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889화 (889/1,497)

EP.889 [라노벨외전] 창천의 데스디나스 2권 006

2012년 평양이 폭발한 이래, 우리는 북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괴수들의 파도에 견디지 못하고 수도를 옮겨야 했습니다.

2020년 최초의 서울수복작전 실패 이후, 우리는 단 한 번도 서울을 되찾은 적이 없습니다.

....

그러나 그 작전의 이름만큼은 변치 않을 것이며,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서울을 되찾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13차 서울수복작전에는 우리의 세대에서 이루지 못한 숙원을 이루어줄,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라의 대들보가 될 인재들을 양성하는 훈련의 장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

히어로 아카데미 2학년 학부생 총 149명이 13개 길드의 지원 아래 서울의 괴수들과 전투를 벌이는 실전 경험을 쌓을 것이며, S급 히어로 <설화공주>의 참전에 따라 한강을 도하하여 강북까지 괴수를 퇴치하고자 합니다.

후방에서는 후진 양성의 장이 됨과 동시에, 최전방에서는 설화공주를 필두로 한 대대적인 괴수 소탕이 함께 진행될 것입니다.

...

그럼 지금부터 제 13차 서울수복작전을 개시합니다.

- 2025년 3월 1일 오전 9시, 서울수복작전 개시 선언문 중.

* * *

덜커덩!

트럭이 크게 솟구쳤다 내려앉았다. 내부 집기들은 무사하지만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엉덩방이를 찧어 고통을 호소했다.

"아저씨!!"

누리가 냅다 운전석을 향해 소리질렀다. 트레일러와 연결된 운전석 모니터에서 주변을 살피는 시안의 모습이 훤했다.

[미안. 그런데 가는 곳마다 시체인 걸 어떡해? 앞에서 장난아니게 쓸었나보다.]

"일단 선발대가 죽이고 보는 겁니다. 후발대가 괴수 사체를 처리하는 식이죠."

라온이 고속도로에 길게 늘어선 차량의 행렬을 가리켰다. 선두의 대형버스 위에 올라탄 백발의 마녀가 고속도로 펜스를 넘어오는 괴수들을 나오는 족족 얼음창을 내다 꽂았고, 그 사체의 일부가 울타리를 넘어 도로 안으로 들어와 굴러다녔다.

"아오, 진짜 빡치네."

누리는 헐거워진 안전벨트를 다시 채우고 시트를 바로잡았다. 시안이 렌트해 온 수송용 트럭은 급히 수배하느라 상태가 많이 불량해보였다. 괴수의 굳은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고, 외벽에 해당하는 차체는 스크래치가 심하게 나있었다.

"아저씨, 이게 최선이야? 그냥 협회에서 주는 최신형 받으면 안 됐어?"

"혹시 모르잖습니까. 협회에서 어디 몰래 카메라라도 설치했을지."

"...어, 그건 좀 그러네."

라온의 말에 누리가 소름끼친다는 듯 몸을 떨었다. 마주 앉아있던 하유준과 천봄이가 라온의 말에 반박했다.

"누님. 설마 협회에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래. 협회가 무슨 이유로 몰래 촬영을 한다거나 그러니? 협회에서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잖아."

[보호일수도 있고, 감시일수도 있죠. 만약에 그런게 실제로 있었다면 후자에 가깝지만.]

조수석에 앉아있던 유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번에도 조수석은 유나의 차지였다. 싸우려는 듯 시비를 거는 유나의 말투에 시안이 허허 웃으며 중재에 나섰다.

[오가는 길, 몸은 조금 불편해도 마음이 편하잖아. 다른 길드의 것을 빌리거나 아카데미의 버스에 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저씨. 벌써부터 스튜디오 주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누리는 실시간 중계중인 사이트의 댓글들을 간단히 요약해 시안에게 전달했다. 돈을 2천억 가까이 투자한다고 하더니 무슨 아직도 차를 안 샀냐, 정말로 자금이 제대로 운용되는 것이 맞냐, 돈으로 맨날 커피만 처마시는게 아니냐 등등. 라온도 그걸 보고 혀를 차며 아쉬워했다.

"꽃거지단? 점점 안좋은 말들만 늘어나는 듯 합니다."

"금전 사용에 인색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누님."

하유준이 라온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막대한 자본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오라클 스튜디오에서 동원한 차량이 렌트카라는 것에 선입견을 가지는 겁니다."

"그런가? 아저씨, 우리도 차 한대 사면 안 됨?"

[알아는 보는데 딱히 좋은 매물이 없어.]

"그럼 이걸 추천합니다."

하유준은 마도기어에서 카탈로그와 명함을 꺼내 운전석으로 던졌다. 마력으로 뭉쳐진 데이터를 캐치한 유나가 카탈로그를 확인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부 유성 차밖에 없는데요?]

[유나 너 차도 볼 줄 알아?]

[길드에서 운용하는 수송용 차량만 알아요. 공부했으니까.]

"오빠, 이거 머임? 왜 유성밖에 음슴?"

함께 카탈로그를 받은 누리가 하유준을 추궁했다. 카탈로그에는 누리가 말했던 것처럼 전부 유성모터스에서 판매하는 제품들, 또는 단종되어 중고로 나온 매물들 밖에 없었다. 하유준이 당황해 변명하기 직전, 시안이 누리에게 추궁했다.

[야. 나는 아저씨고 왜 유준 형님은 오빠냐?]

"응? 한 번 아저씨는 영원히 아저씨니까. 으히히!"

[와, 원통하다.]

한차례 농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하유준은 난감하게 웃으면서도 누리를 향해 당당히 말했다.

"제 가족이 유성모터스 직원입니다."

[오, 진짜요? 할인 됩니까?]

시안이 들뜬 목소리로 구매를 할 것 처럼 의사를 밝히자, 하유준이 물고기가 낚싯줄에 걸린 것처럼 두손 두발을 움직이며 유성의 수송용 트럭에 대해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럼요! 두 다리 건너 아는 지인도 할인됩니다. 매니저 님, 앞으로 신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을 누비게 될텐데 언제까지 자율주행차를 이용할 수는 없을 것 아닙니까? 이 기회에 최신형 모델로 한 대 뽑으시지요."

"유성의 차는 사는게 아닙니다."

라온이 하유준의 영업을 방해하고 나섰다. 하유준은 입꼬리를 어떻게든 들어올리며 유성모터스의 트럭에 대해 강변했다.

"무, 물론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라온 누님, '마도혁명' 이후로 새로운 공정을 도입하고 친환경 코어 자동차를 개발한 이후로...."

"오빠 유성 직원이야? 혹시 주식 유성에 꼴박했어?"

"그,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나중에 비교해보고 사던가 할게요. 유성 쪽 사게되면 유준씨한테 바로 얘기할 거고. 그보다 누리야, 어디로 갈 지 정했어?]

시안의 말에 누리는 침음성을 흘렸다. 협회는 시안 일행에게 세 구역 중 한 곳을 정해 소탕 작업을 하도록 선택권을 주었다.

"강남이랑 구로, 그리고 관악이었지?"

[응. 세 구역 중에 희망 지역에 우선 배치한다고 했어.]

[협회가 보는 눈 아래에서 움직이라는 거나 다름없지. 괜히 한강 도하 팀에 들어가서 A급 B급 상대하지 말고.]

협회는 시안 일행의 전력을 점검하고 후방이라 할 수 있는 세 구역을 제안했다. 구로, 관악, 강남-중에서도 서초. 한강을 기준으로 강 남쪽 방면에 출몰하는 괴수들은 D급이나 C급으로 분류된 괴수가 대부분이었다.

[봄이 씨랑 유준 형님 덕분에 전력이 늘었잖아. 그덕에 선택지가 늘어난 거지, 아니였으면 서울 들어가지도 못했을 걸?]

대외적으로는 B급인 김가온이 불참했기에, 협회는 누리를 필두로 라온, 하유준, 천봄이 네 명의 전력을 바탕으로 적절한 위치를 배정했다. 누리가 지도를 노려보며 고민하고 있자, 시안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슬쩍 말을 흘렸다.

[어딜가든 딱히 문제는 없는데....]

"구로 어때요?"

잠자코 있던 천봄이가 구로를 가리켰다. 시안이 핸들을 좌우로 흔들며 사체를 피해가며 물었다.

[뭐 특별한 이유라도?]

"별 건 없어요. 관악이랑 강남은 다른 길드에서 많이 신청할 것 같아서."

"구로는 상대적으로 메리트가 떨어지는 곳입니다. 관악과 강남은 C급 괴수도 많아서 효율이 좋지만, 구로는 상대적으로 D급밖에 없어서 본전도 못 건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독식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C급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닐테고."

"확실하게 C급이 넘쳐나는 두 곳과는 달리 구로는 이미 C급의 씨가 마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봄이 누님."

천봄이와 하유준이 구로행의 장단점을 두고 토론하기 시작했다. 누리는 이해할 수 없는 정보의 폭격에 눈을 좌우로 굴렸고, 잠잠히 있던 라온이 입을 열었다.

"저희만 가면 위험할 수도 있기는 합니다."

라온은 영 탐탁찮은 얼굴로 소수인원에 따른 위험성을 어필했다. 시안은 라온을 슬쩍 보고는 담담히 말했다.

[나는 라온이가 찬성하면 구로.]

"뭐? 아저씨! 내 의견은?! 우리 팀 주인공은 나잖아! 나보고 정하라며?!"

[오늘은 라온이 의견이 더 잘 맞을 것 같은 날이라서.]

"......."

누리가 혈압이 올라 뒷목을 잡는 사이, 라온은 한차례 숨을 고르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언젠가 마주해야할 곳이었으니."

[그래? ...알겠어. 금방 도착할 것 같으니까 한숨 푹 자. 다들.]

시안이 지휘 본부와 연락을 위해 잠시 연락을 끊었다. 라온은 구로에 대해 신나게 떠드는 누리와 천봄이를 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구로.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 동시에, 제 1차 서울수복작전에서 코어가 깨졌던 바로 그 곳.

저도 모르게 덜덜 떨리는 손에 라온은 어떻게든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그러면 저희는 구로로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설화공주 님께도 전달하겠습니다.]

시안은 협회의 파견 히어로와 통화를 마치고 구로로 가는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길게 이어지는 차량의 행렬에서 이탈하자 두 개의 트럭이 시안의 뒤를 따랐다.

"어딘지 혹시 보여?"

"<메그레즈>. 유성의 산하 길드에요. 그리고 또 하나는...."

청색으로 칠한 트럭의 앞에는 소나무 모양의 엠블럼이 박혀있다. 유나는 뒤따르는 트럭의 정체를 금방 파악해냈다.

"<청송>. 정부에서 운영하는 헌터 길드에요."

"아하. 보호하려고 보디가드들이 온 거구만."

"감시의 의도도 있을 것 같아요."

유나가 계속 걱정을 하자, 시안은 오른손을 슬쩍 들었다가 아쉬움에 혀를 차며 시트를 팡팡 두드렸다.

"괜찮아. 오히려 좋은 거지. 쟤들이 알아서 보호해준다고 하잖아."

"그럼 다행이지만...."

유나가 아직 마이크가 꺼져있는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뒤에 두명도, 정말 괜찮은 거겠죠?"

"유나가 보기에는 어때?"

시안이 오히려 되물었다. 유나는 께름칙한 얼굴로 속내를 밝혔다.

"둘 다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요."

"...둘 다?"

"천봄이 씨도 하유준 씨도 믿기 어려운 사람들이에요."

"유나가 그런 말 하니까 조금 의외인데."

유나는 볼을 부풀리며 잠시 불만을 표했다가, 이어진 시안의 말을 듣고 곧장 표정을 풀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시안은 핸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천봄이 씨는 헐리우드 진출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스튜디오에 들어오기를 원한다고 하지만 글쎄. 하유준 씨도 자기는 길드 소속 안 되어있다고 하지만 가족이 길드가 있을 수 있잖아. 의심스러운 게 한 두가지가 아니지."

"근데 두 분은 시안 님이 뽑아오신 분이잖아요."

"그건 그렇지. 사실 말이야...."

시안이 유나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참에 확실히 즈려밟고 가러고, 일부러 꿍꿍이 제일 심해 보이는 사람 둘로 뽑았어."

"......악취미. 그래서 뭘 즈려밟으시려고요?"

"우리 유나가 걸을 레드 카펫 가로막는 승냥이들? 흐흐."

* * *

"타깃이 방향을 틀었습니다. 예상외로 구로로 향하는 듯 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든 구역에 부하들을 배치해두었습니다. 문제는 없습니다."

"예, 밤이 되면 조속히 작전을 실행하겠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미 저희 측 요인이 들어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뚜. 뚜. 뚜.

* * *

끼이익.

차가 무너진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에 멈춰섰다. 시안과 유나는 차에서 내렸고, 곧 뒷편 트레일러에 타고 있던 네 명도 따라서 주차장에 내렸다.

"사진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이정도로 심할 줄이야."

유나는 파괴된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며 침울해졌다. 과거 십억은 족히 넘었을 아파트들은 기울어지고 무너져 기존의 형체조차 제대로 남지 않았다. 그나마 반절 정도의 건물은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폐허나 다름 없었다.

"누적된 전투의 피로가 땅에 쌓인 거야. 땅을 탈환해도 재건할 틈도 없이 다시 괴수들에게 빼앗기고 그랬겠지. 전세계 어딜가도 괴수에게 점령당한 도시가 다 그래."

시안은 하유준에게 트레일러 속 짐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그러면 유준 형님. 우리 같이 땀 좀 흘리면서 텐트 좀 쳐볼까요?"

"......하아."

하유준은 한숨을 푹 내쉬며 구원의 손길을 찾았으나, 불행히도 일행 중 남자는 자신과 시안 둘 뿐이었다. 시안은 싱글벙글 웃으며 짐속에서 천막 설치용 키트를 꺼내들었다.

"막사 꾸리는 것 까지는 좋은데...."

"남성용이랑 여성용 따로 텐트를 치고.... 어, 샤워 부스도 있네? 와, 비누까지 있어? ...흐흐흐."

설명서를 읽으며 실실 웃는 시안에 하유준은 등에서 식은 땀이 다 났다.

약 30분 뒤.

아파트 주차장에 제법 그럴듯한 임시 베이스 캠프가 구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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