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 오란독수-- > (4/5)

< --3. 오란독수-- >

                 *나는 호예린을 두고 방을 나왔다. 허리가 풀린 호예린은 하부에서 흐르는 음액을 닦지도 못하고 간헐적으로 신음만 내었다. 처음에는 완강한 저항의 의지를 보인 그녀였지만, 몇 번 몸을 섞자 급속도로 나를 받아들였다. 행위 중, 앞으로는 날 향해 칼을 뽑지 않겠노라 맹세한 그녀였으니 이제 위험한 일은 없을 터였다.

나는 노인이 기거하는 방까지 나아갔다. 가는 동안 둘러본 호가장은 평온했고, 일상적이었다. 그 평온함이 사슬을 달아 얻은 평온함이고 노예의 일상이었지만, 보기에는 별다를 바 

없었다.

노인의 방은 어두웠다. 모든 창을 닫아 밀폐된 방에선 독한 탕약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나는 코를 틀어막고 노인에게 다가갔다. 비루한 노인. 요즘 들어서 강인한 기세를 풍긴 그였지만, 발작이 한번 일자 전보다 더 심하게 쭈그러든 모습이었다.

"좀 괜찮으시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철저한 사승 관계였지만 단 둘이 있을 땐 달랐다. 노인의 이름조차 모르는 엉성한 관계. 이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이 날 배신할 거라 생각되지 않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노인은 힘겹게 눈을 떴다. 그는 입을 달짝여 무언가 말했지만 목소리가 워낙 작아 들리진 않았다.

들리진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네가 보기엔 괜찮아 보이나, 멍청한 놈.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워낙 자주 들으니 이젠 친근한 느낌마저 드는 말이었다.

-몇 번 갸릉거리며 침을 뱉어낸 노인은 힘을 내어 겨우 말했다.

"오란독수汚亂毒手를 찾아라···. 이곳에서 구한 의원은··· 날 고칠 수 없다···. 오란독수만이··· 날 치료할 수 있다···."

나는 갑작스런 노인의 말과 낯선 별호에 머리를 긁적였다. 오란독수라, 분명 듣긴 들은 별호였는데···.

잠깐 생각하던 나는 이마를 치며 떠올렸다. 오란독수. 간만에 들어 까먹었지만, 노인이 계획을 설명하며 반드시 취해야 한다 말한 네 명의 여고수 중 한 명이었다.

북방검후北方劍后 윤호선倫好善.

금정신니金頂神尼 청허淸虛,.

선녀검仙女劍 유하연喩河燕.

오란독수汚亂毒手 이름 불명.

북방검후라면 자타공인 중원 최고의 검객이자 남해南海보타암普陀庵의 주인이었고, 아미파의 장문인인 금정신니는 아미파 장악을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선녀검은 북방검후보단 실력이 못하지만 대단한 고수이고, 장백산에 홀로 기거하는 특성상 남 모르게 처리하기 쉬운 대상이었다.

세 명은 이렇듯 행적과 실력이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오란독

수만은 예외였다. 그녀의 행적은 언제나 불명이었고, 이름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오란독수는 독공의 고수이고, 독공은 결코 홀로 연마할 수 없는 기술이니 반드시 사문이 필요할지언데, 오란독수는 갑자기 솟아난 것처럼 나타나 무림을 뒤흔들었다.

독의 고수는 다르게 말하면 해약을 그만큼 잘 다룬다는 뜻이 된다. 위중한 노인이 그런 고수를 찾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되었지만 나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불안하였다.

오리무중인 오란독수의 행방.

별호 앞에 오란汚亂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더러운 그녀의 손속.

내가 불안한 기색으로 노인을 보자, 노인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항주杭州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장강에서 시작하여 소주를 지나 항주로 끝나는 대운하는 중원을 가로지르는 물자의 유통로였고, 물자가 있는 곳엔 언제나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물자가 있는 곳엔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는 곳엔 싸움이 있다. 그렇기에 사람 많은 이곳 항주에서 싸움은 늘상 보이는 일이었다. 시장에서 바가지를 썼다던가, 길을 가다 어깨가 부딪혔다는 이유로 싸우는 건 다반사. 케케묵은 원한으로 칼을 드는 경우면 양반이라 불릴 정도였다.

항주의 작은 객잔, 반갈루半碣樓. 이곳은 평소의 정갈한 분위기는 어디 가고 험악한 고함만 오가고 있었다.

"씹어 죽일 악적놈! 네놈들이 한 짓을 우리가 잊었을 성싶더냐!"

"누가 할 말을! 우리야말로 칼을 갈고 있었다!"

청색 무복을 입은 세 명의 청년과 흑색 무복을 입은 네 명의 청년. 무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무림인이었고, 서로 색이 다른 무복이었으니 다른 문파였다.

그들은 전부 칼을 뽑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죽일 놈, 면상을 갈아 남해 바다에 버려 마땅한 놈. 험악한 욕설이 오갔고, 욕설로 분간하기도 힘든 외마디 고함이 사방을 울렸다.

청색 무복은 청수문淸水門이었고, 흑맥 무복은 절검파絶劍派였다. 두 문파 모두 항주에 자리를 두지 않은 문파였지만, 항주의 시장에 볼 일이 있어 오자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들이 서로를 죽일 것처럼 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청수문의 문도 중 한 명이 언젠가 절검문의 문도와 사소한 시비가 있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시비 붙은 두 명이 술자리마다 이야기를 부풀려 풀어대자, 다들 곧이곧대로 믿은 까닭이었다.

그 사소한 시비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지만, 당사자 없는 이곳에선 부푼 이야기만 들은 사람만 있었기에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네놈들이 우리 사형께 한 짓은 목숨으로 갚아야 할 줄 알아라!"

"그 비루먹은 자식이 우리 사매께 무슨 짓을 했는진 알고 있느냐!"

그들은 이렇게 한번 소리를 지르곤 탁자를 걷어찼다. 탁자는 쓰러지고 어구구― 하는 당혹성이 울렸다. 그러나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삼류였다. 칼을 휘두를 줄은 알아도 피할 줄은 몰랐기에, 소리만 지르는 덧없는 소란이 반복되는 중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내가 밖에선 소란을 만들지 말라 몇 번을 말했거늘···!"

때마침, 청색 무복의 중년 사내와 흑색 무복의 미부가 들어왔다. 그들은 밖에서 이 고함을 들었는지 오는 즉시 청년들을 진정시켰다.

청년들의 표정은 급히 밝아졌다.

자신들의 사형, 사매.

그와 동시에 청수문과 절검파 사이에 엮인 원한의 당사자.

이들이 왔으니 드디어 소란이 풀릴 실마리가 보였다.

청색 무복의 중년, 안길성은 온 순간 사태를 파악하였다. 원한을 운운하는 고함과 절검파의 무복이라면 분명 그 일 때문이었다.

이는 흑색 무복의 미부, 채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교차된 시선.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뜻을 한 가지로 모았다.

서로 위신을 깎지 않고 원활하게 소란을 끝낼 방법을 찾자.

이젠 누가 먼저 입을 열어 소란에 대한 사과를 하느냐만이 유일한 문제였다.

그들이 고민하고 있을 무렵, 청년들은 갑자기 신음성을 내뱉었다.

"꺼어억―."

"끄으윽―."

안길성과 채영은 놀라 그들을 바라보았다. 검은 휘둘러지지 않았고, 암기를 던진 것도 아니었다. 갑자기 배를 잡고 고꾸라진 청년들의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불가해는 금방 풀렸다. 갈색으로 물든 푸르고, 검은 무복. 건장한 청년들은 순식간에 변을 지리며 끙끙거렸다.

그들은 이 사태를 보고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도 찾아온 찾아온 복통. 안간힘을 주어 참으려 했지만, 결국 그들도 청년들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의를 갈색으로 물들인 무인들은 순식간에 객잔을 떠났다. 객잔의 손님들이 싸움 난 순간 떠난 게 그들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무인에게 있어 오늘의 일은 죽음보다 못한 수치였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일이었고, 객잔 주인에겐 달랐다.

부서진 탁자, 흩어진 음식, 바닥에 남은 잔변.

객잔 주인이 이를 허망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주문 안 받나요?"

객잔 주인은 깜짝 놀라 주위를 돌아봤다. 도망치지 않은 손님이 있었단 말인가?

그를 부르는 소리는 2층에서 나고 있었다.

객잔의 2층으로 오르며 그는 생각했다. 오늘 2층에 온 손님은 아무도 없는 걸로 아는데, 이 무슨 일일까.2층의 손님은 특이했다. 이십 대 후반 정도의 요염한 여인. 경장을 걸친 그녀는 요리 몇 가지를 주문하였고, 주문을 받은 주인은 주방으로 들어갔다.2층의 손님은 주인이 떠나자 조용히 중얼거렸다.

"바보 같은 놈들. 팽하제膨下劑 하나도 못 버티다니."

입을 가리고 쿡쿡 웃은 그녀는 요리를 기다렸다.

오란독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그녀에게 오란汚亂이란 말이 붙은 건 바로 이 이유 때문이었다.

기분이 나쁘면 무차별적으로 하제下劑를 살포하는 독공 고수. 살포하는 것은 목숨에 지장없는 하제였지만, 그 솜씨가 문제였다. 일류 고수도 길거리에서 변을 지리게 만드는 신기에 달한 하독. 제대로 된 독을 쓰면 그 누구보다 무서운 고수였기에 무림인들은 늘 그녀의 행방을 찾아 다녔다.

오란독수는 요리를 기다리며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하제를 살포하며 웃는 것도 잠시, 지금의 그녀는 극도의 권태감에 빠져 있었다.

오란독수가 하제만 살포하는 건 사문을 나오며 들은 엄중한 경고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보내주지만, 쓰던 이름을 반드시 바꾸고 사문의 독을 쓰지 말아라. 만약 이를 어기면 반드시 추살追殺할 것이니···.

이 경고 때문에 지금껏 참아왔지만 그 인내도 이젠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주문한 요리는 회과육回鍋肉과 어향육사魚香肉絲. 이중, 회과육이 먼저 오면 참아왔던 일을 시작하기로.

시간이 흐르자 주인이 쟁반을 들고 올라왔다. 손에 들린 쟁반은 하나였으니 둘 다 나온다는 경우도 없을 터. 그녀는 빨

리 내용물을 보고 싶었다.

기대에 찬 그녀의 얼굴은 주인이 탁자에 쟁반을 올린 순간 구겨졌다.

주인은 씩 웃으며 말했다.

"손님 혼자서 드실 것이니 쟁반 하나에 같이 담았습니다. 괜찮으시죠?"

며칠 뒤, 반갈루 주인은 상한 음식을 내놓은 죄로 관아에 끌려갔다.

============================ 작품 후기 ============================무료 분량이 끝나는 걸 댓글 보고야 알았습니다.

이번 화와 다음 화는 평소보다 약간 모자른 분량으로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봤자 1~2kb 차이지만요.

                                                                             =====================================================================

< --3. 오란독수-- >

                 *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어두컴컴한 지하실. 오란독수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순간적인 충동. 이를 참지 못하고 결국 저질렀다.

꼬리를 밟히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 잘 참아왔지만,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말았다.

오란독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예전처럼 화골산을 이용한 뒤처리는 기대할 수 없다. 이미 저지른 이상 곱게 끝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끝을 내야 한단 말인가.

"읍, 으읍―."

오란독수의 고민은 옆에서 들린 신음성에 흐트러졌다.

재갈이 물리고 전신이 단단히 묶인 검은 무복의 미부. 채영이 드디어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오란독수는 화사하게 웃으며 채영에게 말했다.

"아, 교룡蛟龍의 가죽에 약을 먹여 만든 띠라 끊어지지 않으니 괜한 힘은 주지 마세요."

"으으읍―!"

채영은 당혹감과 두려움에 떨며 주위를 둘러봤다.

처음 보는 기괴한 곳. 온갖 짐승이 우리에 갇혀 소리를 내고 

있었고, 보기에도 위험천만해 보이는 독약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오독문이나 사천당문의 약제실이라면 이런 모습일까. 그녀는 자신이 왜 이런 곳에 묶여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채영은 며칠 전부터 술독에 빠져 살았다. 반갈루에서 저지르고만 실례. 사제들은 아무도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채영은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채영은 결국 하러 온 일도 내팽겨치고 온종일 항주의 주루에 틀어박혔다. 그날의 기억을 잊기 위해. 독한 술을 죽어라고 들이붓던 며칠간이었다.

고수가 술 따위에 정신을 잃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채영은 늘 독한 술을 마셨지만 정신을 잃은 적은 없었다. 지금도 

그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주루에서 있었건만, 이는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오란독수는 그녀가 무엇을 궁금해할지 다 안다는 듯 자상하게 말했다.

"제가 만든 미혼약은 정신을 잃는다는 느낌도 없지요. 쓰러진 소저를 몰래 데려오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읍, 으읍!"

"아뇨, 괜찮아요.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채영은 온몸의 내공을 끌어모았다. 눈앞의 여인이 무슨 광인인지는 따질 겨를도 없었다. 전심전력을 다하여 줄을 끊어내는 게 우선이었다.

오란독수는 채영이 하는 짓을 웃으며 보고만 있었다.

가소롭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반 시진.

채영이 힘으로 줄을 풀어내는데 포기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채영은 땀으로 범벅된 채 오란독수를 보았다. 이상하게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채영의 눈빛엔 암담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무림인인 채영은 죽음을 각오하고 살아왔다. 칼을 든 자가 언제고 칼에 찔려 죽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왔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정당한 비무도, 비겁한 암습

도 괜찮았지만 이렇게 죽고 싶진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죽음은 생사결의 결과였지 미혼약의 부산물이 아니었다.

오란독수는 채영이 줄을 끊길 포기하자 선반으로 갔다. 몇 가지 병을 꺼내온 그녀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몇 가지 실험만 끝내면 보내줄테니 협조 부탁드려요."

채영은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지만, 오란독수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사흘이 지났다. 오란독수는 한때 채영이라 불리던 무인을 묶

고 밖으로 나왔다.

지난 사흘간 이어진 잔혹한 실험. 이런 실험 때문에 사문에서 쫓겨난 것인데도, 그녀는 결국 참아내지 못했다.

오란독수는 지하실 문을 닫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고마워요.

이 말을 들은 채영은 미친 듯이 꿈틀거렸다. 실험을 시작하기 전마다 이렇게 한 마디만 했을 뿐인데. 채영은 침과 눈물을 흘리며 벌벌 떨었다. 오란독수는 피식 웃으며 문을 완전히 닫았다.

바깥은 노을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밤낮을 잊고 취미에 몰두한 그녀는 이제야 오늘의 시간을 알았다. 유시酉時. 항주가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오란독수는 이런 시간에는 늘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녀는 이리저리 얽히며 지나가는 사람이 싫었고, 바다 냄새가 물씬한 항주가 싫었다.

그녀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이 도시를 빠져나가 어디 산골에 있는 게 맞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는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의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오란독수는 저택을 거닐으며 설치된 진법을 확인했다. 동서남북의 방위마다 놓인 작은 비석과 금줄. 자신이 지하실에 있는 동안 누군가 침입했다면 무언가 흐트러진 흔적이 보일 것이었다.

그녀는 북방의 비석을 본 순간 이질감을 느꼈다. 그녀는 서둘러 발을 놀렸다. 북, 동, 남, 서. 한 바퀴 돌아본 그녀는 손

톱을 깨물며 침음성을 삼켰다.

진법이 훼손됐다.

훼손된 진법을 누가 어설프게 고쳐두었다.

좀도둑이라면 진법의 존재조차 알 수 없다. 진법을 알고 있는 침입자. 무림인이 이 집에 들어온 것이었다.

언제일까. 어제? 그저께? 아니,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왜 침입하고 돌아간 거지? 나를 쫓아 이곳에 왔다면, 바로 잡으러 와야 맞다.

오란독수. 한때 사망광의死亡狂醫 당사영唐四英이라 불린 당문의 기재는 고민에 빠졌다.

진법에 설치한 독이 살포된 걸로 보아 누군가 들어온 건 확

실했다. 하지만 그걸로 안심할수 있을까? 시체가 이곳에 없는 걸로 봐선 침입자는 독을 이겨내고 도망친 게 분명했다. 이미 한번 독에 당한 상대는 다시 당해주지 않을 터. 준비를 갖춘 고수를 이곳에서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논리적으로는 당장 이 집을 떠나 도망치는 게 맞았지만 당사영의 생각은 다르게 흘러갔다.

집을 떠나는 건 애당초 논외. 집에서 추적자를 막아낸다. 집에 있는 독물과 암기들. 잘 활용하여 함정을 판다면 고수 몇 명 정도는 같이 저승으로···.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당사영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품속의 비침飛針을 만지작거린 그녀는 문을 열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인 건 두 명의 무인이었다.

붉은 무복을 입은 남성과 여인. 무복인 걸 확인한 순간 당사영은 비침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한 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도망치면 남은 한 명이 자신을 쫓진 못하리라.

"양섬문주의 명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건너편에서 들린 목소리. 당사영은 비침을 놓았다. 마치 정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당사영은 직접 술상을 차렸다. 자신을 양섬문의 문도라 밝힌 두 무인. 그들은 편안한 표정으로 쉬고 있었다.

당사영은 갑자기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양섬문?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말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껏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들을 언제 기다렸단 말인가.

당사영은 초조하게 저들을 바라봤다. 자신이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한가롭게 술판이라니.

당사영이 다시금 비침을 꺼내려는 찰나, 앞의 남성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을 하지 않았군요.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요? 사망광의 당사영? 아니면 오란독···."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당사영이 곧장 상을 걷어차고 비침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정체불명의 침입자는 저 둘이었다. 오란독수라면 몰라도 사망광의 당사영은 끝까지 숨겨온 이름이다. 지금쯤 사문에서도 자신의 흔적을 지워 잊혀진 이름일 터. 이들이 사망광의를 찾는 건 말도 안 됐다.

당사영은 저 둘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그 내막을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사자대정死无对证.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죽이고 도망치면 그만이었다.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상대방은 쉽게 죽어주지 않았다. 붉은 무복의 여인. 그녀가 날아온 상을 잡고 휘둘렀다. 튕겨져나온 비침은 허망하게 바닥을 뒹굴었다.

당사영은 표독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 숨어 사는 동안 실력이 녹슬고 대비도 허술해졌다. 예전에는 집에서도 각종 암기를 휴대했건만. 한 줌의 비침을 뿌리자, 더 이상 대항할 방도가 없었다.

"저희는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말 좀 들어보시지요."

당사영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는 문은 여인이 점했으니 그쪽은 무리. 저 남성의 무공 수위는 대단해보이지 않으니, 비침을 주워 그에게 달려들면 어떻게든 가능성이 보였다.

이 설계는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남성의 눈에서 보인 수상한 기운. 당사영이 이를 보고 불안하다 생각하기도 전에, 그녀의 정신이 흐트러졌다.

"당 소저. 정신이 드십니까?"

당사영은 눈을 깜빡였다. 깜짝 놀라 주위를 보니 손님 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았다.

그녀는 방금 전 일을 떠올렸다. 양섬문주가 보내서 온 두 명의 무인, 왕사, 강휘영.

방금 통성명을 끝낸 이 둘은 자신의 정체를 아는 양섬문주가 보낸 사람이었다.

당사영은 양섬문주와의 오랜 인연을 떠올렸다. 구명지인이라 할 정돈 아니지만 몇 가지 도움은 받은 사이. 그가 이곳에 사람을 보냈다면 드디어 대가를 요구하려는 생각일 것이다.

"아, 괜찮아요. 잠깐 생각에 빠져서···."

"하하, 일단 하던 말을 마저 하겠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스승님께선 당 소저가 부탁을 하나 들어줬으면 해서 저희를 보낸 것입니다. 당 소저의 취미와 관련된 작은 부탁입죠."

당사영은 완곡한 거절의 말을 떠올렸다.

침입자는 분명 정천맹에서 보낸 추적자일 터. 인체실험을 비인외도非人外道적 행위라고 규탄한 그들 때문에 자신은 사문에서 쫓겨났고, 아직도 쫓기고 있었다.

양섬문주가 준 도움은 고마웠지만 때가 아니었다. 당사영은 어찌 거절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 그냥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죄송하지만 그 부탁은 들어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부터 정체불명의 추적자가 저를 쫓는 상황이라···. 부득이하게 당장 몸을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사영은 이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한 번 걸려든 추적은 끝이 없다. 자신처럼 변장과 도주에 능한 자가 아니라면 오히려 발목만 잡을 것이었다.

왕사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당사영의 눈을 마주한 그는 한참이나 시간을 보낸 뒤에야 말했다.

"그 추적자를 해결해주면 문제가 없겠습니까?"

추적자를 해결해준다니. 그게 정천맹의 적이 된다는 걸. 무림 공적이 된다는 걸 알고나 하는 말일까?

당사영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없고 말고요. 추적자만 해결된다면 부탁이야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답니다."

"그 말 진심이시겠지요. 추적자만 해결된다면 저희의 부탁은 정말 얼마든지 들어주실 수 있으시지요?

당사영이 그렇다고 말할 때 왕사의 눈이 번쩍였다. 착각일까. 저 후줄근한 무인의 눈에서 정광이 비칠 리 없을 텐데.

당사영은 헛된 생각을 지우며 물었다.

"어떻게 추적자를 해결하실 것이죠? 저는 오늘내로 이곳을 떠날 생각인데."

시원한 웃음. 왕사는 경쾌하게 한 번 웃더니 말했다.

예의, 그 눈을 반짝인 채로.

"이미 해결됐습니다. 곧 있으면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 추적자가 어떤 꼴이 됐는지."

============================ 작품 후기 ============================이번 편은 좀 불친절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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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란독수-- >

                 *당사영은 생각에 잠겼다. 추적자가 이미 해결됐다는 왕사의 말. 믿고 싶었지만, 쉬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군요. 추적자는 아마 정천맹에서 보낸 일류무사일 터. 그들은 쉽게 당해줄 사람이 아닐텐데요?"

"제가 거짓을 말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미 다 처리를 했으니 이리 말하는 것입니다. 추적자는 정천맹 질풍대 소속의 백룡검白龍劍 은채린恩綵璘. 이 집을 염탐하고 정천맹에 소식을 전하려는 찰나, 제가 발견하고 처리했습니다."

"···."

상대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당사영은 믿는 수밖에 없었다. 정천맹의 추적자라는 말에 놀라지도 않고, 오히려 당당히 추적자의 이름을 읊다니. 보아하니 정말 처리를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부분이 걸렸다.'제'가 처리를 했습니다.

저 왕사라는 사내에게 그럴만한 실력이 있다는 말인가?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독공 고수도 이와 마찬가지. 저자는 무복을 입었지만 고수로 보이지는 않았다. 부족한 무공을 용독술로 해결하기엔, 독공 고수 특유의 약재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당사영은 미심쩍은 부분을 느꼈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진 않았다. 저자가 무슨 능력을 가졌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자신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었다면 한참 전에 그리 하였을 텐데.

"부탁을 들어드리지요."

결국 당사영은 부탁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왕사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당사영에겐 일이 해결됐을 때 생기는 보통의 희열로만 보였다.

왕사는 기쁨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사람을 개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는 이리 말하며 자신의 옆에 선 강휘영을 가리켰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하여 눈을 껌뻑이는 강휘영은 왕사에게 귀엣말을 듣자 허둥지둥 말을 하였다.

"사, 사제 대체 왜 그런 마음을 먹은 줄은 모르겠으나···."

강휘영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왕사가 손짓하여 신호를 주자 강휘영은 입을 다물었다.

강휘영은 입을 다문 채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왕사는 그녀를 무시했다. 당사영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개조라, 이 얼마만에 듣는 일이란 말인가.

과거의 그녀는, 비무에서 패한 무인의 시체를 해부하고, 살아있는 사람에게 여러 실험을 해오며 수많은 지식을 얻었다.

인간의 장기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신체에 약물이 들어가면 어떤 변화가 생기고, 금침을 박아 어떤 반응을 볼 수 있는지.

그녀는 다른 당문의 무인과 달리 암기나 독에 흥미를 두지 않았다. 귀한 인체를 죽여서는 손해. 연구하고, 조작하고 싶었다. 최근에는 몸을 숨기느라 그리 하지 못했으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라면···.

"이분을 왕 공자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만들어드리죠."

당사영과 왕사는 마주 웃었으나, 강휘영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

지하실엔 이제 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묶인 둘과 서 있는 하나. 그들은 모두 이름 높은 무인이었으나, 이 지하실에선 무공 고하가 지위를 대신 해주진 않았다.

채영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강휘영을 보았다. 누군가 들어올 때만 해도 다른 사람이길 빌었고, 정말 다른 사람이 들어오자 내심 환호성을 질렀다.

허나 따라 들어온 당사영을 보고, 순순히 의자에 묶이는 강휘영을 보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지옥 같은 실험의 끝은 정녕 찾아오지 않는단 말인가. 채영이 이렇게 안에서부터 죽어가고 있을 때, 당사영이 말했다.

"일단 이분에게 먼저 해보도록 하죠. 간만에 하는 것이니 실

수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채영은 이번엔 고개를 젓지 않았다. 인간의 자비는, 상대가 자신을 인간으로 볼 때나 의미 있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당사영은 땀으로 번들거리는 이마를 닦았다. 연습은 충분히 하였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였다.

당사영은 강휘영의 옷을 벗겼다.

탐스러운 가슴이 출렁거리고 축축한 비처가 공기를 맛보았다.

당사영은 이를 보자 실소를 지었다. 그녀는 비웃음을 숨기지 

않고 말을 하였다.

"벌써부터 안을 적시고 있으시다니. 천하의 색녀도 이 정돈 아닐지언데···."

강휘영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도 모르게 젖어든 비처는 허벅지까지 질척거리고 있었다.

당사영은 강휘영이 부끄러움을 보이자 다시 미소를 지었다. 어머, 뭘 그리 부끄러워 하세요? 이런 상황에서 흥분하는 색녀…. 아니, 개변태인 게 부끄러우신 건가요? 몸은 그리 말하는 것 같지 않은데….

찔꺽―당사영은 이리 말하며 강휘영의 비처에 손가락을 넣었다. 번

들거리는 손가락. 비처에 들어갔다 나온 손가락은 투명한 즙을 묻히고 나왔다. 당사영은 손가락을 강휘영의 인중에 닦고 강휘영의 입을 막았다.

후읍―입이 막힌 강휘영은 코로 숨을 쉬었다. 그 순간 맡아진 냄새. 자신의 비처에서 나온 음란한 향취였다. 강휘영이 수치를 못 이겨 눈물 한 방울을 짜내자, 당사영이 말했다.

"이렇게나 진한 냄새라니…. 강 소저는 정말 음란한 분이셨군요. 다행이에요. 저는 강 소저가 싫어하는 일을 하는 줄 알고 많이 걱정했답니다."

당사영은 이렇게 말하며 손에 장갑을 꼈다. 독공 고수가 자주 쓰는 얇디 얇은 장갑. 독액에 손이 상하는 걸 막기 위해 필

수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다만 지금 당사영이 만지고자 하는 건 독액이 아니었다. 인체를 민감하게 만드는 약물. 본디 고문용으로 쓰는 걸 당사영이 좀 더 특수적인 목적에 맞게 다시 만들어낸 액체였다.

당사영은 약물을 손에 바르고, 강휘영을 몸에 손을 대었다. 가슴과 겨드랑이 같은 일반적인 부위부터, 비처와 항문 같은 비밀스런 곳까지. 강휘영이 결코 내보이지 않던 은밀한 부위는 약물에 젖어 질척거렸다.

강휘영은 공포심에 몸을 떨었다. 정체불명의 약물이 발라지는 미지의 공포가 아닌, 스스로를 향한 공포 때문에.

어째서 쾌감이 느껴지는 걸까.

가슴이 잡히자 저릿한 쾌감이 머리를 울렸다. 비처와 항문이 

쑤셔지자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려왔다.

색녀, 개변태. 쾌감으로 번민하는 그녀를 보며 당사영이 속삭였다. 당사영은 그러곤 다시 항문에 액체를 발랐다. 추잡한 손길에 반응하며 떨리는 강휘영의 몸뚱이. 다시 당사영이 말했다. 천하에 둘도 없을 암캐년.

몇 시진이 흘렀다. 당사영은 강휘영을 만지고, 채영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들의 몸은 이미 약물에 치덕여져 번들거리고 있었다. 비처 깊숙한 곳과 항문의 안쪽까지. 약에 절여진 그녀들을 보며 당사영이 말했다.

"변태년들."

당사영의 말에 그녀들은 신음을 흘렸다. 반복 학습. 신체가 반응할 때마다 속삭이는 당사영의 모멸스런 말은 인과를 역

전시켰다. 몸이 반응하자 말이 나오는 게 아닌, 말이 나오자 반응하는 몸뚱이. 당사영은 이 모습을 보자 만족스러운 듯 작게 웃었다.

무인은 쾌락을 조절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한 번 맛에 들리면 풀어지기 쉬웠다. 지금의 쾌락은 욕망의 충족이었고, 음심의 개화였다. 한 평생 조절하며 살아온 기쁨의 방만이었다.

만족한 당사영은 지하실을 나왔다. 두 명이나 개조하여 그런지 이상하게도 몸이 피곤하였다. 그녀는 왕사에게 오늘치 일은 끝났다 전한 뒤 자신의 침소로 들어갔다.

억눌린 흥미를 풀어낸 까닭인지 그녀의 비처 또한 젖어 있었다. 그녀는 간만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내일을 기대하였다.

지금이 바로 그녀 인생의 절정이었다.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밤낮을 잊고 몰두하던 당사영은 왕사의 부름에 지하실을 나왔다.

간만의 햇빛. 당사영은 부신 눈을 반쯤 감으며 왕사가 있는 상방으로 갔다.

왕사는 당사영의 안가安家가 제 집이라도 되는양 편히 앉아 있었다. 차와 다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 적이 없는데도, 그는 이미 차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당사영은 왕사를 보자 급격한 변화를 느꼈다. 음약이라도 들이킨 것처럼 달아오른 몸뚱이. 무엇 때문에? 내가 저치를 보

며 흥분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당사영이 당황할 무렵 왕사가 말했다. 간만입니다, 하는 나지막한 울림. 당사영은 그 목소리에 반응하는 자신의 신체를 보며 다시 놀라고 말았다.

색녀들이 남성의 목소리만 들어도 흥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다만, 그거야 그치들의 이야기지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변태년들은 가지고 노느라 지나치게 흥분한 탓일까. 당사영은 작게 심호흡을 하며 왕사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시지요?"

"그저 차나 한 잔 하자고… 아, 농담입니다. 그런 시선으로 보시니 농도 제대로 못하겠군요. 사실, 일이 얼마나 진척되었나 물어보기 위함입니다. 사저의 몸이 어떻게 변했는지 일단 듣긴 들어야겠지요."

당사영은 왕사가 실없는 농담을 던지자 인상을 찌푸렸다. 왕사는 그 모습을 보자 말을 돌려냈지만 그녀의 기분은 이미 상한 뒤였다. 겨우 이런 일로 기분이 변하는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생각하며 당사영이 말했다.

"개조를 위해선 약물과 금침을 박아 몸을 변화시켜야 하지요. 지금은 약물만 쓰는 중으로 몸을 민감하게 하는… 아, 실례. 정말 사실대로 말씀을 드리자면, 음란하게 만드는 과정이지요. 민감하다는 말도 틀린 건 아니지만, 본질을 따지면 음란이 더 들어맞겠지요."

당사영은 지하실에 갇힌 강휘영과 채영을 떠올렸다. 약물로 인한 변화. 이는 단순 신체의 변화만이 있진 않았다.

"제가 쓰는 약물의 향내를 자주 맡으면 성격도 변하게 된답니다. 남성만 보아도 설레는그런…. 아, 다시 실례. 성격의 변화보다는 달거리를 맞는 여인의 변화에 더 가깝겠군요. 남성을 탐하는 동시에 쉽게 짜증을 낸다고 보면 되실 겁니다. 몸의 변화를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불안감의 발로라고 할까…. 솔직히 말해, 저도 어떠한 원리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당사영은 기분이 상했다. 자신에게 개조를 맡겼다면 끝까지 가만히 기다리기나 할 것이지. 왜 캐묻는단 말인가. 귀찮은 사내. 제발 다시 말을 걸지 않았으면.

당사영은 이제 충분하냐는 듯 눈꼬리를 올려 왕사를 보았다. 묘한 안광. 당사영이 의문을 품기 직전 안광은 사라졌고 왕사가 말했다.

"짜증을 자주 낸다라…. 거, 강 사저는 이미 그러신 분인데 더 심해진다니 공포스러울 지경이군요."

"약물이 몸에 완전히 흡수되면 그런 일도 사라질 겁니다. 지금이야 몸이 불안을 느끼면 짜증을 내지만, 나중엔 다른 방법으로 불만을 해소하겠지요. 스스로의 음문을 쑤신다거나… 아, 망측하게. 여인에게 이런 말을 하게 만드시면 안 된답니다."

부끄러워서 못 앉아 있겠군요. 당사영은 이리 말하며 자리를 나왔다. 왕사에게 설명을 하니 어느새 몸이 다시 달아오르고 말았다. 이 달아오른 몸뚱이를 식히기 위해선, 역시 그녀들이 필요했다.

당사영은 자신의 침소에서 몇 가지 물건을 꺼내왔다.

번쩍이는 금침과 길게 뻗은 대침. 독약을 발라 던지는 물건이지만 당사영은 그렇게 쓸 생각이 없었다. 개조를 위한 마지

막 한 수. 약물로 몸을 바꾸고, 침으로 혈도를 교정한다. 이로 인한 영구적인 변화가 당사영이 원하는 개조의 끝이었다.

"흥미가 동하네요."

당사영은 지하실의 문을 열며 중얼거렸다. 이름 높은 무인을 창기만도 못한 몸으로 만든다니. 독한 자신조차 이런 일을 당하면 죽는 수밖에 없으리라. 당사영은 곧 그렇게 변할 그녀들을 보았다. 두려움이 섞인 시선. 당사영의 그 시선을 받으며 등골을 타고 오르는 서늘한 쾌감을 느꼈다.

============================ 작품 후기 ============================* 개인적인 일로 바빠 잠깐 쉬었습니다. 다시 정상연재됩니당.

* 무협에서 인체 개조가 나오니 뭔가 세계관을 벗어난 느낌입니다. 끝까지 읽은 무협이 다섯 질을 넘지 않는 제가 이리 말하는 것도 좀 웃기지만요.

                                                                             =====================================================================

< --3. 오란독수-- >

                 *지하실은 머리를 흐리게 하는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원래 나던 갖가지 약내가 아닌 독특한 향기. 바로 여인의 음란한 체취였다.

당사영은 지하실 문을 닫고는 코를 막았다.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아, 정말. 무림의 여고수라는 분들이 이런 냄새를 풍기시면 어떻게 하나요."

당사영은 이렇게 말하곤 혀를 찼다. 쯧쯧, 정말 음란한 암캐

들이라니깐.

모멸적인 말을 들은 여인들은 고개를 숙였다. 이 음란한 향취는 당사영이 바른 음약 때문이었지만, 공포와 수치에 길들여진 그녀들은 항명의 눈빛조차 보낼 수 없었다.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여인들을 보며 당사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온몸에 음약이 발라져 번민하는 여인들이라니.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모습이란 말인가.

지금도 이정도인데 일을 마치면 어떻게 될까. 당사영은 쿡쿡 웃으며 품에 넣어둔 침을 꺼냈다.

어두운 지하실에서 한 줌의 금침이 반짝였다. 여인들은 당사영이 무언가 꺼내는 모습을 보자 살며시 눈동자를 들어올렸다.

여인들은 금침을 보자 눈동자가 흔들렸다. 끝에 무언가 발려진 미세한 금침. 자신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 물건임은 그냥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어느 분부터 하실까요?"

당사영은 금침을 손질하며 물었다. 예외는 없고, 순서만이 있을 뿐. 다만 여인들에겐 그 순서가 중요했다. 자신들의 몸이 변하는 건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은 마음이었다.

여인들은 시선을 돌려 서로를 보았다.

통성명은 물론 대화 한 마디도 나누지 못한 사이. 그러나 미묘한 동지애가 생긴 그들이었다.

같은 고통을 겪었기에 서로를 이해하는 그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강휘영과 채영의 눈동자가 교차했다. 이윽고, 굳게 마음 먹은 강휘영이 소리를 내었다.

"읍, 읍―."

재갈이 물렸기에 뜻을 표할 순 없었다. 그저 신음성. 허나 뜻을 알리기엔 충분한 소리였다. 당사영은 떠보듯이 물었다.

"강 소저가 먼저 하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간만에 하는 일이라 실수가 나올 수 있는데도?"

실수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에 강휘영은 침음성을 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의 머리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당사영은 이 긍정의 표시를 보자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직은 서로를 아낄 수 있는 상황이지요. 하지만 그 의지

가 굳건할 수 있을까요? 다음엔 재갈을 풀어줘도 괜찮겠네요. 어떻게 될지 전 다 알고 있으니깐.

"그럼, 가슴부터 할까요?"

당사영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대답을 바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상대방의 정신을 깨우기 위해. 갑작스런 기습보단 예고된 살인을 즐겨하는 당사영의 취향 때문이었다.

당사영의 말을 들은 강휘영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눈을 통해 말하고 싶었다. 이런 일을 해도 당신이 무사할성 싶은가. 무인이라면 당당히 칼을 들고, 의원이라면 의원답게 사람을 구하여라.

뜻을 품고 쳐든 고개는 금새 숙여지고 말았다. 강휘영은 당사영의 얼굴을 보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진심으로 즐기는 

듯한 미소. 시작은 왕사의 부탁이었지만, 지금은 온전한 당사영의 의지였다.

"유두에 침을 박을게요."

당사영은 시술을 할 때마다 이렇게 알려주었다. 유두 다음은 그 아래의 신봉혈이에요. 더욱더 느낄 수 있도록. 젖가리개만 입어도 잔뜩 흥분하는 유두가 되도록. 산들바람만 간질여도 열락에 빠지는 재밌는 몸이 될 거랍니다.

"항문이라고 가만 둘 순 없지요."

이미 약물이 잔뜩 발린 항문은 살짝 벌어져 약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당사영은 그런 약물을 그러모아 다시 항문에 밀어넣고, 작은 나무토막을 항문에 쑤셔넣었다.

"으흑!"

지금까지 잘 참아왔지만 이번에는 그러질 못했다. 강휘영은 미지의 쾌감에 신음성을 내었다. 그런 강휘영을 보며 당사영은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반응을 보니 약물이 충분히 흡수된 것 같네요.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지요. 제가 원하는 수준에 이르러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답니다. 아,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진 나중에 변소를 가시면 알 수 있을 거에요. 미리 충고하건데, 변소를 가실 땐 재갈을 물고 가시는 게 좋을 거에요. 변소에서 교성을 지르는 변태로 낙인 찍히고 싶지 않다면 꼭 그러셔야겠지요."

고작 재갈로 막을 수는 없겠지만요. 당사영은 작게 말하곤 다시 금침을 쥐었다. 항문과 음문엔 당연히 침이 박혔고, 그 사이에 있는 회음혈엔 특히 더 많은 침이 박혔다. 많은 침은 

곧 많은 약물. 강휘영은 뜨겁게 달아오르는 회음부를 느끼며 몸서리를 쳤다.

채영은 이 모습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철저하게 유린 당하는 강휘영의 모습을 눈에 담으려는 듯. 당사영의 행각을 결코 잊지 않으려는 듯. 절절한 의지를 담은 시선은 예리하게 쏟아졌다.

당사영은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 복수를 다짐하기라도 하는 듯한 채영의 눈빛을 보며 당사영은 작게 웃었다.

정말이지, 무림의 고수들이란 다 저 모양이네요. 공포를 각인시켜도 금새 회복하다니. 무공이란 게 정신력과 아주 무관한 건 아닌가 봐요?

좋아요, 전 그런 시선 싫지 않아요. 좀 더 그렇게 절 보아주

세요. 망가뜨리는 보람이 있도록. 결코 변하지 않을 것처럼 절 보아주세요. 부디, 그 의지가 꺾이질 않길 바란답니다.

당사영은 강휘영의 작업을 마무리하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 건방진 시선은 역시 화가 나는군요. 절 화나게 한 사람은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뭐,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할까요?

"자, 이제 당신의 차례랍니다."

당사영은 금침을 들고 채영에게 다가갔다. 채영의 눈빛은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당사영이 보기엔, 곧 꺼질 미약한 불씨였다.

*

시술을 끝낸 당사영은 지하실을 나왔다. 해는 이미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본래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지만, 그녀에겐 마저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드르륵―당사영은 상방에 들어섰다. 그날의 일이 끝나면 반드시 자신에게 과정을 알려달라 한 왕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어 이리 물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아셔도 될 것 아닌가요?'

'과정을 알아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대답을 들어도 납득할 수 없긴 매한가지. 하지만 별수 없었다. 추적자를 처리해주면 뭐든지 해주겠다 말한 건 자신이 먼

저였으니.

"아, 끝나셨습니까?"

"그러니깐 들어왔겠죠."

왕사는 당사영을 반갑게 맞이했지만 당사영은 차갑게 대꾸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격식을 차리는 사이였지만, 며칠 사이 짜증이 늘어난 당사영은 어느새 이렇게 변하고 말았다.

"하하, 제가 괜한 걸 물어봤군요. 하긴, 소저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가슴에 금침을 박으신 모양이군요?"

"… 어떻게 아셨지요?"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겠습니까. 소저가 그런 모습으로 오셨는데요."

당사영은 왕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모습이라니? 의원이 가슴에 금침을 박는 건 당연한 복장 아니던가?

당사영은 의문을 품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 모습을 본 왕사는 몹시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가슴에 금침이 박히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지하실의 여인들처럼 박힐 경우의 이야깁니다."

"정상적으로 시술을 끝내면 상당히 변하게 되지요. 우선, 옷을 입을 수 없게 됩니다. 옷자락만 스쳐도 절정하는 가슴을 달고 옷을 입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요. 그리고 외출 또한 불가능하겠지요. 가슴이 뚫린 옷을 입고 나간다 하여도, 바람이 불면 머리가 텅 빌 정도의 쾌감을 느끼게 될 테니까요. 제가 느껴본 게 아니라 정확한 설명은― 히이이이익!"

당사영은 말을 끊고 교성을 질렀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격렬한 쾌감. 폭력적이기까지 한 쾌감이 뇌리를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한참이나 헐떡인 당사영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앞을 보니 왕사가 손을 엉거주춤하게 내밀고 있었다.

"정말이군요. 허 참, 이정도로 변하면 호위로 쓰기 힘들겠는데…."

"자, 잠시 정신을 잃었네요. 바, 방금 무슨 일이 있었죠?"

"딱히 아무 일 없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피곤하여 잠깐 정신을 잃었나 보군요. 오늘은 가슴과 항문을 중점적으로 개조했는데, 이제 항문만 말씀 드리면 되겠군요."

당사영은 일어나 몸을 돌렸다. 다리를 약간 벌린 그녀는 왕

사를 향해 엉덩이를 추켜들고 치마를 올렸다.

당사영은 부디 왕사가 이 모습에 대해 신경쓰지 않아줬으면 했지만, 왕사는 기어코 묻고 말았다.

"당황스럽군요. 왜 갑자기 그런 자세를 취하시는 겁니까?"

"왕 소협은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군요? 항문에 대해 말할 땐 항문을 내보이며 말하는 게 당연한 상식이잖아요?"

"그렇습니까? 전 그것도 모르고."

"아, 정말이지. 왕 소협과 말을 하면 제가 한심해지는 기분이에요."

당사영은 투덜거리며 불만을 풀었지만 왕사는 빙그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직 항문에 대한 설명이 끝나지 않았기에 당사영의 자세는 아까와 같았다. 치마를 올려 하복부를 보이고 다리를 살짝 벌린 자세. 당사영은 왕사에게 속곳을 입는 걸 허락받지 않았기에 실오라기 하나 안 걸쳐진 비부가 그대

로 보여지는 상태였다.

"그건 그렇고, 속곳은 언제 허락하실 건가요? 여인이 남성에게 속곳을 허락받고 입는 건 당연한 상식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삼 일이나 불허하는 건 몰상식적인 일 아닌가요?"

"아, 그렇습니까? 전 단지 축축한 속옷을 입으시는 건 싫어하실 것 같아 그리 한 건데 불만을 사고 말았군요. 당 소저가 원하신다면 당장이라도 속곳을 입으셔도 됩니다. 다만, 지금처럼 물을 흘리는 상태라면 금새 젖고 말겠지만요.

"당사영은 왕사의 말에 작은 욕지기를 내었다. 요즘 들어 몸이 이상하게 변했다. 아주 조금만 흥분해도 젖다 못해 씹물을 흘리는 음부. 이런 상태로는 속곳을 입느니 못한 게 당연하리라.

허나 그것과 허락을 받지 못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당사영은 표독스럽게 말했다."

그거야 제가 알아서 할 일이니 허락이나 해주시지요."

"허락이야 쉬운 일이지만… 절차가 있지 않습니까?"

"절차? 도대체 무슨…. 아…!"

당사영은 무슨 소리인가 생각하다 탄성을 질렀다. 자신이 잊고만 당연한 상식. 부탁을 하는 여인의 태도에 관련한 문제였다.

"이 자세로는 절차를 지낼 수 없으니, 설명이 끝나면 말씀을 드리도록 하지요."

"그러시지요."

왕사의 대답을 들은 당사영은 다시 입을 벌렸다. 이제 하루

를 마무리할 때였다.

"항문에 박은 침은 회음혈에 박은 침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알다시피 회음혈은 여인의 음문과 항문 사이에 있지요. 침과 약물을 통해 그 세 부위를 연결하여 신경을 공유하게 한 것인데, 간단히 말하자면 이 시술이 끝난 여인은 음문과 항문을 같은 부위처럼 느끼게 되지요. 물론 약물이 발라진 음문엔 손가락 한 마디만 들어가도 극치의 쾌락을… 히이이이이이익!"

아까보다 더 큰 교성. 당사영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손으로 붙잡고 주저앉는 걸 면했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나 고민하기도 전에 왕사가 말했다.

"대충 다 들은 것 같군요. 그럼, 속곳 착용에 대한 부탁을 들어볼까요?"

당사영은 부탁을 준비하며 왕사를 볼 때 그의 눈에서 정광이 나오는 걸 보았다. 그러나 당사영은 그걸 자신의 착각이라고만 생각했다.

설마 그럴 리 없지. 화경에 이른 무인도 아니고 고작 저런 애송이 주제에 안광이라니….

당사영은 삼류조차 되지 못한 왕사를 생각하며 키득거렸다. 대놓고 지은 비웃음이지만 왕사에게 들킬 걱정은 없었다. 그녀는 지금 바닥에 바짝 엎드려 얼굴이 가려진 상태였다.

자신이 비웃는 것도 모르고 부탁을 받을 왕사를 생각하니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당사영은 즐거운 마음으로 말했다.

"부디 이 미천한 여인에게 음문가리개를 하사해주세요…."

"냄새나는 항문을 가릴 가리개를 제발 멍청한 년에게…."

============================ 작품 후기 ============================정상연재라 말하고선 이리 늦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귀찮아서 안 쓴 건 아니고 나름 바빠서 그런 건데, 할 말이 없다 하고 말하는 것도 웃기니 이만 가봅니다. 24시간 안에는 새로 한 편 올라오겠지요.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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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란독수-- >

                 *잠에서 깬 당사영은 한숨을 쉬었다. 잠에 들기 전까지만 해도 기쁜 마음 뿐이었지만, 일어나자 아쉬운 마음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결국 이걸로 끝이군요…."

왕사가 부탁한 개조는 오늘로 끝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작업을 미뤄왔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 단 한 가지 작업만 남겨둔 지금은 더이상 미뤄낼 수는 없었다.

"정말 아까운 소재인데요…."

극한으로 단련된 외공의 달인과 일류고수. 드넓은 중원에서도 흔치 않은 이들이었고, 여성 무인 중에선 극히 드문 인재였다. 차라리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기쁨을 보내는 과정은 언제고 힘들기 마련이었다.

"하아… 포기하는 수밖에 없군요."

강휘영이야 양섬문의 의뢰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채영은 달랐다. 그녀는 명백한 당사영의 소유. 앞으로 십 년은 더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귀한 소재였다.

아무리 귀한 소재라 하여도 자신만큼 귀하지는 않았다. 정천맹의 추적자. 당장은 양섬문에서 처리를 해줬다지만, 그 다음은?

한번 들킨 안가安家는 반드시 폐기한다. 이것은 그녀를 지금까지 살려준 귀한 지식이었다. 그녀의 감각과 경험이 말해줬다. 당장 안가를 폐廢하고 도망쳐라. 그것만이 네가 살 길이니.

당사영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도 답을 안다. 그렇기에 결정도 내렸다. 하지만 아쉬움은 이성과 무관한 영역. 지하실로 가야지. 가서 일을 끝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발을 놀리지 않는 건 결국 그 아쉬움 때문이었다.

당사영은 시간을 가늠하기 위해 문을 열어 밖을 보았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늦은 아침이라 예상한 당사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왕사, 그 멍청한 자식 때문에….

당사영은 양섬문의 남성 문도를 떠올리자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속곳 착용을 비는 애원은 끝날 줄 몰랐다. 적당히 끝내면 좋으련만. 그 멍청이는 자신이 애걸하며 엉덩이를 씰룩이는 모습을 술안주 삼아 밤을 보냈다. 허리가 아플 정도로 엉덩이를 흔든 새벽녘이 되어서야 속곳 착용을 허락하다니.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짜증 나는 기억이었다.

시간이 이렇게나 늦었으면 더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마지막 작업을 위한 준비물을 챙겼다. 워낙 귀해 따로 숨겨둔 물건을 찾으며 그녀는 몇 번이고 다짐했다. 왕사, 그 역겨운 놈에겐 반드시 복수하리라. 감히 당문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 이유를 직접 체득하게 만드리라. 그녀는 피의 복수를 다짐하며, 그의 부탁을 완수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당사영은 지하실의 문을 세차게 열어젖혔다. 눅눅한 지하실의 공기가 바깥 공기와 뒤섞이며, 부드러운 바람이 지하실을 한 차례 쓸어내렸다.

"아흑…!"

"흐앗…!"

"히익…!"

바람이 일자 새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여인의 교성. 기쁨을 느끼는 음란한 비음이었다.

당사영은 개조를 시작한 뒤로 늘 이렇게 문을 열고 닫았다. 

민감해진 육체는 불어오는 바람도 버틸 수 없는 걸 알기에. 고작 산들바람에 몸부림 치는 여인들을 비웃는 게 그녀의 작은 낙이었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지금까지는 늘 지하실 안쪽에서만 교성이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안과 밖 모두에서 튀어나왔다. 지하실의 여인들의 신음. 그리고, 당사영 본인의 신음.

당사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독을 다루는 자가 독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자신 또한 음약의 영향을 받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영향을 받는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직접 몸에 발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아, 당 소저. 여기 계셨군요?"

그녀가 고민을 하며 지하실에 들어서길 망설일 무렵, 뒤에서 

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사영은 그 목소리를 듣자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그런 동시에, 그녀의 손이 품을 향했다. 저 무능력한 사내가 자신에게 무언가 했을 가능성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저 사내를 빼면 안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사영은 신중한 눈초리로 왕사를 살폈다. 그다지 단련되지 않은 신체. 평범하게 생긴 얼굴. 저 표정에 서린 미묘한 자신감이 당사영의 불안감에 싹을 틔웠다.

"왕 소협께선 무슨 무공을 배우셨죠?"

당사영은 갑작스런 질문을 던졌다. 상대의 표정을 읽기 위해. 사술을 배웠다면 순간적인 고민의 흔적이 분명 남을 것이었다.

신중하게 왕사의 낯을 살피는 당사영은 당황하고 말았다. 표

정을 읽는 게 너무나도 쉬웠다. 당혹, 고민, 부끄러움. 확연한 변화가 왕사의 얼굴을 움직였다. 그런데 당혹과 고민은 이해하여도, 부끄러움은 왜 나온단 말인가?

당사영의 초조함도 모르고 왕사는 말을 하였다. 몹시 부끄러운지 작은 목소리였다.

"삼재검법과 삼재심법을 익혔는데… 꼭 아셔야 하는 이야기입니까? 아, 강 사저와 저는 익힌 무공이 달라 저에게 들은 걸 토대로 강 사저를 개조하면 안 될 겁니다."

"아, 아뇨.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저……."

당신이 수상하여서 물었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당사영은 말을 줄이며 고민했다. 고민하며 스스로에게 빠져들자 순간 놓치고 말았다. 왕사 표정에 서린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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