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900화 (900/1,497)

EP.900 [라노벨외전] 창천의 데스디나스 2권 017

간부는 괴인을 만들고, 괴인은 괴수를 만든다.

이미 서울의 지하도를 한 번 크게 정리를 했음에고 괴수가 튀어나온다는 것은 '괴수를 만드는 누군가'가 있음을 나타내는 방증이었다.

"1번팀! 2분간 휴식! 2번팀은 10초 뒤 인게이지!"

시안은 승강장 중앙 부근에서 양쪽으로 소리를 질렀다. 히어로와 헌터가 혼합된 1번 팀이 몰려든 괴수를 저지한 사이, 반대편의 2번 팀-데스디나스의 이능력자들이 마력을 일으켰다.

"옵니다!"

시안의 옆에있던 유나가 경고하자마자, 어둠 속에서 늑대들이 뛰쳐나와 일행을 덮쳤다. 누리와 하유준이 선로에 뛰어 내려가 직접 맞상대하고, 라온은 승강장 위에서 올라오려는 늑대 괴수들을 창대로 후려쳤다.

"라온 언니! 미안!"

집중력이 떨어진 누리가 스쳐지나간 괴수를 막지 못했고, 라온이 반대쪽 승강장으로 뛰어 계단을 올라가려는 괴수를 향해 투창했다.

끼이익!

"후우, 후우!"

"나이스!"

최초의 열일곱 늑대 괴수의 습격 이후, 괴수들의 양과 질은 점점 더 늘어만 갔다. 슬슬 이 전력으로 버겁다 싶었던 순간, 가장 먼저 소모된 마력을 충전한 헌터가 선로를

"야, 금발! 나도 간다!"

임시로 1번팀으로 편성된 헌터가 시안을 부르며 지원을 나서려 하자, 시안은 손을 들어 제지하고는 1번팀이 지키는 구역을 가리켰다.

"이쪽은 충분하니까 그쪽을 막아주세요! 곧 옵니다!"

시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1번팀의 방향에서 괴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헌터들은 제각기 무기를 들고 괴수들을 맞딱뜨렸고, 2팀은 헉헉대며 괴수를 모두 처치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목을 노려요! 그 쪽이 약한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 크윽!"

생전 처음 보는 괴수의 약점을 시안이 어떻게 눈치챘는지 의문도 잠시, 1번팀의 이능력자들은 아가리를 벌리며 뛰어오는 늑대 괴수들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2팀 휴식...아니! 승강장으로 올라와!"

마력 재충전을 명령하려던 시안이 귀를 쫑긋 세우며 누리와 하유준에게 이탈을 명령했다. 누리와 하유준은 곧장 좌우로 갈라져 승강장 위로 올라갔고, 시안이 선로에 뛰어내렸다.

"유나야! 빨간색!"

"네!"

코트 안주머니에서 총을 꺼낸 시안은 유나가 던진 탄환을 손으로 낚아채 장전했다. 곁눈질로 확인한 누리와 하유준은 소모한 마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크르르!

방금 전보다 더 많은 늑대 괴수들이 선로 끝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유준이 몸을 일으켜 응전하려던 찰나, 그보다 빨리 시안이 방아쇠를 당겼다.

□□□□□□□□!!

승강장을 밝힌 광탄보다 더 밝은 빛이 총구에서 터졌다. 천둥 소리를 내며 쏘아진 탄환은 붉은 혜성처럼 늑대 괴수들을 일거에 쓸어버렸다.

푸쉬이이.

시안은 곧장 덮개를 열어 마력을 잃은 탄환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히어로와 헌터들이 곁눈질로 시안의 총을 훔쳐봤지만, 괴수들은 그 잠깐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젠장, 코어도 안 주는 것들이!"

일반 괴수와는 달리 괴인이 생산하는 괴수는 코어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오직 인류를 전멸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악의의 산물인 동시에, 그 괴수를 생산하는 괴인은 이미 인류를 저버린 배신자며 괴물이다.

"아저씨! 그냥 직접 잡으러 가자!"

"그래! 언제까지 막고만 있을 거야?!"

계속된 소모전에 양쪽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시안의 지휘는 군더더기없이 효율적이었으나, 쌓여만가는 정신적인 피로감과 괴인 체포에 대한 욕구는 떨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으아아! 막으나 돌격하나 다 똑같이 괴수들 잡는 건데!"

결국 불만이 폭발했다. 붉은 스카프를 한 C급 헌터 하나가 지하도의 안쪽으로 달렸다.

"잠깐! 가지...젠장!"

시안이 목청을 높여 그를 불러세웠으나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한 명이 나서자 시안의 눈치를 보던 이들도 질 수 없다는 듯 지하도 안 쪽으로 달렸다.

혹시나 저 인간이 100억을 먼저 따내려하지 않을까. 시안은 돈으로 헌터들의 참전을 독려했지만, 그 행동이 당장에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미치겠군."

결국 대림역의 승강장에는 시안의 팀만이 덜렁 남아버렸다. 천만다행으로 재정비를 할 시간이 주어져, 시안은 승강장 한 쪽에 팀원들을 모았다.

"유나야, 괴인들 반응 지금 새로 갱신됐어?"

"네. 행방이 묘연한 한 명 말고는 전부 19명이에요."

"함께 움직이는 자들은 없습니다. 전부 제각기 흩어졌습니다."

시안은 지도에 떠오른 괴인들의 반응을 다시금 확인했다.

남산타워에 남아 움직이지 않는 괴인 하나를 제외하면 대부분 서울 외곽을 향해 움직이고 있고, 그 중 하나가 이곳 구로를 지나 서울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분명 지하에서 움직이는 것 같기는 한데."

시안은 구로의 괴인이 움직이는 루트를 확인할 때마다 혼란에 빠졌다. 도망치는 듯 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은 최소한 지상에서 움직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지하도를 통해 역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는 걸까? 하지만 이미 역마다 히어로들은 자리를 잡은지 오래였다.

시안의 팀이 구로 근처의 역에 자리를 잡은 이유도 '혹시나 지하를 통해 도망칠 수 있는 괴인'을 체포하기 위함이었다. 아직까지는 허탕에 괴수만 주구장창 잡았지만.

"시안. 만약에 말입니다."

라온이 납치당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제가 납치당했던 그 공간은 대합실이나 비상 대피소 같은게 아니었습니다. 분명 지하도 어딘가에 '따로 확장된 듯한' 공간이었습니다."

"...빌런들이 지하도에 땅굴을 팠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네."

하유준이 팔뚝의 긁힌 상처를 붕대로 감으며 라온의 가설을 뒷받침했다.

"이능력자 중에 지하 벙커 만드는 사람도 있잖아. 빌런이라고 오죽하겠어? 그들도 예전에는 서울에서 살았던 사람들인데, 마냥 역에서 노숙하듯 지내지는 않았을 거 아냐."

"지하에 따로 살아갈 공간을 만들었다...?"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하도 너머를 주시했다. 기척은 더이상 괴수가 생성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시안은 마도기어를 두드려 한창 서울 전역을 돌아다니며 범람하는 괴수들을 제압하고 있을 석하랑을 호출했다.

치직. 치지직.

지하에 있어서 그런지 석하랑과의 연결을 잘 닿지 않았다.

"중앙에 연락해야 하는데."

"아저씨 괜히 긁어 부스럼 아님? 더 혼란만 커질 걸?"

"그리고 역으로 생각해야지. 우리가 발견하면 우리가 괴인 잡을 확률이 더 커지는 거잖아? 원금도 아끼고."

시안은 짜증에 머리를 벅벅 긁으며 승강장 안쪽을 가리켰다.

"그럼 일단 가보자. 정말로 땅굴로 도망치려고 하는 건지."

시안의 팀은 조심스럽게 승강장에서 내려가 지하도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냐아아앙.

시안의 팀이 떠난 지하 승강장. 작고 검은 고양이 한마리가 유유히 그 뒤를 쫓았다.

* * *

<그 시각, 남산타워.>

"하아, 하아!"

히어로들은 비상계단을 오르며 벅찬 숨을 골라쉬었다. 열아홉 괴인 중 남산타워에서 움직이지 않던 괴인을 잡기 위해 나선 것 까지는 좋았으나, 졸지에 히어로들은 산을 등반하고 꼭대기까지 향하는 비상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아래층에는 없었다. 혹시나 숨어있을까 싶어 건물을 쥐잡듯이 살폈지만 괴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전망대 층이다!"

선두에 있던 히어로가 전망대 층의 문을 어깨로 열어젖혔다. 넘어질뻔한 히어로를 뒤에서 받쳐준 헌터가 유리창 끝에 서있는 거한을 보고 흠칫 놀랐다.

"뭐, 뭐야?"

"이봐! 혹시 벌써 찾았어?!"

"......."

거한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서울을 내려다보는게 목적이라는 듯, 묵묵히 유리창 너머로 서울의 저녁 풍경을 두 눈에 담고 있었다.

"서울은 여전히 아름답군."

"뭐?"

미친 놈인가. 히어로가 거한의 정신 상태에 대해 의심하던 순간, 헌터가 거한의 눈에서 흐른 귀기를 눈치채고 칼을 빼들었다.

"괴인이다!"

본래라면 100억을 독식하고자 홀로 체포해야 했지만, 헌터는 굳이 소리를 질러 원군을 불렀다. 윗층으로 올라가려던 이들이 모두 헌터가 있는 전망대 층으로 달려왔고, 그들은 거인을 포위하듯 에워쌌다.

여전히 거한은 그들을 향해 등을 돌린 채, 서울의 광경을 보며 우수에 잠겼다.

"5년 넘게 햇빛을 보지 못했는데, 설마 이렇게 다시금 보게 될 줄이야."

"......이 목소리는?"

거한을 둘러싼 무리에서 우사, 박형태가 앞으로 나서며 몸을 떨었다. 거한도 박형태의 목소리가 귀에 익다는 듯 몸을 돌렸다.

"반갑네, 반가워. 대격변 이후로 처음인가?"

"......젠장!"

박형태가 지팡이를 들어 다짜고짜 물로 된 화살을 만들어 쏘았다. A급 히어로의 전력이 담긴 물화살은 강철 합판조차 뚫을 위력이었으나, 거한의 몸에 닿는 순간 튕겨나가며 바닥에 처박히고 유리창을 꿰뚫었다.

"후후, 정말 반갑단 말이야. ...돌아다니기 귀찮아서 그냥 위로 올라왔거든."

남자는 낡고 찢어진 중절모를 꺼내 머리에 썼다. 박형태는 숨을 헛들이키며 마도기어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당장 내려가! 하산해! 남산타워에서 물러서!"

"죽이러 다니기 귀찮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주 잘 됐다 이 말이다!"

거한의 주먹이 바닥을 내리찍었다.

곧, 남산타워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구구궁.

"꺄악?!"

갑작스런 지진에 유나가 놀라고, 일행은 몸을 낮춰 경계했다. 다행히 지반이 무너질만큼의 지진은 아니었고, 시안은 유나를 끌어안았던 왼팔을 풀고 헛기침을 했다.

"크흠. 어디서 괴인을 발견한 모양이야. 제법 멀리서."

시안이 마도기어를 누르며 정보를 받으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마도기어의 통신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정도로 지하도 깊숙한 곳까지 내려왔다. 다른 이능력자들이 괴인과 전투를 시작했다는 말에 누리가 자리에 멈춰 시안에게 물었다.

"아저씨. 진짜로 괴인잡으면 100억 줄 생각이야?"

"...또 왜."

"그냥 공수표인 것 같아서. 이번에도 말실수 한 것 같기도 하고."

발걸음을 멈춘 시안이 한숨을 푹 내쉬고 변명했다.

"...일단 한 번 내뱉었으니 지킬 건 지켜야지. 그리고 이번에 눈도장 확실하게 찍어서, 그걸로 확실하게 이득 좀 보려고. 구체적으로는...."

시안이 유나를 곁눈질하며 선언했다.

"이번 서울에서의 일을 바탕으로 길드 등록 신청할 거야. 진짜로. 라온, 아직 멀었어?"

"조금 더 가야할 것 같습니다."

"그럼 가면서 얘기하자."

시안은 오라클이 남기고 떠난 자금을 활용할 방안에 대해 간략히 언급했다.

외국인인 자신이 나라 전반에 좋은 인상을 남기려면 그만큼 거대한 퍼포먼스가 필요했다.

괴인을 체포했어도 그 실적이 전부 없던 일이 되어버렸으니, 이참에 아예 빼도박도 못하게 일을 크게 저질러서 주목을 끌자.

파견나온 타국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2천억을 쾌척하는 남자-시안은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자기 돈은 아니었지만.

"그러니까 어그로 끌려고 그 돈을 던진 거다?"

"...펜릴의 괴인들이면 값어치가 충분해."

대중적으로는 간부의 괴인을 체포해도 그 오염된 코어를 활용할 방법이 없다고는 허나 시안은 달랐다. 앞으로 있을 일을 생각하면 '연구 대상'은 스무 개로도 부족했다.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으나, 일행은 나름 시안의 말에 대해 수긍하는-또는 애써 수긍하는 척이라도 해주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펜릴의 괴인들이 서울에서 도망쳤을 가능성을-"

"여깁니다."

라온이 벽면에 가려진 벽돌을 가리켰다. 유나가 빛을 비추자 주변 벽과는 확연히 다른 색이 눈에 들어왔다. 라온이 하유준에게 눈짓을 하고, 둘은 벽 아래쪽에 작게 난 홈에 손을 집어넣었다.

드르르륵.

육중한 무게의 벽이 아주 조금이나마 밀렸다. 성인 남자도 간신히 드나들 것만 같은 협소한 공간에 하유준이 고개를 저었다.

"이거 나는 못 들어가겠는데?"

"...일단 찾았다는 걸로 만족하죠. 휴우."

환풍구라고 하기에는 몹시 좁은 동굴에 시안은 몸을 낮췄다. 시안, 유나, 라온, 누리. 넷이라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만한 너비였다.

"유준 형님은 바로 지상으로 올라가서 중앙에 연락을 해주십시오. 지하도 구석구석을 살펴서 이런 비밀통로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쪽으로 괴인이 도망칠 수도 있다고요."

"알았다. ...너 근데 이 안으로 들어갈 거냐?"

코트를 최대한 몸에 밀착시키던 시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낮췄다. 금방이라도 들어가려 하는 행동에 라온과 누리가 앞을 가로막았다.

"이 앞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데 아저씨가 먼저 가서 어쩌려고?!"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원래 전위는 저희의 역할이잖습니까."

"어? 으, 응. 그래."

확고한 라온과 누리의 의지에 시안은 어영부영 그들에게 순서를 양보했다. 누리와 라온이 자신이 선두에 서겠다며 티격태격하던 사이, 유나가 슬쩍 시안에게 다가와 귀에 속삭였다.

"시안 님이 맨 뒤에서 들어와주세요."

"왜?"

"혹시나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도망치셔야 하니까요."

"......."

살짝 울컥했지만, 시안은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총을 제외하면 사실상 넷 중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 시안 자신이라는 것은 본인이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므로.

결국 즉석에서 가위바위보를 통해 승리한 누리가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라온, 유나, 시안이 엎드려 비밀통로를 기어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