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399화 (1,394/1,497)

< 1399화 > 1399. 아카데미의 구원자

일반 훈련실에서 시뮬레이터 룸으로 이동했다.

널려 있는 일반 훈련실과 달리 시뮬레이터 룸은 한정적인지라 예약이 필수지만… 돈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기존 시뮬레이터 룸을 이용하는 학생들에게 돈을 주며 2시간을 빌렸다.

2시간에 800만 원.

일반인들에겐 터무니 없는 가격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시뮬레이터 룸의 가치를 알고 있다면 2시간 이용하는데 800만원은 적절한 편이다.

'몬스터를 상대로 목숨 걱정 안 하고 안전하게 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시뮬레이터 룸 말고는 없지.'

이 시뮬레이터 룸을 이용할 수 있는 건 아카데미 학생의 특권이었다.

히어로가 협회의 시뮬레이터 룸을 1시간 이용하려면 최소 천만 원 이상 깨진다.

“이제 몬스터를 상대해보자."

“기말고사 시험에서 몬스터를 상대해야 해?"

"확실한 건 아니지만… 몬스터를 상대하게 될 거야. 그것도 1대1로."

“1대1이면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쉽지 않을까?"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카데미가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나는 시뮬레이터를 조작해 구현 가능한 몬스터 목록을 훑어봤다. 고블린에서부터 시작해서 오크, 트롤, 그림자 추적자 등등 온갖 몬스터를 구현할 수 있었다.

'이런 자잘한 놈들은 다 제외야. 원작에서 1대1 몬스터 전투 시험이라고 하면… 상대하는 몬스터는 한정적이지.'

대형 몬스터.

이 세계에선 크기가 최소 5M 이상의 몬스터를 말한다.

'전투 시험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대형 몬스터는 오우거, 드레이크, 프로스트 보어.'

오우거는 둔중하지만 강하다. 그냥 강하다. 가죽은 두껍고 힘은 더럽게 세다. 대형 트럭은 주먹 한 방에 날려버릴 정도다.

드레이크는 빠르다. 그리고 변칙적이다. 몬스터를 파악하는 타입의 학생들에겐 오히려 오우거가 더 편할 것이다.

프로스트 보어는 서리를 흩뿌리는 거대한 멧돼지다. 얼음 계열 공격은 거의 통하지 않는다. 반대로 화염 계열 공격에는 취약하다.

'우선 오우거부터.'

쿵!

육중한 몸을 가진 오우거가 시뮬레이터 룸에 나타났다. 가짜다. 가짜지만 그 기백은 진짜와 똑같았다.

이시은은 오우거의 기세에 밀려 얼어붙었다. 얼굴은 파랗게 질리고 다리는 가늘게 떨렸다.

"유, 유진아. 나 혼자서 오우거를 상대해야 해? 거짓말이지?”

"할 수 있어. 시뮬물레이터 룸이라 맞아도 안 죽으니 편하게 해."

“그래도 맞으면 아프잖아…!"

이시은이 울상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한손에 단검을 쥐었다. 그녀 주위로 에너지가 움직인다.

나는 시뮬레이터를 조작했다. 가만히 서 있던 오우거의 육중한 다리가 드디어 움직였다.

지이이이이잉.

이시은의 에너지가 넓게 퍼진다. 에너지는 곧 중력으로 변하더니 오우거의 다리를 붙잡았다.

오우거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이시은의 중력은 충분히 뛰어나지만, 힘의 오우거를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이시은이 에너지 볼을 사용했다. 6개의 에너지 볼은 오우거의 머리와 몸통에 적중했다.

오우거가 움찔거리긴 했으나, 그뿐이다. 에너지 볼로는 오우거의 단단한 가죽을 뚫지 못한다.

이시은은 주춤거렸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우거는 점점 중력의 속박에서 벗어나 빠르게 움직였다.

파지지지직!

번개로 변환된 에너지가 오우거에게 쇄도한다. 그리고 당연히 통하지 않았다. 오우거의 두꺼운 가죽은 기본적으로 마나 저항력이 뛰어나다. 어지간한 번개로는 가죽 표면만 그을릴 뿐이었다.

쿵. 쿵. 쿵!

오우거가 접근한다.

보통은 오우거에게서 도망치면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상대하는 게 대표적인 공략법이다. 그러나 이시은은 도망치지 않았다.

'지치긴 했어도 도망치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뭔가를 노리고 있군.'

오우거가 팔을 번쩍 들며 이시은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이시은은 오우거에게 파고들며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손으로 오우거의 몸통을 짚는다.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오우거의 몸이 고꾸라진다.

이시은은 환류를 사용했다.

오우거가 가진 마나를 이용해 내부에서 에너지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좋은 시도였어. 하지만 부족해. 오우거는 마나를 직접 사용하지 않는 몬스터야. 자신의 에너지를 오우거에게 밀어 넣었다면 파괴력이 더 올라갔을 텐데.'

이시은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못한 모양이었다. 딱히 그녀가 멍청하다는 건 아니다. 그녀는 환류 스킬을 얻은 지 겨우 10분밖에 되지 않았다.

퍽!

"꺄아아악!"

오우거의 팔에 맞은 이시은이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나는 손에 쥔 창에 마나를 일으켰다.

뇌천류(雷天流) 뇌강인(雷罡刃).

창끝에 번개의 칼날을 덧씌우고 투창했다. 창은 오우거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오우거가 쓰러지더니 사라졌다.

"시은아. 괜찮아?"

"아, 응. 괜찮아."

이시은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 하지만 식은땀이 흐르는 것까진 참지 못했다. 그녀는 명백히 지쳐 있었다.

"일단 쉬고 있어."

“그럴게. 유진이 너도 같이 쉬자."

"기껏 시뮬레이터 룸에 들어왔는데 시간을 버릴 순 없지. 나도 훈련 좀 하자."

손이 근질근질하다.

실험해보고 싶은 것도 몇 개 있고.

나는 시뮬레이터 룸을 조작해 대형 몬스터를 소환했다.

프로스트 보어.

서리를 흩뿌리는 멧돼지가 나를 노려보며 투레질을 한다.

프로스트 보어가 내게 돌진했다. 나는 뇌전을 일으켜 놈에게 던졌다. 뇌전 줄기를 통제하며 그물 모양을 유지한다. 번개의 그물은 프로스트 보어의 순식간에 포위해 줄어들었다.

뇌천류(雷天流) 극기(極技) 폭진뢰(爆震雷).

수십 개에 달하는 번개 줄기가 동시에 폭발을 일으켰다. 프로스트 보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것도 꽤 괜찮네."

“와아! 유진이 대단해!"

이시은이 뒤에서 열렬히 박수를 쳤다. 기분이 좋아졌다.

기말 고사까지 앞으로 일주일.

마루한 아카데미의 분위기가 변했다. 모두 공부에 집중했다. 훈련실의 불은 꺼질 줄 몰랐다.

일본 아카데미와의 교류전이 걸려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카데미 학생들은 상위권 성적의 학생이 아니면 교류전에는 별 관심 없었다. 어차피 교류전에 나갈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적 순위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순위에 따라 아카데미에서 주어지는 지원이 달라지니까. 거기에 졸업 후의 취직처인 히어로 클랜은 순위로 학생들을 판단하니까.'

때문에 아카데미 학생들은 순위가 낮을수록 더욱 절박했다.

반에 들어와 자리에 앉은 나는 한 남자를 주목했다. 창백한 인상의 남자였다. 이름은 해선무. 나와 같은 반이고 입학 순위는 294위다.

꼴등에 가까운 순위.

아카데미를 졸업하더라도 어중간한 클랜에 들어갈만 성적이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입학 순위가 확 바뀌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

깔개는 깔개로서 졸업할 뿐이었다. 그게 아카데미의 현실이다.

'꼴을 보아하니 원작대로 진행되는 모양이군. 원작에서는 내버려 둬도 상관없는 사이드 퀘스트였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내버려 뒀다가 어떤 변수가 되어 찾아올지 몰랐다.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으니 움직여 볼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꽤 유명인이었기에 바로 시선이 모였다. 남자들의 시선은 경계와 질시가 담겨 있었다. 반대로 여자들의 시선은 따뜻했다. 나는 여자들을 꼬시면서 잘 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 여자 중 절반은 나랑 몸을 섞었다.

해선무에게 다가가 그 어깨를 잡았다.

“야, 해선무.”

"어, 유, 유진아. 왜?"

“나랑 잠깐 나가서 얘기하자.”

"……."

해선무의 얼굴이 싹 굳어졌다. 몸을 덜덜 떨기까지 했다. 남자들에겐 내 평판이 워낙 낮다 보니 발생한 일이었다.

"여, 여기서 말하면 안 될까?"

“나가서 얘기하자고 했잖아. 지금 내말 무시하냐?”

“아, 아니야. 나가자. 나가서 얘기하자!”

해선무를 데리고 복도로 나갔다. 나는 긴장한 그에게 툭 던지듯이 말했다.

“강령술. 그거 배웠지? 기말 고사 때 사용하려고 말이야."

강령술.

영혼을 육체에 강령시키는 마법.

"어, 어떻게."

해선무가 익힌 건 평범한 강령술이 아니다. 강령술을 조금 개조해서 힘이 미약한 영혼을 일시적으로 강령시키는 마법. 아카데미 교사에게도 들키지 않지만, 일반 강령술에 비해 효율이 최악이다. 약하기도 하고. 대신 운동선수가 도핑 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 강해질 수 있다. 그 대가로 생기를 빨리겠지만.

"너 나 몰라? 겨우 그딴 걸로 내 눈은 못 숨겨."

나는 정령안을 발동했다. 황금색으로 변한 눈동자를 본 해선무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양옆으로 사정없이 흔들린다.

“그, 가, 강령술을 익힌 건 맞는데 기말 고사 때 사용하려고는 안 했어."

"뭔 소리야. 정식으로 익혔으면 사용해도 상관없잖아."

"……."

해선무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그의 멱살을 쥐었다.

"내가 강령술에 좀 흥미가 있거든. 어떻게 강령술을 익혔는지 자세히 말해봐."

"그, 그건 우연히….”

"씨발. 구라치면 바로 협회에 신고한다. 협회가 얼마나 집요하게 조사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지?"

"혀, 협회가 그렇게 쉽게 움직일 리 없어…!"

"우리 엄마가 누구지?"

"……."

성하리의 입김으로 히어로 협회를 움직이는 건 일도 아니다.

해선무는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강령술에 대해 전부 털어놓았다.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강령술사와 만났어. 그가 2,000만 원만 주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강령술 아티팩트를 준다고 해서…."

“어떤 아티팩트인데? 지금 가지고 있지? 보여줘라."

주섬주섬 꺼낸 아티팩트는 해골 모양의 부적이었다.

『강령부

랭크: E

생기를 대가로 강령을 사용할 수 있다.」

“재밌네. 이걸 2,000만 원에 샀다라…. 그 강령술사는 다른 걸 안 팔았나?"

"더 좋은 부적도 있었는데… 내가 가진 돈이 별로 없어서…."

“그 새끼 연락처는?"

"연락처는 없지만 만나는 방법은 알아. 그 사람과 만나게?"

“어. 오늘 밤에 같이 가자."

“가, 같이? 만나는 법을 알려줄게. 그러니…."

“새끼야. 네가 안내하라고. 말귀를 왜 이렇게 못 알아 듣냐? 뒤질래?"

"미, 미안…."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 좆같게 굴면 죽여버린다."

"……알았어."

원작에서 이 퀘스트는 강령술사를 잡아 처리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 보상으로 특수한 아이템을 얻는다.

'딱 봐도 수상쩍은 게 뭔가랑 연결되어 있는 게 틀림없어. 한 번 캐내 봐야지. 물론, 아이템은 다 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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