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2화 > 1492. 팔라딘: 악멸의 여정
새크리파이스.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스킬이다.
그러나 그 작은 기적은 정말 보잘것없었다. 내가 쥐고 있는 성검이 신성력으로 충만해진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새크리파이스의 레벨이 낮아서… 아니, 다 죽어가는 상태에서 새크리파이스를 사용해서 그런가.'
나는 죽었다.
새크리파이스의 영향으로 확실하게 생명이 끊어졌다.
그러나 부활 스킬이 발동하고 다시 일어났다. 육체가 완벽히 회복되었다. 비록 갑옷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지만.
부활한 나는 신성력이 충만한 대검을 아리아스를 향해 휘둘렀다. 날 향해 날아오던 아리아스가 방향을 틀더니 천장으로 솟구쳐 건물 밖으로 튀어 나갔다.
'이제 와서 도망이라고? 절대 놓치지 않는다!"
천장을 향해 점프했다. 막아서는 천장을 박살 내고 위로 올라가기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결국 지붕 밖으로까지 나왔다.
가장 높은 곳에서 주위를 두러빈거린다. 아리아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교황청에는 결계가 있다. 아무리 아리아스라도 순식간에 교황청의 결계를 파괴하고 도망칠 수는 없을 터.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다.
키이이이이잉.
성안을 발동하여 대악마 아리아스의 흔적을 찾는다.
-후후후후후후.
아리아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웃음소리는 아래쪽에서 들렸다. 내 시선이 아래쪽으로 향했다.
시민들이 모여있는 도시 거리.
그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비명이 울린다.
곳곳에 숨어 있던 타락자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행패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성기사와 사제, 이단심문관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타락자들을 처단한다. 문제는 인간들이 실시간으로 타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악마 아리아스는 악마들을 통 들어 인간들을 가장 많은 인간을 타락시키고, 가장 빨리 인간을 타락시키기로 유명한 대악마였다. 그 대악마의 영향은 신실한 사제와 성기사에게까지 뻗치고 있었다. 타락한 성기사와 사제들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상황은 심각한 혼돈으로 치닫고 있었다.
'……원작에서 왜 교황을 먼저 공격하지 않고 자잘한 놈들부터 처리하는지 알겠군.'
이런 혼란을 대비한 거다.
'어쨌든 아리아스를 죽이면 될 일이다.'
정신을 집중하며 고개를 두리번거린 끝에 아리아스의 흔적을 발견했다. 아리아스의 흔적은 교황청 뒤에 있는 거대한 조각상, 최초의 팔라딘과 이어져 있었다.
번쩍!
조각상의 두 눈이 빛난다.
쿠구구구구구궁.
조각상의 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리아스…. 설마 조각상에 빙의한 건가. 상상을 뛰어넘는군.'
거대 조각상의 다리가 움직였다. 아래쪽에 있던 집이 단숨에 무너진다.
"으아아아아아악!"
"조각상이 움직인다!"
"대악마다! 대악마가 조각상을 조종하고 있다!"
“킬킬킬. 인간들아! 보아라! 아리아스 님의 힘을!"
쿠우웅!
조각상의 다리가 또 움직였다. 인간, 타락자 할 것 없이 조각상의 발에 밟혀 죽었다. 30m에 달하는 조각상은 손에 쥐고있는 거대한 검을 내게 휘두른다. 날카로움 따윈 느껴지지도 않는 돌로 이루어진 검이지만…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저 압도적인 무게에 눌리는 순간 끝이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찰나를 이용해 공격을 피했다.
나는 거검이 내려친 교황청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교황청 건물이 단번에 반으로 갈라졌다.
'저 거대한 놈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내가 가진 기술 중에서 저 조각상을 단번에 박살 낼 기술은 없었다. 평범한 조각상이라면 모르겠지만, 저 조각상에는 대악마 아리아스가 빙의해 있었다.
힐끔.
손에 쥔 발렌티어의 성검을 봤다. 새크리파이스의 영향으로 신성력이 줄줄 흐르는 성검이지만, 저 거대한 놈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온다.'
조각상이 검을 휘두른다. 이번에는 옆을 베는 횡베기다. 검은 내가 아니라 교황청 건물을 노렸다.
교황청 건물이 굉음과 함께 박살 난다. 지붕은 미끄러지며 아래로 무너진다. 나는 무너지는 지붕 잔해를 박차며 부서지는 건물로부터 최대한 멀어졌다. 건물 잔해에 깔리기라도 하면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다.
바닥에 내려섰다.
조각상의 눈은 정확히 내게 향했다. 조각상이 거대한 검을 높이 치켜든다. 나는 거리를 내달리며 떨어지는 검을 피했다.
동시에 대검을 휘둘러 검기를 날린다.
검기는 정확히 조각상의 머리에 닿았으나, 그 단단한 표면에 흠집만 낼 뿐이다.
'지금의 내 힘으로는 아리아스를 상대하기 힘들다.'
어떻게든 저 조각상을 부순다고 치자. 하지만 정말 그게 끝일까?
내 눈에는 보인다. 타락자에 의해 죽어가는 사람들의 영혼이 아이리스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을! 아리아스는 영혼을 포식하며 조각상의 덩치를 조금씩 키우고 있다.
'단번에 끝장내야 한다. 그러려면….'
압도적인 힘이 필요하다.
지금의 내가 압도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새크리파이스에 의한 기적.
온전한 상태의 나를 온전히 바친다.
'한다.'
새크리파이스를 사용했다.
내 몸의 모든 것들이 빠져나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푸른 하늘.
그 이상의 어딘가.
저 높은 천상에서 황금색 빛이 내게 떨어진다.
빛은 나의 육신을 변화시켰다.
피부는 탈색되듯 새하얗게 변하고, 등에서는 네 쌍의 빛의 날개가 뻗어 나와 만개하듯 펄쳐졌다.
빛은 모여들어 황금 갑옷의 형태를 취하고, 성검의 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머리 뒤로 성스러운 기운이 응축되어 헤일로가 되었다.
천상의 대천사가 내 육신을 매개체로 삼아 지상에 강림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흐려지는 의식이 다시 선명해진다.
죽음을 떨쳐낸 나는 육신의 통제를 되찾았다. 여신의 병기에 불과한 대천사가 저항했으나, 압도적인 정신력으로 대천사의 의지를 찍어 눌렀다.
'대천사의 힘이 느껴진다. 대천사의 존재는 천천히 사라지고 있다. 대천사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5분 정도인가.'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대악마 정도는 아니어도 어지간한 악마 따윈 가볍게 죽일 수 있는 힘. 그런 강력한 힘을 새크리파이스 만으로 아무 제약 없이 마구잡이로 사용할 수 있을 리 없다.
'5분 내로 아리아스를 죽인다.'
빛의 날개를 펼치고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대천산의 힘?
-그 여자가 힘을 쓴 모양이네.
-하지만 소용없어.
잠깐 사이에 조각상은 40m 가까이 늘어나 있었다. 조각상에서 느껴지는 마력도 범상치 않았다. 아리아스가 더 많은 힘을 모으지 못하도록 도시 내의 타락자들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하늘 위로 손을 뻗는다. 내 안의 막대한 신성력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하나의 신성력은 수 천개로 나누어져 분열된다.
'신성검.'
분열된 신성력이 검의 형태가 되어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 목적지는 도시 시민들을 학살하고 있는 타락자들이다. 빛으로 이루어진 신성검이 유성우처럼 지상으로 떨어져 타락자들을 처단한다.
-경악스러울 정도로 대단하네. 하지만 이미 모을 만큼 모았어.
조각상이 검을 휘두른다. 커다란 몸체와 달리 검을 휘두르는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군. 검술이라도 배웠나?"
-검술을 배운 적 없어. 그저 알고 있을 뿐이지. 내 장난감 중에 검술을 익힌 기사들이 많았거든.
아리아스의 검술은 작은 인간을 상대하기 위한 검술이 아니었다. 나는 검술을 보고 피하며 조각상의 머리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조각상의 정수리에 검을 꽃아 넣었다.
"끝이다. 터져라, 신성검이여."
대천사의 신성력과 성검에 서린 신성력을 대부분을 사용한다.
조각상 내부에서 신성 폭발이 일어났다.
부서진 바위들이 도시로 떨어진다.
-가차 없네.
-저 비명을 지르는 인간들이 보여?
-네가 생각 없이 공격하는 바람에 인간들이 죽고 있어.
-인간들은 널 저주할 거야.
부서지는 조각상 속에서 심장이 쑥 튀어나오더니 저 멀리 날아갔다. 나는 날개를 펼치며 심장의 뒤를 쫓았다. 심장은 교황청 결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도시 위를 빙글빙글 날아다녔다.
추적 끝에 심장에 대검을 박아 넣었다.
-후후후후후후.
심장의 두근거림이 천천히 느려졌다. 나는 아리아스의 영혼이 내 몸에 달라붙는 걸 느꼈다. 최후의 시도로 내게 빙의하여 육체를 빼앗으려 했다. 나는 정신을 단단히 붙잡고 아리아스에게 저항했다.
“소용없다."
-그래. 내가 졌어.
-인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대단한 정신력이야.
-하지만 그게 빈틈이 없다는 뜻은 아니야.
-내게는 네 욕구가 뚜렷하게 느껴져.
“아리아스. 너는 끝났다."
-우리에겐 끝은 없어. 그저 잠시 휴식할 뿐이지.
-우리는 다시 돌아올 거야.
-그때는 너도 없겠지.
“대악마를 없앨 방법은 존재한다. 우린 발견했다."
-아. 그 방법?
-글쎄.
-그 방법을 한 번밖에 못 쓰잖아. 그러니 모든 대악마를 죽이고 영혼을 모아야 하는데… 네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할 수 있고말고."
-후후후후.
아리아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는 지상에 내려왔다. 모든 사람이 나를 보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나는 그들의 기도 소리를 뒤로하고 부서진 교황청 안으로 들어갔다.
대천사의 힘이 사라지고, 원래의 내 몸으로 돌아왔다.
'아직 교황청 내부에 숨어 있는 타락자들이 있을 거다. 놈들을 찾아내 죽여야 한다.'
엉망이 된 교황청을 걷던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리아스의 영혼이 타락의 기운을 내뿜으며 내 육체를 옥죄고 있었다.
대악마 수톤의 영환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리아스는 죽어서도 내 욕망을 건들고 있다. 몸이 뜨거워진다.
'…이 정도는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나는 숨은 타락자들을 모조리 찾아내 처단한 뒤에, 귀환석을 사용해 발렌티어의 성소로 돌아갔다.
"팔라딘이시여?!"
성소에서 언제나처럼 기도하고 있던 아멜리아가 벌떡 일어났다. 나는 다가오는 그녀를 밀어내며 말했다.
“대악마 아리아스를 죽였다. 정화 의식을. 준비해라."
“정화 의식은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신지요? 뭔가 평소와 다르시군요."
“아리아스 때문이다. 그년의 타락의 기운은… 수톤보다 더 강하군."
나는 옷을 벗고 성스러운 연못으로 들어가 누웠다.
뜨거운 육체가 성수에 의해 식혀진다. 그러나 좀처럼 흥분은 가라앉지 않는다. 나는 물속에 누운 상태에서 내 사타구니를 바라봤다. 거대한 양물이 바벨탑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정화 의식이 끝난 뒤에는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3일 후.
정화 의식이 끝난 나는 성스러운 연못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발기한 자지는 쿠퍼액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타락의 기운은 말끔히 정화되었으나, 발기한 자지는 가라앉지 않는다.
'…어쩔 수 없군. 완전 회복을 사용한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자지는 발기한 그대로였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건 상태 이상이 아니다. 단순히 억누르고 있던 내 욕망이 드러났을 뿐이다.
'이 세계에 들어오고 자위 한 번 안 했으니… 많이 참긴 했지.'
"팔라딘이시여…."
등 뒤로 아멜리아의 기척이 느껴진다.
나는 숨을 삼켰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며 자지가 껄떡거렸다.
"가까이 오지 마라. 나는 지금 발정한 상태다. 시간이 지나면 멀쩡해질 테니 떨어져 있어라. 아니, 아예 성소에서 나가줬으면 좋겠군.”
내 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성스러운 연못 안으로 들어와 내 앞에 섰다.
"제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알고 말하는 건가?"
"알고 있습니다. 평생을 수녀원에서 살아왔다고 하여 남녀 사시에 대한 지식이 없지는 않습니다."
"됐다. 저리 가라.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해결될 것이다."
“시간은 답이 아닙니다. 정화 의식이 진행되는 3일 동안, 팔라딘의 그곳은 계속 서 있는 상태였습니다. 제가 팔라딘께 봉사하겠습니다."
"봉사? 그건 성녀의 일이 아니다. 차라리 창녀를 불러라."
"모르셨습니까? 성녀의 일은 팔라딘을 도우며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게 설령 성적인 일이라도."
성녀는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을 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