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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104화 (1,104/1,497)

〈 1104화 〉 1104. 다크 문

앞서 걸어가던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분대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마나 로드를 활성화해 귀에 마나를 보냈다. 청각이 강화된다. 마법은 아니고 단순한 마나를 통한 신체 강화다. 마법에 비하면 효과가 떨어지지만, 급할 때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뚝, 뚜뚝.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였다. 판단을 내린 내 얼굴은 대번에 구겨졌다.

“젠장. 비 온다.”

“비 온다고? 진짜?”

“아. 갑자기 뭐야.”

“설마 실전에서 우의를 입게 될 줄이야.”

“하아.”

여기저기서 짜증 섞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우리가 겪은 훈련 상황들 중에서 가장 짜증 나는 상황은 하늘에서 뭔가 내릴 때다. 습기에 옷은 눅눅해지고, 제복이 젖기라도 하면 옷이 구속복처럼 느껴진다. 시야는 좁아지고 소리는 시끄러워진다. 우의는 답답하고 땅은 질척거린다. 슬금슬금 올라오는 묘한 비린내까지.

“그나마 눈이나 우박이 내리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겠지.”

지금은 여름이지만, 다크 문이 뜬 날에는 한여름에 눈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우의를 입었다. 우의는 얇은 편이었는데 입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멈췄던 발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장대비가 펑펑 쏟아졌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움직여. 특히 무전기 젖지 않게 관리 잘하고. 어지간해선 고장 날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알았어.”

묵묵히 걸어 산 중턱에 도착했다. 나는 인원을 파악하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본래는 쉬는 시간 없이 바로 임무를 수행하려 했지만, 장대비로 인해 계획을 바꿨다. 비 내리는 산은 체력 소모가 배는 심해진다. 휴식이 필요하다.

‘1분대 중에서 체력이 가장 약한 건 나이기도 하고 말이야.’

적당한 나무에 등을 기댄 나는 챙겨온 수통을 열어 한 모금씩 물을 마셨다. 아스트랄을 개방하고 감각을 확장한다. 우리를 뒤쫓고 있을 비누스 교관의 위치를 파악해두고 싶다.

‘……모르겠군. 정확한 위치는커녕 어느 방향에 있는지도 모르겠어. 비가 내려서만이 아니야. 좀 더 근본적인 이유다. 비누스 교관은 나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211호.”

누군가가 날 불렀다. 빗속이라 목소리를 구분하는 것도 힘들었다. 시선을 돌리니 31호였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31호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위로 향한다.

약 30M 거리 하늘에 몬스터 하나가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나는 두 눈을 좁히며 괴물의 형상을 좀 더 자세히 살폈다. 박쥐와 닮은 날개와 외형. 그리고 돌로 이루어진 몸체.

“…2급 몬스터인 가고일이군.”

일부러 소리 내 말했다. 휴식을 취하던 아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총을 들었다. 가고일 처리는 임무 내용이 아니다. 피하는 게 최선이다.

‘…놈도 우릴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오는군. 전투는 피할 수 없어.’

‘다크 문’ 게임 내의 가고일에 대한 정보가 떠오른다.

2급 몬스터인 가고일의 특성은 피부가 돌처럼 단단하다는 것과 하늘을 난다는 것이다.

‘총알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다크 문의 영향을 받아 어느 정도 강해졌을 테니 더욱더 그렇겠지. 가고일의 공격 방식은 발톱과 이빨. 하늘을 날아도 공격 수단은 근접밖에 없다.’

가고일은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총알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 가고일이 내려올 때 카운터를 노린다. 비가 떨어지는 상황이니 아이스 마법을 이용하면 쉽게 잡을 수 있겠군.’

가고일의 공격을 막는 건 배리어 마법이면 된다. 내가 전개한 2급 배리어라면 가고일의 공격 한번은 쉽게 막을 테니.

내가 입을 열어 분대원들에게 가고일을 잡기 위한 간단한 작전을 설명하려 할 때였다. 가까운 곳에서 마나의 유동이 느껴졌다. 가고일의 대처법을 떠올리느라 반응이 늦었다.

“아이스 애로우.”

31호의 깔끔한 목소리와 함께 2급 마법인 아이스 애로우가 가고일을 향해 날아갔다. 내 팔뚝만큼 굵은 얼음 고드름은 정확히 가고일의 몸체에 명중한다.

쩌엉!

아이스 애로우가 폭발을 일으켰다. 열기 대신 냉기가 가고일의 몸을 뒤덮었다.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장대비가 냉기에 의해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얼어서 몸이 굳게 된 가고일은 날지 못하고 지상으로 떨어졌다.

가고일의 얼어붙은 몸체가 부서졌다. 돌로 이루어진 피부와 다르게 내부는 피와 살로 가득했다. 가고일의 죽음을 확인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31호.”

“왜?”

“갑자기 왜 아이스 애로우를 날린 거야?”

“아이스 애로우가 적합하다고 판단했어. 비가 내리고 있으니까. 파이어 애로우는 너무 눈에 띄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갑자기 공격한 이유를 묻는 거야. 지금 여긴 너 혼자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렇네. 다음에는 말하고 공격할게.”

“부탁할게.”

나는 재차 당부하는 것으로 끝냈다.

그나마 나타난 몬스터가 가고일이라 망정이지. 가고일 보다 더 강한 몬스터가 나타나고, 31호가 무턱대고 공격했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지금은 분대 단위로 움직이고 있으니 개인의 돌발 행동은 자제해줬으면 한다.

우리는 가고일의 시체를 뒤로하고 산꼭대기로 향했다.

앞장서서 걸으면서 31호의 마법을 생각한다.

‘…평소의 31호와 마나의 움직임이 조금 달랐어. 캐스팅 속도도 훨씬 빨랐고. 게다가 아이스 애로우의 위력이 거의 3급에 달했어.’

그 원인이 하늘에 떠 있는 검은 달인 것은 뻔하다.

‘평범한 인간은 다크 문으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아. 기껏해야 기분이 고양되는 정도지.’

그것도 특이한 경우다. 다크 문이 뜨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게 보통이다.

‘31호는 흑마법사는 아니니… 다크 문의 영향을 받는 이유는… 인자(因子). 특수한 인자를 가진 게 확실하군.’

판단을 내린 나는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31호와 엮이지 않으려 했는데, 머리로는 31호에 대해 추측하고 있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군. 마법사로서 31호는 흥미로운 인간이다.’

31호에게서 배울 점이 많았다. 그녀가 마나를 다루는 방식, 술식을 자아내는 법 등등.

‘방금 아이스 애로우도 흥미로웠어. 본래 애로우 종류는 관통형인데 술식 일부를 바꿔서 냉기를 폭발시켰지.’

3급 마법인 아이스 볼과 비슷했다.

2급에 오르지 못한 다른 분대원들은 31호의 마법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난 아니었다.

발이 멈췄다.

나는 잡념을 지우고 정면에 집중했다.

50M 거리에 목책이 있었다. 대충 세워둔 것 같은 허술한 목책이다. 그리고 안쪽에도 대충 만들어둔 나무집이 보인다.

고블린 부락이다. 어린아이와 비슷한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목책이나 집 같은 걸 만들고 자리 잡는다. 오래 살아남은 고블린 놈들은 간단한 전략도 사용한다. 나무창에 독초의 독을 묻히고 휘두르기도 한다.

나는 손을 들어 분대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모두 총을 들고 마법을 발동했다.

“사일런스.”

1급 무속성 마법. 주변 소리를 없앴다. 또한 발소리와 호흡소리도 없애준다. 1급 수준으로는 총성처럼 커다란 소리를 없애주지 못하는데, 소음기를 장비한 총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일런스로 인해 주변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돌겠네. 주위 빗소리까지 사라졌잖아.’

헛웃음을 삼켰다. 분대원들은 나처럼 세심하게 마법을 컨트롤 하지 못한다.

‘이러면 적들에게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걸 알려주는 꼴이 아닌가?’

사방에서 빗소리가 들리는데 갑자기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생기면 바로 시선이 몰릴 게 분명하다.

‘상대가 고블린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상관없을 것 같긴 하군.’

우선 나는 분대원들에게 대기를 명령하고 직접 정찰에 나섰다. 빗소리를 제외하고 내 몸의 소리를 없애며 목책을 빙 둘러봤다. 부락의 크기와 목책의 허술한 지점을 확인했다.

‘대충 70마리 정도인가. 고블린은 번식이 빠른 놈들이니 넉넉하게 생각해서 100마리. 아마 홉고블린이 우두머리겠지.’

쏴아아아아.

거대한 물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고블린 부락 뒤쪽을 쳐다봤다. 산꼭대기에 어울리지 않는 폭포가 흐르고 있었다. 폭포의 방향은 667 부대가 있는 곳과는 정반대다.

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게임 내용 대로면 블레나 산맥이겠지.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곳이니 알려지면 안 되는 실험을 진행하기엔 딱 인 장소군.’

경관은 밤이라 잘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감탄이 나올 정도로 뛰어났다.

나는 게임 속과 현실의 지형을 비교하며 머릿속에 지도를 짰다. 이것도 나중에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분대원들이 대기하는 곳으로 간 나는 수신호를 보냈다. 분대원들이 사방을 경계하며 내 뒤를 따른다.

미리 봐두었던 목책의 허술한 부분으로 침입했다.

성공적이었다. 고블린 부락에는 어떠한 부산스러움도 없었다. 우리는 침묵과 어둠을 거닐며 고블린을 사살하기 시작했다.

방아쇠를 당기면 아무 소리 없이 총알이 날아가 고블린의 몸을 꿰뚫었다. 1급 몬스터 중에서도 약체인 고블린은 총알을 막거나 튕겨내지 못했다.

70마리 넘게 죽였음에도 고블린 부락은 조용했다. 상황은 순조로웠다.

‘남은 건 중심에 있는 저 건물이군.’

다른 고블린의 건물처럼 조잡했지만, 크기가 컸고 동물의 뼈와 새의 깃털로 화려하게 장식까지 되어 있었다.

‘내가 먼저 들어간다.’

수신호를 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녹색 피부가 아닌 붉은색 피부의 고블린이 건물 중심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 홉고블린은 일반 고블린보다 체격이 크고 피부가 붉다.

‘예상대로 홉고블린이 맞긴 한데… 덩치가 커도 너무 크잖아.’

키만 3M에 달하고 배가 볼록 튀어나왔다. 팔다리도 근육질이다. 집안을 아슬아슬하게 가득 채우고 있다. 조금만 더 덩치가 컸다면 집이 무너졌을 것이다.

‘다크 문의 영향으로 변이했군.’

나는 조용히 상황을 살폈다. 자이언트 홉고블린은 깊이 잠들어 있다. 엉성한 천장에서는 빗물이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덕분에 홉고블린의 몸도 축축하게 젖은 상태다.

‘여기선 내가 처리하는 게 최선이다. 사일런스로 소리도 들리지 않고, 건물 때문에 보이지도 않으니까. 마나 파동을 최대한 숨기면 31번의 감각으로도 내가 어떤 마법을 썼는지 못 알아차리겠지.’

아스트랄을 개방하고 12개의 마나 로드와 전기를 일으키는 이능을 사용한다.

오른손 위로 새파란 전류가 튀겼다. 전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많아졌다. 몇 초 후에는 전류로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3급 마법, 라이트닝 그랩.

홉고블린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손아귀에 모여있던 전류가 홉고블린의 몸을 타고 흐른다.

홉고블린이 두 눈을 번쩍 떴다.

“끄에에에에엑!”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홉고블린이 상체를 일으켰다. 건물 천장이 1초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진다.

나는 반사적으로 찰나를 사용했다.

‘…빌어먹을. 잘못됐다. 원래라면 움직이기는커녕 감전사했어야 정상이다.’

원인은 게임 지식에서 찾았다.

다크 문을 통해 변이된 몬스터는 흔히 말하는 엘리트 몬스터가 되며 최소 1개에서 많게는 5개 이상의 특성이 생긴다. 게임 내에서는 친절하게 몬스터 머리 위에 그 특성을 알려주지만, 여긴 현실이다. 그딴거 없다.

‘홉고블린은 급이 낮은 몬스터이니 당연히 1개 특성, 거대화만 있을 줄 알았는데….’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의심 가는 특성은 두 개. 마법 저항과 속성 저항.’

마법 저항은 마법 피해 50% 감소 효과이고 속성 저항은 특정 속성 피해 90% 감소 효과다.

‘마법 저항이다…! 속성 저항으로 전격이 통하지 않았으면,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일어나 반격했을 거다….’

하필이면 마법 저항이라니

‘…젠장. 아까 31호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는군.’

스스로의 오만함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웠다. 처음부터 다른 분대원들과 동시에 마법을 사용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홉고블린의 커다란 주먹이 휘둘러진다.

나는 순식간에 술식을 짜내 마법을 발동했다.

배리어가 놈의 주먹을 막아섰다. 쨍그랑!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2급 배리어가 부서지고 내 몸이 나무 벽을 부수고 뒤로 날아간다. 나는 진흙 바닥을 굴렀다. 다행히 배리어가 충격 대부분을 흡수해준 덕분에 요란하게 날아간 것에 비해 피해는 거의 없다. 입안이 찢어지고, 약간의 전신 타박상을 입은 정도다.

“홉고블린이 변이했다! 흩어져서 빙결계 마법을 사용해!!”

몸을 벌떡 일으키며 당황하는 분대원들에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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