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60 2부 9장 17 ■■는 애국이다
총 3억 무이자 대출.
만기 상환 30년.
중도상환수수료 없음.
다른 곳도 아닌, '유성 그룹' 주관.
서울 주택에 대한 관심들은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냐?!"
"씨발, 언론 엿 먹여? 최소한 발표하기 1시간 전이라도 찌라시 보내놓아야 할 거 아니야?!"
"팀장님, 당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언론홍보팀에서도 모르고 있던 모양입니다."
"그게 말이 돼?!"
"그, 지휘관이랑 연계되어 있는 내용이라서 그런지...."
극비.
그 누구도 모르게 진행된 프로젝트에 모두가 당했다.
누군가 알고 있던 이들이 있다면 진작에 3억이라는 돈을 어떻게든 준비해서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미리 유성그룹의 은행 창구에서 대기를 하다가 소식이 들리자마자 바로 3억까지 당겼을 것이다.
당장 3억이라는 돈을 현금이든 뭐든 가지고 있는 이들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바로 유성 그룹의 홈페이지를 통해 청약을 신청했고, 자신이 살았던 지역이나 살고 싶은 지역을 선택하느라 혈안이 되어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코어를 판매하여 벼락부자가 된 헌터들이었다.
현금 3억이라는 돈이 뉘집 개이름도 아니고,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돈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B급 괴수 하나만 잡아도 인당 1억은 쉽게 떨어지는 괴수 시대에서 헌터는 그 어떤 직업보다도 각광받는 직업이었다.
더군다나 코어웨폰이 발달함에 따라, 능력이 없는 일반인도 장비만 잘 갖추고 괴수를 상대로 무기를 휘두를 용기가 있다면 코어를 벌어 먹고살 수 있다.
누군가가 그러더라.
막노동 돌아가듯 코어판에서 일 년만 쉬지 않고 벌면 1억은 금방 당긴다고.
이미 괴수 시대가 25년이나 된 만큼, 괴수를 통해 한 몫 단단히 챙긴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야, 너 나랑 같이 서울가자. 응?"
"장난해? 내가 1억이 어디있어? 당장 내일 먹고 살 돈도 없는데."
"뭐?"
"신서울이든 어디든 현금 1억이라도 당장 꺼낼 수 있는 사람이 너처럼 많은 줄 알아? 100명 중에 90명은 안 된다고!! 나는 헌터도 헌터 관련 업종도 아니야! 그냥 경리가 어떻게 1억을 모으겠어!!"
누군들 서울에 살고 싶어하지 않으랴.
하지만 결국 서울에 살 수 없는 건 월급 300만원으로도 평생 노동을 해야 간신히 얻을 수 있는 엄청난 집값 때문이었다.
"너희 회사 괴수 사체 처리업체 아니냐? 월급 센 거 아니었어?"
"사장님은 코어엔진 자동차를 타고 다녀도, 나는 BMW거든?!"
"BMW 타고 다니면 제법 잘 사는 거 아니냐?"
"바이크, 메트로, 워크 등신아!!"
하지만 시대는 대 마도시대.
"이 개새끼, 지가 한 달에 오천만원 가까이 번다고 남들도 잘 버는 줄 알아! 자존심 상해서 말 안하려고 했는데, 그게 내 2년 연봉이라고!"
"어, 미, 미안...."
기존 정보화 시대에서 코어가 세계의 새로운 에너지자원으로 대체된 시대에서는 괴수가 새로운 먹거리로 탈바꿈했다.
"나, 나는 다들 나처럼 잘 벌고 사는 줄 알았어. 코어 관련업종에서 일하면 돈을 잘 버니까...."
"그건 너같이 진짜 헌터들이나 관련자들이나 그렇지."
헌터나 공대와 같이 괴수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집단.
그들로부터 받은 괴수의 사체를 전문적으로 해체하는 집단.
헌터와 해체업자들이 쓰는 전문 공구를 만드는 집단.
헌터들이 가져온 코어와 사체를 처분하고 이를 가공하는 집단.
"그리고 설령 잘 번다고 해도, 당장 억 단위 돈을 어디서 가져올 수 있어?"
그 외에도 정말 많은 이들이 괴수와 코어 산업을 통해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고, 시대는 괴수사태 이전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최소 1억.
"안 돼. 그만큼 돈이 없어."
"유성에서 대출해준다잖아. 그거 신청해보자."
"신청한다고 다 되겠냐? 그보다 너, 아까부터 왜 자꾸 나랑 같이 가자고 하는 거야?"
너무나도 큰 돈이지만, 누군가가 돈을 빌려준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1억을 30년 동안 갚는다고 계산해도, 이자율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에 월급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정도더라.
"무이자라잖아. 안 갚으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계산기 두드려보니까 이 정도는 가능할 것 같은데?"
"뭐, 안 될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런데 그게 무이자다?
유성 그룹에서 직접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사람들은 깨달았다.
"가자. 이거, 지금이 기회야. 유성에서 지휘관이랑 연계해서 파격 세일하는 거라고."
"......하긴, 지금 안 들어가면 나중에 또 올라간 집값만 바라보게 되겠지."
이것은 유성 그룹이 나서서 서울을 재건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을.
"일단 가보자, 은행. 유성 대출이 아니더라도 다른 은행 신용대출이라도 하면 되지 않겠어?"
신서울로, 다른 지방으로 떠났던 이들에게 유성이 과감한 투자를 보이는 걸로 서울 시민들을 모집하고자 한다는 것을!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된다."
"...우리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네."
은행들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소식을 은행에서 듣게 된 이들도 마찬가지.
"대출! 나 대출할래!"
"이봐요! 왜 아까부터 대기번호가 안 줄어드는 건데!?"
"저 대출 좀 내고요!"
"당신은 은행원이잖아!"
"나도 서울 살고 싶은 시민이야!"
은행 앞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기 시작했다.
"혹시, 돈이 필요하지 않으신가?"
이를 노리고 사채업자들이 은근히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유성에서 무이자로 해준다는데 뭐하러?"
"사채써서 장기 털릴 바에는 유성한테 월급이랑 개인정보 털리는 게 더 낫지."
무이자.
그 엄청난 말에 모두가 비명을 질러야만했다.
안그래도 나라가 뒤숭숭한 와중에 시장 경제를 한 순간에 폭발시켜버린 유성, 그리고 은유하의 발표에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인간은 막연한 이익보다 눈앞에서 실현 가능한 이익에 시선이 더 가기 마련.
그게 한옥이든 뭐든, 코어로 만들어졌든 뭐든, 일단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과 빌릴 수 있는 돈을 합해 서울에 집을 살 수 있다면 누구나 다 도전하기 마련이다.
부동산 불패? 역세권?
아니다.
"마법소녀들이 여의도에서 살기로 했다고?"
"S급이 5명이잖아. 그러면 최소 한 명은 서울에서 상주하고 있겠지?"
"역세권이 다 뭐냐! 우리 집 앞에는 히어로가 산다!"
S급들이 서울에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지휘관이 서울에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괴수의 위협을 받는 시대.
만약 지휘관이 강원도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면, 모든 시민들은 강원도를 향해 차를 몰고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지휘관은 서울을 선택했다.
여의도라는 섬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며 터를 잡았다.
"다들, 난리네...."
"당연하지. 누가 신서울같은 곳에서 살고 싶어하겠어? 다 광검이 신서울 살았으니까 그 좁은 곳에서 살았던 거지."
"어, 잠깐만! TV에서 또 은유하가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은유하에게로 집중되었다.
마치 이 나라의 혼란을 가져온 것에 만족스러운 듯, 그녀는 아주 짧은 큥튜브 영상으로 나타나 입을 열었다.
-청약에 특약이 빠져서야 되겠어요? 망설이는 분들을 위한 아주 특별한 기회! 영등포구에는 아파트 단지를 새로 지을 겁니다. 누구에게 기회가 있느냐? 바로, 신혼부부만을 위한 특별 청약.
"!!"
-최근 2년 안에 결혼한 신혼 부부, 또는 지금을 기점으로 6개월 이내에 혼인할 예정인 부부에 한하여, 이분들만을 위한 특별청약을 따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따라해보세요. 모두....
삑.
영상이 끝났다.
뉴스는 끝났다.
은유하가 뭔가 말하려고 한 듯 했지만, 패널들은 굳은 얼굴로 은유하가 말한 지역의 위성 사진 자료로 긴밀한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서울하면 빠져서는 안 될 것 같은, 이십여층에 이르는 고층 아파트 단지.
신서울에서 저런 아파트를 사려면, 최소 20억이라는 돈이 필요하리라.
-에...이것도 설마 3억이겠습니까?
-3억인, 것, 같네요. 허허....
패널들조차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은행에 있던 이들은 하나 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 이거 진짜 놓치면 망하는...."
"야. 나랑 같이 구청가자."
"......이런 프로포즈라니, 최악이야."
"그래서, 싫어?"
"...누가 싫대♥"
하나 둘 구청으로 떠나는 남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TV에서는 짤렸지만 큥튜브에서는 은유하의 뒷 말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모두, 잊지말고 따라하세요. 하나, 둘, 셋-
* * *
7월 4일 오후 3시. 여의도 '클램하우스'.
"섹스는 애국이다. 라."
은유하가 던진 폭탄에 나라가 뒤집어졌다.
서울을 수복했지만, 서울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던 이들도 서울에 관심을 가질 만큼 상황은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단순히 게임 속에서 굳이 뭐하러 이렇게 하느냐라고 묻는다면, 서울 시민들의 수에 따라 앞으로의 전개나 게임의 난이도가 상당히 달라진다고 답하리라.
서울은 마치 어떤 곳의 최후의 '성역'과도 같은 곳이다.
무한히 몰려드는 괴수들을 상대로 서울은 지휘관이 타고 올라갈 우주선이 출발하는 장소 중 하나이며, 서울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최후의 일전이 더 쉬워진다.
더욱이, 얼마나 많은 서울 시민들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히로인에 대한 호감도도 달라지게 된다.
당장 은유하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하루 아침에 수십만 명에 이르는 차용인을 만들지 않았는가?
정작 당사자는 서울의 코어로 무이자는 커녕 돈을 퍼줘도 될 만큼 막대한 이득을 얻었으나, 사람들은 그것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
-에.... 서울에서 벌어들인 코어에 대해 우리가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강남에 있는 집이 3억이에요! 3억! 50평 아파트가 3억이란 말입니다!
"역시 모든 건 돈으로 해결하는 게 정답이지. 음."
[그렇죠? 지금 신혼특약 거니까 혼인신고서 마구 날아들고 있어요. 그게 진짜 혼인인지 아닌지는 뭐....]
"그러다가 서로 눈맞고 그러는 거지."
[뭐, 보험은 만들어놔야겠네요. 결혼 유지 못하면 쫓아내는 식으로. 아니면...지휘관 님, 이건 어때요?]
"뭔데?"
[서울에서 아이 낳으면 일인당 양육비 이천만원씩 지원? 세 자녀 출산 시 최대 오천만원? 너무 좀 그런가?]
"......회장님."
나는 그저 한 마디만 할 뿐.
"자녀를 서울에서 20년 동안 키우면 대출금 전액 상환 해준다고 해. 돈은 내가 코어로 미리 대금을 지불하도록 하지."
섹스는, 애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