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837화 (837/1,497)

EP.837 3부 2장 19 내 테라에 남자는 필요없다

영국, 스톤헨지.

아주 먼 옛날 고대에 만들어진 이 유적은 오래전부터 이능에 관한 것이 있지 않을까하는 사람들의 많은 예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뭔가가 일어났다.

"하아, 하아, 이게 뭐야...?"

영국 여왕, 아르엘은 몸소 나서서 스톤헨지에 나타난 괴물을 처치했다.

"마룡과는 다른 생명체...?"

정체불명의 괴물.

마룡이나 괴수보다 좀 더 짐승과도 같은 형태의 괴물은 진정으로 기이했다.

외피는 마치 갑주처럼 반짝였고,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은 마력이 뭉쳐진 덩어리처럼 보였다.

다행히 그 능력이 S급 정도라서 쉽게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아르엘이 직접 나서야 했을 정도로 괴물은 엄청난 힘을 자랑했다.

"이건 뭐라고 해야할까...."

"...고대의 정령 같은 거 아닐까냥."

아르엘의 어깨에 올라타있던 고양이가 말을 했다!

스스로 입을 열고 말을 하기 시작한 고양이에 주주변의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아르엘보다도 더 강한 존재.

'Sir.김펜릴.'

누군가는 요괴고양이라고도 하지만, 그 실체는 요괴 이상의 존재였다.

"고대의 정령? 누가봐도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것 같은데."

"그러니까 고대의 정령이지. 다른 세계가 어디 한두 개 있겠어? 테라가 멸망해서 이 세계에 이어진 만큼, 다른 세계도 엄연히 존재할 수 있다는 거지."

"그건...다른 세계에서 이 세계로 사람들이 넘어온다는 건데."

아르엘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또다시 이계의 침공이 시작되는 건가...? 안그래도 지금 전력이 많이 빠졌는데."

세계를 구한 일곱 여신 중 무려 셋이나 행방이 묘연해졌다.

불꽃의 여신은 명왕성의 괴물과 함께 소멸했고, 물의 여신과 대지의 여신도 제각기 모습을 감추듯 사라졌다.

대외적으로는 두 여신의 행방불명에 대해 단순히 '은거'라는 식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만약 그들이 진짜로 사라진 걸 알면 날뛰게 될 자들이 수두룩했다.

괴수의 위험은 계속 줄어들고 있는 시대.

만약 모든 괴수를 처치하고 난다면, 그 뒤에는 인간들과 이능력자만이 남게 된다.

그 때가 되면 '빌런'들이 활개를 칠 터.

"미치겠네, 정말."

"여왕님, 보고를."

금발의 중년 갑옷 기사가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프로페서'에게 샘플을 보냈습니다."

"잘했어요, 가웨인 경. 정말 다행이에요. 이계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어서."

"다 여왕님과 김펜릴 경의 덕분입니다."

스톤헨지에서 이형의 괴물과 싸우며, 그들은 괴물의 어깨 갑옷으로 추정되는 것을 뜯어내는데 성공했다.

"여왕님께서 직접 검을 휘두르셔서 갑주를 뜯어낼 수 있었습니다."

괴물은 큰 고통을 호소했고, 내부를 구성하던 마력이 급속도로 붕괴되며 결국 소멸했다.

너무나 쉽게 적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게 오히려 더 아르엘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세계에 평화가 찾아오는 줄 알았는데, 고작 1년 정도 지나니까 다시 이런 위협이 시작되는 군요."

"여왕님...."

"미안해요, 가웨인 경. 나라 안팎으로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데, 이런 일도 다시 발생하고 있어서 족므 넋두리를 해봤어요. 가웨인 경 아니면 이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잖아요."

"...얼마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저는 여왕님의 기사이기도 하지만."

"거기까지. 충분해요, 후후."

뒷말은 필요 없었다.

가웨인 경은 어느새 장성한 여왕을 보며 아버지같은 미소를 지었다.

"...일단 앞으로 고대 유적지나 다른 곳들을 철저히 관리해야겠어요. 원탁은...죄송해요."

"하하, 아닙니다."

현재.

가웨인 경은 더이상 원탁의 일원이 아니다.

원탁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세계를 구원하는데 원탁 그 누구도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했고, 원탁이라고 하는 자들 중 절반이 악인이었으니 사라지는 게 맞죠."

원탁은 소멸했다.

세계를 구한 건 누구보다도 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던 빌런이었고, 영웅이라고 칭송했던 자들은 실제로는 뒤에서 파렴치한 짓을 하고 있었다.

가웨인 경은 책임을 지고 원탁의 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구심점이 사라진 바람에 원탁은 유명무실해졌고, 사실상 해체 수순에 놓이게 되었다.

세계를 구한 영웅들은 사라졌는데, 세계에는 또다시 위험이 도사리기 시작했다.

"음...."

"왜 그러십니까, 김펜릴 경."

"아니, 그냥."

김펜릴은 이형의 괴수가 사라지고 난 곳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듯한 냄새가 나서."

"...혹시 정령들의 고향이라거나 그런 거 아닙니까?"

"응?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김펜릴은 꼬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테라는 이미 망해서 존재하지도 않는데. 넘어왔으면 마룡같은 녀석들이 넘어오지 않았겠냥?"

* * *

"신관님, 실패했습니다. 이계의 존재들이 상당히 저항이 거칩니다."

제복을 입은 작은 이들은 마찬가지로 작은 여인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여인은 가이아나의 복장과는 다른, 특이한 복장을 입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친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유를 밝혀내야 합니다. 야만인들의 땅에 왜 마력이 존재하는지."

"그걸 밝히기 위해 정령을 투입했으나...."

"그걸로는 부족해요. 세계를 넘어가면서 정령의 힘이 많이 약화되지 않았습니까? 최고의 특급 정령을 보냈는데, 그 힘이 절반은 커녕 1/3도 안 될 정도로 줄어서 적과 싸우게 되었어요. 이는 대지모신께서 바라는 결과가 아닙니다."

신관의 단호한 말에 사제들은 넙죽 조아렸다.

"대지모신께서는 승리를 바라고 계십니다. 누구보다도 강인한 힘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바라고 계셔요. 비록 저들이 땅의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저들을 쓰러뜨리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신관은 마력을 아주 작게 뭉쳤다.

"저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작은 것들부터 보내세요. 그리고 이전에 했던 것처럼 정보를 알아오는 겁니다. 저쪽 세상의 지식, 저쪽 세상의 무기, 저쪽 세상의 힘! 그것이 우리가 새로운 인류로 거듭날 수 있는 배경이 될 것입니다."

신관은 두 팔을 벌렸다. 로브가 뒤로 젖혀지고, 땅의 색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갈색의 머리칼이 부스스 아래로 떨어졌다.

"모든 인류가 작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축복받은 세상. 우리는 저쪽 세상에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저쪽 세상의 진실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번쩍.

신관의 눈이 분홍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가이아나의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오오...!"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이아나 왕국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테라의 모든 이들을 미소녀로 만드는 겁니다."

신관의 미소에 사제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손을 위로 뻗었다.

"모두가 아름답고 순수한 여아가 되는 세상. 그곳이야말로 대지모신이 바라는 세상."

"아아, 그렇습니다!"

"자료를 모아오세요. 장소는 유-럽이라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이 멋진 인간개종의 방법을 연구한 이들을 찾아오세요. 그들이 만약 죽어서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남긴 방법이라도 찾아오는 겁니다."

사제는 땅을 지팡이로 두드렸다.

지팡이는 마치 풍차의 날개를 형상화하듯, '卍'과 같은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우리는 테라의 인류를 개종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명의 가지가 만들어낸 바퀴보다 더 큰 자들은 전부 죽여 없애고,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의 몸속에는 '성장 호르몬'이라는 것을 제거하여 더 크게 자랄 가능성을 없애는 겁니다. 그리하여 백 년, 아니 수 백년이 지난 뒤의 테라에는...."

사제는 황홀한 미소를 지으며 두 팔로 스스로를 끌어안았다.

"미소년 미소녀만이 이 땅에 가득할 겁니다."

"신인류를 위하여."

가이아나 왕국의 중심.

누구도 모르는 사이, 가이아나 왕국은 아무도 모르게 바뀌어나가고 있었다.

"가이아나-치의 영광을."

"하일 히드라."

사제들은 신관을 향해 '히드라'라고 불렀다.

* * *

가이아나 왕국의 도시, 트로이스를 점령한 이후.

나는 트로이스의 수비대장을 협박하여 군사 기밀을 모조리 털었다.

지형지물의 이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아니다.

지형지물을 파악하면 좋기는 하지만, 어차피 압도적인 화력으로 전부 부숴버릴 거라서 지형의 이점을 살리는 공격은 그다지 필요 없었다.

청화단의 봉기에 좀 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조금은 그렇다.

청화단의 봉기는 가이아나 왕국의 참혹한 '선의철화' 작전이 기폭제가 되었고, 트로이스에는 순혈이 꽤 있었지만, 혼혈도 상당히 많았다.

자기 자신에게는 영향이 크게 없더라도, 자식을 가진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끔찍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청화단을 지지하기도 했다.

안그래도 가이아나 왕국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청화단의 봉기를 지지하거나 청화단에 직접 들어오기를 희망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입수한 군사 기밀 중 일부를 세간에 공개했다.

가이아나 왕국에 잡히면 군사 기밀 유출죄로 당연히 잡혀갈만한 행위였지만, 이 기밀이 공개됨에 따라 트로이스의 분위기는 혁명의 푸른 불꽃으로 더욱 활활 타오르게 되었다.

좋은 징조다.

하지만 내 '궁금증'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뉴시르죠 가스.'

아이들을 지하에 가두고 가스를 살포한다.

마치 어딘가의 그 행위를 연상케하는 짓이라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유럽의 빌런이 딱 이런 짓을 했는데.'

역사적으로도 그런 일이 있었고, 이것이 원작에서는 괴수화 가스라는 명목으로 가스가 살포되었다.

'어느 세상을 가더라도 비슷한 사고를 가진 사이코가 존재하는 건가?'

가이아나 왕국의 행위는 지구의 일과 너무 흡사했다.

이게 20년, 25년의 미래 지구가 아닌, 내가 아는 역사적 사건과 너무 비슷했다.

"누가 보면 나치인 줄 알겠어."

유대인이 혼혈인으로 바뀌면 딱 그 꼴이다.

순혈로 지속성인 사람들만 남기고 모조리 죽인다는 발상도 그렇지만, 혼혈인 자들에게도 마치 순현 지속성 사람들과 같은 모습과 행색이 되기를 강요하는 꼴도 짝 그 짝이다.

그래서 나는 찾고자 했다.

이 정신나간 발상이 누구의 대가리에서 나온 것인가.

만약 이게 신관이 순수하게 생각한 내용이라면....

"응?"

군사 기밀 중, 뭔가 다른 종이와는 다른 것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바로 꺼내서 살폈고,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맙소사."

못 읽겠다.

테라의 언어도 내 아바타가 자연스레 마력으로 읽어낼 수 있었지만, 이 익숙하면서도 이상한 문자는 읽을 수 없었다.

"알파벳이 왜 여기서 나와."

알파벳으로 쓴 문장.

그리고 옆에는 마치 해석을 하기 위한 듯한 해석표가 적혀있었다.

"이걸...."

해석할 필요는 없다.

화륵.

나는 종이를 불태운 뒤, 바로 로그아웃을 했다.

그리고 내 아바타에 저장된 화상 데이터를 이미지 파일로 만들었다.

"세상에."

나치가 테라에 숨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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