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흉터(2)
카야와 셰이, 둘은 가까운 곳에나란히 누워있었다. 나랑 세스티아는 따로 배치했으면서 이 둘은 함께 눕혀놓은 건 누구 뜻일까.
아주 잘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자매 같네.”
얼굴이 그렇게 닮은 건 아니었다. 둘 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타입이 달랐다. 머리색도 많이 달랐고, 귀 모양도 좀 많이 달랐다. 성격도 판이하게 다르고 풍기는 분위기도 그랬다. 그래도 마지막 전투 때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런가, 꼭 사이좋은 자매처럼 보였다.
‘흉터.’
이불 밖으로 드러난 손에 눈길이 갔다. 둘 다 손등에 못 보던 흉터가 있었다. 심한 흉터는 아니었다. 그래도 마음이 아팠다. 가뜩이나 자신의 몸에 대한 자존감이 땅을 파고 들어가는 여자들인데… 손에 이정도 흉터라면 몸에는 또 얼마나 많은 흉터가 생겼을지.
“내 몸에 다 옮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녀들에게 준 건 별 거 없는데, 고통스런 기억과 흉터만을 선물해주는 것 같았다. 심지어 더 슬픈 건, 던전을 클리어한 건 아직 1구역뿐이라는 것…. 아무리 이번 인던이 본 던전급 포스를 뿜어냈다 해도 던전의 구역은 아니었다.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이들이 이번 일로 지쳐서 용사대를 탈퇴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끔찍하구만.’
당장 떠오르는 감정만 해도 엄청난 허탈함, 허무함, 상실감, 암담함이었다. 인정했다. 난 이미 그녀들 없이는 던전행을 시도하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새로 영입하고, 새로 인연을 쌓아올리고 다시 멘탈을 케어하고…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 개고생을 했는데… 심적 소모가 너무 컸다. 끔찍한 상상이었다.
‘줄 수 있는 게 금화 조금이랑 내 몸뚱이 하나뿐….’
만약 그녀들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생각을 꿰뚫어봤다면 어땠을까. 자신들을 못 믿는 거냐며 삐친 척을 할까, 아니면 용사대를 탈퇴할 일은 절대로 없다며 호언장담을할까. 아니면, 힘들긴 힘들다며 어설픈 웃음을 지을까.
“아프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쭉 놓치지 않을 거라서 더 미안하고.
한동안 둘의 얼굴을 더 구경하다 방에서 나왔다.
**
내가 깨어난 건 새벽쯤이었고 간단한 아침을 먹고서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밤이었다. 한계까지, 아니 한계를 넘어서까지 혹사당했던 몸이 시간을 빨아먹은 것이었다.
그래도 강제적인 수면 덕분인지 새벽 때보다는 어느 정도 몸상태가 좋아진 상황이었고, 나는 다시 한 번 동료들의 방을 찾았다.
“카야… 셰이….”
카야와 셰이는 얼핏 보면 시체로 착각할 정도로 새벽에 봤던 그 자세 그대로 누워있었다. 가슴팍이 정말 미세하게 움직이지만 않았어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지랄했을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다.
무사한 건 알지만 기왕이면 빨리 깨어나길 바랐던 나로서는 많이 아쉽고 또 착잡했다. 그만큼 몸 상태가 나보다도 훨씬 심각했다는 거니까.
혹여나 회복에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내 방으로 돌아가려다 세스티아가 생각나서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도 나랑 비슷한 시기에 깨어났고 상대적으로 멀쩡해보였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 아닌가. 비록 그녀가 정식 대원이 되는 건 거절했지만난 그녀의 대장이었다. 회복이 끝날 때까진 제대로 살펴볼 책임이 있었다.
-라는 게 그녀의 방에 들어가기 전까지의생각이었다.
“아아, 아아, 하읏, 헨드릭, 헨드리익-!!”
‘이게, 뭔.’
노크를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방 안에 없나보다 하고 떠나려는 순간 인기척이 느껴졌고 살짝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난… 봐선 안 될 것을 보고 말았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게 아닐까.
“하앙, 하윽, 흣, 아흑! 더, 더어…! 헨드리이이익!!”
‘씨, 씨발. 이게 무슨 일이야.’
세스티아는 침대가 푹 꺼질 기세로 폭풍 같은 요분질을 하고 있었다. 멜론 같이 큼지막한천박하고 음-탕한 가슴이 마구 출렁거렸고 살짝 튀어나온 하복부가 쉴 새 없이 경련하고 있었다. 육덕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고 살집 있는 허벅지가 쉴 새 없이 오므렸다 벌어졌다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으며… 가랑이 사이로 어떤 막대기가 드러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녀의 신음소리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다는 것. 그리고 문을 살짝 열었을 뿐인데 저 모습이 정면으로 대놓고 보이고 있다는 것.
“아아, 부족해, 이걸론 너무 부족해요… 그때 느낌이, 그때 느낌이 도저히, 아흑…! 더, 더, 더….”
위아래 입에서 동시에 침을 흘리며천박하게 자위하고 있는 이 여자가, 정말 새벽에 봤던 그자애롭고 책임감 넘치는 숭고한 수녀장과 동일 인물이 맞단 말인가? 아무리 부정적 특징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일부분을 인던에서 맛봤다 하더라도, 갭도 어느 정도여야 인지하고이해가 가는 것이다. 저건 그냥 완전 다른 사람, 다른 인격체 수준이 아닐까? 그만큼 엄청난 충격이었다.
‘근데 시발, 난 왜 이러고 있는 거냐고….’
꿀-꺽
무방비하게 격렬한 자위를 하는 그녀도 그녀였지만, 훔쳐보고 있는 나도 문제였다. 문을 연 게 실수였다면 재빨리 못 본 척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거늘.
세스티아의 몸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특히나 그녀가 중간중간 내 이름을 부르며 야릇한 신음을 내지를 때마다 심장이 울렁거렸다.
‘안 돼. 카야랑 셰이가 아직도 의식이 없는데, 한심하게 이게 뭐하는 짓이야. 안 돼.’
요부냐! 요부 때문인 거냐!
나는 카야와 셰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가까스로 세스티아의 몸에서 눈을 뗄 수 있었다. 둘을 한꺼번에 취한 지도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뭐가 모자라서 세스티아를 그런 눈으로 쳐다본단 말인가.
쓸데없는 욕심이었다. 씨발 이제 좀 움직일 만 하니까 귀신같이 살아나기 시작한 음습한 자아놈에게 준엄하게 꾸짖었다.
‘못 본 척 하는 게 그렇게 어렵나? 꼴린다고 바로 반응하는 건 짐승이나 다름없는 일이야! 게다가 세스티아는 연인도 아니고!’
- 카야와 셰이도 처음부터 연인이라서 꼴리고 박았나?
‘씨발. 그래도 같은 용사대였고 동거동락하는 사이잖아! 세스티아는 경우가 다르지 경우가!’
- 내 이름을 저렇게 간절히 부르는데도?
‘사람에겐 존중해줘야 할 취향이 있고 모르는 척 해줘야 할 흑역사가 있는 법이다.’
- 돌아가면 실컷 만져주겠다는 말을 기다리는 게 아닐까? 새벽에도 그랬고.
‘그, 그건 씨발 그냥 어쩌다 한 말이지!’
하지만 오히려 말렸다. 존나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음습한 자아놈의 말은 항상 그럴싸하게 들렸다. 세스티아의 농담이 정말로 농담이 아니었다면? 그녀가 마지막에 말했던 ‘약속’이라는 게, 정말로 나중에 실컷 만져주겠다던 그 말을 가르키는 거였다면?
지금, 내 이름을 부르며 자위하는 게, 정말로 나와의 그렇고 그런 걸 원해서라면?
‘아니야. 설령 그렇다 해도 안 되는 건 안 돼.떳떳하지도 못한 짓이고, 카야랑 셰이에게도 못할 짓이야.’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캄 다운 앤 릴랙스. 어느 정도 가라앉히는데 성공했다. 이제 문을 닫고 내 방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됐다.
“흐윽, 흐응, 그, 그렇게 보시고, 어, 어딜, 가시는, 거예요… 헨드릭님….”
문틈 사이로 세스티아의 달뜬 얼굴과 마주친 순간, 실패하고 말았지만.
**
“세, 세스티아, 이건. 그러니까.”
“괜찮으니까, 와주세요….”
고개를 왼쪽으로 90도 꺾은 채 어정쩡하게 다가갔다. 자위를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한건지 얼핏 본 그녀의알몸은 땀에 번들거리고 있었고, 들어가자마자 그녀의 체향이 확 습격했다.
“그러니까, 그,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려고 했는데, 그.”
“정말로요… 괜찮다니까요….”
“아, 아니. 일단 옷이라도 입는 게 어때!”
“나중에, 얼마든지, 만져준다고 하셨잖아요… 왜 이번에도 모른 척 하시는 건가요?”
“어어….”
“그때 절 만져주셨을 때의 감각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않아요. 몸이 기억하고 원해요. 몸이 다 나은 것도 아닌데, 시도 때도 없이 달아올라서 미칠 것만 같아요. 혼자서 아무리 오래, 격하게 해도… 해소되지 않아요. 하으으…!”
쯔브읍-
세스티아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러자 가랑이에서 음란한 소리가 나더니 정체불명의 막대기, 그러니까 애액으로 흥건한 딜도 같은 게 빠져나왔다.
‘홀-리, 몇 센치야 저게?!’
딜도의 크기도 크기였지만, 그녀의 허벅지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애액에 시선이 쏠렸다. 목이 탈 정도로 음탕했다. 그런 내 시선을 알아챘는지, 그녀가 손가락로 제 허벅지를 쓰윽 쓸어올렸다. 그 다음, 보란 듯이 쪼옥- 소릴 내며 빨아먹었다.
“알아요. 경멸스러우실 거예요. 이렇게나 천박하고 음탕한 여자가 본성을 감추고 여신의 말씀을 전파하고 다니니까. 근데 그거 아세요?”
세스티아가 무릎걸음으로 종종 다가왔다. 침대 곁에 서 있던 나와 급격히 가까워졌다.
“저, 교단에 귀의하기 전에… 강간당한 적이 있어요.”
“…!”
갑작스런 그녀의 고백에,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임팩트가 무지 강력한 프롤로그였다.
“그것도 모자라 어린 나이에 원수의 아이까지 임신했죠. 지극히 평범했던 농부의 딸, 리아의 인생 제1막은 거기서 끝이 난 거예요.”
“세스티아.”
“아마 그때가 열셋이었나, 열넷이었나. 잘 기억이 안 나요. 확실한 건, 부모님은 절 버렸지만 전 뱃속의 아이를 버릴 수 없었어요. 설령 제 삶을 파괴한 원수의 아이더라도, 반절은 제 피가 섞여있으니까요. 제 자식이니까요.”
끔찍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던 세스티아는 내 손을 잡아 제 가슴으로 이끌었다.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손에 느껴지는 말캉한 감촉이 굉장히 훌륭했으나, 흥분되지는 않았다.
“제가 생각했던 건 교단에 귀의하는 거였어요. 배운 게 없어서 아는 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수녀가 되면 제 몸도 의탁하고 아이도 키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수녀가 되는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당연히 몰랐지만, 그땐 그래도 그게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그리고,낳았어요.
사랑스런 딸을.
“증오심도 있었어요. 너무 아팠죠. 신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뼈가 뒤틀리고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은,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어리기도 했고요. 근데… 아기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아기도 제 좁은 뱃속에 있느라, 더 좁은 곳을 통과하느라 힘들었을 거 아니에요. 빨갛고 쭈글쭈글하고 신체 비율도 이상하고… 그런 볼품없던 아기를 딱 품에 안는 순간… 맞아요. 지금 헨드릭님이 손에 쥐고 계신 거기. 거기에 딸의 얼굴이 닿는 순간, 증오심이 싹 사라졌어요. 엄마야. 엄마. 내가 네 엄마야.”
그때 그 순간을 떠올렸는지 세스티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조금 전에 보였던 요부의 미소가 아니었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미소였다.
어디의 괴물과는 너무나 극과 극이라서, 이를 악물었다.
“아이를 낳고 몸을 추스른 뒤, 수습 수녀가 되면서 예전의 이름을 버렸어요. 그리고 성인의 반열에 오르신 분들 중의 이름을 따왔죠. 성 세스티라는 분이었는데, 거기에 원래 이름 중 한 글자만 덧붙여서 세스티아가 되었어요. 그리고….”
그녀가 침대 옆 서랍의 제일 윗칸을 열었다. 거기엔 목걸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까만 물체가 몇 조각으로 부서져있었다.
“제 딸의 이름을, 세스티아의 으뜸, 세스티아의 보물이라는 뜻에서.”
베스티아.
라고 지었어요.
“그게 벌써, 19년 전이네요. 후후….”
부서진 목걸이를 바라보는 세스티아의 얼굴은.
무너져 있었다.