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1화 〉 1061. 신위
콰앙! 쾅쾅쾅!
폭발음이 들렸다.
신전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검은 연기와 먼지가 하늘로 피어오르는 게 보인다. 신전은 보기 좋게 무너졌을 것이다. 나는 서둘러 신전을 향해 나아갔다.
‘교주는 내가 죽인다.’
아마츠카 코요리에겐 다른 무엇보다 인명 구조에 집중하라는 명령을 내려뒀다. 어지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나와 교주의 전투에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
“폭발이다!!”
“의식실을 먼저 확인해라!!”
“신도들이 무너진 기둥에 깔렸습니다!”
“신도들의 구출은 두 번째다! 신전에 붙은 불부터 꺼라!”
무너진 신전 속에서 신도들이 우왕좌왕 거렸다. 나는 신전을 보고 혀를 찼다. 신전을 날리고도 남을 정도의 폭탄을 설치해뒀는데 부서진 건 절반 정도다.
‘신도들이 대처했다기보다는 신전의 내구도 문제다. 신전이 내 생각보다 더 튼튼했어.’
나는 혀를 찼다.
교주의 힘은 신전과 관련되어 있다. 완전히 부수지 못했으니 어느 정도 힘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남은 신전을 박살 내기엔 시간이 부족해. 아마츠카 코요리가 곧 올 테니까.’
늦장을 부리다간 교주라는 사냥감을 코요리에게 빼앗길 수 있었다. 그건 내가 바라지 않는 일이다.
‘회귀 전과 상황이 달라. 교주놈은 그렇게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을 거야.’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교주실로 향했다. 가는 와중에 몇 명의 신도와 마주쳤다.
“넌 누구냐!”
“침입자다!”
“교주님은 말씀하셨다. 수상한 자는 보자마자 죽이라고!”
신도들이 품에서 흉기를 꺼냈다. 가소로웠다. 나는 찰나를 사용해 그들을 지나치며 베었다. 설령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광원교의 신도인 이상 살려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그들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주실로 향했다.
‘역시 폭발의 영향에도 교주실은 멀쩡하군. 기껏해야 그을린 게 전부인가.’
교주실의 문을 발로 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회귀 전에 본 깔끔한 교주실과 달리 지금의 교주실 내부는 붉었다. 피와 내장으로 사방이 더러워져 있었다. 나는 바닥을 굴러다니는 인간의 잔해를 쳐다봤다. 그 잔해들 사이로 옷이 보인다. 신도의 옷이다.
“신도들을 죽였다고?”
“내가 죽인 게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희생한 거다. 광원교를 위해, 광신님을 위해. 그들은 광신님의 자비로 구원받을 것이다.”
꾸물꾸물.
교주의 몸에서 촉수가 꿈틀거린다. 촉수에 묻어 있는 붉은 피를 보며 어떤 상황인지 이해했다.
‘이놈은 방금 신도들을 제물로 바치고 힘을 얻었다.’
신위 의식의 정보를 떠올린다. 신위 의식은 신도를 제물로 바친다. 광원교에서 세뇌당한 일반 신도는 좀 더 고급스러운 제물에 불과했다.
“너는 누구지? 광신께서 보고 계신다. 가면을 벗고 얼굴을 보여라.”
“병신인가. 가면을 쓴 이유가 뭐겠어? 얼굴을 숨기려고 그런 거지.”
철저하게 모습을 숨기기 위해 옷과 무기에도 신경 썼다. 다른 흔적만으로 날 특정하진 못할 것이다.
‘여긴 광신의 신전. 브라마센이 보고 있겠지. 눈에 띄는 뇌전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섬뢰는 예외다. 섬뢰는 겉으로 봤을 때 크게 화려하지 않으니까.
파지직.
섬뢰가 몸속을 내달린다.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격통에 이를 악물었다. 그 격통을 눈앞의 교주에 대한 분노로 바꾼다.
“말이 꽤 험하군. 다만, 한 가지는 알겠군. 신전을 파괴하는 불경한 짓을 저지른 놈이 바로 네놈이란 걸!!”
교주가 일갈했다. 그의 등에서 솟은 4개의 굵은 촉수가 나를 노리고 쇄도한다. 나는 옆으로 피하며 검으로 4개의 촉수를 한 번에 잘랐다. 피가 튀며 잘린 촉수가 바닥에 떨어진다.
촉수는 기세를 잃고 축 늘어졌다. 허나 그것도 잠깐일 뿐이다. 잘린 부분이 순식간에 재생한다.
검은 교주의 목을 노렸다. 교주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검이 허공을 갈랐다.
나는 위로 뛰어 내 다리를 노리는 촉수를 피했다. 무리하지 않고 교주에게서 물러났다.
‘회귀 전과 다르다. 회귀 전에는 내 공격을 피하지도 않았지.’
내가 검을 휘두르면 휘두르는 대로 공격을 맞던 놈이었다. 머리를 베고 심장을 찔러도 죽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전투 방식이었다.
‘근데 지금은 다르다. 내 공격을 피했어.’
눈앞의 교주는 불멸이 아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촉수는 순식간에 재생하긴 하지만… 회귀 전에 비하면 촉수의 숫자도 위력도 모두 떨어진다.’
이미 나는 교주와 싸우며 경험을 갖췄다. 놈이 촉수를 어떻게 전투에 이용할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 전투는 내가 이길 수밖에 없다.
승리를 확신한 나는 교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촉수가 뻗어 온다. 베어낸다. 촉수에서 나온 피로 몸이 더러워지는 건 기분 나쁘지만, 그 이상으로 교주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교주는 내가 접근하자 뒷걸음질로 거리를 벌렸다. 그 한계는 바로 찾아왔다. 교주의 등이 벽에 닿은 것이다. 더 이상 교주가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단이…! 이단 주제에!! 광신이시여!!”
초조한 얼굴의 교주가 소리쳤다.
교주의 외침이 광신에게 닿은 것일까. 그의 그림자 속에서 검은 촉수가 튀어나와 교주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교주가 소리친다.
나는 그가 환희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교주의 몸이 변이한다. 피부가 암회색으로 변한다. 지렁이 같은 작은 촉수들이 피부를 뚫고 나오며, 얼굴은 녹아내리듯이 변한다.
이미 인간이라 불릴 수 없는 외모가 되었다.
나는 교주가 완전히 변하기 전에 교주의 심장에 검을 찔렀다.
‘변신을 기다려 줄 이유는 하나도 없지.’
꿰뚫은 검을 타고 피가 흐른다.
“흐흐흐.”
교주가 웃는다. 위험함을 느낀 나는 검을 버리고 찰나를 사용해 거리를 벌렸다. 20개가 넘는 촉수가 교주의 몸에서 뻗어 나와 내가 있던 곳을 쓸고 지나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저 촉수들에 붙잡혀 끔찍한 꼴을 당했으리라.
“눈치가 좋구나.”
교주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검을 빼냈다. 그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회귀 전의 수준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도 없겠군.’
교주의 힘은 신전과 관련이 있다. 아직 멀쩡한 신전을 박살 내는 것으로 교주의 힘을 깍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재생력이 더 강해진 것뿐이야. 할만해.’
헌터 킬러의 뼈 작살. 상대를 3시간 동안 회복 불능 상태로 빠뜨리는 무기. 그게 있었으나 꺼내지 않았다.
뼈 작살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 지금 쓰기엔 아깝다.
‘겨우 그것만 믿고 여기에 온 건 아니거든.’
하얀 장갑을 소환해 빠르게 손에 꼈다. 손등에 날개와 철퇴가 그려진 장갑이다.
저번 무지개 과일 던전을 공략하고 보상으로 얻은 이단심문관의 하얀 장갑이다. 24시간에 한 번, 10분 동안 물건에 성스러운 힘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
나는 이 장갑을 광명승천도로 강화했다. 여전히 24시간의 쿨타임과 10분의 지속시간이지만, 성스러운 힘의 효과가 강해졌다.
‘좀 더 정확하게는 셀브레티나의 신성력을 무기에 부여하는 거지.’
나는 검에 신성력을 부여했다.
검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그으으 힘으으으은…!!”
교주가 바퀴벌레라도 본 것 마냥 혐오감이 섞인 시선으로 날 본다. 목소리가 이상했다. 외형뿐만이 아니라 몸의 내부도 괴물의 것으로 변한 모양이다.
“셀브레에에티아아!!! 역겨우우운 노오오옴!”
10개가 넘는 촉수가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며 촉수들을 모조리 베어냈다. 치지지직. 베어진 촉수에서 타는 냄새가 났다. 셀브레티나의 신성력 일부가 촉수에 남아 촉수를 불태우고 있었다.
‘아까처럼 바로 재생하지 않는 것만 봐도 알겠군. 셀브레티나의 신성력이 놈들의 상성이다.’
놈들이 박수호를 경계하는 이유도 셀브레티나의 힘이 자신들에게 위험하기 때문이겠지.
“교주. 이번에야 말로 죽여주마.”
“광신… 이시여어어어…!!”
지긋지긋한 촉수가 또다시 나를 노린다.
나는 촉수와 함께 춤을 췄다. 내 몸을 노리는 촉수를 피하고 베어내기를 반복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교주의 앞에 서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촉수가 전부 잘린 교주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광신께서어어… 보고 계신다아아…!”
“알아. 그래서 가면 썼잖아.”
브라마센. 그놈이 보고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지금 브라마센이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기껏해야 방금처럼 교주에게 힘을 줘 강화하는 게 전부다. 물론 그것도 한계가 있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그 증거다.
푸욱.
나는 교주의 가슴에 황금빛의 검을 찔러 넣었다. 교주가 꿈틀거린다. 치지지지직. 교주의 몸이 신성력에 타 들어갔다. 놈의 피부위에서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던 작은 촉수들이 힘없이 픽픽 쓰러졌다. 괴물처럼 변했던 교주의 외형도 일시적으로 사람의 것으로 돌아왔다.
“셀브레티나의 개여! 창녀의 사내여! 광신께서는 언젠간 지구에 강림하실 거다! 빛의 창녀를 찢어 죽이시고, 네놈에게 영원한 고통을 내리실 것이다!”
“유언, 잘 들었다. 재미없는 유언이었군. 나도 하나 알려주마. 브라마센이 무슨 짓을 하든, 내가 놈에게 질 일은 없어. 지구는 내 구역이다. 내가 지킨다.”
한하린이 회귀 전의 그때처럼 어이없이 죽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검을 쥔 손에 힘을 꽉 주던 나는 교주의 눈동자가 붉게 변하는 걸 느꼈다.
시선이 변했다.
회귀 전에 한 번 느껴본 적 있는 시선이었다.
“브라마센…!! 언젠가는 네놈도 내 손으로 죽여주마!!”
-건방진 것.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놈의 눈에 붉은빛이 돌았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불쾌해진다. 나는 놈이 수작 부렸음을 깨달았다. 아마 광기를 이용해 날 미치게 할 속셈이었겠지.
“역시 네놈은 마음에 안 들어.”
검을 빼고 교주의 목을 베었다. 데구르르 떨어지는 교주의 머리를 발로 찼다. 머리는 천장과 부딪혀 그대로 박살 났다. 이것으로 교주는 죽었다.
쿠우우웅! 쿵! 키이이이잉!
땅이 흔들리고 멀쩡하던 신전이 부서지려고 한다. 교주가 사라짐으로써 이 공간 또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교주는 일종의 던전 코어였나.’
교주실 밖으로 나온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헌터로서 알 수 있었다. 완전히 무너지기까지 6시간 이상은 걸릴 것이다. 여유는 충분히 있었다.
‘하린이에게 가자.’
한하린은 아마도 신도들을 상대하거나, 납치당한 사람들을 구하고 있을 것이다.
한하린은 쉽게 찾았다. 그녀는 아마츠카 코요리와 함께 행동하고 있었다. 한하린은 나를 보고 눈을 빛냈다. 광대 가면을 쓰고 있긴 한데 그녀에게 단번에 내 정체를 들킨 것 같았다.
‘이곳에 있는 남자는 한정적이고… 내 체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 하린이니까. 어쩔 수 없지.’
그녀는 내 몸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모르는 내 똥구멍의 생김새도 한하린은 알고 있다.
코요리도 나를 쳐다봤다. 무녀 복을 입고 나기나타를 손에든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당신은 누구시죠?”
“말하기 싫다만.”
“……그렇습니까. 일본어를 잘하시는군요.”
“일본인이니까. 그것보다 붙잡힌 사람들을 구출하는 게 먼저 아닌가?”
“네. 구출이 먼저입니다.”
코요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고 떨어졌다. 어차피 이곳에서 코요리를 막을 수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괜히 함께했다가 정체가 들키면 곤란해진다.
“…….”
“…….”
나는 한하린과 시선을 교환하고 숲 속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