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5화 > 1495. 팔라딘: 악멸의 여정
집행검.
성검과 교황청이 지금까지 모아둔 재료, 교황청의 인력을 대부분 투입해야 제작할 수 있는 물건이다.
이 세계에선 오직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검이다.
원작 게임에서도 최후반부에서나 만들 수 있는 검이다.
나는 이 검을 만들고자 한다.
가장 방해가 되는 교황은 죽었고, 나는 팔라딘이 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대악마 2마리를 죽이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웠다. 집행검을 만들 명분은 충분하다.
다른 팔라딘들의 반발이 우려되긴 하나, 그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실적을 쌓은 나다. 밀어붙일 수 있다.
'나를 방해하는 놈들에겐 죄다 이단 프레임을 씌워서라도 강행한다.'
각오까지 끝마쳤다.
그러나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게 풀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던 헤리안느 여신이 팔라딘과 성녀, 대주교들에게 계시를 내린 것이다.
-발렌티어의 팔라딘을 도우라. 그가 이 기나긴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니.
절대적인 명분이 내게 떨어졌다.
헤리안느 여신이 편애한다. 라고 누군가는 생각할 수 있겠지만, 헤리안느 여신으로선 내가 예뻐 보일 수밖에 없다. 단기간에 대악마 2마리를 처단했으니까.
그 과정에서 교황이 죽었다? 어차피 타락한 놈이고, 교황직은 선출할 수 있었다.
헤리안느 여신은 상향가를 치고 있는 코인에 풀매수를 때린 거나 다름없다. 연신 떡상하는 게 보이는데 어떻게 가만히 배기겠는가.
'남은 대악마는 2마리. 대악마 1마리가 소멸했다는 건 여신도 알고 있을 테니….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들겠지.'
어쨌든 나는 헤리안느 여신이 팍팍 밀어준 덕분에 교황 이상의 권력을 손에 넣었다. 다른 지역의 팔라딘들도 감히 내게 대들지 못했다.
나는 지난 한 달간 교황청에 있는 물건들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모두 나를 위해.
그 결과가 눈앞에 있는 상태창이었다.
[이름: 유진
출신: 성기사
레벨: 83
힘: 75 민첩: 47 체력: 50 신성력: 66
보유 스킬: 성안(Lv. Ultimate), 홀리 오라(Lv. Master), 신성검(Lv. Ultimate), 질주(Lv.3), 홀리 라이트(Lv.7), 신성 강화(Lv. Master) 부활(Lv. Master), 강림(Lv. 1), 세크리파이스(Lv. 1), 완전한 육체(Lv. 5), 여명의 날개(Lv. 3).]
압도적인 능력치였다.
어지간한 악마도 내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
여기에 한 달간의 의식을 진행한 끝에 집행검까지 완성되었다. 교황청의 재산이 거덜 났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발렌티어의 성검을 베이스로하여 만든 집행검은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힘을 내게 주었다.
집행검은 신성력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검이었다. 그러나 그 출력이 약했고, 신성력은 흐를 뿐이지 쌓이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 효과의 검을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싶지만, 집행검의 진짜 효과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성검의 효과를 가졌다는 것.
물론 모든 효과를 동시에 쓸 수는 없고,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효과를 하나씩 바꿔가며 사용할 수 있다.
'집행검을 손에 넣었으니… 준비는 모두 끝났다.'
다음 날.
모든 팔라딘들에게 계시가 떨어졌다.
-대악마 콜로서스를 처단하라.
나를 비롯한 8명의 팔라딘들은 여신의 계시를 무시할 수 없었다. 팔라딘들은 다음날 귀환석을 이용해 한 곳에 모였다. 대악마 콜로서스를 죽이기 위한 계획을 짰다.
계획을 주도한 것은 나였다. 8명의 팔라딘 중 가장 어리지만, 가장 실적이 확실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
대악마 콜로서스.
5마리의 대악마 중 지능이 거의 없다시피 한 대악마였다.
그럼 다른 대악마들보다 토벌하기 편한 거 아니냐고? 오히려 그 반대다. 콜로서스는 대악마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상대다.
땅을 기어 다니는 콜로서스는 그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놈은 움직이는 산이었다. 동시에 악마들의 고향이며, 터전이었다. 동시에 악마들의 어미이자, 아비였다. 콜로서스는 움직이는 악마 생산소였다.
나를 비롯한 8명의 팔라딘들은 높은 산 위에서 아래를 쳐다봤다. 대륙을 기어 다니는 짐승, 콜로서스가 보인다. 콜로서스의 외형은 왕도마뱀과 닮아 있었다. 다만 지나치게 거대했고 그 살가죽은 흙과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직접 보니 어마어마하군. 저게 사람이 없는 지역만 돌아다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지골라스의 팔라딘이 콜로서스를 보며 말문을 열었다.
"저놈이 돌아다니기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거다."
에텔의 팔라딘은 콜로서스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놈은 왜 이 지역을 빙글빙글 도는 거지?"
우투문의 팔라딘이 호기심을 내비쳤다.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팔라딘은 없었다. 지금까지 팔라딘들은 콜로서스를 내버려 두고 있었기에 정보가 전무했다.
대악마 콜로서스는 일개 팔라딘이 상대하기엔 너무 거대했다. 악마를 생산하는 놈인 만큼 놈의 몸에는 악마들이 득실거린다. 토벌은커녕 정찰도 힘들었다.
물론 나는 콜로서스가 이 지역에서만 돌아다니는 이유를 안다.
'본능이지. 이 지역을 자기 집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곳은 태초의 악마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대악마들은 태초의 악마로부터 시작되었다. 악마의 뿔에 갇혀있던 대악마 베지술라는 태초의 악마의 다리였고, 대악마 수톤은 태초의 악마의 손가락이었으며, 대악마 아리아스는 태초의 악마의 심장이었다.'
대악마 콜로서스는 태초의 악마의 몸통이었다.
나는 그 정보를 팔라딘들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베지술라가 태초의 악마의 뿔과 함께 사라진 이상 의미 없는 정보였다.
태초의 악마가 이 세상에 다시 강림할 가능성은 0.1%도 없으니까.
"잡담은 관두고 슬슬 준비하지.”
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팔라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각각 무장을 점검했다.
“대악마를 상대 한다라… 떨리는군."
“이곳이 내 무덤이 될 수도 있겠군."
“헤리안느 여신이시여, 우리에게 가호를 내리소서."
우리는 깎아 자른 듯한 절벽으로 향했다. 절벽 아래로 거대한 콜러서스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쿵쿵쿵· 콜로서스가 한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린다.
“가자."
짧은 말을 남긴 나는 먼저 절벽에서 뛰었다. 내 뒤로 다른 팔라딘들이 뒤따라 절벽에서 뛰었다.
보이지 않는 중력의 손이 내 몸을 붙잡아 아래로 끌어당긴다.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과 비슷했다. 내 경우에는 한없이 떨어지는 꿈을 꾸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이건 꿈이 아니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착지에 실수하면 아무리 팔라딘이라도 죽을 수 있었다.
신성력을 이용해 육체를 강화하고 다리에 신성력을 집중한다.
쿵!
무사히 착지했다.
쿠웅! 쿵! 쿵!
다른 팔라딘들도 성공적으로 착지했다.
팔라딘들은 곧장 성검을 치켜들었다. 침입을 감지한 악마들이 바닥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순식간에 포위한 것이다.
"작은 악마들이 대부분이군. 다 자라지 못한 건가."
"어린 악마인가. 어울리지 않는 단어군."
"설마 어린 악마가 불쌍하다는 뜻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방심하지 마라. 어리다고 해도 악마다. 타락자 따위보다 훨씬 강하다."
팔라딘들은 여유로웠다. 여유롭게 악마들을 학살했다.
나처럼 대악마를 죽이지는 못했으나, 그 모두가 악마와 싸워온 경력만 따지면 나보다 훨씬 길다. 그들은 자비 없이 악마들을 죽였다.
검으로 악마를 베고, 주먹으로 악마의 머리를 터트린다. 죽이고 죽이다 보니 어느새 사방에는 악마들의 시체가 작은 언덕을 이루었다.
악마는 더 달려들지 않았으나, 대악마 콜로서스의 몸속에서 그 존재감이 느껴진다.
나는 팔라딘들에게 말했다.
"계획대로 하지. 3명은 이곳에 남아 퇴로를 확보하고, 4명은 아래로 내려가 악마들의 시선을 끈다."
그리고 나는 콜로서스의 심장을 찾아내 없앤다.
“우리의 체력은 무한하지 않다.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다. 대충 1시간 정도겠군. 1시간 내로 네가 콜로서스를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죽는다. 알고 있겠지?"
"1시간 내로 돌아오지."
나는 바닥에 난 구멍 속으로 뛰어들었다. 악마들이 뛰쳐나왔던 그 구멍이었다.
성안을 발동했다. 악마의 힘이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곳으로 움직이면 된다. 나는 망설임 없이 통로를 내달렸다.
"인간…!!"
기척을 느낀 악마가 벽에서 튀어나왔다. 지금의 몸과 염소의 다리를 가진 악마가 철퇴를 닮은 손을 내게 휘두른다.
통로가 좁아 악마의 공격을 피하기엔 마땅치 않았다. 그냥 공격을 맞기로 했다. 악마의 주먹이 내 갑옷을 두들긴다. 약간의 충격이 느껴졌으나, 갑옷은 멀쩡했다.
'스톰브레이커의 내구도는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달라지지. 즉, 내가 놈보다 훨씬 강하다는 거다.'
악마에게 어깨를 내밀며 돌진했다. 악마가 뒤로 날아가 벽과 부딪혀 쓰러진다. 악마의 머리를 발로 짓밟고 전진했다. 이후에도 악마들이 나타났으나 집행검을 손에 쥔 나를 막을 수 있는 악마는 없었다.
'흔히 말하는 네임드 악마가 없군. 팔라딘들이 제대로 시선을 끌어주고 있다.'
다섯 갈림길이 나타났다.
투구로 가려진 내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정답은 알고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길은 막다른 길이고, 다른 3개의 길은 모두 정답이지만 나오는 악마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지름길도 있지.'
집행검을 바닥에 쑤셔 넣는다.
돌바닥처럼 보이는 바닥에서 피가 튀었다. 이곳은 엄연히 콜로서스의 내부이기 때문이다.
지골라스의 성검의 능력인 신성 방출을 사용한다. 신성력을 한순간에 방출하여 작은 폭발을 일으키는 능력이다.
콰앙!
바닥이 부서지고 아래층이 드러났다. 아래층에는 키가 1m도 되지 않는 작은 악마들이 득실거렸다. 작은 악마들이 천장을 보며 우왕좌왕한다.
"이, 인간?!"
"팔라딘이다! 팔라딘이야!”
"살려줘!"
어린 악마들이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아래층으로 뛰었다.
쿵!
어린 악마 2마리가 내 발에 짓밟혔다. 나는 주위를 스윽 둘러보며 홀리 오라를 터트렸다. 마스터 레벨의 홀리 오라는 그 자체로 강력한 공격기였다. 내 뒤에서 후광이 번쩍 빛나고, 성스러운 기운이 사방의 악마들을 휨쓸었다. 어린 악마들의 육체 찌꺼기가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주위를 훑어봤다.
"숨어 있으면 모를 줄 아나?"
벽 뒤에 숨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어린 악마의 머리를 붙잡아 끌어냈다.
“히익! 사, 살려줘! 난 나쁜 짓도 안 했어! 착한 악마야! 난 착한 악마야!"
"착한 악마는 죽은 악마뿐이다."
발로 어린 악마의 가슴을 밟아 고정하고, 왼손으로 악마의 머리를 붙잡아 산채로 뜯어냈다.
버러지 같은 악마를 죽이니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나는 집행검을 바닥에 꽂아 넣고 신성 방출을 사용했다.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