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세일럼(3)
[카야Kaya]
종족/성별 : 하프엘프 여성
클래스 : 전투 수녀(Battle Vestal)
레벨 : 1
최대체력 : 13(11+2)
공격력 : 2~7
방어력 : 2(1+1)
속도 : 4(3+1)
기사회생/각성 : 7%
정찰확률 : 14%
긍정적 특징 : 기민한 몸놀림(속도+1)
부정적 특징 : 어둠 공포증(밝기 50% 이하에서 멘탈리티 하락속도 25% 증가)
“허어.”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였다. 분류상 힐러 계통 캐릭터임에도 중갑 무장을 하는 전투 수녀는 사실 클래스 자체가 모순에 가까웠다. 클래스 특성상 여성만 있었는데 전투수녀 클래스 보정이 상당히 양호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보정 때문에 피지컬 3대 능력치 체력, 공격력, 방어력이 죄다 마이너스 보정이 붙어버리니까.
거기에 프로필 상 보이진 않지만 모든 캐릭터는 종족 패시브, 종특이 있었는데 엘프는 중갑 페널티가 추가로 붙어서 엘프 전투수녀는 보자마자 거르는 폐급 중의 폐급이었다.
“하프엘프는 처음 보는데 혹시 정보 좀 알 수 있을까요.”
“아 고건 말이죠….”
근데 직원이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하프엘프는 엘프의 종특인 ‘버프와 치유 스킬 효율 증가’를 반절밖에 물려받지 못하지만, 중갑 페널티를 입지 않는다고 한다. 단점으로는 공포증은 최소 한개는 반드시 달고 다니고, 불임이라는 것.
근데 공포증은 꼭 하프엘프가 아니더라도 전 종족 불문하고 누구나 다 보유할 수 있는 것이었고, 불임은 여기가 꿈과 사랑이 넘치는 연애 게임도 아닌데 애초에 논의할 가치도 없었다.
즉, 이 하프엘프 전투수녀는 나한텐 페널티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진데 반해 엘프의 장점을 취한 꽤나 매력적인 힐러라는 것.
참고로 힐러의 최고봉은 엘프 치유수녀지만, 그건 마치 다른 게임에서 전설급 아이템을 뽑는 거나 마찬가지니 그건 애초에 제쳐두고.
다시 돌아와서 전투수녀는 치유수녀에 비해 힐량은 당연히 달리지만, 웬만한 잡몹은 스스로 대가리를 분쇄해버리는 상당한 전투력을 자랑했다.
즉, 힐이 어느 정도 가능한 딜탱 포지션이었다.
‘물론 엘프나 인간이었으면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용사를 골랐겠지만, 하필 종족이 하프엘프란 말이지.’
비록 반절뿐이지만 힐러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종특을 가진 탓에, 너무나 고민이 됐다. 특히 10명의 용사들 중 힐러 계통은 이 하프엘프가 유일했으니….
다시 한 번 신중하게 1번째부터 9번째 용사의 프로필을 재검토해본 나는 결국 10번째 용사를 픽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전투수녀 1힐로는 파티 유지력이 후달리니 사실상 1열이 성전사로 강제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은 전투수녀를 픽하는 게 낫다.’
탱커 최강 수호자나 딜과 탱과 cc기 모두 준수한 편인 중갑기사는 사실상 작별인사를 고해야만 했다. 힐링이 가능한 1열 클래스는 성전사가 유일하니까.
“이 용사로 하겠습니다.”
“흐음? 으음. 취향 참 독특하시네. 뭐, 용사분이 나오시면 서로 통성명하시고 맞는지 확인한 다음 나가시면 됩니다.”
프로필을 받아들고 잠시 나를 흘깃거리던 직원은 10번째 용사의 프로필에 도장을 쾅 찍더니 중앙을 찢어버렸다.
그러자저 안쪽의 문이 열리더니 검은색의 수수한 수녀복을 입은 한 여자가 내 쪽으로 뚜벅뚜벅 당당히 걸어왔다.
키는 170정도에 체격은 하프엘프라서 그런지 엘프처럼 마냥 가냘프진 않고 상당히 탄탄해보였고, 회색에 가까운 탁한 머리는 어깨 근방에서 가지런히 잘려있었다.
당당한 걸음걸이와 단련된 것 같은 몸매와는 달리 얼굴은 순진무구하게 생겼는데, 얼굴만 보면 벌레 한 번 못 죽여본 귀족 아가씨가 이러할까 싶었다.
‘내가 지금 뭔 생각을.’
독특한 프로필만큼이나 언밸런스한 외모를 소유한 하프엘프 전투수녀.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크흠. 용사대 HAT의 헨드릭이라고 합니다. 클래스는 현상금 사냥꾼이고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투수녀 카야입니다.”
처음 들어본 그녀의 목소리는 상당히 허스키했다. 그리고 상당히 무뚝뚝했다.
**
이제 동료도 영입했으니 기본 스킬을 배우고 기본 장비를 부여받은 다음 잡화상점에 가서 탐사필수템들을 사면 튜토리얼은 끝이었다.
“카야씨.”
“카야면 됩니다.”
“…카야. 스킬은 배웠습니까?”
도리도리
이 무뚝뚝한 전투수녀 아가씨는 대답 대신 고개만 살짝 흔들었다.
게임 할 때야 일개 캐릭터가 말이 많고 적은 게 무슨 상관이겠냐만, 여기선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의사소통은 확실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어찌됐든 카야를 데리고 다시 찾아간 용사훈련소.
카야를 전투수녀 클래스 전용 트레이너에게 보낸 뒤, 나도 현상금 사냥꾼 트레이너를 찾아갔다.
“기본 스킬을 배우러 왔습니다.”
“음.”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머리가 굉장히 반짝반짝한 아저씨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이쪽을 보지도 않고 4장의종이를 휙던졌다.
‘이런 데서는 또 게임 같네.’
4장의 종이는 바로 스킬 스크롤.
스크롤을 찢으면 해당 스킬을 등록할 수 있었다. 왜 4장이냐면 캐릭터가 사용할 수 있는 게 최대 4개였으니까.
물론 얼마든지 추가로 등록은 해뒀다가 휴식처 같은 곳에서 스킬을 갈아낄 수는 있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
그리고 운빨좆망겜답게 이 기본스킬마저 랜덤이었다. 이 게임은 캐릭터 스킬이 그렇게 많은 게 아니라 풀(Pool)이 한정적이었지만, 그래도 이 기본스킬 4개가 어떻게 뜨냐에 따라 초중반 공략의 진행이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었다.
‘진짜 이 게임 개발자들은 지 월급도 랜덤으로 받아야 된다니까.’
벌렁벌렁 뛰던 심장을 애써 진정하고 4장의 스킬 스크롤을 한 번에 찢었다.
[스킬 ‘수배범 발견’을 습득했습니다.]
[스킬 ‘섬광탄!’을 습득했습니다.]
[스킬 ‘대가리 분쇄’를 습득했습니다.]
[스킬 ‘어딜 도망가’를 습득했습니다.]
“아 시발….”
4스킬 중 3개가 유틸기(유틸성 기술)였다.
메인딜러 포지션인데, 딜링기(데미지 기술)가 단 하나.
머리를 싸매고지원소를 나섰다.
‘카야님, 제발.’
**
[동료 스킬 열람]
[카야Kaya]
[1스킬. 신성한 전투]
- 자신과 지정1인 버프
- 매 공격 적중시 체력 1 회복
[2스킬. 절정]
- 자신 버프
- 최대 공격력 1, 속도 1 증가
- 매 공격 적중시 무작위 아군 체력 1 회복
[3스킬.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 데미지 보정 +10%
- 명중률 보정 25%
- 5% 확률로 보스를 제외한 괴물 즉사
- 괴물 즉사 시 재행동
[4스킬. 전투수녀의 고행]
- 자신의 체력 1을 자해
- 지정한 아군(자신을 제외한)의 체력 2 회복
“…홀리 쉿.”
“??”
“아, 아뇨. 고생했습니다.”
“그저 스크롤 4장을 찢었을 뿐입니다.”
하긴 그야 그렇지.
어쨌든 마냥 죽으라는 법은 없었는지, 카야의 기본 스킬은 나랑 마찬가지로 딜링기가 1개밖에 없는 걸 제외하면 상당히 좋은 수준이었다.
특히 어떻게 떴는지는 모르겠지만 3스킬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는 그냥 끝까지 들고 가도 될 준종결급 스킬이었다. 거기에 힐량 자체는 낮지만 나머지 3개의 스킬이 전부 힐링과 관련된 스킬이었기 때문에 유지력 측면에서 당분간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그냥 든든했다.
오오 전투수녀. 킹갓수녀.
게임 할 때는 눈여겨보지도 않았던 폐급 클래스가 내게 한 줌 빛이 되어 강림한것 같았다.
“카야, 이제 기본 장비 수령하러 갑시다.”
“알겠습니다.”
오오 카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저 무뚝뚝함이 상당히 골치 아픈 요소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보라.
얼마나 듬직한가.
장비지원소에서 전투수녀 클래스 기본 방어구인 [수습수녀의 고행]과 무기 [수습수녀의 믿음]을 지급받고 내 앞에 선 카야의 모습을 보니, 당장이라도 철퇴를 들고 괴물들의 뼈와 살을 분리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카야. 혹시 던전에 대한 지식이나 노하우, 팁, 경험 같은 게 있습니까?”
“없습니다.”
“돈은?”
도리도리-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어림도 없지.
돈도 없고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는데 혼자 이 도시에 온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게임적 허용일 수도 있고, 나도 모르는 개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녀가 던전에서 1인분, 혹은 그 이상의 몫을 해줄 수 있는가. 그게 중요했다.
“그럼 일단 필요한 물품들은 제 돈으로 구매하겠습니다. 이의 없으시죠?”
“…헨드릭, 당신이 대장입니다. 이의는 없습니다.”
카야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다소 조잡한 중갑이 절그덕거렸다.
“좋습니다. 당신이 절 대장으로 인정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편의상 말을 짧게 하겠습니다. 그편이 효율적이니까요.”
“뜻대로.”
지금이야 괜찮지만 안에 들어가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생각해야 할 게 많은데 말까지 복잡하게 하는 건 머리 아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저 철퇴가 내 머리를 깨는 일은 없었다.
“묵을 곳은 있어?”
도리도리-
“지금까지는 어디서 지낸 건데.”
“던전행을 희망하는 모든 수녀들은 용사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수도원에서 지낼 수 있습니다.”
오호. 수녀들은 그런 설정이 있었구만. 게임에도 안 나와 있던 건데.
“뭐, 그럼 내가 묵고 있는 여관에서 묵자고. 하루면 될 테니까.”
끄덕끄덕-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는 카야를 여관으로 데리고 가자 여관주인은 슬쩍 카야를 보더니 손가락 3개를 폈다.
‘쯧.’
은화 3개를 추가로 지불하고 카야를 내 방에 묵게 했다. 하프엘프 수녀와 한 방에서 잠을 같이 잔다는 민망함과 비현실감과 원인 모를 두근거림 때문에 잠을 설친다같은 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
다음날 오전.
방바닥에 무릎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던 카야를 데리고 남은 돈 전부를 사용해 탐사 소모품을 싸그리 긁어모았다. 기본금이 적어서 불안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단기 알바로 돈 좀 모은 다음에 가는 게 가능할까 싶어서 용사관리청에 문의를 해봤더니, 도시 규칙상 용사들은 세일럼에서 일을 할 수가 없단다. 일을 하려면 용사 자격을 지워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던전을 못 들어가게 되고. 한 번 그렇게 용사 자격을 지우면 재발급 받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했다.
“후우….”
아무튼 터질 것만 같은 배낭을 등에 멘 나랑 카야는 던전의 아가리 앞에 서 있었다.
제한시간 : 5초
튜토리얼의 제한시간이 0으로 수렴했고, 이윽고 5초가 0초가 되었을 때.
* The Long Terror, ‘가장 기나긴 공포’ 튜토리얼을 종료합니다.
* 최종목표 : 가장 기나긴 공포 난이도를 클리어
* 한유진은 던전 안에서 동료들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 구역 탐사 중 귀환석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 구역의 보스를 처치할 시 구역당 단 한 번 세일럼에 귀환할 수 있습니다.
* 던전 내 랜덤으로 존재하는 던전상인은 세일럼 물가의 150% 가격으로 물건을 팔고, 50% 가격으로 물건을 사들입니다.
* 동료 용사가 죽으면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되살릴 수 없으며, 용사의 사망이 3회 발생할 경우 최대편성 인원이 영구히 3으로 감소합니다.
* Heroes Against Terror의 대장, 한유진. 부디 가장 기나긴 공포에 맞서 끝끝내 이겨내시길.
제한시간이 끝났지만 난 여전히 여기 있었고.
어려움 난이도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페널티들을 확인하며, 이를 악물었다.
“가자, 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