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2화 > 1172. 15일
쓰러진 놈의 복면을 벗겼다. 중년 남성의 얼굴이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까 낮에 숙소로 찾아온 일행 중 한 명이었다.
“아, 이 새끼, 복수하러 온 거구나. 혼자 왔어? 왜?”
“크으윽…. 네, 네놈이 아버지에 가한 모욕을 갚으러 왔다…!”
“아버지?”
두 눈을 끔뻑였다. 누굴 말하는지 모르겠다.
끝내 내게서 손도끼를 받아낸 나카가미 리사가 말했다.
“네가 무릎 박살 내고, 진흙 먹인 노인을 말하는 거겠지.”
“오. 나카가미 선배. 똑똑하네요. 리사라 불러도 돼요?”
“마음대로 해. 나도 마음대로 널 유진이라고 부를 테니까. 근데 이 손도끼… 한번 써보고 싶은데… 괜찮을까?”
“죽이면 안 된다니까요.”
“안 죽일게.”
“그럼 한 번 해봐요.”
나카가미 리사가 환하게 웃는다. 그녀가 양손에 손도끼를 쥐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두려움에 찬 눈으로 리사를 올려다봤다.
“그, 그만! 내게 궁금한 게 있을 텐데? 말해주겠다! 살려, 살려다오!”
“살려다오? 이 새낀 아직 상황 파악 못 했네.”
“하아, 하아, 하악….”
나카가미 리사의 숨이 거칠다.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눈동자는 요동친다. 꼭 정신을 놓아버린 여자 같았다. 어떻게 보면 오르가즘을 느끼기 직전의 표정 같기도 했다.
‘아까는 저놈의 고추를 잘도 박살 내더니….’
뭐, 손도끼로 팔을 찍는 것과는 조금 다르긴 했다. 취향 차이일 수도 있다. 흉기로 사람을 해치는 쪽을 더 선호하거나.
“한다…!”
나카가미 리사가 손도끼가 놈의 팔뚝에 박혔다. 피가 튀었다.
팔을 완전히 베어내지는 못했다. 그러기엔 힘이 부족했고, 각도도 영 아니었다.
허나 그녀는 그것만으로 만족하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환희했다.
“하윽, 하아아…. 뭐야 이거…. 너무 기분 좋아…!”
퍽, 퍽퍽, 퍽!
그녀가 손도끼로 놈의 오른팔을 마구 찍어댔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미, 미친년!! 아아악!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아악!”
놈이 바닥을 기면서 도망치려고 했다. 나는 흥분해서 놈의 머리를 찍으려는 나카가미 리사의 몸을 잡았다.
“리사 선배. 좀 진정해요.”
“하아악…. 그, 그래. 내가 좀 흥분했어.”
“좀이 아니던데.”
놈에게 다가갔다. 놈의 오른팔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피는 당연하고 뼈까지 보인다. 나는 놈의 주머니를 뒤졌다. 나이프 한 자루가 나왔다. 퍽! 나이프를 놈의 허벅지에 꽂았다.
“끄아아악!”
“자, 잠깐. 나이프, 저거 재밌을 것 같은데… 내가 써도 되지?”
“나중에요.”
나는 본격적으로 놈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 대해서 말해.”
“뭐, 뭘 말입니까?”
“마을이 숨기고 있는 거. 내가 볼 땐 구린내가 진동한단 말이지.”
“숨기고 있는 건 없습니다…! 그, 그보다 절 병원에 보내주십시오. 이, 이러다가 정말 죽습니다.”
“글쎄. 내가 볼 땐 당장 죽을 일은 없을 것 같군. 눈동자도 시뻘겋고 피눈물도 흘리고… 너 인간 맞냐?”
“저, 전 인간입니다!”
“그럼 네 눈깔은 왜 그런 거야?”
“…….”
“말 안 하지? 선배.”
나카가미 리사가 활짝 웃으며 놈의 허벅지를 나이프로 푹푹 찍었다.
“끄아악…. 마, 말하겠습니다. 혈단입니다!”
“혈단?”
“아파서 말을… 끅… 그만 찌르십시오…!”
나카가미 리사의 어깨를 잡았다. 그녀는 아쉽다는 듯이 입술을 핥았다.
“혈단이 뭔데?”
“…우리 마을의 비약입니다. 먹으면 잠시 동안 힘이 강해지고…, 피로도 싹 사라지고…, 회복력도 좋아집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 먹으면 감기가 순식간에 낫습니다.”
“그 좋은 걸 너만 처먹냐? 나도 줘. 그거 어디 파냐?”
“그건….”
“이 새끼가 또 말을 끄네.”
“시, 시마다! 시마다에게 부탁하면 혈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마다.
이 마을의 파출소장이다.
“너 위에 누가 있지?”
“네?”
“누구 명령받냐고.”
“아, 아무 명령도 받지 않습니다.”
“근데 오늘 낮에는 왜 몰려왔어.”
“시마다가 도와달라고 해서 같이 움직였을 뿐입니다!”
“시마다가 날 죽이라고 한 거 아니야?”
“아닙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고 했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지?”
“이 상황에서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살려주십시오! 병원에…. 진짜 이대로는….”
나는 놈에게 몇 가지를 더 물었다.
놈은 성실히 대답했다. 그 점이 더 의심스러웠다.
“좋아. 데려다주지. 네 집은 어디야?”
“……왜 집을? 저는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내 옆에 있던 나카가미 리사가 피식 웃었다.
“멍청하네. 아까부터 병원에 데려달라고 계속 말하니 의심스럽잖아. 병원에 함정을 파놓았겠지.”
“그, 그래. 내 말이 딱 선배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아니, 솔직히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날 죽이려 한 이놈이 괘씸해서 가족까지 쳐죽이려 했을 뿐이다.
“말해.”
놈의 귀를 나이프로 뜯어냈다. 놈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꽉 다물었다.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5분 정도 고문했는데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놈이 덜컥 죽어버렸다. 혈단인가 뭔가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어쩔 거야? 토막 쳐서 파묻을 거야?”
“귀찮게 왜요. 그냥 내버려 둬요.”
“어디가?”
“구멍가게요. 이런 마을은 좁아서 주민들이 서로 다 알고 있어요. 구멍가게 할망구도 이놈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 거예요.”
“갔다 와. 나는… 연습 좀 하고 있을게.”
퍼억! 퍽! 퍼억퍽!
나카가미 리사는 손도끼로 시체를 때리기 시작했다. 죽어 있어서 그런지 아까보다 덜 했지만 나름 즐거워 보인다.
구멍가게에 들어갔다. 불은 꺼져 있고 문은 잠겨 있었다. 문을 발로 차 박살 내고 들어갔다.
“허어어억?!”
가게 안쪽 방에서 놀란 할망구가 뛰어나왔다.
“너, 너는…! 또, 또 왜 온… 헙!”
노파가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내 옷에 묻어 있는 피 때문이다. 노파가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나이는 중년인이고… 지저분한 수염에…”
나는 놈의 얼굴을 말로 설명했다.
“…야마모토네의 준이치 말인가? 설마 준이치에게….”
“그놈 집 위치 좀 알려줘.”
“…….”
“알려 달라고.”
할망구에게 다가갔다. 할망구는 뒷걸음질 치더니 바닥에 넘어졌다. 할망구가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뺏어 들었다. 어딘가로 전화하려고 했다.
“가, 가르쳐 주겠네. 그, 그거 이리 주게.”
다리가 풀렸는지 내게 기어와 스마트폰을 자겨가려고 한다. 나는 노파의 어깨를 발로 차고 스마트폰의 잠금을 해제했다. 패턴이나 암호는 없어서 수월했다.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다가 최근 가장 많이 통화한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20초 정도 이어졌고, 곧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엄마?”
미리 스피커폰으로 설정해놓은 탓에 여성의 목소리는 구멍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노파를 쳐다본다. 노파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다.
“이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 엄마? 왜 대답이 없어?”
노파에게 턱짓했다. 대답하라는 뜻이었다.
“네, 네가 보고 싶어서 한 번 전화해봤다.”
“목소리가 안 좋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아, 아무 일 없다, 이년아. 도, 도쿄는 엉망이라며. 지금 괜찮은 거냐?”
“지금 피난소야. 여진이 발생하고 있어. 내일 피난소를 떠나서 집으로 돌아갈 거야. 하아. 보험사 놈들이 순순히 돈을 내줄까? 그것 때문에 짜증 나 죽겠어.”
나는 노파에게 손짓했다. 끊으라는 제스처다.
“아, 알겠다. 지금은 늦었으니 내일 또 전화하마.”
“엄마가 먼저 전화했….”
뚝.
전화를 끊었다.
나는 노파의 스마트폰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노파는 초조한 눈으로 내 눈치만 살폈다. 갤러리에 사진을 발견했다. 가족사진이었다. 노파와 중년 부부, 교복 입은 남녀 한 쌍.
“할망구 가족이야? 도쿄에 사나 보지?”
“제, 제발….”
노파에게 스마트폰을 던졌다. 노파는 간신히 스마트폰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할망구. 난 할망구를 안 죽일 거야. 왜냐고? 내일 또 여기에 올 거거든.”
“…….”
“요즘 일식만 먹었더니 질려. 한식이 먹고 싶어. 할망구가 준비해.”
“하, 한식은 할 줄 모르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내일 점심쯤에 올 테니 준비해놔.”
“……네.”
“할망구는 두 가지만 알면 돼.”
“두 가지…?”
“신고하면 죽어. 맛없어도 죽어. 음식에 이상한 거 넣으면 할망구를 솥에 넣고 팔팔 끓어서 그 육수를 딸년에게 먹일 거야. …아, 말하고 보니 세 가지네. 뭐, 됐나. 암튼 나 간다.”
나가기 전에 맥주캔 두 개를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내가 나가자마자 노파의 사타구니가 젖어가는 걸 봤다. 좋은 광경은 아니었기에 머릿속에서 지웠다.
나카가미 리사에게 다가갔다. 나카가미 리사는 웃는 얼굴로 날 반겼다.
“캔맥주도 가져왔어? 센스 있네.”
피투성이의 그녀가 맥주캔을 따고 맥주를 들이켰다.
나는 그녀의 아래를 바라봤다. 남자가 토막 나 있었다. 그 조각만 20개가 넘었다. 내장이 악취를 풍겼고, 머리는 쪼개져 분홍색 뇌까지 보였다.
“이 새끼 집 알아냈어요. 가죠.”
“…꼭 가야 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잔뜩 기대하고 있는 표정으로 뭔 말이에요.”
“후후후. 그거 알아? 내 아래쪽 지금 엄청 젖었어.”
나는 그녀의 핫팬츠를 바라봤다. 하얀색 핫팬츠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음부를 집중해서 봤는데 젖었는지 육안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나는 흥분한 그녀의 눈치를 보다가 핫팬츠의 단추를 열고 오른손을 핫팬츠 속에 집어넣었다. 캔맥주를 들고 있던 손이라 차가운지 그녀가 몸을 떨었다.
“흐으응….”
보지는 뜨겁고 끈적했다. 손가락에 소음순이 걸린다. 나는 조심스레 보지를 매만졌다. 잔뜩 젖은 보지는 처녀 보지였다.
“선배. 털이 없네요?”
“여름에는 수영복 사진을 잔뜩 찍거든. 관리가 필수야.”
“그렇긴 하죠.”
“아, 기분 좋다…. 이건 이거 나름의… 하으응…. 섹스하고 싶어. 지금 여기서 할래?”
그 제안에 당장 YES라고 외칠뻔했다. 그러나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았다. 좀 더 밝은 곳에서 섹스하고 싶었다. 그래야 그녀의 몸을 제대로 즐길 수 있으니까.
“할 일은 하고 하죠.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나는 나카가미 리사의 하반신에 손을 넣은 채로 앞으로 걸었다. 잔뜩 흥분한 그녀는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3번이나 절정했다.
“커다란 은행나무가 앞에 있는 집 3채. 중간에 있는 갈색 대문의 집…. 여기네요.”
현관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중년 여자와 청년이 있었다. 진흙 먹은 노인은 없었다. 병원에 입원한 모양이다. 모자를 죽이고 밖으로 나왔는데 10명의 사람이 칼과 농기구로 만든 무기를 쥐고 우리를 포위했다. 그 전원이 혈단을 먹었는지 붉은 눈으로 피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이 빌어먹을 놈이!”
“야마모토 상을 죽여?!”
“용서 못해!!”
“놈을 죽여서 야마모토 상의 넋을 달래야 한다!”
나는 굳어진 나카가미 리사를 집안에 밀쳐 넣고 문을 닫았다.
“유진?!”
“잠시만 거기에 있어요. 금방 끝나니까.”
나는 옆에 있는 청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목적은 그가 들고 있는 일본도를 빼앗기 위해서다.
푸욱. 푹, 푹!
내가 그들을 너무 얕봤던 걸까.
놈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내 몸을 쑤셨다. 식칼, 창, 빠루가 내 몸에 파고든다. 좆같은 기분에 이를 더 악물었다.
푸욱. 일본도가 내 목을 관통했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죽음 저항의 남은 시간: 15초]
앞으로 손을 움직였다.
“히이이익!”
일본도로 내 목을 찌른 놈이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누가 봐도 즉사해야 하는데 움직이니 겁먹은 것이다.
나는 내 목을 관통한 일본도의 칼자루를 쥐고 빼냈다. 주위를 둘러본다. 내게서 1m 떨어져 있다. 겁에 질린 그들은 내가 쓰러지기를 바라고 있다.
[죽음 저항의 남은 시간: 10초]
그런데 어쩌나.
죽음 저항은 10초나 남아 있었다.
나는 내 몸에 박혀 있는 무기들을 모조리 빼내 바닥에 떨어뜨렸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고통과 함께 상처가 사라진다. 놈들에게 히죽 웃어줬다.
“괴, 괴물!”
겁에 질린 놈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일본도를 들어 올렸다.
“아아,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짧고 아픈 시간이었다…. 이제 천마 성유진으로 돌아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