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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474화 (1,469/1,497)

< 1474화 > 1474. 팔라딘: 악멸의 여정

철컥철컥.

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갑옷이 부딪치며 금속 소리가 났다. 나는 당장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은 낡은 나무 계단을 밟으며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은 식당 겸 주점이었으나, 손님은 없었다. 대낮이니 당연했다. 사람들은 일하느라 바쁠 테니까.

"성가시님. 일어나셨네요? 바로 아침 식사를 준비해 드릴게요."

나를 반긴 건 이 가게의 여주인이었다.

밝은 여자였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뛰어나다. 남편이 있는 거로 아는데, 아마 이 마을 남자들에게 제법 질투를 받았을테지. 아니면 지금도 질투를 받고 있거나.

나는 그녀가 있는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성기사님?"

빵과 스프를 준비하고 있던 그녀가 의아해하며 나를 쳐다본다.

“어라? 갑옷이 바뀌었네요? 어제 본 갑옷보다 훨씬 멋져요. 아침 식사는 빨리 준비해 드릴게요."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오늘 생각이 바뀌셨나요? 전 언제든지 괜찮아요."

요염한 눈웃음을 짓는다.

이 여자는 어젯밤에도 나를 이렇게 유혹했다.

여긴 창관이 아니지만, 여관 여주인이 남자를 유혹해 몸을 파는 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일이었다. 그만큼 이 세계가 살기 힘든 세계라 그렇다.

키이이이잉.

성안을 발동한다.

그녀의 몸과 얼굴이 일그러지며 본성이 보였다. 사마귀를 닮은 머리에 칼날로 이루어진 팔.

"우와. 신기한 눈이네요. 교단의 상징이 있는 걸 보니… 성기사만의 특수한 성법인가요?"

“시끄럽다."

"네?"

왼손이 움직였다. 여주인의 머리를 콱 움켜쥔다. 강철로 감싼 손가락이 여주인의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손가락은 두개골에 막혔지만, 피가 아래로 줄줄 흘러내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죽어라, 타락자.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속죄다."

오른손에 쥔 대검을 여자의 가슴에 쑤셔 박았다. 여자의 몸이 움찔댄다. 육체가 꿈틀거리더니 인간의 외피를 벗고 본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망설임 없이 검을 아래로 쭉 내리그었다. 여자는 내장을 쏟아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방심하지 않고 쓰러진 여자의 머리를 검으로 내려쳤다.

악마와 타락자는 인간이 아니다. 재생력이 좋은 놈들은 내장을 쏟아내고도 재생할 수 있었다. 놈들을 그나마 확실하게 죽이는 방법은 지금처럼 목을 치는 것이었다. 더 확실한 건 신성력을 이용해 죽여버리는 거고.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이름: 유진

출신: 성기사

레벨: 2

힘: 7 민첩: 5 체력: 5 신성력: 2

사용 가능한 포인트: 1

보유 스킬: 성안(Lv. Master) 홀리 오라(Lv.1)]

포인트는 바로 사용해 신성력을 올렸다.

가장 효율 좋은 능력치는 힘이지만, 가장 중요한 능력치는 신성력이었다.

나는 가게를 떠나기 전 죽은 여주인의 시체를 힐끗 바라봤다. 역겹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게임에서 이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면… 바로 잡아먹히고 죽어버리지.'

이 세계는 위험하다. 함정이 도처에 깔려 있다. 내가 성안을 선택한 이유도 이런 함정을 피해 가기 위해서다. 앞으로는 내가 모르는 함정도 분명 나올 것이니까.

가게 밖으로 나온 나는 천천히 마을을 둘러봤다. 인구 50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바닥을 유심히 살펴봤다. 시커먼 기운 같은 게 보였다. 이것도 성안의 능력 중 하나다. 악마의 흔적을 찾는 능력.

'어디에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발걸음을 옮긴다. 내 목적지는 마을 뒤편에 있는 숲이었다.

캬아아아악!

나무 위에서 괴물이 튀어나왔다. 나는 침착하게 대검을 휘둘러 달려드는 괴물을 처리했다.

괴물은 다람쥐와 닮아 있었다.

타락수다.

타락은 인간만 하지 않는다. 동물이 타락하면 타락수라고 부른다.

타락수의 시체에서 검은 연기가 일어나더니 내게 달려들었다. 악마나 타락자의 영혼이 내게 달라붙어 나를 저주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경험치지.'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이름: 유진

출신: 성기사

레벨: 3

힘: 7 민첩: 5 체력: 5 신성력: 3

사용 가능한 포인트: 1

보유 스킬: 성안(Lv. Master), 홀리 오라(Lv.1)]

나는 이번에도 신성력을 올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성력이 낮으면 악마의 영혼과 타락한 영혼의 영향을 받아 빠르게 타락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팔라딘이라고 해서 타락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완전 회복과 천심이 있더라도 타락에 대한 대비는 해야 한다.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타락수들이 나타나는 빈도가 늘었다.

앞으로 걷던 길을 멈추고 몸을 내려다본다.

검은 기운이 내 몸을 휘감고 있었다. 20마리 넘는 타락수를 죽였더니, 타락이 꽤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슬슬 써야겠군.'

가방에서 성수가 담긴 병을 꺼냈다. 성수를 몸에 뿌린다. 타락의 기운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타락의 기운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역시 한계가 있군.'

타락의 기운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당이나 교회로 가야 한다. 성수는 성스러운 곳에서 효과가 강해지니까.

'도착했다.'

부서진 돌벽이 나왔다. 5m가 넘는 돌벽의 구석진 곳에 거대 거미가 있었다. 높이만 3m가 넘는 거미의 머리는 잉어 대가리였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매치는 본능적인 혐오감을 일으킨다.

'…아락스. 튜토리얼의 수문장. 뉴비의 원수.'

팔라딘을 처음 하는 뉴비의 절반은 이 괴물을 넘지 못하고 게임을 접는다고 한다.

'해보자.'

대검을 양손으로 잡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아락스의 첫 번째 패턴이었다. 도약할 것이다. 단숨에 날아와 나를 붙잡으려 하겠지. 나는 피한 뒤에 놈의 뒤꽁무니를 강하게 때릴 것이다.

하지만 내 계획은 처음부터 무너졌다. 아락스는 도약하지 않았다. 마치 탐색을 하듯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래. 여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지.'

아락스의 잉어 대가리가 뻐끔거린다. 놈은 주둥이로 기름을 뱉었다. 나는 기름을 피하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홀리 오라.'

신성력이 움직인다. 대검에 황금빛 오라가 은은하게 서렸다. 대검이 아락스의 앞다리를 베었다. 잘린 다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키에에에에에에엑!!"

아락스는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뒹굴 구른다. 기회였다. 나는 놈의 몸 위로 올라갔다. 다리에 힘을 주며 갑옷의 무게로 아락스를 누르며 검을 휘두른다.

"죽어라!"

대검을 내려치려는 순간이었다. 괴성을 지르던 놈이 침착함을 유지하더니 거미 다리로 내 몸을 휘감는다. 스톰브레이커가 버텨주었기에 그 다리가 몸을 쑤시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압박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갑옷도 오래 버티질 못할 것이다.

“키키키키킥!"

"연기로 나를 속인 건가! 간악한 놈…!"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었다.

나는 검을 손에서 놓았다. 검이 너무 커서 이렇게 바짝 붙은 상태에선 휘두르기 힘들었다. 대신에 양손으로 아락스의 머리를 때리고, 몸의 일부를 붙잡아 당겼다.

'뇌전!'

파지지지직!

신성력에 의해 발현된 뇌전은 황금색으로 빛났다. 뇌전이 아락스의 몸을 타고 흐른다. 아락스는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놈의 다리가 더 조여오기 시작했다.

갑옷이 찢어졌다. 아락스의 날카로운 다리가 내 몸 안으로 파고든다. 놈의 다리가 내 내장을 들쑤시는 기분은 최악이었다.

'…죽는 건 확정이다.'

이를 악물었다. 아락스의 대가리를 양손으로 잡고 짓눌렀다. 잉어 대가리가 부서진다. 그러나 놈의 다리는 여전히 힘이넘쳤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내가 죽은 걸 확인한 아락스는 그제야 다리에서 힘을 풀었다. 비틀대며 균형을 잡는다. 부서진 놈의 대가리가 천천히 재생하기 시작한다.

아락스가 방심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완전 회복을 사용했다. 바닥에 떨어진 성기사의 검을 잡고 바로 일어났다.

깜짝 놀란 아락스가 엉덩이로 거미줄을 쏘아낸다.

[천심(天心)을 발동합니다. 1분 동안 지속됩니다.]

거미줄은 내 몸에 닿자마자 옆으로 미끄러졌다.

[가속을 사용합니다. 10분 동안 유지됩니다. 남은 스택: 6]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아락스를 향해 미친 듯이 홀리 오라가 담긴 성기사의 검을 휘둘렀다.

쾅쾅쾅!

다리를 베고 몸통을 가른다. 아니, 때린다에 더 가까웠다.

"역겨운 거미 놈! 빨리 죽어라!"

아락스가 죽었다.

놈의 영혼이 내 몸에 달라붙어 나를 타락시키려 한다. 악마라서 그런지 타락수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타락의 기운이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업을 하며 얻은 포인트로 서둘러 신성력을 올렸다. 타락의 기운이 약해졌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가방에서 성수를 꺼냈다. 성수를 담은 강철 병은 단단해서 전투 중에도 부서지지 않았다.

성수를 몸에 뿌린다. 타락의 기운이 약해졌다.

'마을로 돌아가서 타락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경험치를 취한다. 그리고 발렌티어 성당으로 가자.'

앞으로의 계획을 세운 나는 아락스의 시체에서 심장을 끄집어냈다. 악마의 심장은 좋은 아이템 재료다.

‘챙길 건 다 챙겨야지.'

마을로 돌아왔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마을 사람들이 죄다 모여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내 눈치를 봤다. 나를 보는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득하다.

'여관에 있는 시체를 발견한 건가.'

마을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살펴봤다. 1할 이상이 타락자였다.

한 남자가 내 앞으로 튀어나왔다.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여관 여주인의 남편이다.

"성기사님! 왜, 왜 제 아내를 죽인 겁니까?!"

"네 아내는 역겨운 타락자였다."

“아닙니다! 제 아내는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이었다고요! 왜 내 아내를 죽인 거야?!"

"……."

나는 절규하는 그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는 타락자가 아니었기에 죽일 필요가 없었다. 덤벼든다면 그때 죽이면 된다.

한 소년이 내 앞에 튀어나왔다. 10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은 내게 꽃을 건넸다.

“성기사님! 마을을 구해주시러 왔다고 들었어요. 감사드려요! 이 꽃을 받아주세요!"

“…역겹군.

"네?"

오른발이 움직였다. 소년의 가슴팍을 누르듯이 짓밟는다. 당황한 소년의 얼굴이 두려움으로 일그러졌다. 소년은 두꺼운 강철에 감싸인 내 발과 다리를 필사적으로 떨쳐내려고 했다. 나는 발에 더욱 힘을 주었다. 소년이 피를 토했다.

"아, 아파요, 성기사님! 사, 살려 주세요!"

무시하고 대검을 들어 올렸다.

소년의 눈동자가 커진다. 소년의 얼굴과 몸이 일그러진다. 인간의 피부가 벗겨지고 끔찍한 괴물의 외피가 드러난다.

"타락하지”

검을 역수로 쥐었다. 검 끝은 정확히 타락자의 목을 겨눈다. 괴물의 촉수가 치솟아 내 다리에 달라붙는다.

“말지어다."

소년의 목을 찍었다.

직후, 사방에 숨어 있던 타락자들이 본성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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