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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483화 (1,478/1,497)

< 1483화 > 1483. 팔라딘: 악멸의 여정

바위 뒤에 숨어 샐로트 성을 바라봤다.

샐로트 성.

인간이 쌓아 올리고, 샐로트라는 귀족이 다스렸던 성이었다. 하지만 성은 몇십 년 전에 악마에게 빼앗겼다.

교단은 몇십 년 동안 샐로트 성을 탈환하지 못했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맞다. 샐로트 성안에는 최소 3마리 이상의 악마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타락자들과 언데드가 항상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샐로트 성을 공략하려면 못해도 300명 이상의 성기사가 필요하다. 라는 게 당시 교단의 판단이다.

'샐로트 성의 위치는 도시에서 떨어져 있지.'

샐로트 성은 직접적인 위험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교단은 샐로트 성을 내버려 뒀다. 굳이 벌집을 들쑤실 필요는 없으니까. 실제로 샐로트 성의 악마들은 얌전했다. 지금까지는.

‘교단은 샐로트 성을 계속 주시했고, 의식이 벌어지는 걸 알았지.'

그 의식이 대악마의 부활이란 것도 알았다. 원래는 수십 년이 걸리는 대악마의 부활을 의식을 통해 앞당기는 것이다.

나는 샐로트 성을 한참을 관찰했다. 원작 게임과의 차이점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그건 변수가 될지 모르니까.

'차이점은 거의 없군. 그 게임은 사소한 것에도 디테일이 있었지.'

샐로트 성의 경비는 빡세다. 입구에는 타락자들이 지키고 있고, 외성에는 언데드가 어슬렁거린다. 내성의 경계도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성가신 건 하늘을 날아다니는 유령들이었다.

'방법은 있다. 하나는 지하 수로, 다른 하나는 개구멍.'

나는 뒤를 돌아봤다. 대기 중인 성기사와 이단심문관들이 내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그 수는 500명에 달한다. 그중 절반은 복장이 조금 달랐다. 발렌티어 외의 다른 지역에서 온 지원 병력들이다.

"계획대로 나는 샐로트 성으로 잠입한다. 너희는 이곳에서 놈들과 대치하며 대기하라."

"알겠습니다, 팔라딘이시여.”

그들의 대답을 들은 나는 성을 빙 둘러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가는 건 미친 짓이다. 얼마 못 가 들킬 게 분명하니 바위에 몸을 숨기면서 이동해야 한다.

성공적이었다. 들키지 않고 서쪽 성벽에 달라붙었다.

성벽에 달라붙으니 경계도는 더 낮아졌다. 악마나 타락자들은 인간과 달리 꼼꼼하지 못했다. 언데드는 인지 능력이 동물보다 떨어졌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지상을 감시하는 유령은 특정한 장소만 직접적으로 감시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농땡이를 부리는 모습이 흔하다.

'인간으로 치면 오합지졸의 군대다.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대악마가 없고, 간부인 악마들은 통솔은 내팽개치고 의식에 빠져있지.'

나는 성벽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발로 성벽을 치며 움직였다. 단단한 성벽이지만, 유독 느낌이 다른 곳이 있었다.

'찾았다.'

쪼그려 앉아 벽을 두들긴다. 낡은 벽들이 부서지며 개구멍이 생겼다. 처음에는 작은 개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었지만, 주먹으로 툭툭 치자 구멍이 넓어지며 성인 남성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인간이 만든 성을 악마나 타락자들이 관리할 리가 없지.'

개구멍을 통해 성벽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나는 성안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었다.

'죽일 놈들은 죽이고, 얻을 건 얻는다.'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의 근원은 식탁에 앉아 있는 언데드였다.

달그락달그락.

좀비는 식사 중이었다. 한손에 포크를 쥐고 접시 위의 썩은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음식을 삼켰다. 삼킨 음식은 식도를 넘어가지 못하고 뚫린 목에서 튀어나와 접시에 떨어졌다. 언데드는 개의치 않고 식사를 반복했다. 언데드의 식사는 끝없이 이어졌다.

언데드의 앞에는 커다란 새장이 있었다. 새장 속에 한 중년 남자가 갇혀 있었다. 입고 있는 복장은 사제의 것이었다. 새장속의 사제는 나를 발견하고 두 눈을 반짝인다. 어서 빨리 자신을 구해달라는 듯이 쳐다본다.

나는 기척을 죽이며 언데드의 뒤로 다가갔다. 건틀릿을 낀 손으로 언데드의 어깨를 잡고 등에 검을 쑤셔 박았다. 성대가 없는 언데드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나는 신성검을 사용해 언데드를 끝장냈다.

"오, 여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제게 구원자를 보내주셨군요!"

"넌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보고도 모르십니까? 놈에게 붙잡혀 있었습니다. 자, 성기사시여 저를 풀어주십시오."

"언제부터 갇혀 있었나?"

"대충 3개월 전부터였습니다. 순례길을 오르는 중이었는데… 도중에 악마에게 붙잡혔습니다. 사악한 악마들은 저를 여기 새장에 가두고 구경하더군요. 놈들은 저를 타락시키려고 했으나, 저는 강철같은 신앙심으로 버텼습니다."

“그래. 대단하군."

"당신은 어떤 목적이 있어 이 성에 잠입한 것일 테죠. 저는 이 좁은 새장에 3개월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보고 들은 게 많습니다. 제가 당신의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 어서 빨리 이 새장을 열어주십시오."

나는 새장에 다가갔다. 새장의 강철 창살을 한 손으로 잡아 벌린다. 끼이이익! 철이 벌어지자 사제는 깜짝 놀라 두 눈을 치떴다.

"오. 대단한 힘이군요. 저는 검으로 창살을 베어낼 줄 알았… 커억?!"

벌어진 창살 사이로 대검이 들어와 그의 가슴팍에 박혔다. 사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신은 성기사가 아니었습니까?!"

"타락자여, 같잖은 연기는 내게 통하지 않는다."

“저, 저는 타락자가 아닙니다!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제 신앙은 굳건합니다!"

“아니, 너는 이미 타락했다. 너는 3개월 전에 갇혔다고 했지. 하지만 네 모습은 3개월간 갇혀 있던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그건… 악마들이 제게 물과 음식을 꾸준히 줬기 때문입니다! 놈들은 저를 제물로 사용하려 했습니다!"

"내 생각과 다르군. 악마들은 그저 널 가지고 논 것이다. 네가 언제 타락을 인정하는지 자기들끼리 내기라도 걸었을 테지."

“나는, 나는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제가 가진 정보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정보 따윈 필요 없다. 그리고 이상함을 느끼지 않나? 너는 심장이 뚫렸음에도 나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말이다!"

"이, 이건 여신의 가호가! 여신께서 저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럼 또 다른 증거를 보여주지."

철컥!

투구가 자동으로 벗겨진다.

드러난 내 얼굴을 본 사제의 얼굴이 경악이 서린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내 눈에 향해 있었다. 성안(聖眼)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파, 팔라딘…!"

"내 눈을 속일 수 없다. 너는 타락자다."

“아, 아니야! 나는 타락하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라."

신성검을 사용했다. 검신에 황금빛이 서린다. 사제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가 비명을 지르기 직전, 검은 사제의 목을 쳤다. 나는 떨어지는 사제의 머리까지 베었다.

'일단 하나는 처리했군.'

게임에서 이 사제를 구해주면 샐로트 성의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중요한 순간에 기습하는 데 그게 좀 성가시다.

'어차피 놈이 지껄이는 정보는 전부 알고 있다. 살려둘 이유가 전혀 없지.'

나는 다시 움직였다.

성안에 돌아다니는 언데드나 타락자는 보이는 족족 죽였다. 대부분 홀로 돌아다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4~5명씩 모여서 다니는 놈들은 무시하고 지나쳤다. 지금의 내 힘이면 충분히 죽일 수 있지만, 조용히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성 한쪽에 있는 첨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위로 향하는 계단이 이어졌다. 계단에 앉아 있는 언데드들은 하나씩 처리하며 올라간다.

가장 위에 잠긴 문이 있었다. 나는 문 앞에 아무 기척이 없는 걸 확인하고 대검으로 문을 베었다. 비스듬히 베인 문이 쿵 넘어갔다.

침대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방이었다. 감옥이나 다를 바 없다. 때가 탄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창살로 막힌 창문 앞에서 있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저를 죽이러 오셨나요?"

“아니. 구하러 왔다. 폴라리스 공녀.”

공녀가 몸을 뒤로 돌렸다. 갈색 머리의 그녀는 꾀죄죄한 몰골이었으나, 차분한 눈동자가 가진 품격을 대변한다.

“…당신은 성기사인가요?"

"팔라딘이다."

투구를 벗어 성안을 보여준다. 공작의 딸쯤 되면 온갖 지식을 배웠을 것이다. 팔라딘의 성안을 모를 리가 없었다.

“발렌티어에 새로운 팔라딘이 나타났다는 말은 들었어요. 그게 당신이군요."

"그래."

“설마 반년이 지나서야 저를 구하러 올 줄은 몰랐지만요. 어스테일 공작가는 어떻게 됐나요?"

그녀가 긴장하며 물었다.

"멀쩡하다."

"…네? 머, 멀쩡하다고요? 그럴 리가. 멀쩡했다면 아버지께서 저를 이렇게 방치했을 리 없어요!"

“지나치게 멀쩡해서 문제지. 악마가 너의 얼굴과 목소리를 훔쳐서 너의 행세를 하고 있다. 어스테일 공작가는 네가 실종되었다는 사실도 모른다.”

"……."

그녀는 한순간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그녀의 얼굴에는 분노가 서린다.

“감히 악마 따위가 가문을 농락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팔라딘님, 저를 가문으로 데려다주세요. 사례는 톡톡히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지금 샐로트 성의 상황을 그녀에게 설명했다. 똑똑한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신음을 흘렸다.

“…대악마의 부활을 위한 의식을 진행 중이라니… 저를 잡아두고 있는 이유는 의식 때문이군요."

"팔라딘의 핏줄, 공녀라는 신분. 놈들에게 너는 최상급 제물이다."

"최상급 제물 듣기 좀 그렇군요."

공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말을 이었다.

"너는 성창을 운반하던 중에 붙잡혔지. 그 성창이 필요하다.”

"성창 로티스. 가문의 보물이죠. 성창을 사용할 수 있는 가문의 직계뿐이에요."

"나는 팔라딘이다."

"…그렇군요. 팔라딘은 성창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가요. 처음 안 사실이네요. 성창을 주는 건 불가능하지만, 빌려드릴 순 있어요. 하지만 지금 제겐 성창이 없어요. 악마들이 가져갔죠."

“성창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 네가 해야 할 일은 성창의 봉인을 푸는 것이다."

"봉인까지…. 팔라딘께서는 많은 걸 아시는군요."

날 향한 경계심이 짙어졌다.

나는 슬슬 짜증이 났다. 지금 상황은 긴박했다. 이렇게 여유롭게 수다나 떨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날 의심하든, 경계하든 상관없다.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녀에게서 몸을 돌렸다.

"가자.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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