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7화 > 1297.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나는 밖으로 나와 바로 천안을 발동했다.
막사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시커먼 기운을 발견했다. 마나와는 다르다. 그 기운들은 하늘 위로 올라가 한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낄낄낄.”
그곳에서 3등신의 악마가 배를 잡으며 웃고 있었다.
이마에서 솟아난 한 쌍의 붉은 뿔, 길쭉한 화살표 모양의 검은 꼬리, 피부도 검은색이라 악마라는 느낌이 확 든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고블린과 비슷했다.
'설마 이렇게 대놓고 일을 벌이고 있을 줄이야.'
몽마가 흡수하는 시커먼 기운의 정체가 불현듯 떠올랐다. 부정한 마나다. 내가 알고 있는 부정한 마나보다 농도가 옅긴 해도 부정한 마나가 확실했다.
'다른 사람들은 놈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 보니… 은신하는 능력도 있는 건가.'
나는 고민했다.
몽마는 방심하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가 들키지 않은 줄 안다. 어떻게 해야 몽마에게 완벽한 기습을 할 수 있을까.
'모두가 분주한 상황일 때… 나만 전투 자세를 취하면 놈이 바로 눈치채겠지.'
고민 끝에 나온 방법은 하나였다.
놈에게 번개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내 마나가 반응하며 하늘로 올라갔다. 다행히 몽마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번개를 떨어뜨리기 직전, 병사들을 보며 낄낄 비웃던 몽마는 무언가를 느낀 듯 하늘을 보며 고개를 기웃거린다. 다행히 마법이 아니라서 그런지 공격을 알아차리진 못했다.
'벼락 맛 좀 봐라!'
새까만 밤하늘에서 시퍼런 번개 한 줄기가 몽마에게 떨어졌다.
낙뢰를 맞은 몽마가 아래로 떨어진다. 그제야 천둥소리가 뒤늦게 울린다.
'가서 마무리해 볼까.'
화련비도를 쥐고 걸어가다가 멈칫했다. 바닥에 떨어졌던 몽마가 다시 하늘로 솟았다. 그리고 붉은 눈으로 날 정확하게 바라본다. 내 살의를 느끼고 내가 범인이란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도망치려나?'
몽마는 겉모습만 따지면 약해 보였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몽마는 도망치지 않았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전투 태세를 갖춘다.
나는 오러 블레이드를 휘감은 화련비도를 쥐고 몽마에게 달려들었다. 몽마가 나를 향해 양손을 내민다. 몽마의 손에서 검은연기가 훅 뻗어 나왔다.
'가속,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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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스킬을 이용해 검은 연기를 피한다. 곁에 있던 병사 몇몇이 검은 연기에 적중당했다. 병사들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져 잠들었다.
"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친다. 대체 무슨 원리의 공격인지 모르겠다.
'안 당하면 그만이야.'
공중에 떠 있는 몽마를 향해 뛰어올라 칼을 휘두른다. 몽마가 위로 올라가며 내 공격을 피했다.
파지직.
뇌천류(雷天流) 허도(虛道).
뇌기를 이용해 허공에 발판을 만들어냈다. 나는 발판을 밟으며 점프했다. 몽마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진다.
칼이 몽마의 몸에 닿는다. 칼은 몽마의 몸통을 노렸으나, 어깨를 베어내는 게 고작이었다.
오러 블레이드는 강철도 두부처럼 쉽게 베어낼 수 있지만, 악마의 피부는 강철보다 더 잘질겼다.
'괜찮아. 또 공격하면 되니까.'
파지직.
뇌기를 이용해 만든 발판을 밟으며 몽마를 향해 다시 달려든다.
“끼에에에에엑!"
몽마가 고함쳤다. 고주파의 목소리는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게 비명인지, 아니면 음파 공격인지 알 수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보면 비명에 가까우리라.
“시끄럽다. 얌전히 죽어라! 내 즐거움은 방해한 대가다!"
칼이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몽마의 몸이 부풀어오르더니 그대로 터졌다. 새까만 연기가 내 몸에 달라붙는다.
'…망했다.'
방심은 아니다. 단순히 몽마의 자폭에 허를 찔린 것이다.
검은 연기에 온몸이 감싸인 나는 지상으로 떨어진다. 검은 연기 때문에 시야가 제한되었다는 점을 제외하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프지도 않고 손발도 제대로 움직인다.
쾅!
바닥에 떨어졌다. 등에서부터 충격이 왔다. 대충이나마 낙법을 펼쳤기에 데미지는 크지 않았다.
'뭐지? 검은 연기가 안 떨어지는군.'
검은 연기… 부정한 마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그것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내가 아무렇지 않아 하자,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당황한 것 같았다.
나는 천안(天眼)에 정신을 집중하며 검은 연기를 빤히 들여다봤다. 몽마의 존재가 보였다. 아니, 느껴졌다는 말이 더 알맞을 것이다.
'이 검은 연기가 놈의 본질이었군.'
몽마는 꿈과 관련된 악마다. 그러니 이 검은 연기도 꿈과 관련된 뭔가일 것이다.
'뇌전.'
뇌전을 일으킨다.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온 시퍼런 번개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검은 연기를 감전시킨다. 검은 연기를 크게 일렁이다가 한곳으로 뭉치더니 몽마의 형상을 취한다. 한쪽 팔이 없는 몽마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몽마를 보며 잠깐 고민했다.
몽마를 여기서 죽일까. 아니면 살려서 정보를 캐낼까.
'악마 새끼들은 독해서 고문을 해도 입을 열 때까지 며칠은 걸릴 거야. 딱 봐도 약해 보이는 놈이니 알고 있는 정보도 거의 없겠지.'
자잘한 정보는 필요 없다. 그런 정보가 없어도 적들을 밀어버리는 데는 문제없으니까.
나는 화련비도를 치켜들어 몽마의 목을 쳤다. 검은 피와 함께 몽마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와아아아아아아!"
주위에서 함성이 터졌다.
생각지도 못한 함성에 깜짝 놀란 내가 주위를 둘러봤다. 몽마에 집중하느라 몰랐는데 병사들이 내 주위에 잔뜩 몰려있었다.
"사령관님이 악마의 목을 베었다!!"
"사령관님께서 악마를 죽이고 정의를 바로 세우셨다!!"
"유진 프루커스!! 유진 프루커스!!!"
병사들의 환호는 제법 괜찮았다.
나는 씨익 웃으며 몽마의 머리를 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함성이 더 커졌다. 나는 널리 퍼지는 내 이름을 들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거기. 병사."
"네, 사령관님!"
"악마의 머리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장대에 걸어 효시해라! 이 빌어먹을 악마놈들도 우리를 막지 못한다! 우리는 악마로부터 대륙을 구할 세리온 여신의 군대다!"
“사령관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는 세리온 여신의 군대입니다!"
나는 흡족한 얼굴로 병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주고 마차로 향했다. 유리아에게 들려줄 무용담이 생겼다.
날이 밝았다.
나는 정오 무렵에 유리아의 품속에서 깨어났다. 아침에 일어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아침에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인간이었다.
마차 밖으로 나왔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이미 군대는 전투 준비가 끝난 것이다.
플로이와 스칼렛이 내게 다가왔다.
나는 스칼렛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제 몽마에게 당한 병사는 몇 명이지?"
"322명이 사망했고, 15명은 아직 혼수상태에 빠져있습니다. 마법사의 말로는 늦어도 오늘 저녁 무렵에는 일어날 거라 합니다.”
"별 피해 없군."
내가 끌고 온 병력은 12만 명이 넘는다. 포로로 잡은 노예병도 있으니 300명의 사망자는 있으나 마나 한 피해다.
"공성 준비는 모두 끝났겠지?"
“끝났습니다. 주군께서는 명령만 내리시면 됩니다."
"샤르넬과 마법사들은?"
"후방에 배치했습니다. 플룬 기사단이 마법사들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플룬 기사단은 프루커스 백작가 소속의 기사단이었다. 내가 프루커스 백작이 되면서 플룬 기사단도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되었다.
나는 스톰브레이커를 소환해 갑옷을 착용했다. 플로이가 말을 데려왔고, 스칼렛은 내 어깨에 붉은 망토를 달았다.
"플로이. 당연히 암말이겠지?"
"물론입니다, 주군.”
말 보지를 확인한 뒤에야 말에 올라탔다. 나는 수컷에 올라타지 않는다.
나는 검 끝으로 적의 성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돌격하라!!!"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검과 방패를 든 노예병들이 성벽을 향해 돌격한다. 성벽 위의 궁병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새파란 하늘이 화살에 의해 새까맣게 물들었다.
아군의 마법사들이 바람 마법을 사용했다. 곡선을 그리며 지상으로 떨어지던 대량의 화살이 강력한 바람에 부딪쳐 박살 난다. 화살 지상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노예병들은 성벽에 다리를 걸고 기어오른다. 물론 뜻대로 되는 경우는 없었다. 적들은 뜨거운 물을 붓거나, 화살을 쏘며 격렬히 저항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성벽 위의 마법사들이 노예병들을 향해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땅이 흔들리고 불기둥이 치솟는다.
"드디어 마법사들이 나섰군. 우리도 나설 차례다."
내가 말했다. 옆에 있던 스칼렛이 마도구를 통해 아군 마법사들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잠시 후, 샤르넬의 헬파이어와 파이어볼 수백 개가 아군의 머리 위를 가로지르며 성벽을 폭격한다. 성벽 위의 마법사들이 부랴부랴 마법으로 물의 장벽을 일으키거나, 방어 마법으로 대응한다. 처음부터 대비했다면 모를까. 기어오르는 노예병을 상대하며 힘이 빠진 마법사들은 마법 폭격을 막지 못했다.
콰콰콰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성문과 성벽이 무너진다. 모든 성벽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만으로 이미 전쟁의 승패는 났다.
"플로이! 가자!"
“예, 주군! 모두 주군을 따르라!!"
나는 고삐를 쥐고 달렸다. 내 뒤를 골든 로즈 기사단이 따르고, 그 뒤를 정예 병사들이 따른다.
'카시오드! 네놈의 목은 내 것이다!"
말을 재촉하며 무너진 성문을 넘었다. 내부는 이미 전투가 한창이었다. 여기저기가 불타오르고,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도시의 중심으로 내달린다. 영주는 대개 도시의 중심, 가장 큰 건물에 있었다. 그게 아니면 뒤에 있거나.
"프루커스 백작!!"
"여긴 지나갈 수 없다!!"
기사 두 명이 내 앞을 막아섰다.
플로이가 나설 필요도 없다. 나는 오러 블레이드가 맺힌 검으로 두 명의 기사를 갑옷째로 베어내고 앞으로 나아갔다.
내성의 정문 앞. 카시오드를 비롯한 수십 명의 기사가 보였다.
"카시오드! 내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