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08 2부(?) 10장 21
202'1'년, 지구 어딘가.
"아아,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구원 이후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남자, 이기우입니다. 유하."
청년, 기우는 마도기어에 부착된 카메라를 향해 인사했다.
"오늘도 열심히 전 세계를 누비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러시아에 있었죠? 이야, 고위 귀족 가문의 영지는 정말 뚫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호수 위에 있는 성 사진은 건졌잖아요? 자세한 건 오늘 새벽에 올린 영상을 봐주십쇼."
카메라 너머에는 그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청자가 그가 오늘 진행할 방송을 기다리고 있었고, 기우는 다소 착잡한 얼굴로 자신이 보여줄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오늘 제가 둘러볼 곳은 바로 중국, 중국 중간에 있는 허페이 시입니다. 뜬금없이 왜 중국이냐고요? 그거야 오늘 제가 갈 곳이 바로 '주요 격전지' 중 하나기 때문입니다."
기우는 카메라를 강변 방향으로 돌렸다.
"피닉스가 정말 목숨 걸고 싸웠던 곳 중 하나가 이 근방에 있습니다, 여러분."
확실히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넓은 평야와 바다처럼 보이는 호수의 광경 자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의 웅대함을 느끼게 했다.
"부진장강곤곤래라니. 여기 장강 아닙니다. 장강보다는 조금 북쪽인데, 삼국지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듣자마자 어딘지 아실 겁니다. 합비라고. 네. 장료가 지켰다던 거기 맞아요. 그 근처에 지금 나와 있습니다."
기우는 주변을 살폈다.
"아직 근처에 저 잡으러 온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니 좀 더 보여드려도 되겠군요. 지난번에 숲에서 자란 나무의 종류를 보고 제가 어디에 있는지 맞힌 분이 있었을 때, 저 실시간으로 도청당하나 싶었다니까요? 정말. 농담은 자제해주십시오. 저 그러다 인체의 신비전에 걸릴...아, 이건 농담입니다."
마도기어의 신호는 위성을 통해 한국으로 직접 송출되고 있지만, 혹시나 중간에 신호가 공안에 잡힌다면 곤혹을 면치 못할 것이다.
"미리 이야기합니다. 저는 절대 자살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평화를 되찾았는데 자살할 리가 없잖아요. 기껏 이능력 각성도 했는데. 그래도 여기는 관리구역이니까 조심하도록 할게요."
그도 그럴 게, 이곳은 중국 내에서 철저하게 관리되는 지역 중 하나니까.
"여러분들, 제가 지금까지 다녀간 곳이 어디 어디였는지 다 기억하시나요?"
-대전!
-부산!
-평양!
-런던!
-인도!
그외 기타 등등.
"네, 맞습니다. 저는 피닉스가 다녀갔던 곳을 집중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죠. 타지마할 같은 경우에도 예전부터 관광명소였지만 '대 갸루라 전'이후로 더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죠. 혹시 아십니까? 타지마할 근처에 구형 DVD가 판매되고 있는데, 그거 구매하지 마세요. 큰일 납니다."
기우는 '구원' 이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궁금해할 곳을 촬영하여 세상에 알렸다.
"붕괴된 달이요? 저도 가보고 싶죠. 근데 거기는 청화단에서 관리하는 곳이니까, 나중에 일반인 공개 되면 그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여행 P튜버들은 국가를 정해서 그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자신이 여행을 가는 곳 자체를 보여주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
"그래도 평양은 방사능 정리되면 한번 가보고 싶어지기는 하네요. 거기, 방사능에 영향받지 않는 X로이드들이 지금 거대한 재개발 사업 진행 중이라고 하던데."
하지만 기우의 방송은 조금 색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다.
"피닉스 님.... 그립읍니다...."
피닉스의 흔적을 찾아서.
"당신 덕분에 제 부동산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세계의 평화도 물론이고요. 피-맨."
인류를 구원하고 홀연히 사라진 어둠의 영웅, '창염의 피닉스'가 다녀간 곳들을 돌아다니며 그곳에서의 흔적을 바탕으로 영상을 제작하는 게 현재 그의 직업이다.
"그럼 슬슬 오늘의 주제 시작할게요. 네? 좀 더 이야기하자고요? 돈 벌어야죠."
벌이는 의외로 쏠쏠.
"오늘 이거 소개하는 거 찍고, 바로 비행기 타고 떠나야 해요. 그만큼 여기는 극비사항이니까."
전 세계를 여행하며 막대한 돈이 빠져나가기는 하지만, 그만큼 조회 수와 영상 수익이 상당하여 기우는 콘텐츠가 고갈될 때까지 계속 이 일을 할 예정이었다.
서울, 그리고 평양에 땅을 사기 위하여.
"여러분들 모두 이 소리를 기억하실 겁니다."
굿모닝, 빠빠빠 빠빠 빠빠빠빠.
기우는 적당히 재생하고 바로 꺼버렸다.
많은 이들이 질색했고, 방송을 보던 어떤 이들은 실제로 그걸 들었다며 증언을 하기도 했다.
"굿모닝 테러. 7분 간격이었나요? 이건 나중에 팩트체크하도록 할게요.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알람이 일정 시간마다 계속 울리게 되었고, 그게 마력을 이용한 방법이었다는 건 나중에 밝혀졌죠. 중국 전체에 마력을 펼쳐놨던 걸 생각하면, 피닉스가 얼마나 많은 마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갓!
- 피닉스!
이미 모두가 피닉스의 마력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눈으로 봤다.
"어쩌면 이때부터 명왕성이랑 달을 파괴했던 그 힘을 은근히 보였던 걸지도 몰라요. 전력을 아끼면서, 서서히 자신의 힘을 드러내면서 싸웠던 거죠. 뭐가 그렇게 걱정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은 짐작하고 있다.
"
기우의 방송은 피닉스의 행보를 주제로 삼고 있기에, 그가 정리한 방대한 자료는 추정이지만 누구보다도 진실에 가까웠다.
"힘을 너무 많이 드러내면 명왕성의 괴물에게 포착당한다거나, 뭐 그런 거 아니었겠습니까? 억까는 하지 마세요.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다 피닉스가 그렇게 행동했던 덕분이니까.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다 있었던 거라고요."
-이제는 좀 알면 안 됨?
-님 그냥 자료 푸셈. 제가 2천억에 삼.
"안 팔아요."
아마, 일반인 중에서 가장 진실에 근접한 존재는 기우가 아닐까.
따로 메일을 통해서 각 지역의 뉴스나 언론사에서 피닉스의 행동에 관한 분석이나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기우의 영상이나 코멘터리를 넣는 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여러분. 굿모닝 테러 당시, 백청화로 왔던 피닉스가 곳곳에서 전투를 치르며 날아다녔었죠. 정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피길동ㄷㄷ 10분 밴. 어디서 썩은 드립을."
일부러 유도를 해놓고 밴을 한 기우는 등골이 오싹했다.
상대는 분명 화를 내면서도 자신의 방송을 보기 위해 우회 경로로 들어오리라.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저스트 채팅, 그것도 평범한 동양인 청년의 방송이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갈 정도로 인기가 많으니까.
생방송 조회 수, 약 50만.
채팅은 기우와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굿모닝 테러 당시 겪었던 일들을, 그리고 기우가 던진 화두로 분석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님들, 저 거짓말 한 거 하나 있어요."
무수한 갈고리의 향연.
기우는 절벽 가까이 다가가 아래를 가리켰다.
"여기 허페이 성 아님. 혹시나 방송 보고 저 쫓아오는 사람 있을까 봐 일부러 구라 핑 찍음."
아마도 실제로 자신을 쫓는 이가 있다면, 분명 방송 초반에 언급했던 허페이 성 주변을 수색하고 있으리라.
"어딘지는 말 못 하고, 그냥 아래를 보세요."
기우는 절벽 아래를 향해 카메라를 겨눴다.
그곳은.
??????
"이런 거 본 적 없죠?"
차마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광경이었다.
마치 신화 속 거대한 짐승이 날뛴 것 같은, 괴수가 사방을 찢어발긴 듯한 상처가 강과 전체에 가득했다.
"지파룡과 싸웠던 곳도, 흑사갈과 싸웠던 곳도 아닙니다. 완전히 별개의 장소입니다. 여기가 어디냐고요? 음.... 이건 제 짐작인데."
짐작이라고 읽고, 추론이라고 쓴다.
"아마 중국에 숨어있던 다크레기온의 간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전투가 아닐까요?"
기우는 입이 근질근질해졌다.
"아마도 이때, 석하랑 님이 다른 곳에서 시선을 끌고 있었던 거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사이에...."
순간.
치직, 치지직.
마도기어가 갑자기 먹통이 되었다.
기우는 갑작스러운 통신 장애에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옆으로 던졌다.
쾅!!
뭔가가 기우를 향해 떨어졌다.
거대한 돌덩어리는 기우가 조금만 더 늦었어도 기우를 압착해버렸을 터.
"이, 이건...."
"위험한 곳을 다니는군요."
저벅, 저벅.
누군가가 기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긴 회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여인은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났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예?"
"여기는 딱히 아무것도 없는 곳인데."
"어, 그래서...?"
기우는 슬랜더한 미인에 침을 삼키며 마도기어를 가리켰다.
"아무것도 없었기에, 이 근처에서 전투를 치렀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피닉스 님이라면."
"음."
여인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군요. 그분은 최대한 인간들이 휘말리지 않도록 싸우셨으니."
"저기, 혹시...."
"지금 이곳에서 있던 일, 결코 밖에서 얘기하지 않겠다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태양만세."
척.
기우는 두 팔을 45도 각도로 높이 치켜들었고, 여인 또한 그에 응하듯 팔을 치켜들었다.
"그, 누구십니까?"
"샤오린."
"......예?"
"청화단 소속 이능력자, 샤오린입니다."
"......."
생각보다 엄청난 거물을 만났다.
"세계를 구한 일곱...."
"아뇨. 이제는 아닙니다. 제 반쪽이 저기로 넘어갔거든요."
샤오린은 호수를 가리켰다.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다른 세계.... 혹시, 괴수들이 넘어오는 차원의 저편을...?"
"뭐, 비슷합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저기."
치지지직.
샤오린은 거대한 봉을 꺼냈다.
봉 끝에는 날카로운 환도가 달려있었다.
"아직, 세계는 완전히 평화를 이룩한 게 아닙니다. 그러니 무조건 비밀로 해주시길."
"......."
기우는 호숫가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이형의 존재를 확인했다.
검은 형체.
그저 어둠만이 가득한, 해파리를 닮은 듯한 검은색의 괴물은 기어이 호수에서 기어 나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저건...뭡니까?"
"저건...'부유하는 공포'로군요. 이쪽에서 한 명이 건너가면, 그에 따라 그에 걸맞은 존재가 이쪽으로 넘어온다고 '프로페서'가 그러더군요."
"...예?"
"간단한 이치입니다."
샤오린은 한숨과 함께, 검은 이형의 괴물을 향해 환도를 겨눴다.
"제 반쪽이 저쪽으로 넘어갔고, 그 반동으로 이쪽으로 넘어온 저걸 처리해야 하는 거죠."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시길."
히히힝.
붉은 갈기를 휘날리는 강철의 말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파트너랑 같이 싸우니까 괜찮습니다."
[메카 적토마, 프로페서의 힘으로 화려하게 재등장!!]
펄럭.
샤오린은 푸른색의 전포를 둘렀다.
"내 파트너의 사랑을 위하여."
끄어어어어ㅡㅡㅡㅡ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