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1화 〉스펙 업(4) (61/218)



〈 61화 〉스펙 업(4)

‘비용 이거 너무 양심리스한 거 아니냐….’

스킬 업그레이드 비용이라고 해서 장비 쪽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구매 비용은  롱 테러 고난도랑 그렇게까지 큰 차이는 안 났던 거 같은데….

‘아니, 내가 잘못 기억한 걸 수도 있고.’

어쩌면 용사훈련소에서 스킬을 구매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니, 별 이득이  되는 부분은 놔두고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 비용만 팍팍 올렸을 가능성이 있었다. 생각할수록, 스스로 세운 가설에 빠져들었다.

‘그래. 어차피 장비는 기본으로 1렙 짜리는 지급해주고, 스킬도 랜덤이긴 하지만 4개는 공짜로 주니까… 하. 이집 장사 아주 이가 갈리도록 잘해? 어?’

난이도가 오르면 업그레이드 비용이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더 롱 테러에서도 그러지 않았나. 그래도 납득 가능한 정도라는  있었다. 어려워진 만큼 보상의 수준 하나만큼은 확실히 올라가고, 보상이 올라가는 만큼 각종 소비 비용도 올라가고. 만약 클리어 보상마저 짰다면 게임의 진행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허나 날 이곳에 떨군 새끼는 과연 악랄했다.

마치 내가 던전에서 얻은 보상을 어디에 가장우선적으로 투자할 것인지 아주  알고 있다는 것처럼, 고난도에 비해 최소 33%이상 오른 상태였다. 거기에 게임엔 있지도 않았던 클래스별 차등비용까지 포함하면, 50%는 가뿐히 넘지 않을까.

던전에서 노데스 클리어 보상까지 박박 긁어모으며 쌓아놨던 금화 더미는, 살인적인 업그레이드 비용 앞에서 더 이상‘더미’가 아니게 되었다.

순간 개인 용돈을 많이 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좋은 휴식은 멘탈 회복의 필수 조건이었고, 그러기 위해선 충분한 돈이 필요했다.

‘악덕 사장처럼 그거까지 싹 긁어모아서 업그레이드에 투자한다고 해도, 어차피 풀업글은 불가능한 일일 거고.’

새삼 나랑 카야의 무기라도 2레벨이  게 그때 당시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그래도… 이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단 말이지.’


[Hendrik ‘유진’ TerrorHunter]

종족/성별 : 인간 남성
클래스 : 현상금 사냥꾼(Bounty Hunter)
레벨 : 4
최대체력 : 17
공격력(2) : 5~16
방어력(1) : 7
속도 : 7(6+1)
기사회생/각성 : 9%
정찰확률 : 31%
긍정적 특징 : *방랑자(속도+1), 강한 의지(각성 확률 소폭 증가)
부정적 특징 : 극단적임(공격력의 밸런스가 낮아짐)

상상 이상으로 무자비한 용사대 스펙 업 비용 때문에 우울해진 마음은 갱신된 프로필을 보자마자 일시적으로나마 사라졌다. 체력, 공격력, 방어력이 모두 오른 것도 좋았고 정찰확률도  유의미하게 오른 것도 좋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건 레벨이 3이나 올랐다는 점이었다.

‘끽해야 3레벨이나 많이 차봐야 3레벨 반? 그 정도일  알았는데.’

흐뭇했다. 경험치 같은 게 없어서 정확한 경험치 상황은 모르겠지만, 내가 4레벨이 됐으니 카야도 확정적으로 4레벨은 됐을 터였다. 문제는 셰이인데… 설마 인던 한 번과 1-3에서 쫓겨났던  경험치 차이로 그녀 혼자 4레벨이 안 됐다면 하루 종일 쌍욕을 입에 달고 살 것이다.

‘다른 건 메시지로 알려주면서  레벨업만 이딴 수동 프로세스를 거쳐야 하는지 원.’

 외엔 긍정적 특징과 부정적 특징이 하나씩 붙었지만, 딱히 눈에 띄는 건 아니었다. 좀 과장해서 ‘강한 의지’ 특징은 평상시엔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극단적임’ 특징은 가뜩이나  아니면 도인 윷놀이에서 개걸윷의 확률을 더 낮춘 정도에 불과했다. 저 특징이 없다고 해서 민뎀이  뜨는 것도 아니요, 저 특징이 있다고 해서 치명타나 중간뎀이  뜨는 것도 아니었다.

‘긍정적 특징은 별로 안 바래. 부정적 특징만 요상한 거 안 찍혀있으면….’

셰이의 레벨이 4인 것만 확인하면. 그래도 당분간은 웃으며 살 수 있을  같았다. 스펙 업의 근간은 레벨이었으니까. 그 외에 제4의 멤버 건이나 장비  스킬 업그레이드 건은 내가 알아온 정보를 토대로 동료들이랑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날도 어느 정도 저물었고 슬슬 저녁 먹을 시간이 됐다.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을 가진 채 여관으로 돌아갔다.

“주인장, 혹시 제 동료들 들어왔습니까?”

“허허.”

방에 올라가기 전 혹시나 해서 여관주인한테 질문했는데, 무뚝뚝하던 여관주인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나 말고 용사님에게 있겠지.”

“예?”

뚱딴지같은 소리에 되물었지만 그 말을 끝으로 여관주인은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뭐, 사람 좋게 웃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올라가는데 ‘한창 좋을 때지.’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뭐지 대체.’

여관주인과 나와의 접점은 숙박비로 엮인 지극히 비지니스적인 관계가 끝이었다. 그렇다면 나와 관련된 좋은 일이라면 카야나 셰이와 관련된 일일 텐데.

‘가보면 알겠지.’

여관주인의 말 덕분에 기대 반 걱정 반에서 기대7걱정3 정도로 기울어졌고, 그래서 그런지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똑똑-

- 앗, 대장님?

“어, 나야. 들어갈….”

잠시만요! 1분, 아니 30초만요!

왠진 모르겠지만 셰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문 안쪽에서  가로막았다.

“뭔 일 난 건 아니지?”

- 그럼요!

“뭔진 모르겠지만 천천히 해.”

궁금증이 더 커졌다. 카야의 목소리는 아예  들리는  봐서는 셰이만  건가 싶기도 했고.

나는 기다리는 사이, 업그레이드 비용을 듣고 팔까말까 고민 중인 아티팩트와 소모품을 다시한 번 살펴봤다.

[불굴의 깃발]
- 적용 대상 : 모든 클래스
- 각 용사당 한 번에 한해 잠식 상태를 방어
- 각성 확률 3% 증가

[어둠의 통로]
- 단  번, 전투에서 후퇴할 수 있음
- 일정 확률로 임의의 용사에게 막대한 멘탈리티 하락 발생
- 일정 확률로 임의의 용사가 어둠에 잠식됨
- 일정 확률로 임의의 용사가 어둠에 실종됨

‘뭔가, 뭔가 애매하단 말이지.’

불굴의 깃발은 얼핏 보면 보험용으로 등록해두면 좋을 것 같은 공용 아티팩트였다. 다만, 내 입장에선 차라리 모든 인간형 괴물들에게 1뎀을 보정해주는 해골 목걸이가 몇 배 좋았다.

잠식을 방어한다는 거창한 설명이 있지만, 말 그대로 한 번만 막아주는 거라  상태에서 한 번만  멘탈 까이면 바로 공포가 스며들었다.

그렇다고 안 끼자니 빈 칸이 아깝고, 끼자니 뭔가 돈을 날리는 거 같아서 아깝고.

그리고 여기서 처음 보는 소모품, 어둠의 통로는 너무 리스크가  아이템이라 섣불리 만지고 싶지도 않았다.

‘이걸 갖고 있으면 왠지 나중에 써야 할 상황이 올 것만 같은 불안한 예감이….’

- 이제 들어오세요, 대장님!

셰이가 말했던 30초보단 훨씬 지난 것 같지만, 아까 다급했던 목소리는 사라져 있어서 아무래도 좋았다.

달칵-

“아깐 대체 무슨 일이었…….”

“짜잔~ 어때요? 어때요? 어때요?”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결코 과하지 않게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이 공존하는 드레스를 입은 채 가벼운 스텝을 밟고 있는 셰이가 날 반겼다. 팔은 목이  장갑으로, 다리 역시 스타킹 비슷한 걸로 흉터를 완전히 가린 그녀는 사뿐사뿐 드레스를 자랑하듯 내게 다가왔다.

아름답다. 그리고 우아했다. 표현이 구릴 거 같긴 하지만,  왕성 연회 속 공주님 같았다. 기품이 있었다. 허나 무겁거나 진중하지 않고 쾌활함이 섞여있었다.

“어때요? 어때요? 어때요? 지금 여섯 번째 묻고 있어요, 대장님!”

“어, 어어… 너무 예뻐가지고. 어.”

“헤헤.”

 얼빠진 대답이라도 만족했는지 셰이는 배시시 웃으며 오른손을 내 왼쪽 어깨에 착 얹었다.

“대장님 반응 보니까 보람이 있네요! 그럼, 또 한 번 놀랄 준비 되셨어요 대장님?”

“설마.”

“그 설마예요! 언니! 언니이!”

꿀꺽-

절로 침이 넘어갔다. 한껏 꾸민 셰이의 파괴력에제정신으로  있는 것도 힘들었다. 노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욕망이 꿈틀거렸다. 순간두 번째 휴식처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고, 음습한 자아가 기상하려 하자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언니? 왜 안 나와요! 대장님 왔는데.”

- 여, 역시 옷은 좀.

“이미 입어가지고 환불도 안 된다구요! 그리고 왜요? 엄청 예쁜데!”

카야는 욕실에 있었다. 정황상 그 안에서 갈아입은 것 같은데, 새로 산 옷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어떤 옷이기에.’

진심 수녀복도 아무렇지 않게 입었던 카야가 머뭇거릴 정도면, 대체…?

“에이, 안 나오면 내가   거예요?”

- 아, 알겠습니다. 나갑니다.

셰이가 으름장을 놓자 카야가 허둥지둥 욕실 문을 열고 얼굴부터 빼꼼 내밀었다. 그녀의 하얀 얼굴이 토마토가 되어 있었다. 아, 귀 끝이 사정없이 떨리는  보니 정말 부끄러운 거 같았다.

“대, 대장.”

“어, 카야.”

“노, 놀리지 마십시오.”

“놀리긴  놀려.”

“약속, 약속해주십시오.”

“그래. 약속할게.”

장단을 맞춰주었다. 카야가 머뭇거리는 만큼 내 궁금증도 덩달아 커졌다.

“헤헤. 깜짝 놀라실 거예요.”

셰이가 자신만만하게 속삭였고,욕실 문이 완전히 열렸다.

또각-

그리고 날카로운 굽소리와 함께 카야의 전신이 드러난 순간.

“….”

“대, 대장.”

“…….”

“대장?”

“……….”

“대, 대장!”

홀-리.

셰이가 고귀한 기품 위에 활발함이 더해진 공주였다면.

카야는… 걸어 다니는 페로몬 그 자체였다.

“우와, 대장님 눈빛!”

“여, 역시 이 옷은 너무…!”

일단 옷 자체도 예뻤다. 내 어휘 능력이 이렇게 후달리나 싶을 정도로, 어쨌든 예뻤다. 근데, 옷한텐 미안한 얘기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외설과 예술의 경계.

음란과 매력의 경계.

카야는  중심에 서 있었다.

회색 단발머리에 회색 눈동자가 가미된 전체적으로 차가운 인상의 얼굴은 꼭 정장을 입은 지적인 커리어 우먼 같은 느낌이 들지만,  느낌은 턱 끝에서 바로 180도 바뀌었다.

“대, 대장… 자꾸 그렇게 보시면….”

“쉬잇, 언니. 대장님 집중 중이잖아요.”

“크읏.”

전체적으로 하얗고 가느다란 목과 쇄골과 어깨선으로 이어지는 매혹적인 라인이 그대로 드러났다. 마냥 빼빼 마르지 않은 탄탄한 팔은 생동감을 살리고 있었고, 가슴을 가리고 있는 곳은 조금만 격하게 움직여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과하게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예쁘고 균형 잡힌 가슴은 옷 속에 가려져 오히려  야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그 첨단에 서 있는 두 개의 돌기는 그야말로 어떠한 시선도 사로잡아버리는 쌍둥이 블랙홀이었다.

옷이 가슴을 지탱하는 건지, 가슴이 옷을 받치고 있는지 모호한 모습.

“대장…?”

“언니. 가만히 있어요.”

“흐읏?!”

가까스로 핑크빛 블랙홀, 아니 핑크홀에서 빠져나오면 희미하게 보이는 예술적인 허리-골반 라인이 또 한  군침을 돌게 했으며.

조금씩 살랑살랑 드러나는 부드러운 엉덩이, 대놓고 드러나는 탐스러운 왼쪽 다리.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모든것을 빨아들이는 듯한 강렬한 드레스.

마지막으로 가뜩이나 빼어난 각선미를  층  돋보일 치명적인 하이힐까지.

“응읏…!”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난 카야를 꽉 껴안고 미친놈처럼 그녀의 입술을 탐하고 있었다. 셰이가 직전까지 내 옆에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셰이, 네가 못난 게 아니라 네가 예열을 시켜놔서 그래!

“푸하아, 하아, 대, 대장. 자, 잠시만. 흐읍!”

쯉, 쮸웁- 츄루루릅- 쮸우우웁-

레벨 확인? 업그레이드 상의? 아티팩트?

다 쳐내!

그건 나중에도 할 수 있으니까!

허둥대면서도 주저하던 카야가 양팔을 내 목에 감은 순간, 내 마지막 이성은 그녀의 옷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모조리 소모됐다.

“카야, 대체 네 한계는 어디까지야? 어?”

“하아아악-!”

딸깍-

문이 닫히고 누군가 나가는 소리와 함께, 침대가 거세게 출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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