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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121화 (1,121/1,497)

〈 1121화 〉 1121. 극기

“몇 초 지나니 마나도 원래대로 돌아왔네. 너, 헌터 경력도 얼마 안 되면서 특이한 기술을 쓰는구나?”

허리춤에 달아둔 화련비도를 검집에서 꺼내 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승희와 약속한 대로 죽일 생각은 없다. 그러나 확실한 승기를 잡기 위해선 팔다리 정도는 잘라내야겠다.

‘진세영처럼 압도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 정도 상대라면… 이길 수 있다.’

우선 노리는 것은 여자의 오른쪽 팔이다.

영천류(影天流) 뇌광(雷光).

어두운 공간에서 붉은빛이 번뜩이며 여자의 팔을 노렸다. 여자가 다급히 상체를 숙였다. 여자의 몸이 바닥에 스며들어 사라졌다.

“요즘 애송이들은 무섭네. 선배에 대한 공경이 전혀 없잖아. 나 때만 해도 선배를 만나면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했었는데….”

사방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재차 기감을 퍼뜨렸으나, 여자의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했다.

‘도 산뢰를 써야 하나? 아무리 내가 영천류를 마스터했더라도 극기를 연달아 쓰는 건 육체에 부담되니 다른 걸 써야겠군.’

[천안(天眼)을 개안합니다.]

감각이 한층 예민해지고 허공에 있는 마나가 육안으로 보인다. 나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벽 속에 스며들어 어떠한 기척 없이 움직이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마치 흐르는 액체와 같이 움직이고 있다.

‘바로 다가가면 반응하겠지. 저 여자는 내가 위치를 파악했다는 걸 몰라.’

마치 신경질을 부리듯이 허공에 칼을 휘둘렀다. 몇 번 반복하자 여자의 얼굴에 조소가 그려진다.

“난 거기에 없단다 꼬마야.”

“선배 행세를 할 거면 모습부터 당당히 드러내고 해.”

“싫어. 솔직히 말해서 너랑 정면에서 싸우고 이길 자신은 없어. 나는 내 방식대로 널 요리해줄게.”

“못생긴 년이.”

“……왜일까. 그것보다 심한 욕은 받아봤는데, 이상하게 그 간단한 욕에 짜증이 치솟네.”

“네가 못생겼으니까 그런 거지. 못생긴 년아.”

쉬이이이익.

측면에서 단검이 날아온다. 칼을 휘둘러 단검을 쳐냈다. 단검이 빙글빙글 돌며 위로 솟구쳤다. 천장에 단검이 스며들어 사라졌다.

“…나 참. 값싼 도발에 넘어가서 되지도 않는 공격을 해버렸잖아.”

“그 단검. 진짜가 아니군. 능력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만들어 낸 건가? 내 목을 조르던 팔처럼.”

“눈치챘어? 생각보다 빠른데…. 너, 감이 좋구나.”

목소리가 오른쪽에서 들렸다. 진짜 그녀는 내 뒤편에 있었다. 같잖은 수작이었다.

‘확실한 타이밍을 위해서 넘어가 줘야겠지.’

칼을 휘둘렀다. 뇌전을 품은 검기가 오른쪽으로 날아가 벽에 상흔을 남겼다.

“반응 좋은걸. 근데 거기가 아니야.”

목소리가 천장에서 들렸다. 칼을 천장에 찔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귀찮게 하는군. 영원히 숨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슬슬 모습을 드러내지?”

“허세 부리긴. 내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아서 초조해?”

“…….”

“자, 여기서 제안. 하승희의 연구 자료, 네가 가지고 있지? 그걸 넘겨. 물론 그냥 받을 생각은 없어. 대가는 줄게. 30억. 그 정도면 수고비로 충분하지?”

“그깟 푼돈을 누구 코에 붙이라고.”

“그래? 쉽게 가려고 했는데… 아쉽네.”

여자는 이미 내 지근거리에 다가와 있었다. 그녀가 내게 손을 뻗어온다. 손은 수십개로 분열되어 내 몸을 붙잡으려 한다.

‘딱 좋은 타이밍이군.’

칼자루를 꽉 쥐고 옆으로 휘둘렀다.

파지지직.

전류 한 줄기가 칼날을 타고 흘렀다.

영천류(影天流) 극기(極技) 봉뢰(封雷).

칼날에 닿은 여자의 팔들이 터진 물풍선처럼 사라진다. 전류에 닿은 순간 마나를 봉하는 효과 때문이다. 산뢰가 광역기라면 봉뢰는 대인기다. 마나를 봉하는 능력은 봉뢰가 산뢰 이상으로 뛰어나다.

깜짝 놀란 여자가 뒤로 물러나려고 하나, 칼날에서 뻗어 나온 봉뢰가 그녀의 어깨를 꿰뚫었다.

“꺄아아아악!”

그녀의 기척이 완벽히 드러나고, 무방비해졌다.

서걱.

화련비도의 칼날이 여자의 오른팔을 잘라냈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하는 대신 뒤로 물러났다.

‘찰나.’

순간 가속을 이용해 도망치는 여자의 머리채를 한 번에 낚아챘다.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준수에게 연락해. 네 패배로 일은 끝났다고. 아니면 내가 직접 연락할까?”

“끝? 무슨 소리야. 설마 사장님 아래에 나 한 명만 있을 것 같아?”

여자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콰아아앙!

오른쪽 벽이 부서지고 정장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한 명은 곰처럼 큰 덩치, 다른 한 명은 뼈처럼 빼빼 말랐지만 어떤 것보다 날카로운 기세를 흘리고 있다.

남자 둘이 날 보며 주절거렸다. 곰 같은 남자는 검은색 장갑을 끼고, 빼빼 마른 남자는 2m가 넘는 칼을 검집에서 뽑았다.

“B등급의 애송이가 아니었나?”

“직접 보니 A등급은 될 것 같군. 대한민국 최고의 유망주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군.”

“내가 그 나이 때는 간신히 C등급에 올랐었는데…. 그 재능이 부럽군.”

“잡설은 됐고…. 일이나 하지.”

손에 든 여자를 뒤로 내던졌다. 동시에 두 명의 남자가 내게 달려들었다.

‘가속, 찰나.’

[가속을 사용합니다. 10분 동안 유지됩니다. 남은 스택: 5]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상대는 A등급 헌터 두 명.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쓰러뜨려야 한다.’

나는 칼을 든 마른 남자에게 다가갔다.

영천류(影天流) 뇌광(雷光).

가장 빠른 검격을 날린다. 빛살이 된 칼날은 마른 남자의 다리를 노렸다. 마른 남자의 눈빛이 번뜩이더니, 그 몸이 빠른 속도로 옆으로 이동해 내 검격을 피한다.

마른 남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순간 가속! 가속 능력자였나.’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다시 자세를 잡으며 찰나를 사용했다. 상대는 2명. 주도권을 넘겨주면 내가 불리하다. 최악의 경우 반격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당할 수 있다. 그럴 바엔 무리해서라도 공격하는 게 낫다.

눈앞에 갑자기 곰 같은 남자가 주먹을 치켜든 자세로 나타났다.

‘공간이동?!’

마른 남자 이상으로 성가신 능력을 가졌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그의 주먹을 피하고자 찰나를 사용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반격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곰 같은 남자의 주먹이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다.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순간 가속의 대처법을 이미 알고 있군. 망할.’

안면에 주먹을 맞고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부서진 이빨을 뱉어내고 바로 몸을 일으켰다. 내 팔을 노리고 날아오는 칼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뇌전을 일으켰다.

마른 남자가 보법을 밟으며 뇌전을 피해 뒤로 달아났다. 내가 오른팔을 잃은 못생긴 여자는 이미 종적을 감췄다.

“센스 있군.”

“손속에서 노련함이 느껴진다. 실전 경험이 많은 모양이군.”

둘은 말을 지껄이면서도 슬금슬금 움직여 최적의 위치를 선점했다.

나는 계획을 바꿨다. 본래는 둘을 동시에 상대할 생각이었지만….

‘저 곰 같은 남자의 공간 이동 능력은 지나치게 성가셔.’

공간 이동 능력을 보는 순간 승산이 바닥을 쳤다. 완전 회복, 스톰브레이커, 천심 등의 수단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어떻게 이길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서 내 밑천을 내보일 생각은 전혀 없다.

‘튀자.’

승리 조건을 착각해선 안 된다.

적들을 모두 쓰러뜨리는 게 목표가 아니다. 나는 연구소의 경비. 최우선 목표는 품에 가지고 있는 USB를, 하승희의 연구 자료를 지키는 것.

파지지지지지직.

무차별적으로 뇌전을 흩뿌린다. 시퍼런 전류가 땅과 벽을 타고 내달렸다. 두 명의 남자는 기겁하며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그녀가 당했다는 걸 생각하면 평범한 전격은 아니겠지.”

“일부러 맞아주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지.”

영천류의 극기 중에서 나랑 가장 잘 맞는 기술을 사용한다.

영천류(影天流) 극기(極技) 폭진뢰(爆震雷).

사방에 퍼뜨린 뇌전이 일제히 폭발을 일으킨다.

나는 박살 나는 연구소로 놈들의 시야를 가리고 밖으로 도망쳤다. 옷은 찢어지고, 피부에는 화상을 입고, 머리에는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가 들러붙었다. 폭발의 영향에서 나도 안전할 수는 없었다.

‘연구소 하나가 날아갔군. 뭐, 이건 하승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연구소 건물 뒤로 나온 나는 바로 도망치는 대신 화련비도를 손에 꽉 쥐었다.

‘공간 이동 능력자라면….’

팟.

예상했던 대로 내 앞에 곰 같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위에 전류를 흩뿌렸다.

천류(影天流) 극기(極技) 산뢰(散雷).

칼자루를 들어 올렸다. 곰 같은 남자는 능력을 사용해 내 공격을 피하려고 했으나, 곧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마나가…!”

마나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당혹감을 추스르기 전에 칼자루의 끝으로 놈의 안면을 후려쳤다. 코가 함몰되고 이빨과 핏방울이 바닥에 튀었다. 그의 무릎이 꺾이고 어퍼컷을 날리기 딱 좋은 자세가 되었다.

실제로 어퍼컷을 날렸다.

그의 몸이 붕 떠올라 바닥에 쓰러졌다.

“내가 받은 건 돌려주는 성격이라.”

콧구멍 하나를 막고 있는 힘껏 코를 풀었다. 콧물 대신 핏물이 떨어졌다. 입안에 고인 피도 내뱉었다. 뒤섞여 있는 부서진 이빨을 보자 괜히 화가 났다. 그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커어억!”

그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의 몸이 사라지더니 내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의 커다란 주먹이 내 얼굴을 노린다.

‘알고 있었어.’

천안(天眼)에는 그가 공간 이동으로 나타날 장소가 보였다. 허공의 마나 흐름이 기이하게 뒤틀리는 게 요란스러워서 모를 수가 없었다.

‘뇌전권.’

파지지지직.

놈이 주먹이 닿기 전에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감전당한 그는 바로 정신을 잃고 기절했다.

‘천안 덕분에 생각보다 훨씬 쉽게 처리했군. 남은 건….’

폭발로 무너진 연구소에서 칼을 든 빼빼 마른 남자가 나를 향해 뛰어온다.

‘1대1이면 해볼 만 해. 찰나를 2번 더 사용할 수 있고…. A등급 헌터와 목숨 걱정 없이 칼부림하는 기회도 흔치 않고.’

그러나 나는 솟아오르는 투지를 고의로 꺼뜨렸다.

하준수가 준비한 전력이 이게 전부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내 예상으로는 더 많을 것이다. 하준수의 능력이라면 수 십 명의 A급 헌터를 고용하고도 남을 테니까.

‘내가 지는 건 상관없는데… 자료를 빼앗기면 하승희가 곤란해지지.’

내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하승희의 부탁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살벌한 기세로 달려오는 남자를 뒤로하고 근처 마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영천류(影天流) 뇌음보(雷音步).

영천류의 보법 중 가장 빠른 보법. 발이 땅을 밟을 때마다 작은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게 흠이었다.

“놈이 도망친다!”

“잡아!!”

“마을로 보내지마!!”

여기저기서 검은 정장을 입은 놈들이 튀어나왔다. 최소 B급 이상의 능력자들이다.

‘용케도 숨어 있었군. 마법이나 능력 같은 걸 사용했나?’

그 숫자만 20명이 넘는다. 나는 내 뒤를 쫓는 그들에게 중지를 세워주고 전력을 다해 뛰었다.

마을 근처에 도착하자 날 쫓는 추격자들의 기척이 사라졌다.

이건 어디까지나 세진 그룹의 내부 경쟁일 뿐이다. 그룹 밖에 내부 정보를 주고 싶지 않을 테니 소란을 피우지 않는 건 당연했다. 상대를 죽이지 말라는 것도 좀 과격한 남매의 경쟁이라 그런 거고.

‘어쨌든 자료는 지켰다.’

남매 간의 경쟁에서 승리한 건 하승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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