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이단의 성녀, 금단의 수녀(6)
해프닝을 무사히 넘기고 계속 전진했다. 워낙 압도적인 전투였고 휴식시간이기도 해서 잠시 풀어져서 그런 것이었는지, 다시 출발하고 나서부터는 진지하게 사방을 경계했다.
‘여자의 감 같은 걸로 세스티아의 숨겨진 본성을 파악한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들의 확 바뀐 태도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
“여긴….”
“딱 봐도 심상치 않아요.”
“응, 여태껏 봐왔던 문과는 다르게 생겼네요. 분위기도 그렇구요.”
다섯 번째방도 그리 어렵지 않게 통과한 우리는 곧 여섯 번째 방 앞에 도달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여기가 중앙 지역으로 돌입하기 전 마지막 방임을 깨달았다.
“세스티아님. 다른 교단 분들은 이미 도착했을까요?”
“들어가기 전까진 알 수 없어요. 다만 우리들이 지금껏 마주친 수녀들과 사제들의 수준을 생각해본다면, 먼저 도착해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겠지요.”
“난 방 세 곳만큼의 거리를 건너뛴 우리가 선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일단 그건 눈앞의 방을 통과하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
“네, 대장님. 열게요.”
“어. 조심하고.”
등 뒤에 세스티아가 있어서 그런지 무척이나 든든했다. 버스 탄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꽤나 앓았던 그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여차하면 ‘살인기도’를 다시 사용하게 하면 두려울 게 없었다.
‘임시 대원이라 너무 맛들여도 곤란하긴 하지만.’
그래도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9렙짜리 치유 수녀를 써먹겠는가. 아무리 인던이라 경험치나 보상이 본 던전보다 적게 들어온다지만, 기왕이면 현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다.
드르르르-
문이 서서히 열렸다. 우린 문이 반쯤 열리자마자 안쪽을 보고는 즉각 전투태세를 취했다.
[정예 괴물 <공포의 수녀>가 등장했습니다.]
[정예 괴물 <공포의 사제>가 등장했습니다.]
[정예 괴물 <제단의 수호기사>가 등장했습니다.]
“미친…!”
아무리 우리들에 비해 수준이 낮다지만, 한 방에 정예 괴물 셋이라고? 이 인던도 미쳐 돌아갔다.
‘아냐. 원랜 이 정도까진 아니었겠지만 저놈들의 계획이라는 것 때문에 난이도가 올라갔을 확률이 높아.’
우리가 무기를 꺼내들었듯, 적들도 말없이 전투를 준비했다. 불신자들이여 어쩌고저쩌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런 거 없었다. 자기가 죽어도 기쁘게 죽을 것이고, 우리가 죽으면 그건 더 기쁠 것이라는 기세가 대놓고 느껴졌다.
광신.
상대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모습이었다.
“저기, 제단 보이지.”
“예.”
“모양은 흡사한데, 풍기는 기운이 완전 다른 거 같은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지?”
“맞습니다. 아마 계획이 진행되면서 내용물이 변화한 모양입니다.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타락한 이들은 방 중앙에 보이는 작은 제단을 어떻게든 보호하려는 모양새였다.
[속도 체크]
셰이 : 3
카야 : 4
유진 : 7
세스티아 : 4
제단의 수호기사 : 5
공포의 사제 : 3
공포의 수녀 : 4
[유진의 턴이 앞서게 됩니다.]
‘제단은 부숴줘야 제맛이지.’
우선 멘탈공격과 치유 스킬을 사용할 게 뻔한 사제와 수녀부터 노리기로 했다. 수녀는 3열에 있으니, 2열에 있는 사제를 공격하려 한 순간이었다.
[공포의 제단이 공포의 기운을 흩뿌립니다.]
갑자기 제단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세 괴물에게 흘러들어갔고.
[제단의 수호기사와 공포의 사제, 공포의 수녀의 최대 체력이 10 증가합니다.]
[제단의 수호기사와 공포의 사제, 공포의 수녀의 공격력이 2~4 증가합니다.]
[제단의 수호기사의 방어력이 2, 공포의 사제와 공포의 수녀의 방어력이 1 증가합니다.]
[제단의 수호기사와 공포의 사제, 공포의 수녀의 속도가 1 증가합니다.]
“…어?”
----------!!!
어처구니없어서 말이 안 나올 정도의 버프종합선물세트를끼얹어버렸다.
[속도 체크]
셰이 : 3
카야 : 4
유진 : 7
세스티아 : 4
제단의 수호기사 : 6
공포의 사제 : 4
공포의 수녀 : 5
[유진의 턴이 앞서게 됩니다.]
“씨발… 씨발 이게 뭐야!!!”
내가 선턴인 거는 변화가 없었다. 허나 괴물들의 스펙이 말도 안 되게 올라가버렸다. 게다가 고만고만했던 속도가 확 뒤쳐져버렸다. 속도 1 때문에!
“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여버린다…!”
[카야 멘탈리티 –5]
[유진 멘탈리티 –4]
[세스티아 멘탈리티 –5]
방안을 가득 채운 공포의 기운에 셰이의 발작 스위치가 눌려버렸고, 카야와 세스티아는 속이 치밀어오르는 본능적인 거부감에 구역질이 나오는지 입을 틀어막았다.
[공포의 수녀]+
체력 76/76
공격력 6~10
방어력 3
속도 5
[공포의 사제]+
체력 79/79
공격력 7~11
방어력 3
속도 4
[제단의 수호기사]+
최대체력 : 79
공격력 : 8~13
방어력 : 9
속도 : 6
‘예상이 맞다면 중앙 구역 전 마지막 방이기도 하니 호락호락하진 않을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이런 식이라니… 미쳤어.’
다시 봐도 미친 버프였다.
‘심지어 제단을 공격할 수도 없어!’
공포의 힘이라는 존나 말도 안 되는 버프는 지속 시간도 없었다. 저 버프를 받은 게 차라리 일반 괴물 셋이었으면 모를까….
‘그냥 공격하면 안 되겠다. 낙인 박아야겠어,’
일의심각성에 비해 지금까지는 쉽게 통과했다는 걸 인정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보스를 상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도끼자루를 쥐었다.
“사제부터.”
[수배범 발견]
[유진이 공포의 사제를 수배범으로 낙인을 찍습니다.]
[유진이 공포의 사제에게 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78/79]
[낙인은 3턴 간 유지됩니다.]
[낙인이 유지되는 한, 모든 물리적 데미지가 25% 증폭됩니다.]
낙인은 성공적으로 박혔다. 이제 저 거무튀튀한 기사행세를 하는 놈의 턴이었다.
“너희 불신자들은 들어오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왔다.”
[2형 – 날려보내기]
“그러니, 돌아가라!”
“크윽!”
“아윽!”
“셰, 어억!”
[제단의 수호기사가 셰이에게 3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7/20]
[셰이가 거력에 떠밀립니다.]
[셰이가 2칸 뒤로 밀려납니다.]
[카야와 유진이 1칸씩 앞으로 당겨집니다.]
[항거할 수 없는 거력에 떠밀린 용사들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카야 멘탈리티 –5]
[셰이 멘탈리티 –6]
[유진 멘탈리티 –5]
[세스티아 멘탈리티 –5]
기사놈의 검격을 허용한 셰이가 속절없이 뒤로 튕겨났고 카야와 한 덩이가 되어 나까지 뒹굴었다. 시스템적인 데미지는 없었지만, 단 한방에 대열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셰이가 3열에 있으면 공격을 못해!’
언제나 맨 앞에 있던 셰이가 내 뒤에서 기사놈을 노려보며 험한 욕을 퍼붓고 있는 모습은 굉장히 낯설면서도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다.
“어둠 속에 스러지세요. 그리고 공포를 느끼세요.”
[공포의 복음]
[공포의 수녀가 카야에게 2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남은 체력 14/16]
[공포의 수녀가 유진에게 1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남은 체력 16/17]
[공포의 수녀가 셰이에게 0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남은 체력 17/20]
[공포의 수녀가 세스티아에게 0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남은 체력 24/24]
[용사들의 귀에 공포의 속삭임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카야 멘탈리티 –8]
[셰이 멘탈리티 –10]
[유진 멘탈리티 –8]
[세스티아 멘탈리티 –8]
속도가 밀렸고, 광역 멘탈리티 공격까지 맞아버렸다. 저놈들의 속도가 1씩 올랐을 뿐인데, 모든 패턴이 어그러져버렸다.
[카야와 세스티아와 공포의 사제의 속도가 같습니다.]
[속도 굴림]
카야 : 3
세스티아 : 5
공포의 사제 : 4
[세스티아의 턴이 공포의 사제와 카야의 턴보다 앞서게 됩니다.]
[공포의 사제의 턴이 카야의 턴보다 앞서게 됩니다.]
세스티아는 ‘행운’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고 카야는 뭐, 굴림에서 지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험난한 전투 상황 때문에, 내 표정이 일그러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카야가 뒤돌아보기 전에 재빨리 표정을 관리했지만….
‘씨발. 급한 대로 1업씩이라도 하고 올 걸 그랬나?’
최고로 효율적인 업그레이드 루트를 짠답시고 미뤘던 게 후회가 될 정도로 쫄렸다.
“헨드릭님.”
“보호의 요새…를 걸어줘.”
“알겠어요.”
[보호의 요새]
[세스티아가 모든 용사들의 체력을 2 회복시킵니다.]
[셰이 남은 체력 19/20]
[카야 남은 체력 16/16]
[유진 남은 체력 17/17]
[세스티아가 모든 공격을 우선해서 받아내는 보호막을 생성합니다.]
[보호막 남은 체력 8/8]
세스티아의 차분한 목소리에 나도 침착함을 되찾았다. 이번이 마지막 보스가 아니라는 사실에 상당히 쫄렸었는데, 이보다 더했던 상황들을 기억했다.
‘저 새끼들은 개노답 3형제다. 개노답 3형제다. 개노답 3형제다.’
그래, 공포의 손의 ‘태산과도 같은 공포’에 비하면 방금 광역기는 얼마나 보잘 것 없던가.
세스티아가 있는 이상 죽을 위험은 적었다. 멘탈 게임이었다. 계속해서 스스로의 멘탈을 다스렸다.
“굴복하지 말자. 정신 차리자. 이길 수 있어. 나아갈 수 있어. 던전 보스 때에 비하면 쟤네 아무 것도 아냐. 좆밥이야. 알잖아.”
그리고 동료들의 귀에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대답은 없었지만 경직되어 있던 카야와 셰이의 기세가 상당히 풀리는 것이 보였다.
“공포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공포를 받아들여라]
“흐읏…!”
“그릇된 믿음은 오히려 그쪽입니다! 위선! 그리고 허상!”
[공포의 사제가 세스티아에게 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보호막 남은 체력 7/8]
[세스티아 멘탈리티 –9]
사제놈이 책을 들고 고래고래 소릴 지르자 갑자기 세스티아가 두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다.
“저, 저 씨발새끼가! 세스티아!”
“괘, 괜찮아요.”
강한 공격은 아니었다. 보호막도 있어서 체력도 안 까였고 멘탈리티도 엄청 많이 까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저 새낀 선을 넘었다. 아무튼 넘었다.
‘감히 버스기사님을 노려? 안 그래도 제일 먼저 조지려고 했는데, 알아서 매를 버는구만?’
“카야!”
“예!”
“저새끼 조져.”
다섯 명이나 되는 자매들에게 어쩔 수 없이 휘둘러야만 했던, 채 핏자국이 다 빠지지 않은 카야의 철퇴가 섬뜩하게 빛났다.
“타락한 것도 모자라서, 그 더러운 입으로 이쪽의 믿음을 모욕하지 마!”
콰드득-!!
“크아아아아악!!!”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치명적인 일격!]
[카야가 공포의 사제에게 32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46/79]
[용사들이 마음속에 깃들어있던 공포를 조금씩 밀어냅니다.]
[카야 멘탈리티 +3]
[유진 멘탈리티 +4]
[셰이 멘탈리티 +3]
[세스티아 멘탈리티 +3]
카야의 분노를 머금은 철퇴는 새로운 피와 살점으로 물들었고, 좆같은 말들을 지껄이던 사제놈의 치아가 나뒹굴었다.
“흐으으아아아악…!”
“셰이.”
“버르적거리는버러지만도못한쓰레기만도못한세상의오물만도못한개씨발새끼가….”
“내 앞으로 와.”
3열에 있던 셰이가 나와 자리를 바꿔 2열로 간 다음 턴을 종료했다.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사제놈, 분명 안심하고 있을 것이다.
푸흐흐, 근데 좆제놈아. 그거 알아?
아직 한방 남았다?
다음 라운드가 되어 다시 내 턴이 되었다.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사제의 대가리를 향해 도끼를 전력으로 휘둘렀다.
퍼석-!
[대가리 분쇄]
[믿을 수 없는 일격]
[유진이 공포의 사제에게 47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79]
[공포의 사제가 죽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징죄를 목도한 용사들의 마음속에 희망이 들어차기 시작합니다.]
[카야 멘탈리티 +5]
[유진 멘탈리티 +6]
[셰이 멘탈리티 +5]
[세스티아 멘탈리티 +5]
“씨발 그렇지!!!!!!”
“대장!”
“대장님!!”
“헨드릭님!!!”
인간형 낙인 치명타 맥뎀에 깨알 같은 아티팩트 1추뎀까지.
4레벨이 되고 나서 여태껏 안 터지던 치명타가, 처음 터지자마자 사제놈의 대가리를 문자 그대로 ‘분쇄’해버렸다. 단숨에 머리를 빠개버리는 감각에, 도끼를 쥔 손이 덜덜 떨렸다. 끔찍해서?
그럴 리가.
‘뽕맛 죽이네.’
동료들도 세스티아가 영원한 안식을 썼을 때 지었던 표정을 날 보며 짓고 있었다. 그래그래. 내가 네들 대장이야. 나 메인딜러야!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인 걸까.
다음 턴인 기사놈이 공격도 안 하고 머리가 박살난 시체를 보고 있었다.
“들어와봐, 허접 새끼야.”
개노답 삼형제, 아니 이제 개노답 형제가 되어버린 정예 괴물들.
이제 하나 줄였을 뿐이었지만, 전황은 크게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