다시 오염될 거고, 그분이 성주를 쓰러뜨린 건 무색해질 거예요."

그는 간혹 일곱 정령의 힘이 모두 모여야 진정한 악을 쓰러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예상보다 일찍' 내려온 성주를 상대하느라 정령들의 힘을 모두 모으지 못했고, 결국 단독으로 성주를 상대하다가 성주와 동귀어진 하게 되었다.

인류는 피닉스에게 구원받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운석 덩어리는 지구에 떨어지지 않고 전부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남은 괴수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저걸 어떻게 한…."

휘융.

크리슈나의 시선이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피닉스?"

마치 다크 히어로와도 같은 검은 갑옷의 푸른 불사조 괴인이었다.

"역시! 지구에서의 모습은 타락한 거였어요!"

오해는 더욱 깊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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