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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검색: 아지트소설
< --0. 류찬희-- >
오늘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위독하다는 서신이 온 게 바로 어제였건만, 아버지는 하루를 차마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부고를 든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본가를 나온 게 벌써 십오 년 전 일이다. 이만하면 잊기 충분한 시간이지만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올랐다. 소주蘇州의 아름다운 풍광, 본가의 드높은 담벼락, 그리고 그녀의 뒤틀린 웃음.
되돌아본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그녀에 대한 기억에선 한 치의 아름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늘 그랬다. 늘 뒤틀려 있었고, 늘 추악한 채였다. 십오 년 전 내가 본 그녀가 그랬고, 지금 다시 떠올린 그녀가 그랬다. 곧 마주 볼 그
녀도 아마 그러할 것이었다.
한숨을 쉬었다.
부고가 온 이상 이미 정해진 일이다. 아들은 아들의 도리를 다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당연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선 본가로 돌아가야만 한다.
결론을 내린 나는 표두를 만나러 갔다.
*
"그러니깐, 그만두겠다고?"
내가 본가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반 각에 걸쳐 설명하자 나온 대답이었다.
맹산저猛山猪 이황李滉. 황룡표국黃龍驃局의 아홉 표두 중 한 사람인 그가 매서운 표정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아버지의 부고가 온 참이라 어쩔 수···."
"그러니깐 결국은 그만두겠다는 거 아냐?"
이런 대화가 나올 걸 알았기에 다른 표두를 찾으려 했건만. 이황은 도무지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멧돼지라는 별호에 걸맞는 성급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예로부터 득친순친得親順親이오 양지지효養志之孝라 하였
으니 아들의 도리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임종을 지키지도 못하고 생전 기쁨을 가져다 주지도 못한 저는 불효자 중 불효자라 할 수 있겠지만, 마지막 도리로 장례를 치르고자 하오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야, 너 내 앞에서 문자 쓰냐?"
반 각에 걸친 설명을 압축하여 다시 말해봤건만 헛수고였다. 이황은 주먹을 흔들며 말했다.
"아무튼 안 돼. 넌 이미 내일자 표행 명단에 올라갔으니깐."
"내일자 표행이라니요? 전 아무 이야기도 못 들었습니다."
"막 정해졌어. 이걸 말해주려 널 찾았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 못 그만둬. 결정된 사안이야."
막무가내였다. 어떻게 이 상황을 빠져나갈까 고민하는 와중 이황이 한 마디를 더 붙였다.
"요즘 소주 근방이 얼마나 위험한데? 근방 녹림패가 날뛰는 중이라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안 돼. 못 그만둬."
"소주라구요?"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게 되었다.
*표행은 순조로웠다. 날뛴다는 녹림패는 만나지 못했고, 쟁자수는 충분했기에 직접 표물을 들 일도 없었다. 표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사납게 소리치던 이황은 어느새 화가 풀려 나를 살갑게 대해주었다.
"장례가 끝나고 다시 표사를 할 생각이 들면 돌아와도 좋아. 사지만 멀쩡하면 받아줄 생각이니깐."
"고작 장례 치르러 가는데 사지 걱정을 왜 합니까?"
"이놈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네?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오면 나눌 입이 많아지는데 누가 그걸 고이 넘어가? 논 한 마지기 때문에 칼부림 나는 게 요즘 세상이야."
웃으며 말하는 것으로 보아 농담인 게 분명했지만 아주 근거 없는 농담 같지는 않았다. 이황의 머리로 저런 농담을 지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럼 사지 멀쩡하게 다시 뵙길 빌겠습니다."
"그래. 잘 가라."
그는 시원하게 작별을 하곤 훌쩍 멀어졌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나는 각오를 다지고 걸음을 옮겼다.
생각에 잠긴 채 걷자 어느새 본가에 도착하였다. 나는 날 알아보지 못하는 문지기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이 왕정王貞의 저택이 맞습니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랬지만 이젠 아니오. 어르신이 돌아가신 뒤로는 류가劉家의 장원이 됐소이다."
그는 이리 말하곤 조용히 덧붙였다.
"혹 왕정 어르신께 볼 일이 있어 온 것이라면 돌아가는 게 좋을 것이오. 주인마님의 성질머리가 워낙 고약해서 대접 받긴 글렀으니."
변하지 않는 소주의 풍경만큼이나 그녀도 변하지 않은 모양
이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어르신이 돌아가신 게 얼마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소리신지요? 벌써 장례가 끝난 것입니까?
"말도 마시게. 아들 셋만 불러다가 졸속으로 끝내고 급묘及墓까지 마친 게 며칠 전 일이오. 이것 때문에 근방에서 말이 많았는데··· 당신이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는 것 같군. 이만 돌아가시오."
"돌아갈 순 없습니다."
"어허, 주인마님은 돌아가신 어르신의 손님을 받지 않는데도."
"안에 가서 왕사王四가 왔다 일러주시지요."
내 이름을 듣고 무언가 헤아리던 문지기는 돌연 머리를 치며 말했다.
"집을 나갔다는 그···. 아, 어서 가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문지기는 이리 말하곤 저택으로 급히 들어갔다. 나는 문앞에 남아 문지기의 말을 곱씹었다.
장례는 형편에 맞게 하는 게 미덕이다. 빈민의 장례는 조촐하게 여는 게 미덕이고, 거부巨富의 장례는 주변 사람 모두 모아 성대하게 치르는 게 미덕이다. 소주에서 알아주는 거부인 내 부친의 장례는 문상객마다 상 하나씩 차려줘야 마땅하였다.
장례는 산 자를 위한 것이다. 허나 부친의 장례는 그 누구를 위한 것도 되지 못했다. 주변 빈민이 밥 한 덩이 얻어 먹지도 못했고, 친지가 모여 고인을 추억하지도 못했다. 문지기의 말대로 졸속이었다. 이런 장례를 치르고 여러 말이 오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것도 결국 그녀 때문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끝까지 날 괴롭히는 그녀는, 지금 내 눈앞에 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 오랜만이구나."
문지기와 함께 온 중년 미부가 날 보고 웃었다.
류찬희劉撰熹. 내 의모義母인 그녀의 뒤틀린 웃음이었다.
*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네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리 했단다."
목소리는 따스했지만 그 내용은 냉혹하였다. 나는 화를 참으며 다시 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들었습니다."
"며칠 전에··· 정확하게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구나. 아무튼 죽었지. 재산도 이미 다 나눴다만, 어차피 네가 재산에 대해선 할 말이 없을 테니 의미 또한 없겠지."
류찬희는 부군의 죽음을 다른 사람의 일처럼 말하였다. 나는 화가 났지만 이것에 대해 화를 낼 순 없었다.
그녀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으니깐. 그걸 감당 못해 도망친 내가 이제 와서 지적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장례에 관해 근방에서 여러 말이 나돈다고 들었습니다."
"돈 있는 사람 죽으면 여러 말 오가는 게 어디 드문 일이더냐? 돈 빌린 사람은 좋아하고 빌려준 사람은 갈팡질팡··· 그뿐이겠지. 죽은 영감이 소주에서 워낙 유명했으니 평소보다 더 그런 것 뿐이다. 그다지 신경 쓸 일은 못되는구나."
류찬희는 이리 말하곤 뒤를 돌았다.
"문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구나. 들어오거라."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택은 내가 나오던 시절에서 변한 게 없었다.
한 가지 변한 점이라면, 류찬희가 가는 곳이 별채가 아닌 정
방正房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후처인 류찬희를 정방에 들이기 거부하였다. 한때는 외견에 반해 후처로 삼았지만, 그녀의 지독한 성질은 차마 감내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그렇기에 별채에 지냈던 그녀는 당연한 것처럼 정방에 들어서고 있었다. 부고를 보았을 때도 실감나지 않았던 아버지의 죽음. 지금 이 모습을 보고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 네 아비를 보러 온 것이냐?"
정방에 들어선 그녀는 가만히 앉아 말을 하였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였다.
다시 들어서지 않을 각오로 집을 나왔다. 나올 때만 하더라
도 아버지조차 다시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나왔지만 부고를 보자 무심코 잊고 말았다. 부고가 온 대로,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그렇게 각오를 잊고 만 것이다.
류찬희는 내 각오를 알기에 이리 말을 하였다. 그녀의 고혹한 미소에는 비웃음이 감돌고 있었다.
"아버지의 묘만 보고 돌아가겠습니다."
"저런, 그럼 좀 더 빨리 오지 그랬느냐.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에 그만···."
"무슨 소리입니까?"
"알다시피 소주의 묫자리 태반은 비가 오면 넘치는 자리 아니더냐. 아마 쓸려갔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이 무슨···!"
그녀의 말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비가 오면 쓸려가는 묫자리는 빈민들의 자리이다. 매번 제사 지낼 명분이 없도록, 일부러 쓸려나갈 자리에 묘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빈민이 아니면 그러지 않았다. 장례는 산 자를 위한 일이지만 봉분은 사자死者를 기리는 일이다. 형편 좋은 집안에서 이리 하는 건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짓이었다.
"흥분하지 말거라. 네 아비가 좋아한 그들 사이에 묻힌 것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그러니 그 천한 네 어미와 교접을 한 것이겠지."
"말 조심하십시오!"
일어선 난 칼에 손을 댔다. 류찬희는 이에 아랑곳 않고 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왜 화를 내느냐? 네가 사생아인 것도, 네 어미가 천박한 기녀인 것도 모두 사실 아니더냐? 혹 네 어미가 부끄러운 것이냐? 어쩔 수 없는 일을 부끄러워 하지는 말거라. 이건 내가 네 양모養母로서 하는 마지막 충고이니."
나는 칼을 뽑았다. 벨 생각은 없었지만 꺼낼 필요성은 느꼈다. 저 악독한 주둥아리를 닫게 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일이었다.
"소자도 양자로서 충고를 하건데, 그 입을 더 이상 놀리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내 마지막 충고이니 세겨 들으십시오."
나는 이리 말하고 뒤를 돌았다. 이 집엔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어디를 가느냐. 벌써 떠나려는 것이냐? 아직 네겐 할 일이 있을 터인데···."
"무슨 일을···?"
"바로 이런 일이지."
나는 류찬희가 무슨 짓을 하려나 싶어 뒤를 돌아 그녀를 보았다. 류찬희는 그 고혹한 미소를 내지은 채로 자신의 앞섶을 찢었다.
찢어진 앞섶 사이로 가슴팍이 보였다. 가슴에는 하얀 살갗과 대조적으로 보이는 작은 점 하나가 있었다. 아버지의 후처라 하였지만 아직 서른 중반을 넘지 않는 그녀의 가슴은 묘령의 처녀보다 더 탐스러웠다.
류찬희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며 소리 질렀다.
"여봐라, 누구 없느냐!"
"이 무슨···!"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리며 장정 여럿이 우르르 들어왔다. 나는 내가 함정에 빠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부군의 장례마저 졸속으로 치르는 인간이 무엇이 부끄러워 나를 집안에 들였을까.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집안에 들인 것이었고, 이걸 노리고 화를 돋군 것이었다.
류찬희가 울먹이며 말했다.
"저, 저 악독한 것이 나를···."
그녀는 이리 말하곤 찢어진 앞섶을 손으로 쥐며 눈물을 훔쳤다. 이것으로 끝이었다. 장정들은 날 에워쌌고 손에 든 곤봉
을 휘둘렀다.
============================ 작품 후기 ============================가볍게 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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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류찬희-- >
*
"크윽···."
정신을 차린 나는 온몸을 찌르는 격통에 신음을 흘렸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뼛속까지 스며든 통증은 누워있는 것조차 힘들게 했다.
고통을 참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주위는 이미 어둑해져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간단한 이치였다. 소주 길바닥에서 쓰러지고 온전히 일어나려면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아야만 했다. 아무리 외진 거리
여도 사람은 지나가기 마련. 지금 눈을 뜬 것이 촌각만 지났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안전이 미래의 안전마저 보장하는 건 아니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천생 선인도 강도로 변하는 게 소주 인심이다. 나는 몸을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이런 몸으로 목적지 없는 걸음을 재촉하는 건 죽음을 재촉하는 것과 같았다. 목적지를 정하려면 지금의 위치를 아는 게 우선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바로 등 뒤의 담벼락. 그곳에 어릴 적 내가 한 낙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목적지를 정하고 서둘러 움직였다.
부리나케 움직여 도착한 곳은 본가 담벼락 뒷켠 한적한 골목이었다. 이곳 주변엔 아무 저택이 없어 고양이 몇 마리만 돌
아다니곤 하였다.
한숨을 쉬었다. 무사가 되어 반항도 제대로 못할 줄이야. 무사라고 해도 삼류에 불과했지만 자존심만큼은 남들 못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속이 쓰렸다.
서글픈 마음을 다잡고 할 일부터 하기로 했다. 온몸을 짓누르는 격통. 이를 덜기 위해 품속의 금창약을 찾았다.
품속은 허전했다. 놀란 나는 정신없이 온몸을 더듬었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비상시를 대비해 둔 금창약도, 소중히 아낀 검도, 그 무엇도 찾을 수 없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신을 벗어 확인했다. 정말 급할 때를 대
비해 둔 은원보를 찾기 위해.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퀴퀴한 발냄새를 제외하면 발 아래 아무것도 없었다.
허탈했다. 몸을 추스르고 객잔으로 간다는 계획은 조각나고 말았다. 당장은 몸의 상처가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모든 것이 문제였다. 오늘 밤 무사히 보내는 건 이제 다행일 수 없었다.
나는 체념한 채 벽면에 몸을 기대었다. 류찬희에 대한 원한을 갚고자 하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류찬희에게 가 간절히 빌면 은전 한 푼이라도 줄까 하는 헛된 기대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렇게 헛된 생각으로 가득찬 나는 어느새 찾아온 수마에 빠져 잠이 들었다.
*
바스락-돌연 잠에서 깨어났다. 갑자기 들려온 수상한 소리. 나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감각을 집중시켰다.
바스락, 끼이익-낙엽 밟는 소리, 그리고 삐걱대는 소리.
낙엽 소리야 주변에 누가 걷는다면 날 수 있지만 이 삐걱대는 소리는 한 곳에서만 날 수 있었다. 본가 담벼락 뒤의 쪽문. 평상시 아무도 쓰지 않는 오래된 문에서 난 소리였다.
도둑일까?
아니다. 안에서 잠긴 쪽문은 도둑이 여는 게 불가능했다. 지금의 소리는 안에서 나는 게 확실했다.
나는 숨을 죽였다.
이윽고, 검은 형체가 문을 나서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 굴곡, 저 윤곽. 분명 여인의 것이었다.
도대체 저택의 누가 이 야심한 시각에 밖을 나선단 말인가.
나는 뻐근한 다리를 간신히 움직이며 뒤를 쫓았다.
추적은 한 식경 정도 계속 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저 검은 형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류찬희였다.
나는 류찬희가 야밤에 산보를 나서는 취미가 있다 들은 적 없었다. 아마 저택의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을 터. 그렇다면 이 외출은 밀행이 분명할 것인데, 도무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다시 한 식경이 지났다.
이제야 류찬희의 목적지를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외각의 폐가촌이었다.
이렇게 되니 더욱 더 알 수 없었다. 소싯적 외모를 그대로 간직한 미모의 여인. 선부先夫를 잃었다지만 그 재산을 고이 받아 어디 하나 부족할 게 없는 여인이, 오만하고 콧대 높은 여
인이 이 수상한 폐가엔 무슨 일로 들어선단 말인가.
야밤의 밀회라 생각하기엔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나는 자리를 좁혀 류찬희가 들어간 폐가에 몸을 기댔다.
한 소리가 들렸다.
쭈우웁. 쭈우우웁-무언가 빠는 소리였다.
나는 헛것을 들었나 싶어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소리는 재차 들렸다.
쭈우웁. 쭈우우우웁-자연에서 절대 나지 않을 무언가 거칠게 빠는 소리.
볼이 우므러지도록 빨아야 겨우 날 소리가 움막에서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분명, 저 움막에 류찬희가 들어갔다.
폐가의 크기로 봐선 사람 여럿이 있을 공간도 아니다. 둘 내지 셋. 그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들려오는 이 소리는 도대체···.
"···잊고··· 다시···."
어느새 흡입음은 사라지고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민을 접고 귀를 기울였다.
말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는 황급히 몸을 피해 폐
가에서 멀어졌다.
잠시 후, 류찬희가 폐가를 나왔다.
류찬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단 것처럼 당당한 기색이었다. 왔던 길을 돌아가는 그녀를 보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저 수상한 폐가에 들어가야 할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성치 않은 몸이 이를 말렸다. 칼 한 자루라도 있으면 몰라도 잃어버린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되뇌이며 폐가에서 멀어졌다.
아니, 멀어지려 했다.
문득 떠올리고 말았다. 오늘의 추태를.
선친을 모욕당하고, 반항조차 하지 못한 내가 이대로 돌아간다고 무슨 수가 있을까. 당장의 끼니조차 걱정해야 하는 내 신세에 돌아가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나를 돌이켜보니 어차피 잃을 게 없는 몸이었다.
나는 폐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
"결국 들어왔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긴장을 하며 말을 받았다.
"이 집의 주인장되시오? 확인할 게 있어 들어왔소이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온몸에서 닭살이 곤두섰다.
형형한 안광, 그리고 살기.
무시무시한 기세가 내게 쏟아졌다.
놀란 나는 황급히 말을 붙였다.
"대화, 대화를 하기 위해 온 것이오. 무기도 두고 왔으니 믿어주기 바라오."
기세로 보아선 고수가 분명했다. 왜 이런 초라한 폐가에 있는진 모르겠지만 단칼에 날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목숨에 아랑곳 않으려는 마음을 버리고 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방금 이 집에 들어온 사람은 소인의 의모가 되는 바이오. 그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을 생각이니··· 아, 아니 대답하지 않아도 좋소이다. 좋은 밤 되시오······."
살기가 점점 강해지자 나는 말을 줄였다. 이것은 장난으로도 받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직접 쫓아갈 수고를 덜은 건 고맙다만··· 비밀을 위해선 살려둘 수 없다. 잘 가라."
어깻죽지가 시큰거렸다. 놀란 내가 손을 집어 확인하자 끈적한 피가 묻어나왔다.
"허, 허억···."
그는 순식간에 내 어깨를 베어낸 것이었다. 나는 겁에 질려 눈을 꼭 감았다.
시간이 흘렀다.
상대의 실력으로 봐선 날 죽이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혹시 난 이미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으며 간신히 눈을 뜨자, 쓰러져 있는 있는 상대방을 볼 수 있었다.
추레한 노인. 누가 보면 개방의 거지라 생각할법한 노인이 게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주화입마일까.
무림인에게 주화입마란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늘 듣는 일이었다. 어디의 고수가 화경을 앞두고 주화입마에 빠졌다던가,
마교의 소교주가 주화입마에 빠져 세가 기울었다는 소문은 언제고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구사일생의 행운에 감사하며 도망치려 했지만, 순간 든 생각에 걸음을 멈췄다.
은원恩怨.
무림인은 은원 하나에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무시무시한 고수가 분명할 이 노인도 무림인일테니, 혹 살려준다면 은혜를 갚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차피 난 잃을 게 없는 몸이니 충분히 시도해봄직 하였다.
"노인장, 괜찮으시오?"
마음 먹은 나는 재빨리 행동에 옮겼다. 하지만 노인은 정신을 차릴 기색이 없었다.
"노인장, 정신 차리시오."
나는 노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주화입마에 빠진 사람을 건드려선 안 된다는 말은 들었지만 방도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요지부동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난 최후의 방책을 사용했다.
짝― 짝―
"노인장, 노인장!"
뺨을 치면 어지간한 사람은 일어나기 마련. 혹 따귀에 원한을 가질까봐 시도하지 않았지만 이쯤 되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사정없이 노인의 뺨을 갈기며 그를 불렀다.
이게 효과가 있었는지 노인은 거품을 뱉어내고 간신히 숨을 쉬었다.
"약··· 약을···."
정신을 차린 노인은 구석에 있는 소쿠리를 가리켰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기침을 토하는 그를 보며 나는 얼른 소쿠리를 뒤졌다.
"이건 천문동天門冬이고··· 이건···."
노인이 가리킨 소쿠리에는 약재가 난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도대체 어느 약을 말하냐고 물으려 했지만 노인은 이제 피를 토하고 있었다.
나는 소쿠리에서 잡히는대로 악재를 집어들고 노인의 입에 쑤셔넣었다.
"살면 내 덕이고, 죽으면 당신 탓인 걸로 알겠소. 젠장, 노인장, 숨 좀 쉬어보시오."
노인은 각혈咯血을 멈췄지만 숨을 가빠지게 쉬었다. 약을 더 먹이자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슨 약인지도 모르는 걸 계속 먹이는 게 좋을 것 같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노인의 옆에 앉아 노인을 부르며 밤을 지새웠다.
============================ 작품 후기 ============================쪽지를 보내며 설마 했지만 정말 와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초반부는 도입부이니 큰 변동이 없겠지만, 부족한 장면을 채워넣고자 하여 연재처를 옮긴 것이니 결과적으로 변화는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일단 초반부는 하루 2~3회 정도 연재하며 분량을 맞출 예정입니다.
* 조아라는 연재 예약조차 돈 받고 파는군요. 예약 연재를 하면 인텔리한 느낌이 들어 좋았는데 참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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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류찬희-- >
어느새 동이 밝았다.
노인은 상태가 안정되어 천천히 숨을 쉬었다.
쓰러지듯 누운 나는 숨을 겨우 돌리며 생각했다.
밤새도록 말을 걸며 정신을 차리게 하는 건 역시 힘든 일이었다. 죽든 말든 내버려 두자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까지의 노력이 아까워 그러지도 못했다.
"노인장, 내가 당신을 살린 걸 잊으면 안 되오."
나는 대답이 없을 걸 알면서도 공연히 말을 걸었다.
그러자 예상외의 답이 들렸다.
"알고 있다. 고맙다."
"정신을 차렸소?"
나는 놀라 벌떡 일어났다. 노인은 누운 채로 내게 말을 걸었다.
"방금 정신을 차렸다. 고맙다."
"아, 아하하··· 별것 아니오···."
고맙다고 하는 모습으로 봐선 날 해칠 것 같지 않았다. 난 만에 하나의 수를 염두에 두며 다시 물었다.
"내가 당신을 살렸으니 당신이 날 죽이는 일은 없다고 봐도 되겠소?"
"방해된다면 죽인다. 예외는 없다."
"아, 아니 내가 살린 목숨 아니오···!"
나는 억울하여 언성을 높였다. 죽을 사람 살려두니 역으로 해코지하는 건 금수만도 못한 짓 아닌가?
"노인장, 그러니깐 죽을 뻔한 당신을 내가 밤새 간호하여···."
"내 눈을 봐라."
노인의 뜬금없는 소리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그의 말에 따랐다. 눈을 뜬 노인은 내 눈을 마주 보고 말을 하였다.
"네가 날 간호하였느냐?"
"아니오. 내 앞에서 죽으면 기분이 더러워 그냥 이름만 부르고 있었소. 식은땀을 흘리는 걸 알았지만 내 옷으로 닦아주기 귀찮아 그러지도 않았고. 그리고 중간 중간에 졸기도 했소. 간호라고 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하오."
내 입에선 상상도 못할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뒤로 멀찍이 물러나며 말했다.
"그, 그러니깐 방금은 그냥 해본 소리···."
"사실인가?"
"사실이오."
"네 양심은 그게 아니라고 말을 하는군."
두려움이 온몸을 엄습하였다. 싸늘한 노인의 말보다도 그가 한 짓이 더 무서웠다.
"사, 사술邪術을 쓴 것이오?"
"그런 거창한 것까지 쓸 필요는 없지. 최면술催眠術을 걸었다."
"최면···?"
그는 내 물음에 대답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누운 몸을 일으킨 그는 조용히 가부좌를 틀었다.
젠장, 지금이라도 해치울까? 지금 뒤에 가서 목을 꺾으면···.
"너는 그럴 수 없다. 이미 최면에 걸렸으니깐."
세상에나.
"마, 마음을 읽는 것이오···?"
"네게 암시를 걸어, 날 해칠 생각이 들면 그 계획을 불게 했을 뿐이다."
"허어억···!"
눈앞이 깜깜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한 생각을 그
대로 읊게 만들었다면, 더 심한 짓을 하는 것도 가능할 것 아닌가.
나는 살기 위해선 한 가지 방법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소인이 대협을 간호하지 않았지만··· 이건 정말 죽어 마땅한 죄이지만 소인이 대협의 목숨을 살렸다는 걸 감안하여 용서해주시면···."
엎드린 나는 손을 싹싹 빌며 애원하였다. 이것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무공만 해도 무서웠는데 다른 술법까지 있다면 정말 상대할 도리가 없었다.
노인에게 대답은 없었다. 가부좌를 튼 채 쭉 앉아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떠들면 시끄럽다는 이유로 죽일까 겁나 나는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일어나라."
나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잠에 빠졌는지 입가에 침이 흐르고 있었다.
노인은 그걸 타박할 생각은 없는지 담담한 태도로 말을 하였다.
"처음부터 들어야겠군. 넌 이곳을 어떻게 찾아온 것이지?"
"전에도 말했다시피 의모를 쫓아···."
"그 전부터, 네 의모를 쫓게 된 연유부터 속속히 밝혀라. 또 누가 이곳을 알게 된 건지 확인이 필요하니깐."
노인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알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내가 소주로 돌아오게 된 이유부터 오늘의 일까지 차근차근 설명하였다.
*
"그러니깐 다른 사람은 네가 이곳에 온 걸 모른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소인이 워낙 은밀히 행동하여···."
"내 앞에선 사실만 말해라."
"소인이 워낙 경황이 없어 다른 사람이 소인을 보았는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거짓을 고하고자 하면 노인의 괴상한 술법이 사용되었다. 말
한 마디에 불과했지만, 그의 말을 들으면 거역할 수 없는 의지가 몸을 휘감았다.
날 싸늘히 바라보는 노인의 눈초리가 무서워 재빨리 말을 이었다.
"저는 제 의모인, 대협께서 보시기엔 별것 아닌 계집이겠지만 아무튼 류찬희라는 년을 쫓아 이곳에 오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지만··· 혹시 그년의 약점을 잡을 수 있나 싶어서···."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누가 나서는지 확인을 한 것이었지만 내심 이걸 기대하였다.
류찬희에 대한 복수. 이것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었고, 그걸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괴상한 노인에게 걸려 심문당하는 건 예상 밖이었지만 말이다.
내막을 알게 된 노인에게서 심드렁한 기색이 내비쳤다. 나는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에게 생각을 할 여유를 주면 안 됐다.
"대협! 제게 류찬희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 생사여탈을 쥔 자에게는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는 짓이었지만 방도가 없었다. 당돌하고 뻔뻔해 보여도 그의 흥미를 끄는 게 중요했다.
"이유를 안다면? 네가 당장 죽으면 알아도 의미 없는 일 아닌가?"
"그 악독한 계집은 대협에게 밉보였을 게 분명할 터! 대협이 그년에게 무슨 수모를 준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사실을 말해라."
"그냥 살고 싶어서 아무렇게나 흥미를 끄는 중입니다. 아니 이게 아니라···. 씨발! 차라리 죽여!"
계속된 심문에 지친 나는 벌러덩 드러누웠다.
에라이, 이젠 모르겠다. 죽일 거면 빨리 죽이던가. 몇 시진째야 이 짓이?
나는 노인이 내 목숨을 거둬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노인은 그러지 않았다. 앉은 채로 가만히 있는 그는 뜻밖의 말을 하였다.
"나는 은인을 죽이지 않는다. 손바닥 뒤집듯 은원을 잊는 무림의 졸개처럼 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지."
"네?"
"네게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떠본 것이다. 이제 됐다."
"아니, 그럼 지금까지의 헛고생은···."
"딱히 필요없는 일이지."
여기서부터 잠깐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노한 나는 노인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퍼부었고, 노인이 뭐라 중얼거리자 의식이 끊겼다.
"일어나라. 진정된 것 같으니."
나는 노인의 말에 의식이 깨어나는 걸 느꼈다.
또 술법이냐는 생각이 마음을 맴돌았지만 입으로 내뱉진 않
았다. 이자가 내 욕을 들어주는 건 방금이 마지막일 거라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깐 네 의모가 여기서 무엇을 한 것인지 궁금하다고 했지?"
"그렇소. 젠장, 당신이 내게 하는 꼬라지로 봐선 그년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을 것 같군."
"별 일 아니다. 미색이 상당하길래 최면술로 꿰어내 내 양물을 빨게 하였지."
"엑."
나는 멍청한 소리를 내뱉으며 사고를 정지하였다.
그러니깐 방금 내가 뭐라고 들었지?
"내가 가는 귀가 먹어서 잘 못 들은 것 같소. 다시 말해주시겠소?"
"양물을 빨게 했다. 굳이 따지면 핥게 한 뒤 빨게 한 것이지만···."
"아, 아니 지금 한 집안의 주인에게 당신의 그, 그것을 빨게 했다는 말이오?"
"그렇다."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하는 그를 보자 황당함이 머리를 채웠다.
이렇게 터무니 없는 색마가 있을 수 있다니!
"당신은 지금까지 이곳에 있었던 것이오? 그··· 술법으로 여인을 꿰어내면서?"
"이곳에 온 건 최근의 일이다. 류찬희라는 여인을 꿰어낸 건 한 가지 확인이 필요해서 한 일이고."
"무슨 확인 말이오?"
"나는 발기부전이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대답이었지만 참으며 재차 물었다.
"그, 그러면 도대체 왜 여인을···."
"미색이 출중한 여인을 상대로도 불능不能한지 확인을 할 생각이었지. 안타깝게도 효과가 없었지만."
이자와 대화를 하고 있자니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진중한 태도로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순 어처구니 없는 내용 뿐 아닌가.
"그 이야기에 대해선 접어두고···. 당신은 내가 당신의 은인이 맞다는 걸 인정했소. 날 죽일 생각이 없다고도 말했고. 그렇다면 날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오?"
이 광인狂人과의 대화를 더 이어가다간 나까지 이상해질 것
같았다. 이자가 날 살려두기로 결심했을 때 재빨리 빠져나가는게 상책이었다.
노인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네 의모의 약점을 찾는다고 했지?"
"그건 그렇소다만 내가 물은 건···."
"네 의모에게 가서 노방초路傍草라는 말을 세 번 하거라. 그러면 네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질 것이니."
그는 내게 이만 가라는 듯 손짓을 하였다. 나는 제대로 된 답을 하지 않는 그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정신을 차리니 난 이미 소주 시장통 한복판에 와 있었다.
"좆 같은 영감탱이."
나는 쌓인 짜증을 모아 한 마디 뱉었다.
*좆 같은 영감의 말을 따르는 건 달갑지 않았지만 별 수 없었다. 아직 통증이 가시지 않은 몸으로 밤이슬을 맞아선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게 너무 뻔했다.
본가 앞에 도달하자 어제 본 문지기가 날 알아보았다.
"당신은 어제 그···."
"아, 다시 뵙소이다. 열어주시겠소?"
"안 됩니다."
"수고하···. 방금 안 된다고 했소?"
문지기의 표정엔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다시 물었다.
"내가 누구인지는 이제 알지 않소?"
"그건 알지만···."
말끝을 흐리던 그는 망설이며 말했다.
"마님께서 당신이 오면 들여보내라 하였습니다. 다만 당신이 오는 즉시 주먹패도 부르라 하였습니다. 어제 당신을 내다버린 사내들이니 손속은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깐, 맞기 싫으면 들어오지 말라고?"
"···."
미리 경고해주는 그가 고맙기는 하였다만 기분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들어가겠소. 주먹패를 부를 생각이라면 부르시오. 어차피 난 대화만 하러 온 것이니."
"대화만 말씀입니까?"
"그렇소."
"그렇다면 몸수색을 하고 들여보내겠습니다. 주먹패는 잠시 뒤에 부를 예정이니 서둘러 말을 하고 빠져나오십시오."
"···고맙소."
이자가 왜 내게 이런 도움을 주는진 모르겠으나 진심으로 고마웠다. 다음에 될 수 있으면 사례를 하자는 생각을 하면서, 그가 몸수색을 마치자 집에 들어섰다.
"들어가십시오."
정방 앞의 하녀에게 방문을 알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긴장을 하며 장지문을 열었다.
혹시 노인이 말해준 주문이 효과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당장 문을 박차고 나와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류찬희에게 동정을 구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었다.
"그래, 또 보는구나. 반성은 했느냐?"
류찬희는 의자에 앉아 그 고혹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는 류찬희의 말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 반성이라니. 누명이라는 건 본인이 제일 잘 알지 않는가.
"무슨 반성을 말하는 겁니까."
"시치미를 떼다니···. 내가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실망이 크구나."
"저 또한 실망이 컸습니다. 야밤에 폐가에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하실 수 있습니까?"
내 말에 류찬희의 표정이 찡그러졌다.
"야밤? 폐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이느냐. 너도 한 번 누명을 씌어 보이겠다는 뜻이냐?"
류찬희에게는 어제의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노인이 그 최면술이라는 괴상한 술법을 사용한 게 틀림없었다.
나는 이제 망설일 게 없었다.
"노방초, 이 말을 듣고도 기억이 안 나십니까? 노방초. 노방초 말입니다."
길가의 풀이라는 뜻이었지만 류찬희에게는 다를 것이었다.
나는 말을 한 뒤 기대에 찬 눈으로 류찬희를 보았다.
류찬희는 말이 없었다.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는 것도 잠시였다. 류찬희의 눈에는 어느새 이채가 돌았고, 적삼을 스스로 풀어헤쳤다.
옷을 풀어헤친 류찬희가 말했다.
"천녀賤女가 주인님을 뵙습니다."
*============================ 작품 후기 ============================마지막은 위대한 작품에 대한 오마쥬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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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류찬희-- >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느정도 상상은 했건만, 상상하는 것과 직접 보는 건 차원이 달랐다.
내 앞에 전라로 무릎 꿇은 류찬희. 희고 고운 나신을 숨김없이 드러낸 그녀의 모습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노인이 한 것처럼 나도 그 짓을 저질러야 하는 것일까.
무의식적으로 가슴에 손을 대려고 뻗는 와중, 장지문 너머에
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아뿔싸. 주먹패들을 잊고 있었다.
나는 류찬희에게 속삭였다.
"바, 밖의 주먹패들을 되돌려 보내십시오."
"천녀는 주인님의 명에 따릅니다···."
힘없이 대답한 류찬희는 장지문에 대고 말을 하였다.
"가거라···. 필요없으니···."
"···정말이십니까?"
믿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주먹패들이 작게 되물었다. 류찬희가 다시 말했다.
"이만 가거라······."
주먹패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만약 저들이 문을 열어 확인하려 했다면 정말 위험했다. 류찬희의 총기를 잃은 눈빛도 눈빛이다만, 부군 이외에는 보이지 말아야 할 나신을 이리 보이는 모습이라면 누가 봐도 수상했기 때문이었다.
주먹패를 되돌려 보낸 류찬희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비처秘處와 그곳을 검게 물들인 음모陰毛조차 가리지 않고, 마치 내 명을 기다리는 것처럼 공손히 앉아 있었다.
나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며 말을 하였
다.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도록 하죠. 어젯밤··· 폐가에는 무슨 일로 가셨습니까?"
"천녀의 주인님께서 오라 명을 하셨습니다. 천녀는 주인님의 명을 받듭니다···. 천녀는 주인님의 명을 받듭니다···."
마치 평생의 다짐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는 말을 되뇌었다. 나는 그녀가 어떻게 이리되었나 알아내는 것을 포기하였다. 이미 술법에 걸린 자는 이지를 상실하여 정해진 일만 할 수 있는 걸로 보였다. 그렇다면, 질문이 아닌 확인이 필요했다.
"어젯밤 한 일을 그대로 해보십시오."
"천녀가 주인님의 명을 받듭니다···."
류찬희가 손을 뻗어 내 하의를 움켜쥐었다. 나는 이것만으로
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이어진 행동은 더욱 더 충격적이었다.
스르륵―하의가 내려가고 덜렁거리는 양물이 그녀 앞에 내보였다. 그녀는 도기陶器를 들 때와 같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또한 애정을 충만히 담은 손길로 내 양물을 정성스럽게 감쌌다.
"허억―"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류찬희의 손은 내게 있어 악독한 손이었다. 따귀를 때리거나, 회초리를 들기 좋아하는 그런 악의惡意의 손이었다.
허나 지금은 그저 창부娼婦의 손이었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산 귀한 집 여식답게, 굳은 살 없는 손이 부드럽게 내 양물을 쥐자 순식간에 우뚝 솓아올랐다.
"그, 그만!"
나도 모르게 외치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하면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다. 이미 의절했다 하더라도 의모는 의모인 법. 내가 감히 손을 대어선 안 되었다.
류찬희는 내 말을 듣자 다시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녀에게 옷을 입으라 말한 뒤 고민에 빠졌다.
이지를 제압 당한 류찬희. 그녀를 이대로 두고 돌아가선 안 되었다. 어떻게든 제정신을 차리게 하고, 오늘의 기억을 지워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나는 고민했지만 뚜렷한 방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 뿐이었다.
"돌아가야겠군."
나는 노인의 폐가를 떠올리며 서둘러 방을 나왔다.
*
"금방 돌아왔군."
노인은 다행히 폐가에 그대로 있었다. 무심하게 가부좌를 틀고 날 보는 눈빛에선 그 어떤 흥미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고강한 술사術師님을 뵙습니다···."
이자가 쓴 술법의 위력을 알자 아까처럼 가볍게 대할 수는 없었다. 노인은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아까처럼 말을 편하게 해라. 되도 않는 격식은 차리지 말고."
"하지만 무림의 대선배이자 고강한 술사께 그런 말투는···."
"술사는 무슨 술사. 최면술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다."
"절 순식간에 시장 한복판으로 보내시고, 사람을 지배하셨잖습니까. 제가 어찌 감히···."
"허어, 그렇게 착각을 할 수도 있군."
노인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시장으로는 네가 직접 걸어갔다. 최면술로 명령을 내리고 나중에 깨어나게 만든 것이지. 그리고 사람을 지배하는 건···."
그는 한 단어씩 잘근잘근 씹으며 말을 하였다.
"무공을 익힌 자에겐 소용이 없다. 특히 사내라면 삼류에 불과한 잡졸이어도 통하지 않지."
이 노인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저에게도 그 최면술이라는 걸 걸지 않으셨습니까? 저도 무림인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룡표국에서 삼급표사의 직책을 맡고 있었죠."
"네가 무림인이라고? 잠깐 가만히 있어라."
노인은 내게 다가오더니 맥脈을 짚고, 아랫배에 손을 대었다. 몇 번 갸우뚱하며 다시금 확인하던 노인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정말 무림인이었군. 내가 잘못 생각했어. 삼류 중 삼류, 모든 무림인 중 말석에 자리 잡을 정도라면 사내여도 최면술이 통해. 허, 이걸 지금까지 몰랐다니···."
말끝을 흐리던 노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고맙다. 네 덕분에 알게 되었군."
"그, 그런 감사는 별로 받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고맙지도 않아. 그냥 알게 된 것 뿐이지."
"···."
이 자는 은근히 신경을 돋우는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능력 없는 자가 참을 수밖에. 나는 짜증을 숨기며 공손한 어조로 물었다.
"사내에게 통하지 않는다면 여인에게는 통한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뭇 세상의 절반을 지배하실 수 있는 분이 너무 공손하신 것 같습니다."
"여인도 별로 다를 건 없다. 사내와 달리 산공독을 쓰면 통하지만 멀쩡한 몸이면 쓸모가 없지. 무공 없는 자에게만 쓸 수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 하녀나 창기를 홀려봤자 내 목적에는 쓸모가 없는데."
노인은 못내 아쉬웠는지 내게 한탄하였다.
"성의 성주城主 같은 고위 관작에게 쓰고 싶어도 그자들은 근처 방파에게 벌모세수를 받으니 통하지 않지. 남자 무림인
이라면···."
그는 날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래, 너 같은 경우는 통하지만 보통은 안 통해. 솔직히 말하자면 널 제외하곤 아무도 통하지 않았지. 최면술은 무림인 상대로는 쓸모가 없는 기술이야."
그의 눈에서 아득한 과거가 비춰 보였다. 그것은 실패한 과거를 한탄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난 최면술로 복수하려 했지만 실패하였다. 죽을 뻔한 위기를 겪고 이곳으로 도망쳐왔지만, 지병이 도져 백년대계百年大計를 계획하기도 힘들지. 넌 날 고강한 술사라 하였지만 실제론 보잘 것 없는 늙은이에 불과해."
그의 눈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너와 대화하는 것도 이걸로 마지막이겠군. 류찬희라는 계집을 되돌리는 법을 알고 싶어 온 것이지? 그냥 제정신으로 돌아가라 말을 하면 된다. 너와 있었을 때의 기억도 네가 말하는대로 기억하니 적당히 알아서 하면 되겠고. 그럼 이만···."
"자, 잠깐. 설마 지금 제 기억을 지우시려는 겁니까?"
"비밀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네 어미를 부릴 수 있는 주문은 그대로 기억에 남길 테니 걱정은 말고. 죽어가는 노인을 살린 대가라면 이걸로 충분하지 않나?"
"아니, 이건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 노인의 술법은 상상을 초월하는 술법이었다. 이자와의 연을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되었다.
"노인장께선 절 죽이지 않겠다고 말을 하셨습니다. 제 기억을 지운다는 건 그동안의 저를 죽인다는 것과 같은 이치일 터. 설마 고인高人께서 스스로 한 말을 어기실 생각이십니까?"
"궤변이다. 네 기억을 지운다고 그게 그동안의 널 죽인다고 할 순 없지."
"노인장에겐 몰라도 저에겐 그렇습니다."
"···난 너 같은 짐덩이를 달고 다닐 생각이 없다."
"무림인에게 무공이란 또 하나의 목숨 아닙니까? 저는 노인장의 목숨을 구했을 뿐 아니라 무공 또한 구해냈습니다. 주화입마에게서 구해낸 은恩을 보아서라도 다시 생각하심이···."
"무공을 구해냈다고? 주화입마? 설마 어젯밤의 일을 내가 주화입마에 걸린 것이라 착각이라도 한 것이냐?"
"착각이라니요···?"
"그건 그냥 폐병이다. 허 참, 지식이 무공 수준을 따라 가는
군."
나는 할 말을 잃어 입을 열지 못했다. 십오 년 전 무일푼으로 집을 나와 점소이나 약장수의 조수로 살아온 내게 무림의 지식이 있을 턱이 없었다. 삼급표사의 직책도 최근에 얻었으니 실상 점소이 시절과 다를 게 없었다.
노인은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무언가 생각을 하던 그는 눈을 뜨고 내게 말했다.
"목숨을 다해서라도 날 도울 생각이 있는가?"
"그럴 생각이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해라."
"사실입니다."
"허, 참. 뭐라고?"
내 말을 들은 노인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자는 내가 진심으로 도울 거라곤 생각도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 정말 날 도울 생각이 있단 말이지?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리 말하고 다시 골똘히 생각을 한 그가 말했다.
"날 도울 생각이라면 내 병을 고칠 약재를 가져와라. 그렇다면 생각을 다시 해보지."
**태호太湖와 장강長江에 둘러싸인 도시 소주蘇州는 타지방
사람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이었다. 무엇을 심어도 무럭무럭 자라는 소주의 비옥한 땅은 농민에게 있어 꿈의 땅이었고, 중원의 물자가 한데 모이는 장강 하류는 상인의 원대한 목표였다.
소주에는 없는 물건이 없다.
이 말은 타 지방 사람이 소주를 가면 하는 말이자, 소주 상인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며 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허나, 이것은 엄밀히 따지면 틀린 말이었다.
소주에도 없는 물건은 있다.
소주에는 그 흔한 생약生藥이 없었다.
생약이라 해도 대단한 무언가는 아니다. 흙도 제대로 털어내지 않은 초재草材. 산어귀만 가도 구할 수 있는 그 풀뿌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 흔한 게 없다는 건 실로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었지만, 소주 지방의 특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덥고 습한 날씨.
작고 큰 호수와 강만 있는 항구 도시.
이런 곳에서 습기를 머금은 생약은 금방 썩어 문드러졌다. 더군다나 소주 사람들은 약재도 요리와 마찬가지라 여겨 손이 많이 갈수록 좋다고 여겼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으니 약은 생약이 아닌 완성된 약제, 혹은 말리거나 빻아낸 약재만이 쓰였다.
간혹 타지방의 약초꾼이 가져 온 생약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만, 그들이 가져온 건 흔하디 흔한 약초들뿐이라 그다지 쓸모가 있진 못했다.
나는 약장수의 조수로 일하며 들은 말을 떠올렸다.
'약재란 오묘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다. 어떤 약재는 손을 댈수록 효과가 강해지지만, 어떤 약재는 생것 그대로 먹어야 효과가 나타난다. 그중 폐병에 좋은 약재 대부분은 생으로 먹어야 좋은 물건이니, 산밑 촌놈들이 폐병에 걸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 까닭이다.'
제대로 된 약 하나 짓지 못하던 약장수의 말. 그다지 믿을 게 못 되는 말이었지만, 내가 이 말을 떠올린 덴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노인네의 집에 있던 소쿠리. 그 안에 있는 약재는 전부 말린
약재였다.
자신의 병을 폐병이라 진단하고 그를 고치기 위해 약을 모아두고도 고치지 못했다면, 충분히 생각해봄직한 문제 아닐까?
약재의 선정에는 문제가 없다. 허나 약재의 상태가 문제다.
나는 문제점을 약재의 상태라 생각하고 이곳 안휘성安徽省에 오게 되었다.
============================ 작품 후기 ============================원래 류찬희와의 씬이 있었는데, 계모도 근친이란 말을 들어
적당히 고쳤습니다. 언젠가 외전을 쓸 수 있다면 따로 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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