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097화 (1,097/1,497)

〈 1097화 〉 1097. 다크 문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날 보던 렉시는 이내 표정을 관리하고 물었다.

“왜 총을 내렸어? 아직 네가 쏠 기회는 있잖아. 그것도 3번이나.”

표적을 맞히지 못하더라도 3번까지는 봐준다.

“의미 없습니다. 표적이 시야 밖으로 나가서 안 보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850M를 맞춘 것도 기적이 아닐까 생각된다. 850M의 표적은 좁쌀보다 더 작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사격로가 장애물 없는 평지에 있고 날씨도 좋아서 표적이 잘 보인 거다. 실전에서 850M 표적을 육안으로 맞추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하긴 보이지 않는 걸 맞추는 건 힘들지. 하지만 보인다면?”

“보인다면 맞추겠지요, 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움직이지 않은 표적을 맞히는 건 쉬우니까요.”

“넌 사격이 쉽게 느껴진 모양이구나. 이거… 네게 더 흥미가 생기는걸.”

“방금이 제 한계였습니다.”

렉시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내 앞을 막아섰다.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교관이었고, 나는 노예이자 실험체였다.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갔다간 후폭풍이 찾아올 것이다.

“보이기만 하면 맞힐 수 있어?”

“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게임 속에 들어오면서 능력이라도 생긴 건지 사격이 아주 쉽게 느껴졌다.

“텔레스코프 마법을 써도 좋아.”

“…처음 들어보는 마법입니다.”

“아, 참. 네가 햇병아리라는 사실을 잊었네. 2급 마법이야. 강화계 마법으로 시력을 올려주지.”

렉시가 내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잠시 몸을 움찔 떨었으나 그녀가 날 해칠 생각이 없다는 걸 바로 파악하고 경계를 약간 풀었다.

그녀의 마나가 움직인다. 술식이 느껴진다. 마나는 내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이질적인 마나에 불쾌함을 느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참았다.

‘…상황을 보니 이게 텔레스코프 마법이겠지. 술식을 외워두자.’

2급 마법. 술식을 느껴보니 확실히 1급 마법보다는 까다롭다는 게 느껴진다.

‘마나 로드가 5개인 나라면… 캐스팅 시간이 좀 걸려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술식이 두 눈에 모여든다. 술식은 내 두 눈에 스며들었다. 라이트나 파이어 같은 마법과 조금 다르다.

‘이게 육체 강화계 마법인가.’

불쑥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텔레스코프 술식에 라이트 스코프 술식을 얹으면 두 눈에서 빛이 나오지 않을까?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었다.

‘시도했다가 눈이 실명되면 돌이킬 수 없는 병신 짓거리가 되지.’

렉시가 내 머리에서 손을 뗐다. 두 눈을 집중하자 시력이 상승한다. 렉시의 얼굴이 확 커진 느낌이다. 피부의 작은 모공까지 잘 보였다. 반대로 집중을 풀자 원래의 시력으로 돌아온다.

“텔레스코프 마법이야. 한 시간은 유지될 거야. 이제 총을 들고 표적을 확인해봐.”

그녀의 말대로 따랐다.

900M 거리의 표적이 보였다. 강철로 된 표적은 지금껏 한 번도 맞지 않은 것처럼 서 있었다.

“맞힐 수 있겠어?”

렉시의 기대감 어린 목소리에 망설이지 않고 대답해줬다.

“네.”

“그럼 당겨.”

원하는 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나름 익숙해진 총성이 울리며 총알이 날아간다. 대충 1초 정도 날아갔다고 생각한 순간 표적의 중심에 명중했다. 표적이 뒤로 이동한다. 사격로 옆에 있는 전광판을 확인했다. 900M라 적혀 있던 숫자가 1,000M로 변했다. 이게 표적과의 거리다.

“보이지?”

“네.”

“할 수 있지?”

“네.”

“나한테 네 진짜 한계를 보여줘. 네 한계가 정말 날 감탄시킨다면… 내가 상을 줄게.”

“…상이라 하신다면?”

“글쎄. 여러 가지가 있겠지?”

렉시 교관의 계급은 중사. 그녀의 권한이 어디까지일까. 모르긴 몰라도 그리 높진 않을 것이다. 나는 기대감을 접으면서도 집중했다.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나도 궁금했다.

‘한계를 알아야 성장할 수 있겠지.’

방아쇠를 당겼다.

어김없는 명중.

2,000M를 넘어 3,000M 거리까지 명중시켰다. 2,500M부터 표적의 중앙을 맞히진 못했지만 어쨌든 표적을 맞혔다.

표적은 뒤로 움직이지 않았다. 정해진 한계 거리가 3,000M 였다.

“총 내리지마. 난 아직 네 한계를 보지 못했으니까.”

렉시가 관리석으로 가더니 버튼을 조작했다. 100M 거리에 새로운 표적이 나타났다. 표적은 나를 약 올리듯이 움직인다. 움직임엔 규칙성이 있는 듯하면서도 없었다. 움직이는 속도는 사람이 걸어가는 수준이다.

“사격 시작해.”

검지가 움직였다. 총구가 불을 뿜었다. 총알이 날아가 움직이는 표적을 맞혔다.

“느낌 좋네. 맞힐 줄 알았어.”

그녀의 감탄사는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현재 뒤로 이동한 표적에 극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표적을 확인한다. 방아쇠를 당긴다. 표적을 명중한다. 표적을 확인한다. 방아쇠를 당긴다. 표적을 명중한다.

기계 같은 순환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표적이 1,500M 거리에 있을 때였다. 총알이 빗나가 땅을 때렸다.

“아직 두 번의 기회가 남아 있어. 심호흡하고 다시 해 봐.”

렉시의 말대로 기회는 남아 있다. 나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집중력을 높였다.

타앙.

표적이 뒤로 이동했다.

그리고 나는 1,800M에서 모든 기회를 잃었다. 아쉬움을 느끼며 총을 내렸다. 렉시가 씨익 웃으며 다가오더니 내 몸을 끌어안았다. 내 정신은 성인이어도 육체는 아직 성장기의 몸이었던지라 그녀보다 키가 작았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이 묻혔다.

“햇병아리! 너 진짜 천재구나! 설마 이런 천재를 여기서 발견하게 될 줄이야! 전문적인 훈련을 받으면… 프리셀 왕국 제일의 저격수가 될지도 모르겠어!”

“…….”

나는 조용히 렉시의 가슴을 느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그녀는 약 5초 뒤에 나를 품에서 떨어뜨렸다.

“상은 기대 해도 좋아.”

렉시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뭐가 됐든 교관 한 명의 호의를 산 건 좋은 일이었다.

이후에 렉시는 내게 자유 사격을 명령하고, 다른 아이들의 사격을 봐줬다. 자세를 봐주고 사격을 알려준다. 31호를 제외하면 모두 고만고만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 내 기록은 1,820M로 약간 늘어났다.

렉시에게서 초코바를 받았다. 마침 입안이 심심했기에 바로 먹어 치웠다. 모두가 부러운 눈으로 날 쳐다봤다. 객관적으로 평범한 맛이었으나, 주관적으로는 환상적이었다.

•••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내무실로 돌아왔다. 개인 정비 시간이 주어졌다. 꿀맛 같은 자유시간이었다. 자유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비슷했다. 대부분 마법서를 들고 공부한다.

우리는 군인이 아니라 노예다. 이곳에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면 처분된다. 처분이란 곧 죽음이었다.

나도 마법서를 꺼내 들었다. 오전에 보다가 말았던 페이지를 열었다. 페이지에는 아이스 마법 술식이 적혀 있었다.

마법서에 집중하려는데 옆자리의 212호가 내게 말을 걸었다.

“211호. 오늘 정말 대단했어. 마나 역류를 겪고 아예 딴사람이 된 것 같았어. 특히 사격은… 그 31호의 기록까지 갈아치웠잖아. 비결이 뭐니?”

“비결? …비누스 교관이 말한 마나 역류 때문일지도.”

“역시 그거 때문이지? 무의식의 깨달음? 아. 나도 마나 역류에 당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려나?”

“아마도, 무슨 깨달음인지는 나도 정확하게는 잘 몰라.”

대충 얼버무렸다. 사격이나 마법에 관해서는 나도 어안이 벙벙하다. 단순히 재능이 개화했다고 말하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게임 속에 들어오면서 부여된 특전 같은 건가?’

212호는 어제보다 좀 더 익숙해진 연기로 나를 대했다. 내게서 뭔가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을 생각인 모양이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그녀나, 나나 모두 똑같은 처지에 불과했다.

저녁 점호 1시간 전에 욕실에서 샤워를 했다. 남탕과 여탕이 나뉘어 있었다. 노예이며 실험체라도 나중에는 배틀 메이지가 될 테니 제법 대우는 잘해준다.

‘모르모트라도 비싼 게 있고, 값싼게 있으니까. 그나마 비싼 쪽이라 이 정도지.’

다른 국가도 인체 실험 정도는 한다.

‘그중에는 노예를 가축 이하의 벌레처럼 다루는 곳도 있지. 그런 곳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지.’

그렇다고 이 생활이 마음에 든다는 건 결코 아니었다. 나는 노예를 벗어나 자유를 되찾을 것이다.

•••

격투술 시간이 찾아왔다.

격투술 담당 교관은 젊은 남자였다.

벨하가 교관. 건장한 체격에 얼굴을 비롯한 손과 팔에 크고 작은 흉터가 어지럽게 자리 잡았다. 그는 노골적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뻔하지. 렉시 교관이 나에 대해 말했겠지.’

이런 식의 관심은 익숙하지 않아서 부담스러웠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었다.

‘내 처지를 잊어선 안 된다. 난 언제든 폐기처분 될 수 있어. 그러니 가진 능력을 증명해야 해.’

그렇다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전부 선보일 생각은 없었다. 나는 언젠간 이곳을 탈출 할 테니까. 숨겨둔 밑천은 분명 도움이 될 테지.

“격투술의 기본은 저번 시간에 가르쳤으니… 오늘은 대련으로 하지. 31호. 211호. 앞으로 나와라.”

벨하가 교관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31호의 상대로 나를 지목했다. 렉시 교관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벨하가는 나를 과대평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교관에 거스를 수는 없기에 앞으로 나갔다. 정면에서 31호가 다가왔다. 걸을 때마다 찰랑이는 보라색 머리카락과 서늘하게 가라앉은 붉은색 눈. 외모부터가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형식은 자유 대련. 마나 사용은 금한다. 눈과 성기를 노리는 것도 금한다. 이빨을 이용해 상대를 물어뜯는 것도 금지다.”

벨하가 교관의 말을 들으면서 주먹을 쥐었다.

마법과 사격에 대한 재능은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지만, 격투술은 달랐다. 격투술에는 자신 있었다. 게임 속에 들어오기 전 나는 F등급 헌터였다. 비록 등급은 최하급에 불과해도 일반인이 아니었다. 몬스터와 싸웠던 경험도 있다. 반면에 상대는 아직 제대로 된 경험도 없는 애송이다.

“시작해라.”

벨하가 교관이 말했다.

탐색전도 없이 31호가 달려들었다.

‘움직임이 보이는군.’

움직임이 보이니 침착함을 유지하며 대응하면 된다.

퍽!

“……!!”

명치를 맞고 뒤로 물러났다. 숨이 턱 막히고 다리가 덜덜 떨린다. 육체의 반응은 둘째치고 정신이 무척 당혹스럽다.

‘주먹은 확실히 보였어. 카운터를 날리기 위해 주먹까지 들었어. 근데 왜 내가 당한 거지?’

31호의 주먹이 얼굴을 노려온다. 이번에도 보였다. 손바닥을 올렸다. 그녀의 손목을 잡아 역으로 업어치기를 시전할 생각이었다.

퍼억.

허나 이번에도 31호에게 얻어맞았다.

‘……제길.’

뭐가 문제인지 알아차렸다.

단순한 문제였다. 몸이 의식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몸을 막으려고 해도 손과 다리의 반응이 한 박자… 아니, 두 박자 정도 느리다.

육체의 단련도는 상관없다. 31호와 나의 신체 능력은 거의 비슷하고, 노예이자 실험체인 211호는 옛날부터 좋은 음식과 규칙적인 운동으로 평균 이상의 몸을 가지고 있다.

‘사격과는 정반대다. 나는 격투술에 대한 재능이 전혀 없다.’

주먹이 날아온다.

알고는 있는데 피할 수 없었다.

팍! 퍽퍽!

두들겨 맞으면서 생각했다.

‘차라리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 같은데.’

마법은커녕 마나도 사용할 수 없는 대련이었다.

“그만.”

벨하가 교관에 의해 중지되었다. 사정없이 주먹과 발을 날리던 31호는 바로 멈추고는 거리를 벌렸다. 나는 대련에서 내내 두들겨 맞다가 끝났다.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격투술은 못 하는 모양이군. 211호. 넌 기본부터가 부족하다. 샌드백이나 치면서 주먹이나 단련하도록.”

“…네. 교관님.”

“31호. 몸도 제대로 못 풀었다는 거 안다. 37호와 대련하도록.”

남들이 대련으로 실력을 기를 때, 난 샌드백이나 쳐야 하는 신세가 됐다. 억울함을 느끼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벌을 받는 건 아니니. 사격술이 뛰어나서 이 정도로 봐주는 건가?’

샌드백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처음에는 나도 의욕을 가지고 샌드백을 때렸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내가 격투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만 깨닫게 되었다. 나중에는 설렁설렁 주먹을 흔들며 머릿속으로는 마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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