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7화 〉 1057. 신위
[성유진
레벨: 79
근력: 100 체력: 100 민첩: 100 지능: 92 정력: 100 마나: 100]
[사용 가능 포인트: 3,310]
이번에 얻은 포인트다. 쌓인 포인트를 보는 순간 능력치를 올리고 싶은 욕구를 느꼈으나, 인내심을 발휘해 본래 계획대로 포인트를 사용했다. 3,000 포인트를 사용해 절대 최면 스티커를 구입한 것이다.
[절대 최면 스티커.
스티커에 최면 내용을 적고 상대방의 피부 위에 붙이면 절대 최면에 걸립니다.
가격: 3,000 포인트
※주의
대상의 정신력에 따라 최면이 걸리지 않습니다. 한 번 최면에 걸리면 ‘절대 최면 해제 스티커’를 제외하곤 최면을 풀 수 없습니다.
최면 내용을 꼭 하나만 적어야 하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모순되는 내용이 2개라면 2개 모두 적용되지 않습니다.]
절대 최면 스티커는 사기 물건 중 하나다. 이 물건을 이용하면 A급 헌터 중 한 명을 절대적인 아군으로 만들 수 있다.
나와 어떠한 인연도 없었던 백지은이 나를 섹스 프렌드이자, 소꿉친구로 여기게 되듯이 말이다.
‘아마 S급은 정신력 때문에 불가능하겠지.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괜히 시도해봐서 3,000 포인트를 날릴 생각은 없다. 또 최악의 경우에는 자기가 무언가에 당할 뻔했다는 걸 알아차린 S급 헌터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나는 절대 최면 스티커를 인벤토리에 넣으며 이번 퀘스트를 통해 얻은 것들을 확인했다.
첫 번째는 3,000 포인트로 구입한 절대최면 스티커이고, 두 번째는 상대에게 회복 불능 상태를 3시간 동안 부여하는 헌터 킬러의 뼈 작살.
‘마지막 세 번째는 섬뢰에 대한 경험. 괴인일 때 수련한 경험이 지금 내게 남아 있어.’
섬뢰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오래 유지할 수 없고 부작용이 심한 편이다. [삐에로와 사냥꾼] 세계에서처럼 효율을 낼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뭐, 이것도 숙련도가 쌓이면 익숙해지겠지.’
손을 아래로 내려 자지를 주물렀다. 좆 없는 괴인으로 활동하는 동안 무척 불안했는데 물컹한 자지의 존재감이 손을 통해 느껴지니 안정되기 시작했다.
‘아, 맞다. 엔딩이 있지. 한 번 봐볼까.’
스마트폰으로 [삐에로와 사냥꾼]의 엔딩을 확인한다.
괴인은 내가 행동했던 것처럼 행동했다. 당연했다. 내 아바타이니 나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수련하고, 찾아오는 사냥꾼들을 죽이고. 간간이 사냥꾼들의 마을을 찾아가 인간을 전부 죽였다.
나는 재미 없는 부분을 넘기듯 속도를 높여 빠르게 진행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생활하던 괴인에게 끝이 다가왔다.
그것은 인간의 군대였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냥꾼들을 죽여버린 괴인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대였다. 약 3,000명이 넘는 정예 병사들로 이루어진 군대. 인간들은 괴인을 죽이기로 작정한 것이다.
‘괴인은 늙어 죽지 않아. 내버려 두면 끊임없이 강해지지.’
그러니 인간들은 더 늦기 전에 괴인을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전투가 일어났다.
괴인은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웠다. 뇌전을 사용하고 완전 회복까지 사용했다. 다른 세계관이면 모르겠는데, 저 세계는 마나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인간 병사를 1,000명 가까이 죽인 괴인은 지쳤고, 인간들은 더욱 괴인을 몰아붙였다.
“죽여라! 여기서 죽여야 한다! 놈을 죽이지 못한다면, 죽는 건 우리의 아들과 딸이 될 것이다! 미래를 위해 놈을 죽여라!”
군대 지휘관이 악을 쓰듯 외쳤다. 흥분한 병사들은 죽음의 공포를 뒤로하고 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결국, 괴인은 토벌당했다.
‘죽음으로 끝났군.’
나는 무감정하게 영상을 바라봤다. 어떤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으로 계획을 점검한다. 내일 밤에 홋카이도에서 침식 던전이 발생한다.
우우우우우웅.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박수호의 연락이었다.
“여보세요. 수호냐?”
“네. 유진 형. 신전 건설이 끝났어요.”
“예상보다 늦었네?”
“아, 그게… 셀 교단과 예상 이상으로 협의가 길어졌어요. 그리고 종교를 원하는 주민들이 많아서… 원래 계획보다 신전이 더 커졌어요.”
“그건 아무래도 좋고. 중요한 건 신전의 효과지. 효과는 어때?”
“아직 자세히는 알아내지 못했는데… 신성력이라는 힘을 약간이지만 사용할 수 있어요. 그리고 뭐랄까. 머리도 한층 맑아진 기분이에요.”
“그게 전부야?”
세뇌를 견디는 정신 방벽은 부차적인 거다. 진짜로 내가 원했던 건 박수호와 셀브레티나가 만나는 것. 그러기 위해 신전을 지으라고 권유한 것이다.
“그리고… 이거 말해도 되려나…? 형이니까 말씀드릴게요. 저, 셀브레티나 여신이랑 만났어요. 제가 용사래요. 그리고 지구에 위험이 찾아온대요. 악신이 지구를 노리고 있어요.”
“그래?”
“별로 놀라지 않으시네요?”
“네가 특별하다는 건 알고 있었고, 웹소설을 많이 보면 이런 일은 흔하잖아. 그리고 내일 그 영상 원본 찾으러 갈 테니 준비해.”
“알았어요. 근데 형. 그 영상 지금도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어요?”
“그거 섹스넷 주간 베스트 7위야.”
“이런 미친!”
“지금은 시들해졌는데 커뮤니티로 몇 번 퍼졌어. 크게 이슈가 되진 않았지만.”
커뮤니티에 제법 퍼지긴 했으나 공중파 뉴스에 나올 정도로 큰 이슈는 되지 못했다. 자세한 정보가 없어서 기획 야동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제법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영상으로 자료를 넣어줄까 고민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그래도 밑밥은 깔았다. 지금 당장은 그것으로 만족한다.
“정신 방벽. 그거 제대로 됐는지 한 번 시험해봐.”
“아. 시험해봐야죠. 실전에서 세뇌라도 걸리면 큰일이니까요. 근데 어떻게 시험해야 하죠?”
“세뇌 능력자는 찾긴 어려우니 정신 공격을 하는 몬스터를 찾아가야지. 마침 내가 알고 있는 던전이 있어. D급 던전이야. 해볼래?”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데요?”
“고스트 계열.”
“해볼게요.”
나는 박수호에게 던전의 위치를 알려줬다.
정신 공격. 고스트 계열. 이 키워드의 던전은 인기 없는 던전이었다. 정신 공격은 실력 있는 탱커도 애먹게 한다. 정신 방벽 관련 물건이나 능력자가 없으면 공략 난이도가 뻥튀기된다. 그리고 고스트 계열. 다른 몬스터들 보다 얻는 전리품이 적다. 돈만 따지면 차라리 E급 몬스터를 사냥하는게 효율적이다.
•••
아마츠카 코요리.
일본의 S등급 헌터이자, 풍신 길드의 실질적인 주인이며, 후카 신사의 무녀.
그녀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일본의 고위 정치인들을 후카 신사로 불러 모았다. 물론 비공식으로.
그중에는 현 일본 총리인 안도 타카오가 있었다. 개구리처럼 생긴 50대 노인이었다.
현 일본에서 아마츠카 코요리의 인기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름다운 외모, 젊은 나이, 무녀 등등 일본인들을 열광케 하는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총리로서의 업적이 별로 없어 지지율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는 안도 타카오와는 차원이 달랐다.
만약, 지금 시기에 아마츠카 코요리가 현 총리인 안도 타카오를 비난하면 지지율은 못해도 절반 이상 박살 날 것이다. 반대로 아마츠카 코요리가 공식적으로 안도 타카오를 지지해준다면… 지지율은 상승할 것이다.
안도 타카오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코요리에게 말했다.
“저희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 들었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말해주십시오.”
코요리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다. 정치인들은 그녀의 시선이 닿자 저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 S급 헌터의 시선이라는 것을 떠나 오랜 수련과 신앙의 영향을 받은 코요리의 눈빛은 신비했다. 경건함마저 느끼게 한다.
‘과연 일본 최고의 무녀로다….’
그들은 조용히 감탄했다.
“풍신께서 신탁을 내리셨습니다.”
“…풍신께서?”
주변이 웅성거렸다.
정치인들은 매년 후카 신사를 오간다. 그러나 정치인 중에서 신을 믿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총리인 안도 타카오도 마찬가지다.
‘풍신을 믿지 않는다고 알려지면 무녀가 날 비난할지도 모른다. 어처구니없지만, 여기선 무녀에게 최대한 맞춰줘야겠지.’
모든 것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안도 타카오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어떤 신탁입니까?”
“내일 밤, 홋카이도에 언데드 침식 던전이 나타난다는 신탁입니다.”
“…….”
예상 밖의 말에 정치인들이 침묵했다.
안도 타카오의 눈빛도 흔들렸다.
‘신사에 돈을 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예언이라고?’
심지어 예언의 내용은 구체적이며, 예언의 날은 바로 내일이었다.
‘무녀가 갑자기 미쳤나? 예언이 틀리기라도 하면 몇 년이 지나도 조리돌림을 당하고 후카 신사의 지지도 또한 떨어질 텐데?’
그는 코요리의 안색을 살폈다. 총리직까지 오른 그는 사람의 표정을 읽는데 탁월했다. 코요리의 얼굴에는 어떠한 불안도 없었다.
‘만약… 예언이 진짜라면…?’
풍신의 존재가 입증된다.
지금 예언을 들은 고위 정치인의 숫자는 20명이 넘고, 알음알음 퍼지게 될 테지.
‘아마츠카 코요리의 영향력이 더 커진다. …아니. 풍신이 실제로 존재할 리 없다. 한심한 생각을 했군. 예언의 진위를 따지기 이전에 코요리는 이미 일본 최고의 헌터이자 무녀. 좋은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총리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하면…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협회를 움직여 헌터들을 홋카이도에 보내어 침식 던전에 대비하면 되겠습니까?”
코요리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은 침식 던전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홋카이도 지부 협회는 침식 던전이 일어날 경우 한국 수월 길드에 의뢰를 할 것입니다.”
안도는 인상을 찌푸렸다. 한국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한국의 수월 길드면 잘해주지 않겠습니까?”
한국 2위의 수월 길드. 안도도 그 실력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수월 길드는 일본 멸망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
결코 흘러들을 수 없는 단어가 들렸다.
“일본 멸망?! 코요리 무녀! 그게 무슨 망언입니까?!!”
“총리님. 저는 그저 풍신께서 내린 신탁을 전할 뿐입니다.”
“신탁? 신탁은 아까 끝난 게 아니었습니까?”
목소리를 높이는 안도와 달리 코요리는 차분했다.
“진정하고 들으십시오. 풍신님은 미치광이 신과 그 이교도들에 의해 분노하셨습니다. 이교도들은 이 일본을 좀먹고 있으며, 멸망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그들을 처리해야 합니다.”
“아니,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
“저희가 풍신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풍신님의 분노는 저희에게도 향할 것입니다. 전염병이라는 벌을 일본에 내릴 것입니다.”
“전염병? 허 참….”
안도는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 신탁을 빌미로 자신들을 이용하려는 코요리의 속셈이 느껴졌다. 자신들을 아주 병신으로 보는 모양이다.
‘참자. 지금 화를 내면 무녀와의 관계가 끝장난다.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면 무녀의 장단에 조금은 맞춰줘야 한다.’
안도는 화를 삼켰다.
코요리는 미래에 벌어지는 일들을 예언했다. 예언의 내용이 10개가 넘어갔다. 모두 일주일 내로 일어날 일들이었다.
물론 정치인들은 믿지 않았다.
“잘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선 수월 길드를 배불리 먹여야 합니다.”
“…음식을 대접하라는 말은 아닐 테고…. 저희가 왜 그래야 합니까?”
“모두 풍신님의 뜻입니다. 오직 풍신님의 뜻을 따르는 것만이 일본의 멸망을 막는 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안도가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코요리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풍신은 무슨. 예언이 틀리는 순간 무녀의 영향력은 떨어진다. 그때는 내 말을 고분고분 듣겠지. 무녀를 이용해 지지율을 올릴 수 있겠어.’
그러나 총리가 무녀를 이용해 지지율을 올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풍신의 예언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에 나타난 침식 던전 소식을 접한 안도 총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건 우연일 리 없다. 시간과 위치까지 정확하게 예언했다. 심지어 침식 던전의 종류마저…!’
어제 코요리에게서 들었던 대답이 떠오른다.
풍신이 내린 최악의 예언.
일본 멸망.
‘…아니. 아직은 이르다. 풍신이 내린 예언은 10가지가 넘는다. 그중에서 틀리는 게 있을 거다.’
하지만 만약. 그 예언들이 모두 적중한다면?
안도 총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풍신이시여…!!’
그는 이미 풍신의 존재를 믿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