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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화 〉이단의 성녀, 금단의 수녀(4) (71/218)



〈 71화 〉이단의 성녀, 금단의 수녀(4)

“후퇴하자.”

“…예?”
“네?”

한 단어를 내뱉는 건 너무나 어려웠다. 하지만 해야 했다. 항상 내 판단이 용사대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고생각했고, 지금도 꾸물거리는 이 시간에 다리를 움직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움직여.”

“자, 잠시만 대장. 후퇴하자니, 이대로 아예 빠져나가자는 말씀이십니까?”

“어. 우리끼리는 감당이 안 될 거 같다.”

“하지만….”

안다.  추측이 한낱 망상일 수도 있고, 망상이 아니라고 해도 어떠한 목적도 이루지 못한  다급히돌아가는 게 좋아보이진 않겠지. 심지어 수녀들이 들어와있고 가만 놔두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도 안 되는 이 상황에서 말이다.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한 건 맞아. 그치만 이렇게 규모가 압도적인 일을 우리셋이서 뭐 어떻게 해보겠다는  만용이라고생각해. 미리 알고 들어온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이건 더 이상 단순히 피랍된 성녀 한 명을 찾아오는 게 아니거든.”

“대장님.”

“어.”

“지금 여기서 딱 네 번째 방까지만 확인해보자는 건, 무리겠죠?”

당연히 무리다.

나는 지금까지 왔던 길을 역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곧 중갑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뒤따랐다.


**


교단은 난리가 났다. 아니, 정확히는 ‘교단들’이 난리가 났다.

라엘라 교단 세일럼 지부에서 파견한 전투단은 돌아오지 못했고, 나중에 따로 들어간 3인조 용사대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고 왔으니….

아무리 라엘라 교단과 유스티티아 교단의 자매들이 있다고 하나, 외부인이 대장으로 있는 용사대의 말을 어찌 전적으로 믿을 수 있나!

이런 입장을 표명하는 곳도 있었으나, 검게 물든 목걸이들과 약도를 제출하자 합죽이가 되었다.

라엘라 교단처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교단은 물론이고 관련이 아예 없던 교단들까지 한데 모여 긴급회의가 열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헨드릭님의 말에 따르면 한시가 급한 상황이에요. 저희 지부 전투단의 실력이 뛰어나긴 하나,  정도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면 훨씬 강력한 전력을 준비하고 있겠죠. 그들이 전부 해결하길바라는 건, 너무 안일한 일이에요.”

“동의하는 바요. 이렇게 논의할시간도 아깝고, 당장 이단 토벌대를 급파해야 한다고 보는데.”

“저들의 목적도 파악하지 않고 무작정 돌입하다가, 어떤 희생을 입을지.”

“그럼 그대로 놔두자고? 지금 잡혀있는 수녀들은. 지금  순간에도 그놈들이 제멋대로 숭배하는 ‘공포’를 던전 안이 아닌, 지상에 강림이라도 하고 있다면?”

“말 조심하세요!”

“이런 겁쟁이들을 봤나! 세일럼이 지워지고 제2의 던전이 생길 수도 있어! 우리가 조금 더 꾸물거렸다가는 말이야!”

“세일럼 성에서는  말 없습니까?”

“아직까진….”

난잡했다. 혼돈이었다. 기본적으로 선한 성직자들이라고 해서 자기주장이 없는  아니었다. 타인의 말을 경청할 줄은 알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의견이 쉽사리 바뀌진 않았다. 자신만의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시는 신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지기도 했고.

쾅쾅-

“정숙---!!!”

회의의 주최자인 세스티아가 고성을 질렀다. 평소에 절대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었던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지르자 시끄러웠던 회의장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이유? 위험성? 죄송하지만 그걸 여기 앉은 자리에서 다 파악할 수는 없어요. 실제로 지금까진 단순히 수녀가 납치된 줄로만 알고 있었죠. HAT 용사대가 아니었다면 말이에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지금 당장, 정예 전력들을 모아 급파해야 돼요. 정보는 그곳에서 즉각적으로 모으고 대처방안을 마련하고요.”

세스티아는 헨드릭이 제공한 약도를 쫙 펼치며  곳을 가리켰다.

“이 약도에 그려진 건 일부분이지만, 입구가 아마 6군데는 있을 거예요. HAT 용사대는 이 6곳 중  곳으로 진입해서 이런 규칙성을 깨달은 것이고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헨드릭이 밝힌 지점을 제외한 다섯 곳을 추가로 찍었다.  점들을 쭉 이어보니 정육각형이 되었다.

“여섯 곳에서 동시에 진입해 공포 숭배자들의 계획을 철저히 분쇄해야 해요. 그래야 정보도 더 많이 얻을 수 있고 동시에 더 많이 방해할 수 있겠죠. 용사대의 증언에 따르면 적어도 각 구역의 중반부까지는 그렇게 강한 적들은 없는 모양이니, 각 교단의 정예 정도면 쉽게 돌파할 수 있겠죠.”

“그곳을 지키는 타락한 수녀들을 죽이는 것 또한 계획의 일부일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건 인원 분담을 하면 되는 일이에요.”

“그 다음은?”

“각 구역을 파괴한 다음, 중앙에 모여서 이 사태를 일으킨 주범들을 처단해야죠.”

이단 처단.

공포로부터 비롯된 던전, 그로 인해 번성한 도시에 자리잡은 교단들이 공포 숭배자들의 제단을 박살낼 것을 결의하는 모습을 옆방에서지켜보던 헨드릭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

“예? 세스티아자매님이 직접 말입니까?”

“네. 교단들을 다 끌어모은 제가 이곳에 눌러앉을 수는 없으니까요.”

교단 대표들이 저마다 전력을 모으러 간 사이, 세스티아가 찾아왔다. 그녀는 우리에게, 정확히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예, 뭐.”

“헨드릭님.”

“예?”

“이번엔, 저와 동행해주실 수 있나요?”

“…예?”

입이 벌어졌다. 카야와 셰이도 마찬가지였다. 이 여자가 지금 뭐라는 거야?

“아니 지금 무슨 말씀을.”

“힘드실 거예요. 지금 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한 업적을 세우신 것도 맞아요. 하지만… 끝까지 함께해주실 수 있을까요? 헨드릭님은 라엘라님의 길을 따라 걷고 있진 않지만, 그분의 관심을 받고 계신  같거든요.”

“그게 무슨.”

고작 몇 번 기도  하고 맹세 좀 들었다고?

“입 발린 소리가 아니에요. 실제로 여신님께선 헨드릭님을 언급하셨어요.”

아니, 라엘라님! 그런 관심은  주셔도 되는데!

“헨드릭님과 자매님들이 함께해야  작전이 성공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요. 그리고 이전엔 저희 교단에서만 자체적으로 보상을 준비했다면, 이번엔 세일럼에 있는 교단들을 대표해서 보상을 드리게 될 거예요.  보상 때문에 움직이는 분처럼 말해서 죄송하지만, 긍정적으로 고려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저희가 급하다고 생각하셔도 되고요.”

요컨대 묻고 따블로 가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규모만 보자면 서브 파티 두  이상 투입 가능한 대규모 토벌전급이라고 봐도 무방하니 보상이 좋은 거야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근데….’

왠지 존나 빡셀 거 같았다. 던전에서 생환한 얼마나 지났다고, 스스로 호랑이굴에 걸어들어가는 꼴이었다. ‘공포의 수녀’급 괴물만 나온다면 다시 못 갈 것도 없었지만, 저 ‘중앙’ 구역에 들어가면 보스급 괴물이 튀어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팍 하고 와버렸다.

살며시 카야와 셰이의 눈치를 봤다. 후퇴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내가 강제적으로 지시했지만, 지금은 그녀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했다.

“대장에게 죄송하지만, 저는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상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토벌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참가하지 않는다면 마음속에 큰 짐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것도 그렇고 안전 문제도 문제 없다고 생각해요. 세스티아님이 동행을 요청하셨잖아요? 세스티아님은 세일럼 최고의 치유 수녀라고 알고 있어요. 적어도 던전에서처럼 엄청난 위기를 겪을 것 같진 않아요.”

보상은 보상대로 챙기고요.

셰이의 확신에 가까운 말에 세스티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민망한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셰이 성전사님의 과찬이에요. 그렇지만 걸림돌이 되지 않을 자신은 있어요.”

말은 저렇게 겸손하게 했지만, 딱히 부정하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사실상 인정하는 모습 아닌가.

‘세일럼 최고의 치유 수녀라고? 그럼 이야기가 다르지.’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경청할게요.”

“제 용사대와 동행하시는 동안, 임시로 제 용사대의 대원이 되시는 겁니다.”

“네. 그럴게요.”

“아니, 무슨 의미인지 알고 그리 쉽게 대답하시는 겁니까?”

“지휘권의 문제 아닌가요?”

“…맞습니다. 돌입하고 나서는 제 지시에 따라주셔야 합니다.”

“그럴게요. 애초에 제가 요청한 바이기도 했으니, 당연한 바예요.”

그녀는 당장이라도 출발할 준비가 되었다며, 구석에서 작은 가방을 둘러멨다.

“저희 지부는 이미 정예들이파견나간 상황이라 추가로 보낼 수녀가 없어요. 이번에라엘라 교단에서 파견 나가는  사실상 저 혼자죠. 그만큼  열심히  생각이에요.”

엉덩이가 무거울 줄 알았던 세스티아는 생각보다 행동력이 대단한 여자였다.

“이제 곧 집결 시간이 가까워 오네요. 저희도 출발하는 게 좋겠어요.”

“…그래요. 출발합시다.”

“네, 헨드릭님. 다시 한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저나 교단이나 HAT 용사대에게 입은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감사는 돌아와서 마저 받는 걸로 하겠습니다.”

“후후. 카야 자매님이랑 셰이 성전사님도 잘 부탁해요.”

공포의 수녀 셋을 무찌르고 황급히 빠져나온  대략 여섯 시간 만에 우린 다시 ‘이단과 금단 사이’에 진입했다.


**


“저희가 진입했던 곳까지는 최대한 빠르게 돌파하겠습니다.”

“헨드릭님.”

“예, 세스티아님.”

카야와 셰이의 짤막한 대답을 듣고는 가볍게 다리를 놀렸다. 도중에 세스티아가 말을 걸어서 대꾸해주었다.

“괜히 저 때문에 말을 길게 높이실 필요 없어요.임시긴 하지만 전 용사대의 대원이니, 말씀 편히 하세요. 그 편이 지시 내리기에도 간편하실 테니.”

“…알았어. 세스티아.”

“네. 그거예요. 헨드릭님.”

기분이 묘했다. 생긴  젊어 보이긴 하지만, 최소 30대는 되어 보이는 큰누님에게 반말을 내뱉는 기분이 들었다. 카야나 셰이만큼은아니지만 그녀도 꽤나 미인 축에 속했고, 몸매는 ‘자애로움’을 한가득 느낄 수 있을 정도였는데… 어쨌든  묘한 기분은 새롭게 떠오른 메시지 때문에 단박에 날아갔다.


[세스티아Cestia]

종족/성별 : 인간 여성
클래스 : 치유 수녀(Curing Vestal)
레벨 : 9
최대체력 : 24
공격력(6) : 15~19
방어력(6) : 9
속도 : 4(3.5+0.5)
기사회생/각성 : 15%
정찰확률 : 33%
긍정적특징 : 따뜻함(치유 스킬 효율 10% 증가)/부지런함(속도+0.5)/단호함(치명타 확률 소폭 증가)/헌신적임(자신을 향한 치유 스킬 효과 –10%, 타인을 향한 치유스킬 효과10% 증가)/행운(굴림에서 이길 확률 증가)
부정적 특징 : 색정적임(색을 탐함)/요부(남성 동료 멘탈리티 상승 속도 +20%, 여성 동료 멘탈리티 하락 속도 +20%)/피학성애(낮은 확률로 적의 공격을 대신 받음)

‘…이 여자, 대체 수녀는 어떻게 된 거냐?’

라엘라님? 여보세요? 라엘라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네? 딸이 너무 많아서 잘 모르시겠다고요?

9레벨에서 한 번, 장비 6/6렙에서   번, 긍정적 특징 5꽉에서 또 다시 한 번 총 세 번이나 가슴이 웅장해지는 프로필이었다. 존나 든든했다. 세일럼 최고의 치유 수녀라는 셰이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아직 보유 스킬을 보기 전이었지만, 긍정적 특징들만 봐도 거의 1티어급으로 잘 키운 치유 수녀를 보는  했다. 셰이가 포텐셜 넘치는 원석이었다면, 세스티아는 이미 세공까지 완성된 휘황찬란한 보석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밑의 부정적 특징을 보는 순간….

“어디 아프세요, 헨드릭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후훗,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말 편하게 하셨으면서.”

‘팜므 파탈이야. 독이 든 성배다.’

어떻게 하면 셰이처럼 영입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주 자그맣게 타오르던 행복회로가 제대로 불타기도 전에 파삭 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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