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9화 > 1449. 다크문
"버텨라! 버티기만 해라! 이놈을 처리하고 바로 도와주러 가겠다!"
몬스가 외쳤다.
무슨 의미인지는 안다.
내가 마법사라 그러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 세계에서 마법사는 소규모 전투에서 약하다. 마법사라는 꽃이 아름답게 만개할 수 있는 곳은 대규모 전투가 일어나는 전장이었다.
‘그건 일반적인 마법사고.'
마법사도 마법사 나름이다. 소규모 전투를 더 선호하는 마법사도 존재한다. 그게 나였다.
콰앙!
쥬피트 형제의 삼남인 케이슨이 건틀릿을 낀 주먹으로 배리어를 두들겼다. 주먹질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화약에 의한 폭발은 아니다. 배리어 한 장이 허무하리만치 쉽게 깨진다.
'마도 공학인가.'
남은 배리어는 4장.
쾅! 콰앙!
주먹질 한 방에 배리어가 하나씩 깨져나갔다. 건틀릿의 비밀을 알아차렸다. 저건 그냥 폭발하는 게 아니다. 마나와 부딪치며 마나 술식의 배열을 흩트린다. 마나 배열에 독을 침투시켜 단숨에 파괴하는 행위.
견고한 배리어가 단숨에 부서졌으니, 그 효율은 최고 수준이라 봐도 무방하다.
'왜 마법사를 보고 환호했는지 알겠군. 마법사는 놈의 먹이다.'
마법사가 소규모 전투에서 그나마 활약하게 해주는 이유가 이 배리어다. 그 배리어를 손쉽게 박살 낼 수 있다? 평범한 마법사들은 얼이 빠질만큼 경악스럽겠지. 저 건틀릿은 디스펠이라 봐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배리어를 제외한 다른 마법에도 똑같은 영향을 끼치겠지.'
그럼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건틀릿을 닿지 않게 마법을 쓰면 된다. 물론 놈의 움직임을 피하면서.
다행히도 배리어 자체가 아예 무용지물인 건 아니다. 배리어를 무시하는 건 아니니까. 적어도 놈의 일격은 막는다.
콰아아아앙!
마지막 배리어가 깨졌다.
오른 주먹을 뒤로 당긴 케이슨이 히죽 웃는다.
“갑각류 좋아하냐? 난 그중에서도 랍스터를 가장 좋아해. 단단한 껍질을 부수고 야들야들한 속살을 씹는 맛은 진미, 그 자체지.”
놈이 내게 주먹을 휘두르기 전에 준비했던 마법을 사용했다. 설마 내가 배리어가 깨지는 걸 멍청하게 보고만 있었을까.
[에어 붐]
놈의 바로 앞에서 공기 폭발이 일어나 놈을 뒤로 튕겨냈다. 일반인이었다면 그 육체가 터져 사라졌겠지만, 상대는 일반인이 아니었다. 그 육체의 내구성은 최소 바위 이상의 경지에 올랐을 것이다.
"이 자식이!"
뒤로 날아갔던 케이슨이 쿵쿵거리며 내게 달려온다. 그 속도는 내 기준으로 빠르지 않았다. 게임으로 치자면 체력 능력치가 가장 높고, 민첩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느낌이다.
[마이크로웨이브]
케이슨이 주춤거렸다.
"뭔가 했냐?"
쿵쿵쿵! 다시 뛰어온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예상은 했지만, 발도 못 묶을 줄은 몰랐다.
'마이크로웨이브는 실패한 마법이군. 다시 개량하는 것보다 포기하는 게 효율적이겠어.
케이슨이 다가온다. 나는 뒤로 물러나면서 거리를 벌렸다. 놈은 내 기준으로 느리지만, 나보다는 빨랐다. 계속 이렇게 술래잡기를 할 수는 없었다.
"어딜 도망가?!"
케이슨이 웃으며 속도를 높였다. 이 술래잡기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라이트닝 스피어]
3개의 번개의 창을 날린다. 염력으로 라이트닝 스피어의 궤도를 바꿔 케이슨의 정면과 좌우를 노렸다.
'건틀릿은 두 개. 라이트닝 스피어 2개를 쳐내도 1개는 어쩔 거지?'
케이슨은 좌우에서 날아오는 2개의 라이트닝 스피어를 주먹으로 때렸다. 작은 폭발이 일어나며 라이트닝 스피어가 붕괴되어 사라졌다. 내가 개량한 라이트닝 스피어는 적중하는 순간 폭발을 일으키며 그 주변에 뇌전으로 광역 피해를 입힌다.
하지만 저 건틀릿에 맞는 순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남은 1개의 번개의 창. 케이슨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면 돌파했다. 몸으로 라이트닝 스피어를 받은 것이다. 라이트닝 스피어는 폭발을 일으키며 전류가 사방으로 뻗쳤다. 그 전류의 대부분이 케이슨의 몸에 흘러들어 갔다.
"크르르르르…! 이거 짜릿한데?!"
“……무식하군."
"형들에게서 매일 듣는 말이야. 움직임을 보니 넌 보통 마법사가 아닌 것 같으니… 전력으로 죽여주마."
케이슨은 건틀릿을 낀 손으로 제 가슴팍을 두들겼다.
직후, 케이슨의 육체에서 마나가 요동친다.
'자기 자신에게 버프를 걸었나?"
마법은 아니다. 건틀릿과 마찬가지로 마도 공학으로 추정된다.
'가슴팍을 두들겼다. 마도 공학 심장인가.
얼마 전에, 로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 도시에서 막대한 돈이 있다면, 막대하게 강해질 수 있다던가. 케이슨을 보니 그 말이 맞다는 걸 더 확신하게 된다.
케이슨이 바닥을 박찼다. 10m의 1초 만에 주파해 내 앞에 나타나 주먹을 휘두른다.
콰아아앙!
배리어가 부서졌다. 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야. 언제 배리어를 쳤어?"
"배리어를 유지하는 건 마법사의 기본이다."
[에어붐]
거리를 좁힌 제이슨을 날려 보낸다. 제이슨은 무게 중심을 바꿔 날아가는 방향을 위로 틀었다. 천장에 두 다리를 밟고 선 그는 무릎을 굽혔다가 피며 내게 쇄도한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느려진 시간 속에서 케이슨의 주먹 궤도를 확실하게 파악하며, 술식을 계산한다. 술식을 계산한 뒤에는 몸을 틀어 케이슨의 주먹을 피했다. 콰앙! 주먹이 바닥을 때린다. 바닥이 무너지고 어두컴컴한 지하 공간이 드러났다.
"이걸 피해? 방금 그거 뭐야? 마법사 쑤제에 어떻게 그런 움직임을….”
[바인드]
케이슨 육체를 묶는다. 오래는 불가능하다. 기껏해야 5초 정도. 하지만 그 5초면 충분하다. 내게는 찰나가 있으니까.
[염력]
돌조각 하나를 내 앞으로 끌고 온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물질 변환]
연금술을 이용해 돌멩이를 일시적으로 금속으로 바꾼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탄환이 되는 금속도 작고, 거리가 가깝다 보니 마법으로 깔 수 있는 전자기 레일도 짧다. 레일건의 위력이 제대로 나올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 위력이 약하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케이슨의 육체는 관통할 위력은 충분히 나온다.
[레일건]
레일건은 케이슨의 심장으로 진격했다. 머리를 노리지 않은 건 케이슨을 높이 평가해서다. 머리는 케이슨이 피할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케이슨은 탄환이 가슴에 닿기 직전 허리를 억지로 비틀었다. 완전히 피한 건 아니다. 레일건은 놈의 왼쪽 어깨를 분쇄했다. 그러면서 발로 내 복부를 찼다. 아슬아슬하게 소형 배리어로 복부를 보호했지만… 급조한 거라 그 충격을 온전히 막아낼 수 없었다. 나는 뒤로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쿨럭!"
발차기 한 방에 피를 토했다. 아무리 내가 마법사라지만, 이 신체 능력 차이는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 참고로 이 발차기는 케이슨이 각 잡고 제대로 찬 발차기도 아니다.
'…이러니 마법사가 소규모 전투에선 약하다는 평가를 받지.'
전사의 육체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한 신체.
'하지만 위력과 응용력 면에서는… 마법사가 더 위다.'
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아아아아아아악! 내 팔…!!! 형! 저 새끼가 내 팔을!!!”
케이슨은 왼쪽 어깨를 잡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마나 진액을 투입 당했을 때 어마어마한 고통을 느꼈다. 그때는 정말로 미치는 줄 알았다.
'덕분에 어지간한 고통에는 아무렇지 않아졌지만.'
케이슨이 고통을 이겨내기 전에 코트 주머니에서 금속 탄환을 꺼냈다.
파지지직.
새파란 뇌전이 탄환을 감싼다.
[레일건]
가속된 탄환은 일직선으로 날아가 케이슨의 머리를 꿰뚫었다. 물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벽을 관통하며 밤하늘로 날아갔다.
나는 입에 묻은 피를 스윽 닦아내며, 또 다른 전투를 바라봤다.
"케이슨! 이 빌어먹을 새끼가!!"
차남인 발드 쥬피트레인이 나를 향해 분노의 일갈을 내질렀다. 몸의 방향을 틀고 내게 달려들려고 했으나, 몬스가 그 앞을 가로막는다.
“섭섭하군. 날 무시하지 마라."
나는 몬스에게 물었다.
"내 도움이 필요하나?"
"네 도움은 충분히 받았다. 이놈은 내가 쓰러뜨린다."
몬스가 당당히 말했다. 허세는 아니었다. 발드는 자잘한 상처가 많은 반면에, 몬스는 멀쩡했다. 누가 봐도 몬스가 우세한 전투 양상이었다.
"마법사. 지하로 가라. 필립 쥬피트레인이 급히 비밀 통로로 내려간 것을 보면. 지하에 뭔가 있다. 가서 닌자를 도와 필립을 처리해라."
“그러지.”
테이블 뒤의 비밀 통로로 향했다.
“거기 서!!"
발드가 나를 향해 외친다. 물론 무시하고 비밀 통로로 들어갔다. 계단을 걸으며 배리어를 복구한다.
5장의 배리어.
5장 이상의 배리어를 중첩하는 건 효율이 안 좋았다.
비밀 통로를 내려가자 복도가 나왔다.
'사전에 숙지한 설계도에는 없는 공간이군.'
그 설계도는 카지노 건물이 건축되었을 때의 설계도다. 즉, 이 공간은 카지노 건물이 완공된 뒤에 몰래 만들었다는 뜻이된다. 구린 냄새가 났다.
복도를 걷는다. 부서진 기계 잔해들이 보였다. 자세히 보면 하나같이 물에 젖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물.'
그 여자, 인비저블 블레이드의 짓이 확실했다.
‘그 여자는 이 공간 안으로 어떻게 들어온 거지? 비밀 통로를 제외하면 입구 같은 곳은 안 보이는데?'
그녀가 닌자라는 것을 떠올린다.
이런 곳을 침입해 들어오니 닌자라 불리는 거겠지.
위이이이잉.
벽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벽 안에 다른 공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디텍션]
마나 술식을 퍼뜨린다. 술식은 벽에 막혀 사라졌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벽을 자세히 살펴봤다.
‘결계식 일부를 새겨 넣어 탐지를 방지했군.'
손이 많이 가고 돈이 많이 드는 방식이었다.
“이 미친년이!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저 앞에서 분노에 찬 남성의 목소리가 복도에 쩌렁쩌렁 울렸다. 벽을 살펴보고 있던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반파된 철문 안으로 다리를 밀어 넣으며 들어갔다.
실험실. 아니, 마법사의 실험실에 가까운 그 공간에서 두 명의 남녀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5대5 가르마를 탄 금발 남자와 몸에 착 달라붙는 사이버 슈트를 입고 육감적인 몸매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여우 가면의 여닌자.
쥬피트 갱단 연합의 보스인 필립 쥬피트레인과 인비저블 블레이드였다.
필립이 손을 들어 여닌자를 가리켰다. 거대한 번개 줄기가 에너지빔처럼 쏟아지며 여닌자를 뒤쫓는다. 여닌자는 화려한 덤블링으로 번개를 피했다. 그러면서 팔을 수평으로 눕히고 절도있게 휘두른다.
슉슉슉.
손바닥에서 생성된 물표창이 필립에게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